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35화>
적사결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화경에 오르기 위해서다.”
“화경? 교주께서 그 기본을 모른다고요?”
무공에 있어 발경이 공격이라면 화경은 방어다.
당연희는 적사결이 언급한 화경을 오해한 것이었다.
“휴우, 그 화경이 아니다. 화경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설마 우화등선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니죠?”
당연한 반응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무의 기준은 계속해서 변해 왔으니까.
심지어 천하 십대고수인 자신도 황궁서고를 나서기 전까지는 화경의 경지를 믿지 않았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무의 길은 그 끝이 없다. 당대 최고수인 본좌가 화경이든 우화등선이든 못할 것 같으냐.”
“……예, 예. 그러시겠죠. 아주 검선처럼 어검비행술이라도 할 기세네요.”
당연희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한계를 우물 안에 가둔 개구리가 창룡의 큰 뜻을 어찌 알겠느냐.”
“옛말에 하늘만 쳐다보는 이무기는 승천을 못하는 법이랬죠.”
“그런 머저리 같은 말만 머릿속에 박아 넣고 사니 내공이 반갑자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쯧쯧.”
“여기서 내공 얘기는 왜 해욧!”
“솔직히 말해 봐. 너 운기조식 게을리했지?”
“아…… 아니요! 열심히 했어요!”
“웃기고 있네. 당가의 직계면 영약 한두 개는 기본으로 받았을 텐데 내공 수위가 이따위냐?”
독은 약과 일맥상통한다.
하여 당가는 독의 명가인 동시에 의가였다.
때문에 사천과 운남 인근의 독초와 약초는 모두 당가를 통해 거래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서 천하에서 가장 많은 영약을 보관한 가문이 사천당가라는 것은 강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내공보다 초식 공부가 더 체질에 맞아서 그쪽으로 신경 써서 그런 거거든요!”
“체질이 아니라 성질머리겠지. 넌 진득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성정이 아니잖아.”
“……끙.”
무공에 대해서는 당연희가 말로도 어찌할 수 없는 수준에 있는 적사결이었다.
“됐고. 심법이나 말해 봐. 본좌가 내단 취하면 네 몸에 좋지 내 몸에 좋냐.”
그건 그렇다.
어차피 심법을 알아도 특이 체질이 아니니 쓸 일도 없다.
그 사실은 숙부도 명확히 알려 준 바였다.
설사 절대 고수라도 당가의 심법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했으니.
당연희는 숙부의 그 말을 믿고 알려 주기러 결심했다.
“알려 드릴게요. 단, 혼자만 아시고 다른 사람에게 유출하시면 안됩니다.”
“오냐. 본좌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심법의 이름은 도반삼양귀 원공이에요. 구결은…….”
당연희는 작고 낮은 목소리로 구결을 읊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읊은 그녀가 다시 한번 말하려 할 때였다.
“됐다. 뭘 입 아프게 두 번이나 말하려 하느냐.”
“네? 설마 다 외웠어요?”
“당연하지 않느냐. 별로 길지도 않은 구결인데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 박혀야지.”
“헐…….”
당연희는 인간 같지 않은 기억력에 입을 떡 벌렸다.
심법구결은 무공 중 가장 신경 써서 외워야 하는 부분이다.
자칫 조금이라도 운기가 잘못되었다가는 폐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한데 그 중요한 걸 적사결은 한 번만 듣고 확실하게 외웠다고 자신하고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릇 진정한 무인이라면 무공 구결은 한 번 들으면 기억하고, 초식이라면 한 번 보고 그 형을 기억하는 것이 기본이지. 그게 안 되는 놈들은 다 정신 상태가 썩어 빠져서 그런 거다.”
“헐…… 아니거든요. 그게 가능하면 다 천하 십대고수게요?”
“적어도 본좌의 수하들은 다 그랬다. 당가는 독과 암기나 조물딱거리니까 무공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은 모양이구나.”
“지금 본가를 욕하시는 거예요!?”
“당가를 모욕하는 건 너겠지.”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당가의 직계면서 독공도 못쓰는데 모욕이 아니면 뭐지? 당천십위가 뒈지면 독공의 맥은 끊어지는 거 아닌가? 본좌가 봤을 때 당천십위 말고는 다 당가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건 체질 때문에…….”
당연희가 체질을 들먹이자 적사결은 말을 잘랐다.
“체질 때문에, 자질 때문에, 시기를 놓쳐서, 맞는 무공이 없어서 등등. 변명은 다양하고 핑계는 끝도 없는 법이지.”
“……이익. 숙부께서도 그러셨다구요!”
“당백산이 말하면 그게 다 진리인 것이냐? 그가 말하는 것은 모두 옳고 정답인 것이야?”
“…….”
당연희는 이전처럼 톡 쏘듯 대꾸하지 못했다.
“네가 좋아하는 옛말에 따르면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이라지? 하나 본좌가 보기에 그 말은 가장 중요한 주어가 빠졌다. 무릇 모든 것은 ‘내가’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지.”
적사결의 말에 당연희는 숙연하게 그 가르침을 곱씹었다.
* * *
자신의 객방으로 돌아온 후.
적사결은 녹주독혈사의 내단을 취하고 도반삼양귀 원공의 운기에 빠져들었다.
내단의 복용을 미루었던 그가 결심을 한 것은 삼지안의 공능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삼지안.
그 공능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천축유가신공의 강화.
중상을 입었던 당연희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료한 것처럼 신체 제어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지금의 능력이라면 의념의 근원인 머리만 잘리지 않는다면 무적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둘째, 기운의 시각화.
천지간의 기운은 물론 타인의 내공도 명확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상대가 내공을 오른손에 집중하면 느낄 순 있을지언정 볼 수는 없었다.
내기를 유형의 기운으로 다듬어 검기나 강기를 형성해야지만 볼 수 있으니까.
하나 삼지안으로 보면 타인의 내공이 단전에서 어디로 어떻게 운기되는지 볼 수 있었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의 전투를 보면 겉으로 보이는 초식의 형만 보는 것이 아닌 운공요결까지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셋째, 기운의 변환.
보통 무공은 크게 양강과 음유의 무학으로 나뉜다.
한데 삼지안은 그 틀에 구애받지 않고 내기의 성질을 바꿀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검기를 사용 시, 화기로 변환해 화검으로 만들 수도 있고 수기로 한기를 띠게 할 수도 있었다.
단적인 예로 벽력탄의 화기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체의 기운을 화기로 변환해 화력을 투과시켰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범위는 오행의 기운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남궁세가주가 사용했던 뇌기나 당가의 독기처럼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 기운은 변환이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적사결이 내단을 취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에 대한 깨달음이 화경으로 이어질 것이란 믿음 때문에.
“휴우우우.”
운기가 끝나고 적사결의 코와 입에서 빠져나온 녹색의 날숨이 정수리에 모이더니 원을 그리며 빨려 들었다.
도반삼양귀 원공으로 내단에 있던 독정을 취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내공은 기존 반갑자에서 일갑자 반으로 대략 백 년의 공력을 쌓을 수 있었다.
‘독정을 취하지 않고 내공으로만 치환했다면 이갑자는 되었겠지.’
약간의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애초에 목표인 독기를 다룰 수 있는 신체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독정을 취하고 깨달은 독기.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기운이었다.
어찌 보면 기존 내공이 독성을 띨 뿐 다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독을 지니고 있었던 것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속성의 특징을 가지면서 독이라는 성질을 보조처럼 가졌다고 해야 하나? 뭐라 정의하기가 애매하군.’
지금의 몸으로 광혈수라공을 펼친다면 누구라도 독공이라고 말할 것이다.
기공을 사용하면 그 즉시 독성을 띨 테니까.
하면 당가의 독공도 마찬가지일까?
일반 무공이 그저 독인이라는 특이 체질 덕분에 독공으로 불릴 수 있었을까?
적사결은 천천히 그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었다.
일단은 독기를 다뤄 보며 그 기운을 충분히 느껴 보고 알아가는 것이 먼저였다.
‘해남도에서 사월이를 만나면 내단부터 받아야겠구나.’
그녀에게는 남궁건의 반려영물 뇌조를 죽이고 얻은 내단이 있었다.
적사결은 그것을 나중에 몸을 되찾고 취할 생각으로 맡겨 놓은 것이었다.
한데 지금으로서는 당장이라도 그것을 취해 뇌기를 다뤄 보고 싶었다.
새로운 경지에 대한 열망에 가슴이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 * *
“어서들 오십시오.”
흑살방주 사악진은 흑색 피풍의로 몸을 감싼 다섯 명의 괴인에게 포권의 예를 올렸다.
그 뒤로 조가장주 조군악과 혈화문주 방운덕이 있었다.
“당신이 흑살방주인가?”
“그렇소. 예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사악진은 내실로 들어가며 흑살대에게 주변을 철통같이 감시하라 이르렀다.
그리고 괴인들이 마치 사무련의 고위인사라도 되는 것처럼 극진히 대했다.
“들어들 보시오. 광동의 명물인 봉황단총이오. 귀인들께 대접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오.”
봉황단총은 광동성 봉황산에서 생산되는 극상품의 청차였다.
천하 십대명차의 하나로 차를 즐기는 중화인이라면 누구나 맛보고 싶어하는 고급차인 것이다.
“다과나 즐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흑의괴인은 얼굴에 수십 개의 칼자국이 난 자로 일행의 수장으로 보였다.
“한데 더 올 사람은 없으시오?”
사악진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설마하니 다섯 명만 왔을까 싶지만 확인은 필요했다.
“우리가 전부다.”
“분명 의뢰 대상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라 명시했지 않았소. 한데 어찌 다섯이 전부란 말이오?”
“그 상상의 범주가 어디까지지? 당신의 상상과 나의 상상은 차원이 다른데.”
“우리로서는 무위가 가늠되지 않는 초고수였소.”
“당신들에게는 내 수하들 중 가장 약한 녀석도 초고수로 보일 것이다. 구체적인 기준을 말해 보라.”
“가…… 강기를 사용했소. 강기로 내 수하들을 마치 벌레 죽이듯 짓밟아 죽였소이다.”
“그건 본좌도 가능한데. 더 없나?”
흑의괴인의 물음에 세 방주는 고민했다.
그들로서는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인해전술을 펼친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처음 개전 초기 당시만 보고를 받았기에 구체적인 무위는 알 길이 없었다.
초기 이후에는 무사들을 공급하느라 혼이 다 빠질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조군악이 입을 열었다.
“놈이 삼 일 밤낮에 걸쳐 죽인 자가 일만에 육박하오. 그 정도면 기준이 되겠소?”
조군악의 말에 흑의괴인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사파놈들이 허세가 심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겪어 보니 가관이로군.’
괴인들의 수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치부했다.
삼 일 동안 일만 명을 죽였다니.
천하십대고수라 불리는 자신들의 주군이라도 불가능한 숫자였다.
‘휴우, 아무리 돈이 궁해도 그렇지 버러지 같은 살수짓이라니…….’
동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면 이런 의뢰를 한 의뢰인의 모가지부터 날려 버렸을 것이다.
하나 어쩌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당장 쌀독이 비어 버린 것을.
더구나 해남도는 벌이가 마땅하지 않은 외지였기에 돈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들이 바다 건너 광동성까지 살행을 나선 것은 이십만냥이라는 거금 때문.
그 정도 금액이라면 동지들이 몇 달은 건사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견적 나왔군. 우리 다섯이면 충분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흑의괴인의 심드렁한 말에 세 문파의 수장들은 미심쩍은 눈치였다.
“지금 본좌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인가?”
그 순간 뿜어진 엄청난 마기.
그 기파에 세 사람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압박감을 받았다.
순간적인 기세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는 무위였다.
‘여…… 역시 마교. 엄청나구나.’
단일 세력으로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문파이자 개개인의 무위가 가장 강한 집단.
더구나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 색채를 띤 그곳은 배교도를 살려 두지 않는 살벌한 단체였다.
그런 그곳을 탈주하고도 살아남은 자들.
그것만으로도 그 무위를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미…… 믿겠소. 자…… 잘 부탁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