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26화>
“으히익!”
적사결은 잠결이었지만 몸에 닿은 감촉에 기겁했다.
그러고는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침상 아래로 내려갔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부드러움은 잠이 확 깰 정도로 강렬한 무언가가 있었다.
“와, 어떻게 깼지? 그 정도 몽혼약이면 코끼리도 재울 수 있는데.”
당연희가 감탄하며 말했다.
“야이, 미친! 언제 하독한 거야!”
녹주독혈사의 내단을 내주는 게 아니었다.
사왕을 보여 달라 하도 졸라 대기에 대신 그것을 주었는데 설마 독을 쓸 줄이야.
그것도 자신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천축유가신공으로 재빨리 대처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침상 위의 당연희와 침상 아래 자신.
이미 상의는 탈의된 후였고, 하의를 이제 막 벗기고 있었다.
덮치려 한 것이었다.
“야! 솔직히 나 같은 미녀가 한 번 자 주겠다는데 ‘감사합니다’ 하고 안아 줘야 하는 거 아냐? 고자도 아니면서 설마 동정을 지킨다는 주의야?”
당연희는 그의 하부를 보며 말했다.
적사결은 미칠 노릇이었다.
‘씨발, 천축유가신공이 안 되잖아. 집중이 안돼.’
심지어 신체도 명령을 거부하고 미친 듯이 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남자가 동정을 지킬 리 없잖아. 그런 거 아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야.”
내공을 잃게 된단 말이다!
하나 그 말을 믿을 리 없지! 젠장!
“혹시 혼인을 약속한 여인이 있어?”
“없다.”
“좋아하는 여인은?”
“그런 거 없다니깐!”
“아, 그럼 처음이라 무서운 거구나. 그냥 누나만 믿어. 호호호.”
“처음은 무슨! 누가…… 헉!”
당연희가 신법을 발휘해 순식간에 다가왔다.
반투명한 나삼 위로, 여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더구나 천축유가신공도 말을 듣지 않고, 금단 역시 흐트러진 심기 때문인지 생성할 수 없었다.
‘무슨 놈의 색기가 이래?’
절세미녀는 원 없이 품었었다.
당연희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에 준하는 미녀는 신강에도 있었으니까.
한데 미모보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염기가 차원이 다른 수준.
아까도 농후했지만 지금은 작정하고 패왕의 색기을 쏟아 내는 것 같았다.
“잡.았.다.”
발이 꼬이며 결국 두 손을 잡혀 버렸다.
내공도, 잠재 근력도 쓰지 못하는 적사결은 그녀의 신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위…… 위험해.’
내공을 잃는 것도 그렇지만 당장 반로환동이 풀리려 하고 있었다.
의념이 흩어지니 외모까지 본래 늙은 몸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헉. 헉. 나무아미타불. 씨바랄…… 말 좀 들어라.’
불호라도 외면 중놈의 몸이 말을 들을까 해 보았지만 무용지물.
젊음에 초인적인 정신을 집중하는 그때였다.
그녀가 한 발짝 더 다가오자 훅 하고 여인 특유의 향기가 덮쳐왔다.
“으갸갹.”
의념이 흐트러지자, 젊어짐을 유지하던 천축유가신공이 풀리며, 전신의 살이 문어마냥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꺄악! 이거 뭐야?”
당연희는 기겁한 채, 물러서며 기수식을 취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흘러나오던 색기가 줄어들고 있었다.
‘사, 사…… 살았다.’
적사결은 한숨을 돌리며 신체를 안정시켰다.
그러고는 천축유가신공으로 몸을 흐물거리게 해 재빨리 옷속으로 들어가며 착의했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무공이야? 무공은 맞아?”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
팔이 늘어나는 건 이미 보았지만 전신을 저런 식으로 다루는 건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옷이나 입어.”
적사결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겉옷 던지며 말했다.
당연희는 태연하게 그걸 받아 주섬주섬 입었다.
“좀 돌아서 입어라! 다 큰 처자가 어떻게 부끄러움이 없냐!?”
“알 거 다 아는데 부끄러움은 무슨. 모를 때나 척하는 거지. 내가 무림인이지 방갓집 규수냐?”
와, 요새 애들 무섭네.
모를 때도 ‘척’하는 거라니.
‘이런 게 세대 차인가…….’
적사결은 짐짓 모르는 척 말했다.
“알고도 부끄러운 ‘척’해야 남자들이 좋아하지. 너처럼 직진만 하면 누가 좋아하냐!”
“왜 이래 꼰대처럼? 너 강호 초출이라더니 그 나이 먹도록 산속에서만 살았니?”
“꼬…… 꼰대?”
“어쩐지 말투도 본좌니 어쩌니 꼰대처럼 말하더라니. 너 사부랑 둘이서 깊은 산속에서 지낸 거구나?”
그녀는 허리의 요대를 여미고는 휙 돌아서며 말했다.
“처음인데 누나가 너무 저돌적이었지? 다음엔 부드럽게 해 줄 테니까 마음의 준비하고 있어, 알았지?”
그러고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와…… 씨…….”
정말 황당한 여자가 아닐 수 없다.
적사결은 어이가 없어 욕도 나오지 않았다.
한데 문득 아까 보았던 그녀의 굴곡을 떠올리며 약간 흥미로운 기색을 내비쳤다.
‘별의 기운…….’
속이 훤히 비치던 나삼 너머, 그녀의 허리엔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 * *
‘어떻게 날 거부해?’
당연희는 어이가 없어 잠이 오지 않았다.
사천제일미라고 불리는 자신이다.
자신과 하고 싶어 하는 남자는 길바닥에 널린 걸 넘어 마차에 태워 줄을 세우면 북경까지 이어질 것이었다.
‘절대 고자는 아니고…… 동정을 따질 성정도 아닌데…….’
첫 경험을 두려워 할 부류도 아니다.
한데 이상한 사술까지 부리며 자신을 밀어내다니.
그녀는 살짝 자존심이 상하는 것만 같았다.
‘다음번엔...’
그녀가 음양 교합에 집착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천당가의 전통 때문이었다.
의술과 독술, 암기술과 무기 제련법까지 당가는 무수한 비전을 지닌 문파였다.
무공과 달리 그것들은 일반인의 손에 들어가도 큰 힘을 발휘하는 공부.
때문에 당가는 전통적으로 데릴사위를 들여 가문의 비전이 유출되지 않도록 했다.
더구나 당가는 특이 체질 탓에 손이 귀해 여인들은 데릴사위를 들이지 않더라도 무조건 자식을 하나 이상은 낳아야 했다.
미혼모가 되더라도 말이다.
만약 서른을 넘기고도 자식을 낳지 못하면 평생 당가의 담장을 넘지 못한 채 갇혀 지내야 하는 율법이 있을 정도였다.
그동안 버티고 버틴 당연희도 올해가 마지막.
만약 회임을 하지 못한다면 본가의 추적을 피해 중화 최남단, 해남도에서 숨어 지낼 요량이었다.
그렇게 광동성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 여정 중에 눈에 띈 유일한 인물이 적사결.
나이도 젊은데 그 기백이 십대고수인 숙부에 못지않은 실력을 지닌 천재였다.
그만하면 얼굴도 준수하니 씨를 받기에 이 정도로 적합한 사내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런 보물을 아무렇지 않게 내주다니. 무슨 놈의 배포가 이렇지?”
당연희는 보갑에서 내단을 꺼내 들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지닌 보갑은 당가인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으로 독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였다.
보갑에 넣은 독은 그 기운이 바깥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변질되지 않게 막아 주는 공능이 있었다.
피독의 영향력이 장원 하나를 뒤덮을 정도로 뛰어난 녹주독혈사의 내단이 방금 전 기능을 못한 이유는 보갑 때문인 것이었다.
‘녹주독혈사가 멸종되지 않고 아직 세상에 남아 있었다니…….’
야명주처럼 은은한 녹빛을 띠는 자태.
제법 뛰어난 피독주 정도로 여겼던 그녀가 내단을 확인했을 때는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었다.
녹주독혈사가 무엇인가?
묵린대망, 인면지주와 함께 천하 삼대극독을 지닌 독물에 이름을 올린 놈이다.
독을 연구하는 자라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천고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독물이었다.
“한데 내가 당가의 여식인 것도 알면서 꿀꺽하면 어쩌려고 준 걸까? 가치를 모르진 않는 것 같던데.”
지킬 자신이 있다면 취하지 않는 것이 이득이긴 하다.
복용하면 공력이 상승하고 만독불침의 효과가 생기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하나 지니고 있어도 만독불침이 가능한 피독주 역할을 하고 무엇보다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었다.
내단으로 만들어진 독기는 거의 반영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이 남자 그냥 씨만 받지 말고 남편감으로 삼아버릴까.”
그렇게 적사결이란 존재가 그녀의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 * *
‘아무리 내단을 보고 눈이 뒤집혔다지만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다니.’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환심을 사기 위해 녹주독혈사의 내단을 건네주긴 했지만 약까지 써 가며 덮치려 하다니.
‘설마 날 데릴사위로 데려가려고?’
적사결도 당가의 율법을 들은 적 있었다.
서른이라 했으니 몸이 달아오르긴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거의 문화 충격이었다.
아무리 무림의 여인들이 평범하지 않은 성문화를 지니고 있더라도 말이다.
‘사천이 좀 화끈하다는 얘긴 들었지만 이건 화끈이 아니라 겁나게 뜨거운 수준인데…….’
사천성의 음식은 매운 맛이 특징이다.
적사결은 너무 어이가 없었는지 상관없는 두 가지를 결합해 생각하고 있었다.
‘또 그러면 어쩌지? 해? 말아?’
아까는 너무 당황했기에 의념이 흐트러졌었다.
하나 다시 하면 마음을 다잡고 천축유가신공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천축유가신공이라면 끝내 주게 할 수 있으리라.
정말 어마어마하게 말이다.
‘그런 미모와 색기는 천하를 뒤져도 없을 것 같은데…….’
진심으로 아깝다.
당연희는 경국지색, 침어낙안, 화용월태 등 미녀를 수식하는 말들이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었다.
철옹성이나 마찬가지인 절대 고수의 심상을 뒤흔들 정도로 말이다.
한데 안타까움이 돌연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변질되어 갔다.
‘무허…… 이 개애애 새끼…….’
끝없이 분노가 치밀었다.
저런 초미녀가 달려드는데 두 팔 벌려 환영은 못할망정 도리어 밀어내야 하는 개 같은 상황에 빠지다니.
이게 다 그 미친 중놈 때문이었다.
한탄, 탄식, 굴욕, 절망. 애증. 그 모든 감정이 분노가 되어 무허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
‘이 시부럴 새끼. 원래는 몸을 바꾸기 전에 한 번 즐겨서 오갑자 내공을 다 잃게 만들어 주려 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동정인 몸을 지닌 채 패 죽여서 총각 귀신으로 만들어 주마.’
이를 바드득 갈며 적사결은 심화를 가라앉혔다.
이 모든 감정은 그놈을 만나 한 번에 폭발시켜야 했다.
‘잠이나 자자. 자고 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적사결은 앞섶을 단단히 여미고 침상의 이불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혹시나 새벽에 당연희가 재차 침입하더라도 시간을 끌기 위해.
그런데 그때였다.
벌떡.
이불을 걷으며 몸을 세운 적사결은 눈살을 찌푸렸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살의에 본능적으로 기감이 확장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확인된 불온한 무리들은 오합지졸인 듯했으나 그 머릿수가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절대 고수가 절로 경각심이 들 정도의 규모인 것이었다.
‘젠장. 내가 이렇게까지 경계심이 풀렸었다니.’
예로부터 예쁜 여자는 요물이라 했던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사이 이만한 적의를 가진 놈들이 가까이 올 때까지 몰랐던 것이다.
적사결은 곧장 당연희의 처소로 움직였다.
객잔의 별채, 여인들이 묵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야, 당장 일어나!”
“어머? 뭐야 아닌 척하더니 결국 못 참았던 거야? 호호.”
당연희는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역시 다시 봐도 잘생겼네. 그래, 사윗감으로 데려가자. 이만한 인물을 또 어디 가서 구하겠어.’
그러고는 과감하게 앞섶을 여며 놓은 끈을 붙잡았다.
그 모습에 적사결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야! 이 색골 변태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