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39화>
“싸우는 수하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을 쳐? 맞아도 싸네. 아니, 아니지. 죽어도 싼 거지.”
적사결은 섭천에게서 사왕을 건네받아 도집에서 뽑았다.
스르릉.
시린 예기를 뿜는 사왕은 곧바로 사악진의 턱밑에 바짝 붙었다.
그러자 갖다 대었을 뿐인데 목 아래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사…… 사…… 살려 주십시오.”
“수하들이 다 죽었는데 살려 달라?”
“살려만 주시면 저……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전 재산? 흐음…….”
적사결은 사왕을 거두고 섭천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받은 의뢰금이 얼마였느냐?”
“이십만 냥이었습니다. 그중 오만 냥은 선금으로 받았습니다.”
“두당 십만 냥이라는 말이로군.”
다시 사악진을 보며 물었다.
“설마 고작 삼십만 냥에 너희 셋의 목숨을 사려는 건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더 후하게 해 드려야지요.”
“그래. 자기 목숨 값이 제일 비싼 법이지. 해서 얼마더냐. 각자 말해 보거라.”
적사결이 묻자 가장 먼저 조군악과 방운덕이 동시에 소리쳤다.
“삼십만 냥입니다! 돈은 저자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뭐? 너희들 돈을 왜 저놈이 가지고 있느냐?”
조군악과 방운덕은 이를 바드득 갈며 살기 어린 눈으로 사악진을 노려보았다.
“저 개새끼가 의뢰금을 저희들에게 속였습니다. 본래 의뢰대금을 백만 냥을 내는 것으로 의논했었는데 지금 들으니 이십만 냥이더군요.”
“흐음. 그럼 각출해서 백만 냥을 모았으나 저놈이 너희들을 속이고 돈을 빼돌리려 한 것이로구나.”
“바로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모은 돈을 모두 드리겠으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
그들의 말을 들은 사악진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런 멍청한 자들 같으니! 돈을 남긴 것은 죽은 수하들의 가족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기 위함이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단 말이다!”
“거짓말하지 마라! 우리가 언제 죽은 자들의 뒤를 책임졌다고!”
“내 그리 말할 줄 알았지! 해서 내 일부러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 죽은 놈들이 무려 만 명인 걸 알고는 있나?”
“흥! 무리하게 인근 문파를 겁박해 무인들을 차출한 건 사악진, 당신이잖아!”
“애초에 날 끌어들인 게 누군데! 당신네들이 딸의 죽음을 핑계로 날 끌어들인 거잖아!”
세 사람은 옥신각신하며 말싸움을 벌였다.
적사결은 보다 못해, 진각을 밟았다.
콰아아앙.
“닥쳐! 그놈이 그놈인 주제에 시끄럽게 쫑알거리긴!”
세 사람은 기세에 눌려 입을 꾹 닫았다.
“요약하자면 백만 냥은 의뢰비로 쓰기 위해 모았고 그걸 저 새끼가 가지고 있다는 거잖아. 맞아 아니야?”
“마…… 맞습니다.”
“내놔!”
적사결이 손을 내밀자 사악진은 품에서 전표 다발을 꺼냈다.
총 팔십만 냥 상당의 금액이었다.
“아까 나간 총관이란 놈이 들고 간 상자가 십오만 냥어치인가?”
“그렇습니다.”
“의뢰비를 이십만 냥으로 책정했다는 걸 숨기기 위해 현물로 준비했고?”
“네…… 네.”
사악진은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면서 정작 네놈은 보관하기 좋게 고액 전표로 지니고 있었고 말이지.”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돈이 어디로 튄 것도 아닌데 뭐가 죄송해.”
적사결은 섭천에게 돈을 건넸다.
“의뢰금이다. 총관놈이 돌아오는 대로 십오만 냥도 챙기도록 하고.”
“예.”
“자, 그럼 네놈들 목숨 값을 받아볼까?”
그 물음에 사악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뭐가 ‘예?’야.”
“아니…… 저기 백만 냥…….”
“그래 백만 냥. 원래 의뢰금이 이십만냥이 아니라 백만 냥이었다며. 착오가 있었다는 거 다 구라야?”
적사결의 시선이 조군악과 방운덕에게 향했다.
“마…… 맞습니다. 원래 백만 냥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적사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그래. 너희들은 아까 삼십만 냥이 목숨 값이랬지? 흥정은 없으니까 그대로 내도록 해.”
“소…… 소저.”
“소저어? 여기 소저가 어디 있지?”
“아…… 죄…… 죄송합니다.”
“잘해라. 잘해야 모가지도 어깨 위에 계속 올려놓을 수 있는 거야.”
적사결은 사악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놈 목숨 값은 얼마냐? 설마 같은 삼십만 냥은 아니겠지? 그래도 네놈 문파가 광동에서 제일 크다며?”
“저…… 저 말입니까?”
“그래, 너. 뜸들일수록 값이 올라간다. 빨리 결정해.”
“사십만 냥 내겠습니다!”
“사망하고 싶냐? 고작 십만 냥 더 내겠다고?”
“살려 주십시오. 정말 더는 없습니다.”
적사결은 세 사람을 지그시 훑어보다 말했다.
“본좌가 본래 적어도 한 번은 값을 더 올리는데 이번은 특별히 봐주마. 백만 냥 딱 떨어지는 것도 마음에 드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돈은 전장에 있나? 아니면 장원과 땅을 팔아서 지급할 건가?”
“말씀하신 것처럼 전장에 맡긴 것도 있고 현물도 처분해야 합니다.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기다려. 네놈들만 보낼 순 없으니까. 광혼, 진강, 단혁.”
세 조장은 고개를 읍하며 명을 기다렸다.
“조별로 한 놈씩 맡아서 돈 받아와. 한 푼이라도 모자라면 사지 하나씩 자르고.”
그 말에 사악진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꼭 같이 가야겠습니까? 저희들을 믿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놈들을 어떻게 믿고? 굳이 혼자 가겠다면 모가지 담보로 맡기고 나가.”
적사결의 스산한 말에 세 문주는 얼굴이 핼쑥해졌다.
“본좌가 네놈들 생각을 모를 것 같지?”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한 성을 주름잡는다지만 도합 이백만 냥을 마련할 수 있다? 그것도 이 낙후된 광동성에서?”
광동성은 해양 산업 외에는 이렇다 할 경제적 기반도 없다.
또한 북경이나 서안, 남경처럼 규모 있는 경제 도시도 없는 지역이기에 상대적으로 빈곤할 수밖에 없었다.
하니 산적이나 해적을 비롯해 파락호 등 흑도와 관련된 쪽으로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먹고 살기 가장 편한 방법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었으니까.
광동성의 흑도 놈들이 머릿수는 많으나 실력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어떻게든!? 그래, 어떻게든 주변 문파들을 착취하려는 개수작을 본좌가 모를 것 같으냐!”
“……헉.”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로구나. 사람도 모자라 돈까지 갈취하려 하다니!”
“…….”
세 문주는 정곡을 찔린 것인지 입을 열지 못했다.
“광혼! 진강! 단혁!”
“하명하십시오.”
“이놈들이 자기 재산 외에 남의 것을 탐한다면 그 즉시 참해라. 알겠느냐?”
“존명.”
세 사람은 덜덜 떨며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살려 주십시오. 저희들은 살고 싶은 나머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려 그런 것입니다.”
“진작 이실직고할 것이지. 하면 지닌 재산을 다 처분하면 얼마더냐?”
그들은 잠시 계산을 하더니 차례로 답했다.
“본 방은 십만 냥까지 마련할 수 있습니다.”
“본 장은 칠만 냥입니다.”
“본 문은 오만 냥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사결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이십이만 냥? 하면 칠십팔만 냥이 부족하다는 계산인데…… 쯧.”
“저…… 저희들을 거둬 주십시오. 노역을 해서라도 값을 치르겠습니다.”
“어지간히 살고 싶은 모양이구나.”
“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 했습니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살아만 있다면 재기할 자신이 있었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광동성을 주름잡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노역 좋지.”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지풍을 날렸다.
파파팍.
세 사람은 일수에 마혈이 짚인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한데 본좌는 네놈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지만 이십이만 냥이 있으니 딱 짐승 정도로 대우해 주마. 말 한 마리 빌리는 값이 네놈들 하루 일당이다.”
지금처럼 환란이 잦은 세상에 말 값은 은 서른 냥 정도.
대여료는 십분지일인 하루 세 냥이었다.
칠십팔만 냥을 은으로 환산하면 칠만팔천 냥.
단순 계산으로 봐도 각자 이십 년이 넘도록 종사해야 한다.
‘이십 년이든 삼십 년이든 일단 살고 보자. 기회는 온다.’
사악진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파연맹, 사무련이었다.
흑살방은 광동성을 대표해 사무련의 흑도대회합에 참석하는 대문파.
그런 문파가 궤멸되었으니 사무련에서 좌시할 리 없었다.
연맹체가 붕괴되지 않으려면 련 차원에서 그만한 움직임을 보일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눈깔이 돌아가는 걸 보니 잔머리를 굴리는가 보구나. 흐흐.”
적사결이 사악진 앞에 서며 빙긋 웃었다.
“그럼 네놈부터 시작해 볼까.”
뭘 시작한단 말인가.
사악진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턱.
적사결은 오른손을 사악진의 머리에 대고 의념을 집중시켰다.
이마에는 삼지안이 떠오르고 천축유가신공은 타인의 육체에 강제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삼지안으로 공능이 강화되었기 때문인지 사악진이 기절하지 않았음에도 그 몸을 뜻대로 다룰 수 있었다.
우드득. 우득.
척추부터 시작해 견갑골과 골반의 형태가 변해 갔다.
그러자 사악진은 두 발로 서 있지 못하고 짐승마냥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적랑의태처럼 되지는 않는구나.’
애초에 말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
하나 타인의 몸이기 때문일까 거기까지 의지력이 행사되지는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어떻게 된 겁니까!”
사악진은 네 발로 서게 된 자세가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골반이 좁아지고 척추 모양이 사족보행에 알맞게 변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편안한 몸과 다르게 이성은 미칠 것만 같았다.
“짐승으로 대우해 주겠다 하지 않았느냐.”
적사결은 사악하게 웃으며 조군악과 방운덕마저 네 발로 걷도록 만들어 버렸다.
세 사람은 울고불고 빌었지만 적사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흐흐, 하는 거 봐서 사람 대우해 줄 수도 있으니 짐승답게 열심히 해 봐. 본좌가 그리 매정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러고는 사악진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가자, 해남으로.”
* * *
십계승들은 광동성에 도착해 정보를 수집 중이었다.
“역시 해남으로 들어가신 것 같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은 듯하네. 그것도 어제.”
“빌어먹을 한 발 늦었군.”
공문은 혀를 차며 탄식했다.
한 끗 차이로 사백을 놓친 것이다.
“듣기에 해남도에 마인들이 득실거린다는데 사백께서는 왜 사지로 들어가신 것일까?”
공도가 턱을 쓰다듬으며 의문을 표했다.
소문에 따르면 마인들은 수백 수천도 아니도 수만에 이른다 했다.
아무리 무허 사백이라도 단신으로 그곳에 갔다가는 살아나오지 못할 것이다.
“사백의 기행이 하루 이틀인가. 행보에 의미를 찾다간 홧병 나 죽을 걸세.”
공수의 말이었다.
그는 사백을 놓쳤다는 생각에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사백의 단죄를 가장 바라던 이가 그였으니 말이다.
“공문, 자네가 십계승의 수장이니 결정하게. 해남으로 갈 것인가?”
“해남도가 일성 못지않은 큰 섬이지만 마인들이 그리 많다면 위험하네. 우리들만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야.”
공문은 고심에 미간을 좁히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대금강은 아직 연락이 없는가?”
“없네. 오기 전에 표국에 들렀으나 아무런 연통이 없었어.”
소림과 연이 있는 문파나 단체를 통해 정기적으로 연락하기로 한 그들이었다.
한데 헤어진 후로 소식이 끊어진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 천하의 사대금강이 변고를 당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그렇긴 한데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
“곧 오겠지.”
십계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해남도로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철수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사대금강과 합류해 의견을 타진해야 다음 행보를 결정할 수 있었다.
그들은 탁상공론의 대명사, 정파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