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31화>
광동성 바로 아래에 위치한 해남도.
사무련은 그곳을 접근 금지 구역으로 선포하고 관심을 두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 지척에 있는 광동성의 경우 자연스레 그곳의 정보를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해남도는 거대한 섬이었지만 척박한 땅이 대부분이라 광동성과의 교류가 필수였으니까.
그렇게 흘러나온 정보가 탈주한 마교도들이었다.
“해남의 마인들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소. 한데 그들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간다는데 그들에게 의뢰를 할 수 있는 것이오?”
조군악의 물음에 사악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인들이 은밀히 해남도로 모이고 있소. 본방에서 파악한 것만 대략 일만이 넘지. 그렇다면 적어도 그 두 배는 될 것으로 보오. 하면 그만한 인원이 모였을 때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소?”
“돈, 돈이 필요하겠지. 사람이 모이면 먹고 입고 자는 것만으로도 돈이 들어가니까. 한데 정말 그만한 수의 마인들이 해남도로 가고 있는 것이오? 우리들은 전혀 몰랐는데.”
“다수의 뱃길을 통해 아주 은밀히 움직이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소. 본방도 운이 좋았지.”
그의 말처럼 운만은 아니었다.
광동성과 해남도 사이의 물류는 흑살방에서 독점하고 있었으니까.
“하면 의뢰비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시오?”
조군악의 물음에 사악진이 턱을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백만 냥 정도면 그들도 혹하지 않을까 싶소.”
“배…… 백만 냥! 아니 백만 냥이 뉘 집 개 이름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릴!”
그간 가만히 있던 혈화문주 방운덕이 기겁하며 따지고 들었다.
“방문주께선 따님의 복수를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외다?”
“아니 그러고 싶어도 그만한 돈이 없잖소.”
“혈화문의 재건을 위한 비자금은 있을 거 아니요?”
돈만 있으면 무사들을 고용하고 문파를 재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조군악과 방운덕의 수하들은 모두 삼류에도 못 미치는 소모품들이었으니 말이다.
“조장주께서도 모아둔 게 꽤 되는 것으로 아오만?”
사악진이 이번엔 조군악을 보며 재차 물었다.
“…….”
조군악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만일 승낙한다면 혈육의 복수를 하더라도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다들 딸에 대한 마음이 거기까지였나 보군.”
사악진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아무리 흑도라지만 그들도 아비였고 어찌 딸을 죽인 흉수에 대한 복수심이 없을까.
다만 가세를 모두 탕진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망설이는 것일 뿐이었다.
딸 외에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으니 말이다.
“이건 어떻소?”
조군악이 생각한 바가 있는지 운을 띄웠다.
“그 괴물 같은 사내는 죽이되 독비화는 사로잡는 거요.”
“오! 좋은 생각이오.”
방운덕은 그 의도를 찰떡같이 눈치 채고 맞장구를 쳤다.
“인질로 삼아 대가를 요구하겠다?”
사악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쪽으로 머리 쓰는 것은 참으로 비상한 이들이다.
독비화는 사천당가의 직계였으니 거금을 뜯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죽은 일만의 핏값과 의뢰비 백만 냥은 물론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받아 내야지 않겠소.”
조군악은 비릿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사악진 역시 그 웃음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사실 그의 속내는 두 사람과는 조금 달랐다.
‘흐흐. 새롭고 더 큰 흑살방을 만들 기회로구나.’
마인들은 놈들의 실력을 모르니 백만 냥까지 들일 필요도 없었다.
대충 잡아도 두당 십만 냥이면 특급으로 의뢰를 받아들일 터.
사악진은 애초에 두 문파의 비자금을 빼먹으려 수작을 부린 것이었다.
한데 조군악이 더 큰 판을 깔아주었다.
사천당가에서 받을 인질대금이라면 문파의 규모를 열 배는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사악진은 행복한 미래를 가슴에 품었다.
* * *
야산 전투가 있은 후.
적사결과 당연희는 인근 도시로 이동했다.
더러워진 몸을 씻고 다 찢어져 버린 옷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정비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후.
적사결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새로운 신체에 대한 관조였다.
‘휴우, 반갑자도 안 되는구나…….’
단전을 살펴보니 한숨만 나왔다.
오갑자였던 무허와 비교해 당연희의 내공 수위가 너무 일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나 든든했던 지난날과 달리 지금은 허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삼백 년 내공이 삼십 년에도 못 미치는 내공이 되었으니까.
“이걸 먹어…… 말아?”
적사결은 품에서 녹주독혈사의 내단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이걸 취한다면 부족한 무력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터.
더구나 당연희가 말한 것처럼 독정을 취한다면 독공을 쓸 수 있는 기반을 얻을 수 있었다.
독공은 특이 체질에 기반하기에 천하에서 가장 독특한 무공.
무공광인 적사결이 그에 대한 호기심이 없을 리 없었다.
“독공이라…… 독공…….”
이걸 취하면 녹주독혈사의 내단을 당연희에게 주게 되지만 독공을 직접 몸으로 겪을 수 있는 경험은 큰 자산이다.
이론으로 아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르니까.
적사결이 망설이는 것은 이런 천고의 보물을 그녀에게 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처음의 감정이라면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예뻤고, 성격이 호탕한 점도 마음에 들었으니까.
한데 반선주를 꿀꺽하는 순간 호감은 비호감으로 돌아섰다.
자신은 비호감인 인물에게 호의를 베풀 만큼 호구는 아니었다.
“에휴, 일단은 좀 더 생각해 보자.”
독공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었다.
당장은 그녀에 대한 짜증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다음으로 화두가 된 것은 삼지안이었다.
‘분명 외단에 대한 개념만이 전부가 아니었어.’
외단과 도중문의 진언을 기반으로 깨달음이 온 것은 맞았다.
하나 그 마지막 단계에서 적사결은 어렴풋이 느꼈었다.
생성과정의 단을 눈동자의 형태로 잡은 것은 천축유가신공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의념이 영향을 미쳐 최종적으로 삼지안의 개안을 이루어 낸 것이었다.
그 영향일까.
삼지안의 개안으로 천축유가신공에도 변화가 있었다.
반선주로 몸을 바꾼 당시 당연희는 귀식대법을 사용 중이었고 상당한 중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자신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귀식대법을 풀고 몸을 치료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것도 누에고치처럼 몸에서 발산된 실타래를 두르면서 말이다.
더구나 그 회복 속도도 이전보다 몇 배는 빨라진 상태로.
‘삼지안…… 이라…….’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대당서역기.
소림사 장경각에서 보았던 그 서책의 글귀에는 천축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마에 ‘빈디’라는 점을 찍는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했었다.
‘기운을 모아 영적 능력을 높이고 정신력을 강화한다 했었나? 뭐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군.’
천축의 구도자들에 대한 부분만 집중해서 보았기에 ‘빈디’에 대해서는 희미했다.
어쨌든 그 위치가 삼지안과 동일하니 아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 추측할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불교에서 모시는 부처의 이마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으니까.
파아앗.
상념이 계속되자 이마에 삼지안이 떠올랐다.
적사결은 명상을 하며 그렇게 삼지안에 대해 빠져 들어갔다.
* * *
“흔적이 또 있더군.”
사대금강의 일인 공허는 어깨에 메고 있던 물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뜯어먹다 남긴 듯한 멧돼지 사체였다.
공허가 내려놓은 곳에는 노루부터 시작해 늑대, 심지어 곰과 호랑이도 있었다.
사백인 무허를 단죄하기 위해 소림사 산문을 나선 사대금강과 계율원의 십계승.
그들은 남하하는 와중에 산속에서 다수의 산짐승 사체를 목도하게 된 것이었다.
모두가 맹수에 의해 먹다 남긴 듯한 모습.
한데 그 사체들에게서 불가기공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 정도로 농밀한 기운의 흔적이면 속가계열은 아니네. 분명 본문의 상승 절학이 분명해.”
십계승 중 불살생계를 담당하는 공문이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살계를 범한 승려를 단죄하는 십계승이었다.
“하나 칠십이종절예 중에 허락 없이 유출된 것은 없네. 내 명예를 걸고 말할 수 있네.”
불투도계, 도둑질의 계율을 맡고 있는 공도가 단호하게 말했다.
“맞아, 허락 없이 유출된 것은 없지. 하나 허락을 받고 유출된 것은 있네. 그것도 산문 밖으로.”
공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그 원인은 바로 그들의 사백이었다.
장경각주 공선의 허가를 받고 칠십이종절예의 필사본을 받은 무허.
더구나 소림을 떠날 때 모든 비급을 챙겼다는 것을 거처를 뒤지며 알 수 있었다.
“하아…… 사백. 사백. 사백…….아오…….”
불음주계, 금주의 계율을 담당하는 공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연신 그렇게 외쳤다.
십계승 중 무허에게 가장 시달린 승이 바로 그였다.
취불이란 별호를 방장인 무산대사에게 인정받기 전 계율로 인한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쨌든 불음주계를 어기고도 처벌받지 않는 유일한 승려가 무허 사백이기에 공수는 무허라면 학을 떼는 인물이었다.
“어찌할 것인가? 이 흔적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남하할 것인가?”
최근 그들은 속가제자가 국주로 있는 표국으로부터 첩보를 입수했었다.
광동성에서 흑도의 무리와 정체불명의 소림제자로 보이는 인물 간에 큰 싸움이 있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소림은 천 년 동안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고 천하 곳곳에 그 정보망이 뻗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이전 강소성의 가왜변란에 대한 정보도 입수했으며 현재 적사결에 대해 많은 정보를 파악한 상태였다.
출진이 다소 늦어진 것은 그 모든 사안을 분석하고 단죄의 대상에 대한 무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자신들의 사백은 철저한 대비를 하더라도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이렇게 하세. 우리 사대금강은 이 흔적을 따라갈 테니 자네들은 광동성으로 가게. 그곳에서 사백의 흔적을 쫓으려면 인원이 많은 자네들이 더 낫지 않겠나.”
사대금강 공허는 인원을 나누자 주장했다.
“하나 이 사체들의 흔적이 사백과 관련 있다는 것이 더 명확하네. 광동성의 그자는 아직 불확실해.”
십계승 공문의 말에 공허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사백이 아닌 다른 무언가네. 아무리 사백이 괴짜라도 이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아마도 그분이 어쩌다 강호에 흘린 비급이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이겠지. 우리가 속히 처리하고 따라가겠네. 하니 자네들이 그전에 사백의 소재를 파악해 주게나.”
공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하면 부탁하네.”
“부디 경거망동하지 마시게. 꼭 우리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네.”
“걱정 말게. 사백의 무위가 경천동지할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으니.”
첩보로 분석한 무허의 실력은 십계승 모두가 덤벼도 무리라는 판단이 들 정도였다.
그들은 처음 그 사실을 알고 경악했고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어쨌든 무허 사백은 소림승 중 유일하게 절세 무학 보리연화공을 전수받은 인물이었으니.
하나 방장의 결단이 내려지고 계율원주의 명이 떨어진 이상 단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눈물을 머금고 동문을 벌하는 십계승의 임무이자 의무였으니까.
“모두 무운을 비네.”
그곳에서 사대금강은 서쪽으로, 십계승은 남쪽으로 움직였다.
그 행보가 최악의 결정이 될 줄은 그들 자신들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