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34화>
* * *
-크릉?
뭐야 다들 꼴이 말이 아니네?
백거이는 가장 늦었지만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대금강 공극과의 싸움은 속도전, 그리고 장기전이었다.
백거이로서는 이번처럼 입에서 단내가 물씬 풍길 정도로 달려 본 적이 없었다.
폐가 터져 나갈 정도로 뛰고 또 뛰었으니까.
그리고 어느 한계를 넘겼을 때.
이백과 마찬가지로 혈맥에 남은 영약의 기운이 전신을 가득 채웠다.
그 양은 공극이 해금한 봉인의 기운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백거이 자신에게 있었다.
특히나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
태행산맥에 살던 영물들을 가장 많이 잡아먹은 것은 바로 백거이었다.
-까불지 말고 가서 먹을 거나 좀 구해 와.
이백이 백거이에게 말했다.
하나 백거이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을 들어 올렸다.
바로 공극이었다.
-이거 먹는 건 어때?
어지간한 영물보다 기운이 많은 놈들이다.
다치고 기력이 쇠한 상태니 몸보신도 될 것이라 여긴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 잊었냐? 인간은 먹으면 안 돼!
두보가 낮게 그르렁거리며 경고했다.
그들의 사부이자 아비나 마찬가지인 서 선생.
그는 절대로 사람 고기를 입에 대면 안 된다 신신당부 했었다.
-뭐 어때? 여긴 우리뿐이잖아.
한유가 자신이 잡아 온 공벽을 보며 백거이의 의견에 동조했다.
사대금강 중 숨이 붙어 있는 것은 공벽과 공극, 둘뿐이었다.
그렇게 살려 놓은 이유는 배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그래. 한번 먹어 보자. 다리는 내꺼다 알지?
백거이가 끽끽거리며 공극의 다리를 틀어쥔 채 흔들었다.
-크아아앙!
이백이 흉성을 토하며 소리쳤다.
그 기백에 백거이와 한유는 찔끔했다.
-살점 한 조각이라도 먹었다간 각오해야 할 거다!
이백의 경고에 두 거대원숭이가 어깨를 움츠렸다.
심하게 다쳤지만 이백에게는 그들이 항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우두머리의 자질.
넷 중 편법을 쓰지 않고 정면으로 사대금강을 박살 낸 것은 이백이 유일했다.
두보는 함정을 팠고,
한유는 연못이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했고,
백거이는 기운이 각성되자 쉬운 방법인 장기전을 택했다.
즉, 순수한 무력만으로 부딪혀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이대로 놔 줘?
백거이가 입을 삐죽 내밀고 삐친 듯 물었다.
-죽여야지.
그 말이 떨어지자 백거이는 공극의 다리를 쥔 채 번쩍 들어 올리고는 땅바닥을 향해 패대기쳤다.
기절한 공극은 그대로 머리가 깨져 즉사했다.
한유는 공벽에게 다가가 조용히 그의 머리를 비틀었다.
-가서 먹을 거 구해 올 테니까 다들 쉬고 있어.
백거이가 신형을 쏘아 올리자 한유도 머리를 긁으며 그 뒤를 따랐다.
-대장, 이해해. 아직 애들이잖아.
두보가 이백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옆에 앉았다.
그 말대로 그들은 영약 덕분에 덩치만 컸지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상태였다.
-알아.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 혼자였으면 저 녀석들 통제가 안 됐을 거야.
-하하, 말썽꾸러기들이지만 이번에 실력이 더 늘었으니 곧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거야. 지켜보자.
-그래. 그렇겠지.
그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지 못했었다.
처음엔 엄두도 나지 않았던 태행산맥의 지배자가 지금껏 만난 가장 큰 적수였던 것.
그 녹주독혈사를 끝내 처치했지만 결과적으로 넷이 협력한 끝에 이겨 낼 수 있었다.
하나 이번에 만난 대머리 인간들은 녹주독혈사 못지않은 대적이었다.
그리고 개개인이 혼자 힘으로 그 벽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 경험은 곧 그들을 더욱 높은 경지로 이끌 것이 분명했다.
* * *
“이봐요, 구결 좀 알려 줘요.”
당연희는 당당하게 보리연화공의 구결을 요구했다.
그때와 달리 내공이 착 가라앉아 도무지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금단의 효과가 다한 것이 원인이었다.
“날 겁박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이제 와 부탁이지?”
적사결이 식사를 멈추고 비꼬듯 되물었다.
“그건 그쪽이 계속 빈정대니까 그런 거죠. 남자가 진짜 쪼잔하게 그럴 거예요? 진짜 마도지존 맞아요?”
“지금 본좌를 믿지 못하겠다는 거냐?”
“듣기에 광혈존께선 사내 중의 사내로 모든 마도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영웅호걸이라 했어요. 한데 지금 모습은 거리가 있어 보이네요.”
“아주 온갖 미사여구는 다 갖다 붙이는구나. 본좌에 대한 풍문을 내가 모를 것 같으냐? 공포의 마구니, 살육에 미친 악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나쁜 수식어는 본좌에게 다 들러붙는데 영웅호걸? 웃기고 있군.”
적사결은 비릿하게 웃고는 식사를 계속했다.
“그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호사가들이 떠벌리는 말이죠. 숙부께서는 분명 그리 말씀하셨어요.”
그 말에 적사결은 한쪽 눈썹을 올렸다.
“숙부? 네 숙부가 누군데?”
“당, 백자 산자 쓰십니다.”
“당백산? 정말 암룡신존이 그렇게 얘기했다고?”
“그렇다니까요.”
“…….”
암룡신존 당백산은 같은 십대고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 세대 전의 고수였다.
사마오대존을 연배 순으로 나열하면 독패존 연무흔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자신을 그리 칭찬하다니.
보통 나이가 들면 들수록 후배에 대한 평가가 인색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영감이 제법 생각이 깨어 있군, 흐흐.’
천하 십대고수 중 자신은 가장 연배가 어렸다.
더구나 마도지존이라지만 신강이라는 변방에서 활동하기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정도제일인이라 불리는 무허와 박빙의 승부를 수년간 이어 온 것이 자신의 무력을 증명하는 이력이었다.
하나 그것도 최근의 생사결에서 무허에게 패했다 알려졌기에 세간의 인식은 점차 안 좋은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적사결은 그간의 여행에서 그러한 풍문을 직접 들으며 울화통이 터졌었다.
한데 그 울분이 당연희의 말에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
“언제? 암룡신존이 언제 그렇게 말해 줬지?”
“그게 중요해요?”
“아주 중요하지.”
“본가를 떠나기 전예요. 한…… 두 달 정도 되었나? 가문을 나서기 전에 숙부께서 그러더라고요. 광혈존이 당대의 영웅호걸이니 그만한 사내를 사윗감으로 데려오라고요.”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두 달도 안 되었다면 무허에게 패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고 난 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그런 평가를 내린 것이었다.
“흐흐흐, 숙부 덕을 본 줄 알거라.”
“그럼 알려 줄 거예요?”
“구결은 나도 모른다. 보리연화공은 비급도 없고 천하에 무허, 자신만 그 구결을 아니까.”
“그럼 무슨 덕을 본다는 거죠?”
“구결이 없다고 내공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니지.”
적사결은 단전에 떠오르는 부처 형상과 내공의 움직임.
그리고 천진연원공의 구결을 알려 주었다.
그 정도면 귀령운신공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내공을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어차피 호흡의 일치는 자신 정도의 초상승의 영역에서 그 빈틈이 드러나니 그녀의 무위에 그 정도 완벽을 추구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부족한 실력에 너무 완벽을 꾀하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만 하면 보리연화공의 내공과 암화십이수의 초식을 이을 수 있단 거죠? 흐음…….”
당연희가 천지연원공의 구결을 되새길 때 적사결은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 앉아.”
“뭐 하시려고요?”
“네 얼굴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밥맛이 떨어져서 말이야.”
“잘만 드시던데.”
“잡소리 말고 가부좌 틀고 눈 감아.”
무허의 상판을 계속 보고 있자니 갈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계속 일었다.
해서 영안공주에게 알려 준 것처럼 변형시킨 천축유가신공을 알려 주려는 것이었다.
적사결은 가부좌를 튼 당연희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삼지안을 개안했다.
“아니 왜 머리를 만져요?”
가부좌를 틀었으니 등 뒤나 명문혈에 장심을 갖다 대는 것이 보통의 모습 아닌가.
한데 적사결이 자신의 민머리를 만지니 기분이 이상했다.
“마지막 경고다. 잡소리 하다가 주화입마에 들어도 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니 알아서 하거라.”
그 말에 당연희는 입을 꾹 닫았다.
“지금부터 알려 주는 구결을 계속 되뇌면서 본좌가 자극하는 경혈에 의식을 집중해라.”
적사결은 변형 구결을 알려 주며 그녀의 경혈 몇 군데에 의지를 집중했다.
삼지안 덕분에 천축유가신공의 발현이 더욱 쉬웠고 효율 역시 뛰어나졌다.
영안공주 때보다 시간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었다.
대법이 끝난 후 당연희의 외모는 젊어져 있었다.
“면상이 젊어지니 그래도 좀 낫군.”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이건…… 반로환동 아닌가요?”
몸으로 겪어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활력이 샘솟고 뼈마디도 뻐근하지 않은 변화.
주안술이나 기타 잡술이 아닌 진짜 신체 나이가 어려진 현실에 당연희는 반로환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숙부가 얼마나 대단한 안목을 지니고 있는지 이제 알겠느냐?”
“정말 대단하시네요…….”
당연희는 면경을 보며 볼을 주욱 잡아당기며 탱탱한 피부를 실감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겠지? 본좌도 하나 물어보마.”
“말씀하세요.”
“녹주독혈사의 내단. 그 속의 독정을 취하는 심법구결을 알려다오.”
“내단을 복용할 생각이세요?”
“왜? 네 몸이니까 그랬으면 좋겠느냐?”
“솔직히 그렇죠. 그렇게만 된다면 본가의 당천십위는 십일위가 될 테니까요.”
“하면 구결을 읊어 봐.”
당연희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심법은 당가 직계에게만 허락되는 비전이었다.
외인에게 유출되면 당가는 가문의 전력을 동원해 추살할 정도로 핵심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본좌는 너에게 절세 무학의 구결을 두 가지나 알려 주었다. 한데도 주저하느냐?”
“그만큼 비전 절학이니까요.”
“하면 그 비전이 당가의 특이 체질이 아니더라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냐?”
“그…… 그건 아니에요.”
특이 체질이 아닌 한 독정을 취하면 죽는다.
기본적으로 독에 대한 면역력이 없으면 독인이 될 수 없으니까.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면 문제 될 것은 없지 않느냐? 그만한 내단이 천하에 흔하지도 않고 본좌가 차후 그걸 구한다 해도 본래의 몸으로는 독정을 취할 수 없으니.”
당연희는 그럼에도 고민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저한테 장가 오실래요?”
“뭐…… 뭐?”
“본가의 사위가 되면 문제없잖아요. 그리고 교주께서는 아직 미혼 아니었나요?”
뭐, 이런 당돌한 년이.
“너와 본좌의 나이 차이가 몇 인데 그런 소리더냐. 흰소리 말고 구결이나 읊어 보거라.”
“반로환동도 하실 수 있으면서 무슨 나이 타령이에요. 남자가 돈 많고 잘생기고 능력 있으면 된 거지.”
“허…….”
여러모로 세대 차이를 느끼게 해 주는 여인이다.
적사결은 황당한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설마 싫어요?”
“본좌가 바로 천마신교의 지존이자 마도의 하늘이다. 한데 고작 당가의 데릴사위? 너는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헤헷,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러네요.”
당연희는 볼을 긁적이며 배시시 웃었다.
스스럼없이 한 발 물러나는 모습에 적사결도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한데 교주께서는 충분히 강하시잖아요. 무려 일만 명을 홀로 상대하셨는데.”
“말 돌리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그렇게 강한 분이 독정은 왜 취하시려는 건지 궁금해서요.”
“독공에 대한 호기심이라 해 두지.”
“에이, 거짓말.”
“무공에 대한 열망은 마도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본좌는 그들의 정점에 있는 만큼 그쪽으로도 특출나지. 단지 그뿐이다.”
“흐응……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요?”
얘가 중놈의 몸에 들어가더니 관심법이 열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