<기적의 이혼대법 142화>
콰과과과광.
천지를 울리는 굉음은 해안 정박지까지 전해졌다.
마인들은 적사결과 흑사광이 간 방향에서 충돌음이 나자 눈을 휘둥그레졌다.
“싸우는 소리? 설마 교주님과 흑사광 대주인가?”
“두 분이 왜 싸운다는 말인가? 그럴 이유가 없잖아.”
“모르지. 교주님의 존체가 지금 그러하니 역심이 든 것인지…….”
흑사광의 충심에 대한 의심.
그것이 웅성거리며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과거 교주직을 놓고 경쟁했던 사이.
더구나 흑사광은 당시 패배 이후 교를 떠나기까지 했었다.
부교주직을 맡은 과거의 인물들과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충분히 의심이 들 만했다.
하나 흑사광 휘하의 흑랑대는 달랐다.
“다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인가!? 우리 대주님께서 교를 배신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흑랑대 일조장 무린의 음성이 높아졌다.
그 뒤로 흑랑대 전원이 불쾌한 기색을 가감 없이 보였다.
“우리 대주님께선 교를 떠나셨으나 그 마음에 신앙이 없으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분께서 떠나신 이유는 현 교주님의 치세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함부로 떠들지 마라!”
“대주님은 역심을 품을 분이 아니야!”
피를 토하는 그들의 외침에 구양패가 앞으로 나섰다.
“다들 진정하게. 흑사광 대주의 마음은 본 장로 역시 알고 있네. 전대 교주님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구양패는 흑랑대를 안심시키고 수하들에게 일갈했다.
“지금부터 흑랑대주에 대해 함부로 떠드는 놈은 본 장로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수라혈검대!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자는 그 즉시 참수하라.”
“대장로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주 염마천을 비롯해 수라혈검대원들이 읍하며 날카로운 기세를 발했다.
그러자 좌중은 순식간에 동요가 잦아들었다.
“대장로, 다들 궁금해서 그런 것이니 예서 이러지 말고 가 보는 것이 어떻겠소?”
이장로 관패가 나서며 좌중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랬다.
사실 그들은 과거 교주쟁패전의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그때의 당사자들이 천하 십대고수가 된 상황.
무를 숭상하는 마인으로서 보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런, 노부가 젊은 마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군. 고맙소, 관 장로. 그대가 아니었다면 꽉 막힌 늙은이가 될 뻔했군.”
“허허허, 아니오. 나 역시 저들과 같은 마음이라 알 수 있었지 만약 내가 대장로였다면 몰랐을 것이오.”
관패는 눈을 찡긋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대장로 구양패는 두 사람이 다투길 원치 않았다.
한 사람은 신교의 지존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지존에 못지않은 절대 고수.
무허 때문에 반으로 쪼개진 천마신교에 두 사람의 협력은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다들 이동한다. 대열을 맞춰 조심스럽게 두 분이 계신 곳으로 향할 것이니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구양패의 결정에 마인들은 낮게 환호성을 질렀다.
관패는 그 모습을 보며 한 마디 했다.
“만약 정말로 두 분이 비무 중이라면 방해되어선 안 되니 숨소리도 내지 말고 기세도 확실히 갈무리하여라. 혹여 두 분의 투쟁심에 휘말려 투기를 일으킬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여기에 남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무에 방해가 된다면 베어 버릴 것이라는 뜻.
관패가 검갑을 툭툭 건드리며 말하자 점점 남겠다는 이들이 나왔다.
대부분이 무위가 낮은 자들이었다.
“그래, 무인이라면 무릇 자기 자신을 확실히 알아야지. 더 남을 놈들은 없느냐?”
관패의 물음에 마인들은 소리 높여 대답했다.
“없습니다!”
“하면 바로 이동한다.”
삼분지 일 정도만 남고 나머지는 이동을 시작했다.
구양패는 관패에게 인솔을 맡기고 당연희에게 다가갔다.
“그대도 가 보겠소?”
“네. 저도 보고 싶어요.”
자신의 몸으로 천하 십대고수 마령존과 대적하다니.
당연희로서는 반드시 보고 싶은 광경이었다.
“이장로가 말한 것처럼 두 분의 싸움에 방해가 되어선 안 될 것이오. 자신 있소?”
“이 몸이면 괜찮을 거예요.”
천지연원공이 아니면 꼼짝도 하지 않는 단전이었다.
당연희는 조금도 기운을 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 * *
실로 경천동지할 생사비무.
마치 원수를 마주한 듯, 두 절대 고수의 손속은 살기가 짙었다.
그 지독한 살기에 마인들은 삼십 장을 경계로 더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과연 교주님이시구나. 여리디 여린 여인의 몸으로 저런 신위라니.”
이장로 관패는 순수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본신의 몸이 아님에도 그 화후를 짐작키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구양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흑사광 대주도 대단하네. 지난번 야수권마를 상대할 때 잠시 보였지만 묵혼마신체를 저렇게까지 유지하다니 말이야.”
“이하 동문이외다. 그 난해한 암흑천마공을 저렇게까지 익혀 내다니 흑랑대주도 분명 하늘이 내린 무골인 듯하오.”
“한데 교주님께서는 광혈수라공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닌 듯하지 않은가?”
“그렇구려. 특히 지존의 이마에 생성된 눈의 형상은 무엇인지 모르겠군…….”
두 장로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나이가 들었지만 그들도 타고난 마인인 것이다.
그때 주위에서 낮은 목소리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봤어? 어떻게 저걸 피할 수 있지?”
교주의 몸은 암혼쇄에 결박당한 상태였고 흑랑대주의 일장이 그 위를 덮쳤다.
한데 그걸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것이었다.
“누구 확실히 본 사람 있어?”
“너무 빨라서 못 봤어. 이형환위 아니야?”
“암혼쇄에 묶여 있었는데 이형환위를 어떻게 펼쳐! 아니야!”
“새끼가 목소리 높이네. 그럼 네 생각은 뭔데?”
“전신으로 호신강기를 발출하고 암혼쇄가 밀려난 찰나에 움직이셨겠지.”
“암혼쇄가 칭칭 감고 있었는데 어떻게 기공의 발출만으로 밀려나? 천하 십대기병이 새끼줄인 줄 알아? 바보냐?”
“뭐 인마? 바보? 말 다했어?”
마인들이 티격태격하며 목소리를 높이려하자 염마천이 나직이 경고했다.
“더 목소리를 높여 두 분께 방해가 된다면,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해 주마.”
“…….”
장내가 조용해지자 염마천은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교주님의 신체가 변형되며 빠져나간 것이다.”
“변형이라니요?”
“말 그대로다.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으나 마치 연체동물처럼 암혼쇄의 결박을 빠져나가셨다.”
“우와아아!”
좌중은 다시 한번 통일된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들 집중하고 보거라. 이런 싸움은 관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연이니라.”
구양패의 말에 마인들은 다시 싸움에 집중했다.
그의 옆에서 전황을 보는 당연희 역시 감탄 어린 눈을 하고 있었다.
‘진짜 내 몸 맞아? 어떻게 저렇게 싸울 수가 있지?”
외공과 관련된 특별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내공 역시 녹주독혈사의 내단을 취한 후 어느 정도인지 들었으니 알고 있었다.
한데 그녀가 보기엔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위가 있었다.
실전 경험? 혹은 전투 감각이라 해야 할까?
내공의 배분부터 적재적소에 외공을 쓰는 감각적인 대응.
만약 자신이었다면 상대의 삼초지적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놀랍나보오?”
구양패의 물음에 당연희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대단하네요. 저분들이 어째서 숙부님과 같은 사마오대존으로 불리는지 알겠어요.”
“허어, 그대의 숙부께서 암룡신존이시오?”
“그래요.”
“하면 당가의 직계 혈족이라는 말이오?”
“맞아요.”
“……흠.”
구양패는 턱을 매만지며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방계도 아니고 직계였었나…… 하면 함부로 건들진 못하겠군. 수하들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어 야겠어.’
기회를 봐서 팔다리 한두 개는 잘라 버릴 생각이었다.
감히 지존께서 고생해서 얻은 반선주를 홀랑 마셔 일이 꼬이게 만든 것도 있고, 무엇보다 저 몸뚱이가 지존의 몸을 빼앗은 무허 노괴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사천당가의 직계라면 잘못 건드렸다 사천회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노릇.
구양패는 애초에 생각했던 계획을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웠다.
그가 그렇게 상념에 빠진 사이 승부는 결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꽈아앙.
흑사광이 광룡파천권을 얻어맞고 사정없이 밀려났다.
묵혼마신체의 방어력 덕분에 버틸 수 있었지만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강격이었다.
그렇게 충격이 누적된 상황에 정신까지 흐트러지자 묵혼마신체의 형태가 일그러졌다.
‘크윽, 점점 묵혼마신체를 유지하기 힘들다.’
흑사광은 고개를 휙휙 저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한데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어째서 점점 지존의 공격이 적중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일까.
단순히 자신의 공격에 익숙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은 암흑천마공 외에도 진신 무공인 진마전륜공의 초식을 섞어 교주도 모르는 새로운 초식을 쓰고 있었다.
더구나 변칙성 무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암혼쇄까지 다루는 중이 아닌가.
익숙해졌다 말하기에는 손을 섞은 시간이 너무 짧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초식을 미리 대응하다니? 뭐지? 한 수 앞을 내다보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고수일수록 공격을 예측하는 육감이 발전하긴 한다.
하나 거의 동등한 경지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특히나 자신들처럼 천하 무인들의 정점에 이른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흑사광은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했다.
“이봐, 흑사광.”
적사결이 그의 상념을 지우기 위한 듯 말을 걸었다.
“예, 지존이시어.”
“이거 보여?”
적사결은 검지로 자신의 이마에 떠오른 삼지안을 가리켰다.
“이게 상대의 기운을 보여 주기에 본좌는 자네의 한 수 앞을 내다볼 수 있다.”
“기운을 말입니까?”
“그래. 자네의 단전에서 일어난 진기가 어느 혈도를 타고 흐르는지 운기의 방향까지 훤히 보여.”
흑사광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내공이 흐르는 방향을 본다면 초식을 미리 읽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걸 왜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이것도 그렇고 내공의 독성도 좀…… 사기 같아서 말이야. 더구나 자네도 한계에 달한 것처럼 보이고.”
적사결은 승부의 향방이 기울기 시작했기에 제대로 승패를 결정짓고 싶었다.
“하긴 독기 때문에 암경을 완벽히 차단하느라 힘들긴 했습니다.”
“그렇지? 어쩐지 움직임이 호쾌하지 못하더라고.”
“하면 한 초식으로 승부를 보실 겁니까?”
“물론, 패도는 역시 힘과 힘 아니겠어?”
“좋습니다. 그럼 무기술입니까? 아니면 적수공권입니까?”
“장법으로 하지. 그나마 덜 다칠 테니까.”
장법이라고 어찌 파괴력이 약할까.
하나 권법이나 여타 적수공권의 수법 중에서는 나은 편이었다.
스스슥.
적사결과 흑사광은 사왕과 암혼쇄를 거두고 장심에 내력을 모았다.
극한으로 압축된 내력에 적사결의 손바닥은 비취색 녹광으로, 흑사광은 칠흑 같은 묵빛 안개를 발산했다.
그 가공할 기운에, 삼십 장 밖의 마인들까지 가슴이 묵직해졌다.
“어…… 엄청난 기운이야.”
“저걸 맞부딪치면 두 분 다 멀쩡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야, 여기서 어떻게 말려? 이게 말릴 분위기냐?”
살벌하기 그지없는 대치였다.
구양패와 관패, 그리고 염마천도 침음을 삼키며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움직인다.”
구양패가 두 사람의 미세한 기세를 읽고 나직이 읊조렸다.
역시나 잔재주를 버리고 패력을 선택한 두 사람은 맹렬하게 부딪혀갔다.
“광혈수라공, 수라멸천장.”
“암흑천마공, 초마천살장.”
마치 친선 비무인 듯 서로에게 초식을 알려 주는 외침.
그걸 신호로 두 장심이 광채를 뿌리며 맞닿았다.
꽈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