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24화>
하북성 북경에서 출발한 여정은 하남성, 호북성을 지나 장강까지 이르렀다.
장강의 경계를 넘어서부터는 정파가 아닌 사파의 영역.
하나 적사결은 평화롭게 호남성까지 넘을 수 있었다.
호남성은 사무련의 본 단이 위치한 곳이기에 강남에서도 치안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광동성에 접어들면서였다.
‘역시 쓰레기 집합소…….’
가는 곳마다 반드시 한 번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거리의 파락호는 바퀴벌레처럼 들끓었고 온갖 사행성 도박부터 시작해 마치 도시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뒤바뀐 듯한 착각도 들 정도였다.
하여 처음엔 손을 썼던 적사결도 지금은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만의 생태계가 잡혀 있기에 그 폐단을 뿌리 뽑으려면 도시 전부를 갈아엎어야 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못할 것도 없지만 문제는 시간.
해남도로 향한 교도들과 만나야 하니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정파가 은근한 더러움을 조장한다면 사파는 대놓고 더럽구나. 하나 그럼에도 나름의 논리는 있어.’
과거 소림사를 나온 후 전하현의 풍류객잔 사건을 통해 정파의 치안 아래 백성들이 어찌 사는지 경험한 바 있었다.
그때 겪은 정파의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악취가 난다면 사파의 영역은 악취의 원인이 드러나 있는 상태.
그렇다고 그걸 다 갈아엎으면 또 다른 폐단이 벌어질 것이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파.
그들은 철저하게 규모에 따라 지역 문파의 영역이 나눠져 있었다.
그러면서 하위 중소 문파들이 연합해 대문파를 견제하는 방식.
만약 지배자 격인 대문파가 사라진다면 그 지역은 소문파들 간에 패권을 얻기 위한 각축장이 될 것이었다.
그리되면 도리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치안은 엉망이 될 터.
한마디로 모조리 박멸하는 혁명이 아닌 한 개혁은 힘든 지경이었다.
하나 정파의 영역과 달리 이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바로 경제의 규모.
명국의 경제는 그 삼분지 이가 장강 이북, 중원이라 불리는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정파의 영역은 그 혜택을 받기 때문에 타 지역보다는 백성들의 곤궁함이 덜했다.
하나 사파의 영역인 장강 이남처럼 그 혜택을 받지 못한 곳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굶어 죽는 백성은 줄을 이었고 그 탓에 산적, 파락호 등 음지에 적을 두는 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사무련이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상태를 유지해서는 답이 없어. 나라면 하나하나 갈아엎었을 거야.’
무림문파의 힘으로도 안 된다면 상계든 관이든 쥐어박아서라도 그리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은 이런 꼴을 두 눈 뜨고 지켜볼 만큼 인내심이 좋지 못하니까.
한데 그런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뭐야…… 또야?’
적사결은 문득 뒤쪽에서 접근 중인 흉흉한 기척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사건들에 얽혀 이제는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다.
‘어떻게 십 리도 가기 전에 또 일이 벌어지냐…….’
빌어먹을.
적사결은 혀를 차며 근처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폐 호흡을 멈추고 귀령운신공의 피부 호흡을 시작했다.
동시에 기척까지 죽이니 마치 나무에 동화된 듯한 은신술이 펼친 것 같았다.
‘아, 귀찮아. 제발 그냥 지나가라.’
하나 적사결의 바람과 달리 일단의 무리들은 그가 은신한 나무 바로 아래에 자리 잡았다.
한 명의 여인과 그녀를 쫓는 다수의 집단이었다.
‘한 명을 다수가 핍박하니 모른 체하기도 그러네…….’
한데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여인이 입은 복색이 눈에 들어왔다.
흑의 궁장을 입은 그녀의 옷에는 자색으로 수놓아진 뱀과 거미의 문양이 있었다.
천하에 저 문양을 사용하는 곳은 단 한 곳.
적사결은 그 사실을 인지하자 얌전히 다시 앉았다.
“흐흐흐, 이제야 잡았군.”
선두에 선 사내가 이죽거리며 검을 겨누었다.
그는 조가장 용검대의 대주인 이손이었다.
“착각하는 모양인데. 자리를 옮긴 거야. 벌건 대낮에 시가지에서 살육을 벌일 순 없잖아?”
흑의 여인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용검대원들은 입이 살짝 벌어지고 동공이 풀렸다.
그 정도로 여인은 아름다웠다.
한마디로 일대요희.
살구 같은 피부와 짙은 검미, 은하수가 내려앉은 듯한 눈은 보석처럼 빛났다.
더구나 늘씬한 허리 덕분에 돋보이는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의 굴곡.
청초함과 더불어 뇌쇄적인 매력을 동시에 지닌 여인이었다.
“정신들 차려라! 저 요녀에게 홀려 목숨을 버릴 셈이더냐!”
이손의 일갈에 용검대원들이 정신을 다잡았다.
“뭐? 요녀!? 야! 예쁜 게 죄야?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요녀야?”
흑의 여인의 말에 답한 것은 이손이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여인이었다.
“흥! 천박하게 색기를 흘리고 다니니 요녀지, 달리 요녀겠어?”
그녀는 조가장의 여식인 화용검 조지약이었다.
광동제일미로 불리는 그녀였지만 흑의 여인에 비하면 다소 손색이 있었다.
“참으세요, 언니. 저렇게 꾸미지 않으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니까 그런 거겠죠.”
조지약의 옆에 내려선 여인은 월태검 방군여.
그녀는 조지약과 단짝으로 혈화문 문주의 여식이었다.
두 사람은 광동의 화용월태로 이름난 미녀들이었다.
“어머, 나 오늘 아무것도 안 발랐는데. 오히려 여기까지 뛰어오느라 땀투성이인 거 안 보여?”
흑의 여인이 배시시 웃으며 한 손으로 앞섶을 쭉 빼며 손부채를 부쳤다.
그 모습에 사방에서 깔끔한 목넘김 소리가 울려 펴졌다.
꿀꺽. 꼴깍. 꿀꺼억.
그 모습에 조지약은 신경질적으로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한 번만 더 더러운 소리 내면 다 모가지 내놓을 줄 알앗!”
그 소리에 용검대원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지도 그렇다고 뱉지도 못했다.
흑의 여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성질이 더러우면 남자들이 싫어할 텐데. 못생겼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하지 않겠어?”
“누가 못생겼다는 거야?! 본 녀가 광동제일미 화용검 조지약이다!”
“응? 좆이얏? 너 이름 참 재밌네? 이름부터 되게 밝히는데. 킥킥.”
“좆이 아니야! 조. 지. 약! 약!이란 말이다!”
“그래, 너 좆이얏. 누가 뭐래니? 호호.”
“…….”
조지약은 부르르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름 가지고 더 떠들어 봐야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흑의 여인이 웃으며 이번엔 옆의 여인에게 물었다.
“넌 이름이 뭐니?”
“나…… 난…….”
“왜? 너도 이름이 야해서 말하기 부끄러운 거야?”
“누…… 누가 부끄럽다는 것이냐! 본 녀는 방.군.여. 광동에서 월태검으로 불리는 여걸이 바로 나다!”
약간 붉어진 얼굴로 대답한 그녀를 보며 흑의여인이 히죽 웃었다.
“뭘 또박또박 강조하며 말하고 그래. 방구녀? 이름 예쁜데? 세상에 방귀 안 뀌는 년 없으니까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마. 호호호.”
“……큭.”
방군여는 수치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한데 하나만 묻자. 날 건드리면 본가에서 가만있지 않는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그래도 괜찮은 거야?”
흑의 여인의 말에 조지약이 비릿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년은 오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인데 다른 사람이 어찌 알겠느냐? 내 친히 토막을 내서 산짐승의 먹이로 던져 줄 것이다!”
“흐응. 똥개도 제 집에서는 위세가 등등하다더니…….”
“그래, 네년은 사천 땅을 벗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해서 오늘 뒈지는 것이다.”
“이런, 이런. 하룻강아지들이 정말 범 무서운 줄 모르네.”
짤랑.
흑의 여인은 전낭에서 구리문 한 닢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겼다.
핑그르르르. 탁.
공중으로 솟구쳤다 떨어진 동전은 그대로 낚아채져 그녀의 손등에 안착했다.
“앞이면 너흰 뒈지는 거고, 뒤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거야.”
두구두구두구두구.
입으로 북소리를 낸 그녀는 천천히 손등 위를 가린 손을 치웠다.
드러난 동전은 앞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순간.
피피피피핑.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전낭 속의 동전이 발출되었다.
마치 하늘에서 돈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는 듯했다.
퍼퍼퍼퍼퍽.
스무 명에 달하는 용검대와 조지약, 그리고 방군여는 그 한 수에 팔다리 혹은 어깨를 꿰뚫렸다.
“만천전뢰. 본가의 비전인 만천화우를 흉내 낸 본 녀의 비기지. 돈벼락 맞고 뒈졌으니 저승길 노잣돈은 충분할 거야. 호호.”
“갑자기 기습하다니…… 비겁한 년!”
조지약은 상처 입은 허벅지를 부여잡은 채 소리쳤다.
“응? 안 뒈져?”
동전에는 스치기만 해도 즉사할 정도로 극독이 묻어 있었다.
한데 조지약을 비롯한 다른 자들도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죽지 않고 있었다.
“흥! 네년의 독수를 모르는 바도 아닌데 그냥 왔겠느냐? 모두 백화단을 먹고 왔으니 독은 무용지물이다.”
“백화단? 웃기고 있네. 알고도 못 막는 게 본가의 용독술이다. 하물며 고작 백독을 무효화시키는 백화단 따위를 믿어? 만독이 아니면…….”
흠칫.
있었다.
만독을 막을 수 있는 귀물.
흑의 여인은 자신들이 자리한 곳에 만독을 무효화시키는 피독주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피독주의 기운은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아차. 내단.’
적사결은 흑의 여인이 멈칫한 순간 자신의 위치가 들켰음을 감지했다.
피피피핑. 퍼퍼퍼퍽.
“어이쿠.”
적사결은 네 방을 연이어 엊어 맞고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금단을 취할 시간도 없었고 은신한다고 몸에 힘을 너무 뺐기 때문이었다.
역시 은신술 같은 패도와 동떨어진 영역은 성격에 맞지 않다.
다만 천축유가신공으로 신체를 경화시켰기에 상처는 없었다.
“흐음. 이거 무공도 모르는 놈인 거 같은데…….”
흑의 여인은 적사결에게서 공력이 느껴지지 않기에 일반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갈무리된 보리연화공은 단전에서 일체의 기운도 흘리지 않기에 그런 것이었다.
“넌 누구냐? 누구이기에 그런 귀물을 지니고 있는 것이냐?”
만독을 막는 피독주는 본가에도 단 하나뿐인 보물.
그런 것을 평범한 자가 지니고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자세히 보니 암기를 맞고 나무 위에서 떨어졌건만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이 누군지 묻기 전에 자신의 이름 먼저 밝히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모르느냐?”
적사결이 옷을 털며 일어나 근엄하게 말했다.
아까의 꼴사나운 모습과 달리 지금의 기백은 가히 일대종사의 그것.
흑의 여인은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숙부에게서나 느꼈을 긴장감에 위화감이 든 것이었다.
“강호 동도들은 저를 독비화라 부릅니다. 고인께선 누구십니까?”
“독비화? 사천제일미?”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어쩐지 미색이 제법 곱더라 했지.”
독비화는 자타가 공인하는 사천제일미였지만 그녀를 직접 본 호사가들은 입을 모아 주장했다.
그녀는 사천제일미가 아닌 천하제일미라고 말이다.
과연 직접 보니 그동안 봐 온 어떤 여인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데 별호 말고 이름이 무엇이냐? 본 좌는 이름을 밝히라 하지 않았느냐.”
적사결의 물음에 독비화는 머뭇거리며 되물었다.
“제 별호를 아시면서 이름을 모르십니까?”
“모른다. 본 좌가 별호와 이름을 함께 외는 자는 천하에 열 명 정도거든. 사천이라면 암룡신존 당백산 정도랄까? 그 외엔 몰라.”
오만한 대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흑의 여인은 그가 절대자의 기도에 걸맞은 위치에 있음을 짐작했다.
저런 것은 일부러 꾸며서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여…… 연희라 합니다.”
“연희? 연씨라니? 너 당가 아니냐?”
뱀과 거미를 상징으로 삼는 무가는 사천당가.
사천의 패자이자 정사지간의 문파를 대변하는 사천회의 수장이었다.
“마…… 맞습니다.”
“아! 당연희! 푸하하하하.”
어쩐지 이름 가지고 잘 놀린다 했다.
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군.
“그만 좀 웃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