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37화>
* * *
섭천은 살행 의뢰에 대해 적사결에게 보고했다.
의뢰를 넣은 자들의 신원은 물론 자신들이 의뢰를 받을 수밖에 없던 사유까지 말이다.
“휴우…….”
적사결은 고개를 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해남도에 도착할 신도들을 먹이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이 이유였다니.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었기 때문이었다.
“본좌가 무허, 그 노괴의 흉계에 당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본좌가 죄인이구나, 죄인이야.”
적사결의 한탄에 섭천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외쳤다.
“그것이 어찌 교주님의 잘못이란 말입니까. 몸을 강탈하는 기괴한 수법에 당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입니다. 부디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지존께서 흔들리시면 안 됩니다.”
“부디 마음을 굳건히 하십시오.”
마휴를 비롯한 칠조원들도 한마디씩 보태며 머리를 쿵쿵 찧었다.
“그만들 일어나거라.”
칠조원들은 그 명이 떨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절도 있게 일어섰다.
당연희는 눈을 끔벅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와…… 신교에서는 교주가 살아 있는 신이나 마찬가지라더니 정말이었구나.’
아무리 아랫사람이라지만 저렇게까지 저자세라니.
가주인 숙부에게도 바락바락 대드는 그녀로서는 문화 충격일 정도였다.
“한데 저자는 누구입니까? 교주님께서는 왜 여인의 몸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섭천이 자신을 쳐다보는 당연희를 보며 말했다.
“저 여인과 몸이 바뀐 것이다. 저 몸이 본좌의 영혼이 있던 취불 무허의 것이지. 지금의 몸은 저 여인의 것이고.”
“예에? 어찌 그런…….”
“설명하자면 길다. 짜증나니 묻지 말거라.”
“소…… 송구합니다. 하면 저 여인은 누구입니까? 외양으로 봐서는 범상치 않은 여인인 듯합니다.”
미모는 물론 교주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음심이 불현듯 솟구칠 정도의 색기.
적사결의 몸에서 발현되는 분위기는 평범한 여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때 당연희가 나서며 포권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당연희라 합니다. 강호에선 독비화라 불리지요.”
“독비화? 사천제일미?”
섭천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녀를 알아보았다.
“호호, 절 아시나 봐요?”
“어찌 모르겠소. 사천에서 가장 유명한 여걸이지 않소.”
그 말에 적사결이 되물었다.
“여걸? 진짜 쟤가 여걸이야? 잘못 안 거 아니고?”
그 질문에, 섭천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했다.
“저기…… 교주님의 일행분이 아니십니까?”
“일행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동행이지. 서로 몸이 바뀌었으니까. 설마 일행이라 생각하고 그리 말한 것이냐?”
“……어흠.”
섭천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큭큭, 있는 그대로 말해 보거라. 네가 아는 그대로.”
“사천에서 유명한 여인은 맞습니다. 다만 소문이 대부분 나쁜 쪽이지요. 제멋대로에 사고뭉치라 사천당가의 가주도 제어가 안 되는 망종이라 들었습니다. 크흠.”
“킥킥킥킥.”
적사결은 배를 붙잡고 웃었다.
당연희는 그 모습에 얼굴이 벌게져서 소리쳤다.
“지…… 지금 그런 얘기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살행을 의뢰한 그놈들을 그냥 놔둘 거예요?”
적사결은 한참을 웃고는 입을 열었다.
“화제를 돌리려는 노력이 가상하네. 그래, 그놈들은 족쳐야지. 암, 족쳐야 하고말고.”
그 말에 흑랑대가 부복하며 외쳤다.
“명만 내려 주십시오. 당장 그놈들의 수급을 잘라 오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재미없잖아.”
“예?”
섭천의 되물음에 적사결은 입꼬리를 주욱 올렸다.
그러면서 그 눈은 당연희를 장난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소요현 흑살방.
그곳에서 사악진을 비롯한 세 문주들이 의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 문파의 거점 중 적사결이 머물렀던 객잔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악진의 집무실에서 지그시 앉아 있지 못하고 노심초사하는 중이었다.
마인들의 실력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흉수의 무공이 워낙 고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방주님, 장 총관입니다.”
총관이 집무실로 들어오며 사악진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마인들이 본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오! 그래? 그들만 왔더냐?”
“아닙니다. 사내 하나와 여인 하나를 대동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인 듯합니다.”
“사내도 살려 왔다? 수급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예. 포박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말에 사악진이 탁자를 탕탕 치며 대소했다.
“크하하,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생포라 했거늘. 그 개놈의 자식을 사로잡다니. 대단하군그래.”
“사 방주, 어찌 그들이 의뢰와 달리 놈을 살려서 온 것이라 보시오? 혹시 일이 잘못된 게 아닐까요?”
방운덕이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혹시 마인들이 도리어 놈에게 당해 사로잡힌 것을 위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은 탓이다.
“거참, 방 문주는 어찌 그리 걱정이 많소. 마교도들이오, 마교도. 마인들이 어떤 놈들인지 진정 모르는 것이오? 그들은 죽을지언정 협박에 못 이겨 시키는 대로 따르는 족속들이 아니오.”
사악진의 말에 조군악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거들었다.
“나 역시, 사 방주의 말에 동감하오. 마인들의 자존심은 부러질망정 꺾이지 않는다 들었소.”
“거 보시오. 조 장주도 그렇다잖소. 정 불안하면 방 문주가 직접 마혈을 다시 짚으시구려. 쯧쯧.”
혀를 차는 사악진을 보며 방운덕은 흐르는 땀을 훔쳤다.
“자자, 다들 나가 봅시다.”
조군악은 사악진과 방운덕을 재촉하며 밖으로 나섰다.
대청 아래에는 포박된 적사결과 당연희가 있었다.
두 사람이 다른 점은 묶인 상태였다.
적사결은 두 손을 앞으로 향한 상태로 대충 묶인 채 짝 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당연희는 팔다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마혈과 아혈까지 짚은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화마가 튀어나올 듯 이글거렸다.
그 시선은 바로 옆의 적사결을 향해 있었다.
‘이 개새끼! 날 이렇게 엿 먹여!’
당연희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명분은 놈들의 심층부에서 일망타진을 하자는 것이었다.
사로잡힌 척 위장하면 별다른 제재 없이 놈들의 수뇌부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니까.
한데 그것에 동의하자마자 적사결은 점혈을 짚어 자신의 내공을 금제하고 신체를 구속시켜 버렸었다.
그녀의 실력으로는 해혈하지 못할 정도로 고등 수법이었기에 꼼짝없이 당한 것이다.
“이보시오. 어찌 사내놈을 살려 온 것이오? 우리는 분명 죽이라 했거늘.”
사악진의 말에 섭천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당신들 말과 달리 너무 약하니까. 우리의 검에 피를 묻힐 가치가 없는 놈이니 잡아 온 것이다.”
섭천의 광오한 말에 좌중이 웅성거렸다.
그들은 흑살방의 가신들을 비롯해 조가장, 혈화문의 잔존 세력들이었다.
평생을 광동성 촌구석의 삼류 취급을 받던 그들로서는 처음 대해 보는 종류의 말이었다.
그들은 약한 놈들만 골라서 빼앗고 죽였으니까.
“뭐 죽이는 건 우리가 하면 될 터이니 알겠소. 그럼 잔금을 지급하겠소. 장 총관.”
사악진의 지시에 총관은 수하들을 시켜 커다란 상자를 가져왔다.
그 속에는 보석을 비롯해 십오만 냥 상당의 재화가 들어 있었다.
선금인 오만 냥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이었다.
“우린 현물은 받지 않는다. 현금이나 소액 전표로 가져와라.”
섭천은 딱 잘라 거절했다.
그들에게는 당장 형제들의 배를 채울 수 있는 현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만한 금액을 어찌 현금과 소액 전표만으로 준비하겠소?”
“그래서 지급을 못하겠다는 건가?”
섭천의 몸에서 흉흉한 살기가 마기와 함께 피어올랐다.
그 음험한 기세에 좌중은 숨을 죽였다.
마기가 주는 압박감은 그들을 고양이 앞의 쥐로 만들었다.
‘자식, 못 본 사이 더 강해졌구나.’
적사결은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수는 기세만으로 하수를 위축되게 만들고 그 격차가 심하면 무릎도 꿇릴 수 있다.
하나 마인들은 더 특별했다.
마기는 심리적 압박에 있어 다른 기운보다 더 강력한 공능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마기의 위용 때문일까 적사결은 기분이 한껏 좋아지고 있었다.
“하…… 하면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지금 당장 수하들을 시켜 전표로 바꿔 오라 지시하겠소.”
사악진의 말에 섭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액 전표다. 잊지 마라.”
“아…… 알겠소.”
소액 전표는 금액이 큰 전표와 달리 시중에서 현금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장 총관, 자네가 인근 전장을 직접 순회하며 모두 소액 전표로 바꿔 오게나.”
“알겠습니다.”
총관은 그 즉시 수하들과 함께 장원을 나섰다.
“전표로 바꿔 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오. 그 전에 본 방주가 저놈들을 심문해도 되겠소?”
“죽이는 건 허락하지 않겠다.”
“알겠소.”
사악진은 조군악과 방운덕을 보며 턱짓으로 가리켰다.
딸들의 죽음에 대해 심문해 보라는 뜻이었다.
“크크크, 이 씹어 먹을 년놈들이 드디어 손아귀에 들어왔구나.”
조군악은 단상을 내려가 적사결과 당연희 앞에 섰다.
“둘 중 우리 딸아이를 죽인 것이 누구냐?”
“여기 이놈.”
적사결은 누워 있는 당연희를 발로 툭 건드렸다.
“역시 독비화 네년은 아니었구나.”
조군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당연희에게로 향했다.
자신의 딸이 죽은 사인은 검상.
한데 독비화는 검을 쓰지 않고 동전을 암기로 한 암기술과 용독술을 쓴다 알려져 있었다.
하니 흉수는 옆의 사내놈일 수밖에 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누구이기에 본 장과 혈화문의 금지옥엽을 죽인 것이냐?”
조군악의 말에 당연희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혈이 짚인 탓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적사결은 입꼬리를 올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으니 느긋하게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놈!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퍼억.
결국 조군악은 참지 못하고 발길질을 했다.
당연희는 꿈틀거리며 고통을 참았고, 그 눈은 조군악이 아닌 적사결을 향했다.
‘내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입을 뻐끔거렸다.
아혈 때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이기 위함이었다.
“조 장주, 이놈 이거 아혈이 짚인 것 같소.”
방운덕은 조군악을 제지하며 그녀의 상태에 대해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알겠소.”
조군악은 곧바로 해혈하기 위해 그녀의 가슴 부위를 타타탁 짚었다.
한데 한 번에 되지 않자 계속해서 쿡쿡 찔러 댔다.
‘야이 씨! 그만 해!’
당연희는 고개를 파닥파닥 저었다.
해혈이 잘되지 않는지 조군악이 자신의 가슴을 계속 눌러 댔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몸이라지만 여자이기에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상하군. 마혈도 아니고 아혈인데 해혈이 안 되다니.”
마혈은 신체를 구속하는 점혈로 그 효용이 다양하기에 강호에 가장 많은 점혈법이다.
전통이 있는 문파라면 그들만의 마혈법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다.
하나 아혈은 단순히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점혈법.
특별한 수법이 개발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타타탁.
‘그만 좀 찔러! 이 변태 놈아!’
타타타탁.
“이것도 안 되는군. 거참.”
조군악은 결국 머쓱한 표정으로 섭천을 힐끗 바라보았다.
하나 그는 알아서 하라는 듯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 얼굴에서 조군악은 일문의 문주가 아혈도 못 푸냐는 한심한 표정을 엿보았다.
‘끄응. 역시 천마신교…… 혈도법조차 평범하지가 않구나. 이런 개쪽이 있나.’
조군악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방운덕이 소매를 걷고 나섰다.
“조 장주, 점혈은 본 문주가 일가견이 있소. 잠깐 비켜보시오.”
“알겠소. 그럼 부탁 좀 합시다.”
방운덕은 검지와 중지를 모은 채 신중하게 손을 놀렸다.
타탁. 타타탁.
그 손놀림은 역시 가슴 부위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흐흐흑. 씨발, 복수할 거야. 교주 개새끼야.’
당연희는 수치심이 원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