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27화>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소리는 지르고 야단이야!”
당연희도 빽 소리를 치며 신경질을 부렸다.
“망할. 농담할 때가 아니야. 지금 밖이 어떤 상황인지 아직 모르겠어?”
“밖에 무슨 일 있어?”
“직접 살펴 봐.”
적사결이 바깥을 향해 눈짓했다.
그녀는 곧바로 창문으로 다가가 곁눈질로 바깥을 살폈다.
굳이 상황을 살피기 위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었다.
적들은 대놓고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뭐야. 저놈들은. 지금 우리 노리고 있는 거야?”
“우리가 아니라 너지. 아까 그것들과 문제를 일으킨 건 너니까.”
적사결의 말에 당연희는 코웃음을 쳤다.
“뭐래. 걔들 목 딴 건 너잖아.”
“이것 봐라? 지금 본좌에게 떠넘기는 거냐?”
“사실을 말하는 건데? 호호.”
설마 믿는 구석이 나였던 건가?
보기보다 보는 눈이 있네.
얼굴도 예쁘고 안목도 좋고……
머리는 어떠려나……
“쟤들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 같아? 무명소졸인 본좌의 목으로 화를 달랠 리 없을 텐데.”
“맞아. 화풀이를 하러 온 거고. 저만큼 많은 수가 움직였다면 그만한 본보기가 필요하겠지. 한데 말이야. 네가 무명소졸이긴 하지만 본보기가 되기엔 충분할걸?”
“무슨 뜻이지?”
“난 당가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사천회와 전면전이 벌어져. 한데 당가의 데릴사위라면 어떨까? 그것도 아직 정식으로 당가의 인정을 받지 않은 ‘예비’ 데릴사위라면?”
딱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예비라는 딱지가 붙었다지만 당가의 일원이 될 자.
더구나 직접적으로 살수를 펼친 흉수이지 않은가.
아직 정식으로 가문의 일원이 되지도 않았으니 당가에서도 전면전까지 결심할 정도로 일을 키우진 않을 것이었다.
“한데 네 말만 듣고 내가 예비 데릴사위라고 믿을까? 쟤들도 아주 똥멍청이는 아닐 텐데.”
“물론 증좌가 있지.”
“증…… 좌?”
씨발, 불안하다.
저것이 무슨 짓을 했기에 증거가 있다고 말하는 걸까.
“증인도 아니고 증좌라? 말해 봐. 정말 있다면 본좌가 책임지고 여길 벗어나게 해 줄 테니까.”
“이게 바로 증좌지.”
당연희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폈다.
“아무것도 없잖느냐.”
“있지. 냄새.”
“냄새? 헉…… 설마…….”
적사결은 천축유가신공으로 후각을 강화했다.
당연희의 오른손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독특한 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하복부에서도.
“히히, 눈치가 빠르네. 맞아, 당가의 천리추종향이지. 여기서 문제. 왜 내 오른손과 네 하복부에서 나는 냄새가 똑같을까? 왜에?”
당연희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살짝 쥐고 위아래로 마구 흔들었다.
행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울 정도로.
“그만해, 이 변태녀야!”
“이만 하면 믿겠지?”
“씨…… 발…….”
머리도 잘 돌아가네.
여기까지 내다보고 있었다니.
“이제 나 어떻게 지켜 줄 거야? 백마 탄 공자님?”
“니기미, 공자는 무슨. 지키는 데 힘 말고 필요한 게 뭐가 있어?”
“어머, 박력 터져.”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딱 붙어서 따라와.”
“네, 공자니임.”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적사결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별채에서 나서자마자 지붕 위로 올라갔다.
적들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전황을 목도한 당연희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저기…… 좀 많은 거 같지 않아?”
“…….”
기감으로 느낀 것보다 눈으로 확인하니 더 엄청났다.
강화된 적사결의 안력은 객잔의 담을 넘어 지평선 끝을 응시했다.
객잔은 도시 외곽에 위치한 곳이었다.
때문에 주변은 드넓은 들녘이 펼쳐져 있었다.
만월의 달빛이 비추는 곳까지 확인한 적사결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천 단위? 만 단위?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쫄았어? 왜 말이 없어? 아깐 지켜 준다며.”
“쫄긴 누가 쫄았다고 그래. 몇 마리나 되는지 세어 본 거야. 개미 떼를 보고 쪼는 호랑이도 있느냐?”
“그래서 몇 마리나 되는 것 같아?”
“밤이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사오천 정도?”
한 평에 열 명이라 치고 보이는 놈들만 대충 계산한 것이었다.
솔직히 보이지 않는 들녘 너머 산중에도 상당한 인원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쩔 거야?”
“어쩌긴 원래 저런 오합지졸들은 천외천의 무력을 보여 주면 깨갱하게 되어 있어. 넌 여기서 올라오는 놈들만 상대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알았어.”
워낙 쪽수가 많아서일까.
당연희는 긴장하며 암기 대신 쓰는 동전을 양손에 가득 쥐었다.
적사결은 지붕을 박차고 오르며 금단을 생성해 바로 삼켰다.
그러자 막대한 공력이 전신을 채우며 압도적인 기세가 뿜어졌다.
밤하늘을 뒤로 한 채 황금빛 기공을 발하는 적사결은 가히 하늘의 신장이 강림한 듯한 모습이었다.
“본좌가 양민 학살에는 취미가 없지만 오늘은 예외다. 물러가지 않으면 모조리 밟아 죽여주마!”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터져 나가자 내공이 약한 놈들이 무릎을 꿇으며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나 누구도 칼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길, 혈마기였으면 심력에 눌려 기절이라도 했을 텐데.’
어쩌겠는가.
불가기공은 그런 쪽으로는 효력이 좋지 않은 것을.
휘리릭.
적사결은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발을 쭉 뻗었다.
수라천랑보, 독보군림이었다.
쾅. 쾅. 쾅.
거대한 강기가 발의 형상을 띤 채 사파인들을 짓밟아 갔다.
독보군림이 지나간 자리에는 거인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발자국이 남았고 벌레처럼 짓이겨진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앞서 경고한 것처럼 밟아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독보군림을 펼치고 허공답보로 다시 한번 도약.
그리고 다시 독보군림.
이후 재도약.
그것만으로도 적사결은 압도적으로 전황을 휩쓸었다.
간혹 아래에서 검기가 날아들었지만 적사결이 자리한 높이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흩어지기 일쑤였다.
‘내공이 무한하기라도 한 거야? 저게 가능해?’
당연희는 입을 쩍 벌리고 적사결의 무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놈들도 그를 보느라 자신을 잡으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숙부님이라도 저 정도로 공력이 심후하진 못해. 하물며 저 나이에 저만한 내공 수위라니. 도대체 저 녀석 정체가 뭐지?’
자문이 계속되었지만 결론이 도출될 리 만무했다.
적사결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만약 정말로 알려지지 않은 은거기인의 제자고 강호에 적을 둔 곳이 없으면 꼭 본가로 데려가야겠어.’
그녀는 욕심 어린 눈빛으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무림인이 강함을 동경하는 것은 본능과도 같은 것.
그녀의 눈에도 적사결의 무위는 천외천의 그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 * *
“후우…… 더럽게 많네, 진짜.”
적사결은 들녘에 오롯이 선 채 주변을 일견했다.
벌써 밟아 죽인 벌레들이 수백을 넘어 천에 육박하고 들녘은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하나 그럼에도 줄어든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남은 상황이었다.
‘대가리들은 한 놈도 안 보이잖아…… 젠장.’
아무리 살펴보아도 모두 잡졸들뿐이었다.
심지어 현장 지휘를 담당하는 대주급도 없었기에 간단한 합격진도 없이 그저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하니 지금으로서는 우두머리를 죽여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없었다.
“개방의 거지들보다 무식한 인해전술을 쓰는 놈들을 보게 되다니. 참 오래 살고 볼일이야.”
십만 개방도.
그들은 개개인의 무력은 낮지만 그 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단일 방파로는 문도의 수가 천하에서 가장 많았으니까.
과거 의천맹과의 전쟁에서 개방의 전술을 다수 경험한 적사결은 그것이 얼마나 짜증 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한데 이것은 그보다 더 저급한 수준이었다.
‘설마 이놈들이 수준 차이가 너무 나니까 감이 안 오는 건가?’
무위를 가늠할 안목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벌써 무기를 던지고 항복하거나 도망쳤어야 정상이다.
한데 놈들은 공력의 절반을 마구 쏟아 냈음에도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 삼류 나부랭이에도 못 미치는 버러지 수준이잖아.’
축기조차 안 되는, 무림인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떨거지들이었다.
백 명 중 하나 꼴로 내기가 느껴지는 놈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 봐야 벌레에서 쥐새끼가 된 정도였다.
문제는 그 벌레와 쥐새끼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득실거린다는 것이다.
촤앙.
적사결은 고민하지 않고 사왕을 빼 들었다.
제대로 된 적수가 아니지만 지금은 힘을 최대한 아낄 때였다.
장기전이 될 것 같았으니까.
* * *
“저 새끼 드디어 지쳤다! 다들 달라붙어!”
삼십 근에 이르는 거치도를 든 산적수염의 사내가 소리쳤다.
투기가 줄어들고 쓰지 않던 칼을 꺼내 들자 초반 기세가 꺾였다 여긴 것이었다.
“와아아아!”
단순하기 그지없는 무리.
그 한 마디에 사기충천해 아귀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목숨을 내던지며 팔다리를 붙잡고 늘어지기 위한 자세였다.
쉬쉬쉬쉭.
허공에 물결무늬의 잔상이 남으며 도광이 흘렀다.
십여 개의 선이 적사결을 중심으로 그려지며 겹치고 반전하고 하나의 형태를 그렸다.
수라천살검, 귀문혈천의 수법을 내공 없이 초식의 형만 펼친 것이었다.
서걱. 서거거걱.
달려들던 아귀들은 사지가 잘리고 몸통이 토막나며 혈화를 흩날렸다.
잘려진 살덩이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새로운 시체토막이 끊임없이 발생.
적사결의 주위에는 크고 작은 토막들이 빙그르르 돌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모습에 주춤거리는 놈들에게는 어김없이 격혈경혼의 연계 초식이 작렬.
공수의 조화는 두 개의 초식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아무것도 없던 들녘에는 시체의 산이 쌓이고 피가 바다를 이룰 정도로 흘렀다.
* * *
삼 일 밤낮.
적사결이 전투를 시작하고 보낸 시간이다.
흑살방주 사악진과 조가장주 조군악, 그리고 혈화문주 방운덕은 삼백 리 밖에서 전황을 살피며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쉬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무인이 있다니.
조금의 휴식도 주지 않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중소방파들을 압박했다.
처음 차출한 인원은 인근 세 개 도시를 근거지로 둔 문파들, 그리고 그들이 지닌 타격대의 절반이었다.
삼 일이 지난 지금은 대상이 열 개 도시로 늘어나 있었다.
“저런 괴물이었다니!”
사악진이 탁자를 내려치며 분개했다.
그리고 그를 충동질한 조군악과 방운덕은 바늘방석이었다.
설마 이 정도의 고수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부방주!”
사악진의 부름에 흑살방의 이인자 신철귀가 다가왔다.
“차출한 문파들에게 남은 인원도 다 내놓으라고 해! 견습이든 수습이든 가리지 말고 전부 다!”
“바…… 방주님. 하나 그리하다 자칫 반발이라도 생기면…….”
“이미 절반이 뒈졌는데 제깟 놈들이 개길 것 같으냐? 반항하면 식솔들 모두 산짐승 먹이로 던져 준다고 지랄해! 장사 한두 번 하냐!?”
이것이 흑살방이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후 광동제일문파로 급격히 세를 불린 방법이었다.
먼저 주변의 방파들을 압박해 절반의 인원을 차출한다.
그들도 눈과 귀가 있으니 그 정도 규모라면 엄청난 세력이고 그만한 힘이 움직이면 흑살방이 애초에 생각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문제없겠다 여겨 큰 반발이 없다.
일이 끝나면 차출되었던 인원이 두둑한 전리품과 함께 돌아오니 그만한 사업이 없고 말이다.
하나 중소 문파의 생각과 달리 실패한다면?
흑살방은 남은 절반의 전력을 차출하거나 거부한다면 그 문파들을 흡수해 버리는 수법으로 세를 키웠다.
절묘하게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말이다.
‘한데 이번엔 열 개 도시잖아! 이런 미친! 눈깔이 제대로 돌아갔구먼!’
그 정도는 흑살방, 조가장, 혈화문의 전력으로는 감당 못한다.
분명 반발이 터져 나오고 타도시의 중소 문파들이 연합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더구나 자칫 사무련에 발고하는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문제였다.
“방주님. 재고해 주십시오. 본방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그래, 사활이 걸렸지, 새꺄! 저 괴물 새끼 못 죽이면 우리가 다 뒈지게 생겼는데 안 걸렸냐! 이 등신아!”
“…….”
“가서 똑똑히 전해. 저 괴물 딱지가 우리를 조지고 나면 네놈들 차례가 될 거라고. 힘을 합쳐 함께 쳐 죽이든 등 돌리고 다 좆 되든지 알아서 하라고!”
“……예.”
시부럴, 어려운 건 나만 시키네.
신철귀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물러갔다.
사악진은 이번엔 조군악과 방운덕을 보며 요구했다.
“당신들도 아랫것들 있는 대로 다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