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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40화 (140/206)

<기적의 이혼대법 140화>

*   *   *

동정호 군산도, 사무련 본단.

사무련주 백천악은 상의를 벗고 있었고, 금침이 기경팔맥의 주요 혈자리에 꽂혀 있었다.

운기조식을 하는 그의 상체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는 중이었다.

등 뒤로는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스산한 귀기를 발했다.

그 옆에서는 사무련 요의전의 전주 신휘강이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우우우.”

붉은 탁기를 뱉어 낸 백천악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어떠십니까?”

신휘강의 물음에 백천악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주 좋네. 자네의 침술은 신선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군. 자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기운이었는데 말이야.”

무허와의 격전에서 침투했던 암경.

그것은 파황십결로도 해소할 수 없었다.

백천악으로서는 련으로 복귀할 때까지 기운을 억눌러 두는 것이 한계였던 것이다.

“마교의 영역이었지 않습니까. 안전한 장소만 확보되었다면 련주님께서 자력으로 기운을 몰아내셨을 겁니다.”

“족히 일 년은 정양해야 했겠지. 그리 겸손할 것 없네. 이리 시간을 앞당긴 것은 휘강, 자네 공이니 말이야.”

“하나 당분간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제 평생 그렇게 지독하고 악랄한 마기는 처음입니다.”

“안정이라…… 안정을 취할 상황이 아닌데…… 쯧.”

얼마 전 오대세가에서 선전포고를 한 상황이었다.

명분은 단천도제와 철탑권왕의 죽음, 그리고 폐인이 된 창궁검제의 복수였다.

물론 그는 그것이 오해임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적사결이 행했고, 오대세가는 젊은 무인의 모습을 한 그를 사무련의 신진고수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 백천악은 구질구질하게 변명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오대세가는 자신들의 앞길을 막아 온 주적이었으니까.

“세 가주가 그리되었으니 절대고수는 모용세가의 북천대제와 제갈세가의 통천제만 남았지 않습니까. 그들 두 사람만으로는 섣불리 전면에 나서진 않을 것입니다. 하니 련주님께서도 당분간 도련님께 맡기시지요.”

신휘강은 백천악의 몸에서 금침을 모두 거두며 말했다.

“그래, 이번 기회에 류혼이 그 녀석에게 맡기는 것도 좋겠군. 정식으로 녀석의 강호 출두를 알리는 무대로도 제격이고 말이야.”

복귀한 백류혼은 그 위상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천하제일 후기지수라 불렸던 하북의 옥기린을 일대일로 패퇴시키고 그 이름을 넘겨받은 것이다.

더구나 수호신조에게 선택까지 받은 상황.

사무련 내부에서는 이미 백류혼을 차기 련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접니다, 아버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백류혼이 내실로 불쑥 들어온 것이다.

“련에서는 공식적인 호칭을 쓰라하지 않았더냐.”

“그런 분이 공무는 안 보시고 건강침이나 맞고 계십니까? 설마 벌써 뒷방으로 물러날 생각은 아니시죠?”

“네가 왔으니 이제는 물러나야지.”

“아버지!”

“련주님.”

“젠장! 련주님!”

백류혼이 목소리를 높이며 호칭을 바꾸자 신휘강이 나섰다.

“도련님. 련주님께서는 몸이 좋지 않으십니다. 소리를 낮추십시오.”

“아버…… 아니 련주님께서요?”

백류혼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백천악을 돌아보았다.

저 죽여도 죽지 않을 것 같은 괴물 같은 양반이 아프다니.

“이번 암행에서 입으신 내상이 깊어졌습니다. 지병도 악화되어 당분간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지병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신이 모르는 지병이 있다는 말에 백류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백천악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자네, 쓸데없는 말은 뭐하러 하는가?”

“련주님처럼 말 안 듣는 환자를 다루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신휘강은 한숨을 쉬면서 백류혼에게 말을 이었다.

“파황십결. 그것은 초대 련주부터 대대로 흑천백가에서 다듬어 온 무공입니다. 천하에 선천지기가 개입되는 무공은 파황십결이 유일하지요. 한데 그 난해함은 도련님께서 아시다시피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합니다. 역대 전승자 중 대성한 분이 몇 분인지 아시죠?”

“초대님과 아버지. 단 두 분이죠.”

“맞습니다. 특히 당대 련주님께서는 초대님께서 고안하시고 창안하신 불완전한 파황십결을 개선하신 분입니다. 그걸 위해 련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선천지기의 조합을 시험하셨는지 도련님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실상 도련님께서 그 나이에 육결까지 체득하신 것은 반은 련주님 덕분이라 할 수 있지요.”

“하면 그것 때문에 지병이 생기셨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백류혼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스스로도 파황십결이 어떤 무공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파황십결은 양날의 검이었다.

자칫 시전자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콜록. 콜록.”

그때 백천악이 갑자기 밭은기침을 하듯 콜록거렸다.

“련주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 아. 괜찮으니 호들갑 떨지 말게. 목이 칼칼해서 그런 것이니.”

“여기 차라도 한 잔 드십시오.”

“허허, 고맙네.”

백천악은 차를 홀짝이고는 백류혼에게 말했다.

“지병이니 뭐니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전쟁 준비나 잘하거라. 내 너에게 이번 정사대전의 선봉을 맡길 것이다.”

“끄응. 정말 괜찮은 거예요?”

“별일이구나. 새삼스레 아비 걱정이 되는 것이냐?”

“아버지가 쓰러지면 수연이가 혼자 련을 이끌어 나가기 힘들 테니까 그런 거죠.”

“동생을 그리 끔찍하게 생각하는 놈이 집을 나가? 그것도 개방도에게 빠져서?”

백천악은 거지새끼라 말하려다 개방도로 말을 순화해 내뱉었다.

아들이 금개를 얼마나 흠모하는지 사령들에게 보고받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금개를 욕했다가 녀석이 엇나가면 그간의 고생들이 헛일이 되어 버릴 것이다.

“무슨 말씀인지 아니까, 그만하세요.”

백류혼은 금개 얘기가 나오자 대화를 끊어 버렸다.

그 모습에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삼켰다.

“딱 이번 전쟁까지 나설게요. 그리고 광혈존과의 대전자리를 마련하면 련을 떠날 겁니다. 그전에 수연이가 후계를 잇도록 준비해 주세요.”

“그리도 본련을 이끄는 것이 싫으냐? 너는 나와 다를 것이다. 이 아비가 탄탄대로를 닦아 놓았으니까.”

자신이 사무련주에 오를 때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었다.

아비가 전 사무련주였지만 천마신교의 교주와 있었던 비밀회동으로 돌연 사망.

이후 사무련의 주축인 여섯 문파가 그야말로 혈투를 벌였던 것이었다.

젊은 백천악은 그 모든 역경을 이겨 내고 사무련주가 되었고 경쟁관계에 있던 다섯 문파를 밟아버렸다.

지금 흑천백가에 맞설 수 있는 대문파는 흑도에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맞아요. 나는 아버지와 달라요. 탄탄대로든 오솔길이든 이 길은 나와 맞지 않으니까요.”

백천악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휴우, 알았다. 이 고집불통 같으니.”

“죄송해요. 제가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쩌겠어요.”

백류혼은 머리를 긁적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여긴 왜 찾아온 것이냐?”

“아참!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해남에 좀 다녀올게요. 사령들이 달라붙어서 군산도를 못나가게 막으니 허락받고 가려고요.”

“해남? 그곳에 모인다는 마인들 때문이냐?”

“보고 받으셨나 봐요?”

“장강 이남에서 마인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끝도 없이 출몰하는데 보고가 없을 리 없지.”

“예. 거기다 흑살방을 비롯해 수백 개의 문파들이 현판을 내렸답니다. 정사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정리해야 될 것 같아서요.”

“마인들이 저지른 짓이 확실한 것이냐?”

“아직 확실한 건 모릅니다. 하나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그 광혈존이 해남으로 향했고, 그 사람은 본련의 눈치를 안 보니 말이에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련의 입장에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다. 시시비비를 확실하게 가리거라.”

“걱정 마시고 요양이나 잘하세요.”

백류혼은 피식 웃고는 짧게 읍하고 내실을 나섰다.

신휘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도련님께선 여전하시군요.”

“저렇게 한결같은 놈도 없지. 젊은 놈이 야망이 없어도 저렇게 없을까!”

“이번 전쟁을 겪으면 달라지실 겁니다. 수천, 수만의 목숨이 두 어깨에 놓일 테니까요.”

“한데 자네는 지병 얘기는 뭐 하러 했는가? 설마 저놈이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련을 맡을까 봐?”

“흠흠, 련주님께서도 기침을 하면서 호응해 주셨잖습니까. 연기 좋으시던데 내심 기대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백천악은 무안해졌는지 내려놓았던 차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망할 놈. 아비가 아프다는데 꿈쩍도 안하다니.’

신휘강은 수염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파황십결을 대성하고 오히려 선천지기를 북돋았으니 건강해질 수밖에. 저리 강건하시니 도련님이 지병 얘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게 당연한 거겠지.’

사무련주 백천악.

그는 너무도 건강했다.

*   *   *

해남도.

광동성 뇌주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군도 중 가장 큰 섬이다.

중화 본토와는 경주해협을 사이에 둔 그곳은 따뜻한 기후 덕분에 열대우림지가 지형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즉, 사람의 손길이 닿은 부분이 적다는 말이다.

무림의 측면에서는 과거 해남파라는 도가 일맥의 무문이 있었지만 원의 치세 당시 반역도로 몰려 멸문한 이후 이렇다 할 문파가 세워지지 않은 불모지였다.

그곳에 적사결이 발을 내디뎠다.

“다들 나와 있었구나.”

그를 환대하기 위해 구양패를 비롯한 마인들이 해안 정박지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섭천의 전서구를 통해 적사결의 현 상황을 모두 들었기에 그가 여인의 모습임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신교출세! 만마앙복! 지존을 뵈옵니다!”

해안을 가득 메운 마인들의 단합된 목소리에 대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사악진을 비롯한 세 문파의 문주들은 꼬리를 만 개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없이 공포감에 짓눌린 상태였다.

적사결은 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동시에 착잡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는 마인들을 주욱 돌아보며 사죄했다.

“먼저 너희들에게 면목이 없구나. 신교의 지존으로서 판단컨대 지금 상황은 분명한 본좌의 실책이다. 미안하구나.”

자신이 무허의 암계에 빠져 지금과 같은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아닙니다! 지존께선 잘못이 없으십니다. 모두가 그 간악한 괴승의 계략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부디 마음을 가벼이 하십시오!”

마인들은 한 목소리로 적사결의 무죄를 대변했다.

“암계에 빠진 것!”

벼락 같은 대갈일성에 좌중은 일순간 침묵했다.

“너희들의 지존으로서! 마도의 대업을 짊어진 자로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죄다!”

마인들은 그 비통한 외침에 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교주라는 지위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 바로 지금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는 무소불위의 권력, 신성한 신앙의 상징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십만 교도의 목숨을 한 손에 쥔 엄중한 자리였다.

“나 광혈존 적사결! 여기서 선포한다. 이번 일이 끝나면 교주직을 내어 놓고 하야 할 것이니 다들 그리 알거라.”

적사결의 청천벽력 같은 선언.

구양패는 바닥에 부복하며 외쳤다.

“교주님! 재고해 주십시오! 소교주직도 공석인 상황입니다. 너무 이른 결정이시옵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구양패를 따라 마인들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마치 광신도와 같지만 그 절규는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본좌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

적사결은 앞으로 걸음을 내딛더니 부복해 있는 한 중년인의 앞에 섰다.

“오랜만이구나.”

“흑랑대주, 흑사광. 지존의 부름을 받듭니다.”

“신도들의 탈출에 도움을 주었다 들었다. 맞느냐?”

“하나 속하가 너무 늦은 탓에 신궁을 탈환하지 못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앞서 말했다시피 모든 것은 본좌의 부덕이다. 네 탓이 아니니 그런 말 말거라.”

적사결은 흑사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따라오너라. 긴히 할 말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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