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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23화 (123/206)

<기적의 이혼대법 123화>

공선은 안절부절못했다.

지난번 사건으로 무산대사는 분노 조절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림의 보물들을 들고 튄 사상 초유의 사태.

그중엔 장문령부 녹옥불장과 신단인 대환단을 비롯해 온갖 영약이 있었고, 심지어 칠십이종절예의 필사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만한 보물이면 새로운 소림사를 세워도 될 정도였다.

사백의 기행으로 소모되고 또 소모되었던 방장 사숙의 인내심이 그 사건으로 마침내 고갈되어 버린 것이다.

“사…… 사숙, 진정하십시오. 어서 약부터 드세요.”

공선은 약왕전주가 만들어 준 심화를 가라앉히는 환약을 건넸다.

무산대사는 신경질적으로 낚아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후욱, 후욱…… 후…….”

약을 먹고서야 무산대사는 거친 호흡이 진정되고 붉어진 얼굴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미타불, 내 또 이성을 잃었나보구먼. 사질을 볼 면목이 없네.”

“아닙니다. 저라면 홧병으로 몸져누웠을 겁니다.”

공선도 염주를 매만지며 불호를 읊조렸다.

“한데 팽가와 황보세가는 또 무슨 일입니까?”

“휴우, 사형이 두 가문의 가주들을 요절냈다 하네. 반죽음으로 만든 남궁가주와 달리 진짜 살계를 연 모양이야.”

“평소에도 무식한 자들이 싸가지도 없다고 그리 욕을 하시더니…….”

“아무리 그래도 같은 의천맹의 일원인데 그들을 그리 죽이다니. 아무래도 사형이 노망이라도 난 것이 분명하네. 휴우…….”

무산대사는 땅이 꺼져라 한 숨을 지었다.

평소 두 가문의 가주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형이었으나 마인이나 흑도인도 아닌 정파인에게 살계를 연 것은 중죄에 해당했다.

“계율원주를 불러오게.”

“사숙! 설마…….”

“이제는 사형을 열반에 들게 해야 할 듯하네. 가슴 아프지만 그만 부처님께 보내 그간 지은 죄를 참회토록 해야겠지.”

“…….”

계율원은 소림의 계율을 어긴 자를 징치하는 기관이었다.

무허는 그간 수십 차례 살계를 어겼으나 적어도 ‘한 명의 악인을 죽여 열 명의 중생을 구한다.’라는 명분이 있었다.

하나 이제는 그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외람되오나 사숙, 계율원의 힘만으로 되겠습니까?”

무려 정도제일인의 칭호를 지닌 사백이었다.

한데 지금은 반로환동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아닌가.

더구나 의천오무제 중 세 명을 패퇴시킨 현실이 이를 증명했다.

“사대금강, 그들도 부르게.”

“……알겠습니다.”

공선은 반장을 하며 고개를 숙인 후 방장실을 나섰다.

사대금강.

백팔나한과 함께 소림을 지키는 두 개의 기둥 중 하나였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으로 대변되는 네 명의 초고수라면 무허 사백이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터였다.

“후…….”

방장실에서는 거듭해서 땅 꺼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   *   *

남궁세가.

그곳은 언제나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었다.

하나 지금 그 장원의 정문에는 피객패가 걸려 있었다.

당분간 방문객을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돌아가는 것이 예의인 것을 알리는 표식이었다.

“아버님, 이리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남궁룡은 일어나려는 남궁건을 부축했다.

“괜찮다. 오히려 너무 누워 있었더니 욕창이 생길 것 같구나.”

남궁건은 본가로 복귀한 후 몸의 회복에 주력했다.

백방으로 의원을 알아보고 영약이란 영약은 모조리 사들여 치료에 사용한 것이었다.

의원 중에는 기주의 신의, 빈호산인 이시진이 있었으며, 영약 중에는 천년영지와 금화석청까지 있었다.

하나 그럼에도 두 눈은 여전히 시력을 상실한 상황.

빈호산인은 시신경이 파괴되어 백약이 무효하다는 진단을 내렸었다.

“용아, 갈 곳이 있으니 나를 좀 거들어다오.”

남궁룡은 남궁건의 팔을 붙잡았다.

“어디를 가시려는 것입니까?”

“내 눈이 이러하니 네가 길을 잡아다오 내가 설명을 해 주마.”

남궁건이 이르는 방향은 장원의 중심이었다.

선조들의 위패를 모시는 조사전.

그곳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개파 조사를 모시는 사당이 도착한 장소였다.

“용아, 조사님의 위패를 손에 닿게 해다오.”

“네.”

남궁룡의 손에 이끌려 닿은 위패에는 ‘남궁산’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남궁건은 그 위패를 반대로 돌려세웠다.

그러자 단상이 움직이며 바닥에 비밀 통로가 드러났다.

“아버님…… 여긴?”

“본가의 전설인 뇌제님의 벽력이 잠든 곳이다. 내 이런 꼴이 되었으니 이제 너에게 여길 알려 주러 데려왔느니라.”

비밀 통로의 계단을 통해 그들은 지하 깊숙이 걸음을 옮겼다.

벽에는 주먹만 한 야명주가 곳곳에 박혀 은은한 빛으로 어둠을 밝혀 주고 있었다.

저 정도 크기의 야명주가 장원 하나를 살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남궁가의 재력은 과연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었다.

“저것이 무엇입니까?”

남궁룡은 비동 가운데 안치된 마름모형 돌덩이를 보며 물었다.

원뿔 두 개를 붙여 놓은 듯한 그것은 아무리 보아도 평범한 돌이었다.

“보패 자전추. 초대 가주이신 뇌제님의 독문병기이자 천뢰기의 근원인 무구다. 그분 이후로 아무도 주인으로 선택받지 못해 지금은 돌이 되어 버렸지. 그 때문에 본가는 벽력의 힘을 잃었고…….”

“방법이 없는 겁니까?”

“이백 년간 역대 가주들이 연구를 거듭했으나 실패했다. 알아보니 자전추만이 아니라 알려진 모든 보패들이 이렇게 되었더구나. 다만 그 과정에서 알아낸 것은 있었다.”

“무엇입니까?”

“보패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혹 자전추의 조건도 알아내신 것입니까?”

“추측일 뿐이지만. 마지막 도박으로 이곳을 찾은 이유도 있단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남궁룡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절망감이다. 지독한 절망감. 조사님께서 남기신 일지에 있었지. 존경해 마지않던 아비를 잃고 마음이 부서졌을 때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천뢰기였다고 말이다.”

“절망감…….”

“남궁세가의 가주가 된 이후 절망감을 느낀 경우는 없었다. 일가의 수장이라는 자리는 피도 눈물도 허락되지 않는 자리. 나는 네 어미가 죽었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

남궁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아비는 일밖에 몰랐고 대외적인 평가가 높아짐에 따라 점차 철혈의 가주로 변모해 갔었다.

“한데 이번 북경행에서 나는 처절한 절망을 마주했다. 아이들을 모두 잃은 것은 물론, 애병이 부러지고 뇌조까지 잃었지. 그래도 그것은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 그자…… 이립도 되지 않은 젊은 천재에게 패하자 그간 쌓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지. 그자가 마흔이었다면 이런 좌절은 느끼지 않았을 텐데…… 허허…… 스물 남짓한 풋내기가 그런 신위라니…….”

남궁건은 피와 눈물을 버리고 오른 지금의 위치가 허망하고 허탈했다.

“아버지…….”

“이것이 조건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저 최초로 절망에 마주한 가주로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왔을 뿐. 너는 나의 뒤를 이어 가주가 되거라. 이곳의 비밀을 이어받았으니 너는 자격이 있다.”

남궁건은 한 걸음 다가가며 자전추를 손에 쥐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의 시야가 하얗게 변해 갔다.

*   *   *

“여…… 여긴…….”

남궁건은 새하얀 세상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있던 것이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그 소리에 남궁건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곳에는 선풍도골의 초로인이 서 있었다.

“노인장은 누구요?”

“노인장? 끄응. 누가 노부의 후손 아니랄까. 싸가지가 바가지구나.”

“후손?”

“조건을 충족한 놈이니 후손이 아니고 뭐겠느냐? 멍청한 놈.”

“하면 제가 자전추의 각성 조건을 충족한 것입니까?”

남궁건이 화색을 띤 얼굴로 물었다.

“끌끌. 보패는 이미 그 수명이 다했다. 한데 어찌 각성을 시키겠느냐? 띨띨한 놈이로구나.”

“끄응…… 하면 무슨 조건이라는 말입니까?”

“노부가 남긴 사념에 닿을 수 있는 조건이지.”

“사념? 술사이십니까?”

“조상님께 술사? 무인이다, 이놈아! 원영신으로 자전추에 사념을 남긴 것이야! 이런 바보천치 같은 놈!”

“원영신?”

“어이구, 이런 등신 같은 놈이 내 후손이라니…….”

노인은 이마를 짚은 후 현기가 가득한 눈으로 남궁건을 바라보았다.

“너 강호에서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느냐?”

“십대고수입니다.”

“어디? 안휘? 강동?”

“천하십대고수입니다!”

“뭐라? 천하? 네 주제에?”

“주…… 주제…… 허…… 왜 그러십니까? 뭐가 잘못됐습니까?”

남궁건의 물음에 노인은 혀를 차더니 입을 열었다.

“퇴보도 이런 퇴보가 없군. 어쩐지 자연의 기운이 점차 줄어들더라니…….”

“저기…… 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화경의 극에 이르면 하단, 중단, 삼단, 세 단전이 완성되고 천지간의 기운과 심, 기, 체를 교통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삼화취정이라 부르지. 그 경지에 이르면 원영신으로 하지 못할 것이 없어지느니라. 이곳은 원영신으로 만든 공간. 그리고 노부는 본체가 남긴 사념이라 할 수 있지.”

“하면 조사님께선…… 뇌…… 제?”

“이 둔한 놈아, 이제야 알았느냐. 그래, 노부가 뇌제 남궁산이니라.”

따악.

“크윽.”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을 뿐인데 이마에 혹이 생길 정도로 시뻘겋게 부었다.

남궁건은 이마를 문지르며 되물었다.

“한데 왜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신 겁니까?”

“이렇게 빡대가리라니…….”

“아니…… 왜 그렇게 욕을…….”

따악.

“으윽.”

“가문의 수장이 멍청하면 욕을 먹고 매를 맞아야지. 딸린 식구가 얼만데.”

남궁산은 튕겨 낸 중지를 그대로 내밀며 말했다.

“이 안배는 본가에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기회라니요?”

“본 좌는 말년에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 천뢰기의 근원인 자전추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해서 언젠가 본가가 천뢰제왕신공을 잃을 것이라 판단했다. 천뢰기가 없는 천뢰제왕신공은 팥 없는 찐빵이니까.”

“그 말씀대로 천뢰제왕신공은 절전되었습니다.”

따악.

“윽. 왜 때리십니까?”

“구라치고 있네. 편법으로 익혀 놓고서는. 이 공간은 나의 지배 아래 있다. 거짓말이 통할 것 같으냐?”

뇌조의 뇌기를 이용한 편법.

남궁산은 남궁건의 신체를 살펴보았기에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여튼 좀생이 같은 놈. 벼락 맞은 나무에 살며 뇌기를 좀먹는 뇌조와 아주 판박이구나.”

“…….”

남궁건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입을 꾹 닫았다.

자신 딴에는 절전된 무학을 잇고자 노력한 것인데 좀생이 취급이라니…….

“어쭈? 표정 관리 안 해?”

“……송구합니다.”

“어휴, 네놈 꼴을 보니 내가 이 안배를 해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백번도 더 드는구나.”

남궁산은 남궁건의 상황을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신체에 남은 후유증이나 시력을 잃은 것, 그리고 그 마음에 남은 절망을 통해서.

“자전추의 수명도 다했는데 무슨 안배를 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남궁건은 풀이 죽은 얼굴로 되물었다.

밀실을 만들고 가보로 여겨 온 자전추가 한낱 돌덩이가 되었다는 확인 사살 때문이었다.

“천뢰제왕신공을 뜯어고쳐 새로운 무공을 창안한 것이다. 빡대가리인 네놈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팥 없이도 끝내주는 찐빵을 만들었다고 해야 하나? 흐흐흐.”

“왜 비급으로 남기지 않으시고…….”

따악.

“크으…….”

“천뢰제왕신공이 무엇이냐? 천하제일의 절세무학이다. 그걸 뜯어고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차라리 새로 창안하는 것이 나을 정도.

그만큼 완성된 무학을 재정립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다.

“당시 노부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 비급으로 남길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무공 때문에 천뢰제왕신공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았지.”

천뢰제왕신공의 창안자는 남궁산의 아비였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따르던 우상 말이다.

그의 유산이나 마찬가지인 그 무공을 가문의 후손들이 최대한 잊지 않길 바란 것이었다.

하니 편법이나마 천뢰제왕신공을 익혀 낸 남궁건이 그와 인연이 닿은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한데 그 무공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남궁건의 물음에 남궁산은 묵직한 음성으로 답했다.

“제왕무적검.”

남궁산의 아비인 무적검 남궁혼의 별호를 딴 신공절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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