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22화>
소민은 한참을 숙고했다.
마음속에 갈등이 엄청난 모양이었다.
하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문주와 그 측근들이 모두 죽은 이상 고아들을 돌볼 자는 자신밖에 없다고.
굳게 닫혔던 소민의 입이 열렸다.
“천령마기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뭐든 말해 보거라.”
“저와 함께 자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도 함께 신교로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오문의 불온한 사상만 없다면 평교도로 받아 주마.”
“하오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문제는 없을 겁니다.”
“좋다. 다른 조건이 또 있느냐?”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오문에서 저의 배신을 알지도 모릅니다. 철저한 신변 보호를 요청드립니다.”
“문제없다. 혹여 그런 일이 생긴다면 천하의 점소이와 기녀, 소매치기 등 하오문과 관련된 직업군 자체를 세상에서 없애 주마.”
허풍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만한 말이다.
하나 소민은 적사결의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되었다.
“더는 없느냐?”
“없습니다.”
“신교의 일원이 된 것을 환영한다. 너는 장로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것이고 원한다면 마공을 익힐 기회도 주어질 것이다. 본 교의 율법은 오직 하나, 강자존. 너는 강한 자가 되기 위해 정진해야 할 것이며 그 강함에 걸맞은 인격과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알겠느냐?”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소민은 적사결을 향해 삼배지례를 올렸다.
본래라면 신궁의 제단에서 입교식을 치러야 하나 상황이 이런 만큼 약식으로 행한 것이었다.
“사월아, 너는 소민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해남도로 오거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소민. 너는 천령마기의 구결과 하오문이 그것을 입수한 경위, 그리고 하오문에서 그것을 연구한 내역까지 상세히 적어 보고하거라. 보고서는 해남도에서 받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적사결은 이두한백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들을 호위해 본 좌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데리고 오너라. 할 수 있겠느냐?”
혹시나 있을 하오문의 추적이나 습격을 염려해 대비하는 것이었다.
-크르르릉.
이두한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울었다.
“하면 다들 해남도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본 좌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마.”
* * *
북경을 떠나기 전.
적사결은 삼월이 결과 보고와 함께 회수해 온 녹주독혈사의 내단을 받았다.
진평은 과연 천고의 보물인 피독주를 흔쾌히 돌려준 것이다.
그리고 사실 보고는 받을 것도 없었다.
이미 북경에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임인궁변으로 불린 황제 암살 시도.
임인년에 궁녀들이 일으킨 변이라는 말이었다.
그 주동자가 황제의 총애를 받던 단비 조씨임이 드러나고 관계자는 모두 극형에 처해졌다.
엽주평은 단비의 몸을 한 채 죽은 것이다.
‘한데 녀석은 왜 황제와 정을 통하면서까지 살수를 쓰지 않고 궁녀들을 이용한 걸까…….’
적사결은 그 이유만큼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천하사괴의 일원이니 정신이 나간 것이겠거니 여길 뿐이었다.
제정신인 사람의 속도 들여다보지 못하는데 미친놈은 오죽하겠는가.
‘해남이라…… 꽤 먼 길이니 느긋하게 가 볼까.’
가까운 거리였다면 경공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을 것이다.
하나 해남은 말을 타더라도 달포는 족히 가야 했고 섬이다 보니 배도 타야 했다.
일단 대장로 일행은 무허의 마수에서 벗어나 있고 흑사광도 곁에 있으니 안심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신교에는 아직 절반의 교도들이 있으나 한 차례 내분을 겪고 전력이 반감되었을 테니 당장은 움직임이 없을 터.
적사결은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 * *
“아버님!”
팽천기는 처참하게 죽은 팽도극의 머리를 부여잡고 오열했다.
비선들에 의해 운구되어 온 두 구의 시체.
그들은 바로 의천오무제로 불리는 절대 고수, 팽도극과 황보겸이었다.
“어찌 된 것이냐?!”
팽천기의 물음에 비선 소속 무인은 자신도 인근 백성들의 소문을 듣고 살해 장소를 방문, 그곳에서 두 가주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보고했다.
가히 자연재해라 생각될 정도로 천둥소리가 이어지고 지진이 난 듯 지축이 뒤흔들렸다는 소문들.
그것은 절대 고수들의 격돌로 일어난 현상인 것이었다.
그때 황보겸의 수하이자 권호쌍협의 일인 황보성이 나타났다.
그는 죽은 황보겸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떨구었다.
“숙부님…….”
황보성은 손을 부르르 떨며 황보겸의 관 뚜껑을 다시 덮었다.
더 이상 황보겸을 보고 있다간 분노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가주, 두 어르신을 해한 자가 사무련의 숨겨진 고수입니까?”
“확실하진 않으나 정황상 그렇습니다. 두 분께선 그자를 처단하기 위해 움직이셨으니까요.”
“그가 젊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부끄럽지만 저와 비슷한 연배였습니다.”
황보성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팽천기에게 되물었다.
“하면 팽가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찌하다니요?”
“설사 파황무존이라도 두 어르신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데 두 분이 이렇게 되셨다는 것은 비겁한 술수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암습이나 함정이 있었다?”
“일반적인 함정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 것에 당할 분들이 아니니까요. 어쩌면 인근 민초들이나 정파 쪽 무인들을 사로잡아 인질로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흑도 놈들은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저지르니 말입니다.”
황보성의 추리를 들은 팽가의 무인들이 불같은 기세를 일으켰다.
그의 말대로 그런 비겁한 짓이 아니라면 두 절대 고수가 당할 리 없다 생각한 것이다.
증거가 없는 단순한 추리지만 그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주의 죽음은 그만큼 그들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 준 상황이었다.
“하나 증좌가 없는 상황에서 그리 단정적으로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그자가 두 분을 해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본가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가주님의 목숨 값을 받아 내고 말겠습니다!”
황보성이 눈에서 화염을 뿜으며 일갈했다.
“팽가는 어찌할 것입니까?”
“…….”
팽천기가 대답이 없자 팽가의 무인들이 소리쳤다.
“가주님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소가주! 복수해야 합니다!”
“놈들은 비겁한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합니다!”
핏발 선 눈으로 외치는 그들을 보며 팽천기는 눈을 잘게 떨었다.
자신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하나 흉수의 역량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더구나 저들에겐 파황무존이 있지만 자신들 오대세가는 의천오무제 중 세 명을 잃어 전력 손실이 컸다.
하니 그리 쉽게 복수를 부르짖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원한도 힘이 있어야 갚을 수 있는 곳이 무림강호였으니까.
“모두 정숙하지 못하겠느냐! 이 무슨 소란이냐!”
쩌렁쩌렁한 일갈과 함께 나타난 이는 여장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중년 미부였다.
그녀는 팽도극의 아내이자 팽천기의 어미인 장옥련이었다.
여인임에도 일신의 무위가 절정에 다다른 그녀는 하북제일의 여걸이었다.
“어머니.”
“어찌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느냐. 가주께서 저리 되셨으니 앞으로 네가 본가의 기둥인 것을 모르는 것이냐?”
“…….”
장옥련은 팽천기를 지나쳐 오체분시되어 있는 팽도극을 바라보았다.
하나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너는 아비의 이런 꼴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묻는 장옥련의 물음이었다.
“당장 든 생각은 복수였습니다.”
“하면 어찌하여 가솔들의 외침에 답하지 않은 것이냐?”
“오대세가는 세 분의 가주를 잃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전력상 열세이니 싸울 때가 아니라 힘을 키울 때라 판단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구나. 하나 때로는 열세라 하더라도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어머니…….”
“팽가의 앞마당인 북경에서 팽가의 가주가 죽었다. 그것도 황보세가의 가주도 함께. 여기서 좌시한다면 천하인들은 팽가를 비웃을 것이고 힘을 키우긴커녕 도리어 있는 자들도 본가를 떠나겠지. 지금은 힘을 키울 때가 아니라 힘을 보여야 할 때인 것이다.”
“……소자가 판단이 짧았습니다.”
“모용세가와 제갈세가에 파발을 보내거라. 팽가는 기둥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가문의 힘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장옥련은 황보성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황보세가는 어떤가요?”
“물론 본가도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설사 이 길이 본가의 멸문으로 이어져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황보성이 살기를 띤 눈빛으로 장옥련의 말을 받았다.
* * *
숭산 소림사.
그곳은 지금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이었다.
소림을 방문한 남궁세가의 무인.
그가 전달한 전서에 적힌 청천벽력 같은 통보 때문이었다.
“이 망할 인간! 어휴! 내가 제명에 못 살지, 못 살아.”
소림 방장 무산대사는 들고 있던 서신을 탁자 위로 던지며 혀를 찼다.
장경각주 공선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주워 읽었다.
또 무허 사백께서 사고를 친 것이리라…….
이번엔 또 무슨 일인지 걱정부터 앞섰다.
“헉!”
불가기공을 익힌 정체불명의 고수가 남궁세가 창궁검대를 몰살하고 창궁검제를 폐인으로 만들어?
비전절학을 유출해 이 같은 사태를 야기한 소림에도 그 책임이 있다?
공선은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서신을 접었다 펴고 두 눈을 끔벅거렸다.
“공선. 그리 여러 번 볼 것 없네. 사형이 저지른 짓이 분명하니까. 소림 무공으로 창궁검제를 죽여? 천하에 그게 가능한 승은 그 인간뿐이겠지.”
“사숙, 하나 여기 보면 그자가 도를 썼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쉬이 단정 짓는 것이 아닐는지요.”
“확실하네. 보리연화공은 십팔반 병기를 모두 다룰 수 있는 신공. 사형이 불제자라는 정체를 숨기려고 칼을 썼을 수도 있는 일이지. 그 인간은 무공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 잘하니까.”
“종리세가가 그때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나한들이 모셔 왔을 텐데 통탄할 노릇이군요.”
자신들의 관할지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나한들을 압박했던 종리세가의 광검대 무인들.
그때 그들에게 발목이 잡히지 않았다면 분명 무허 사백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이후에 십이사령의 등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한들을 불러들여야 했으니 다 소용없는 일이네. 지금은 남궁세가의 항의를 어찌할 것인지 대처할 수밖에.”
“방장 사숙, 혹시 사백께서 종리세가와 개방을 움직인 것은 아닐까요?”
“설마. 사형이 무공은 잘해도 간계에 뛰어난 인물은 아니네. 너무 과한 억측일세.”
“험험. 그렇겠지요.”
공선은 당시 절묘하게 나한들의 움직임을 돌려세웠던 정황이 의심스러웠다.
하나 사숙의 말대로 무허 사백은 머리를 쓰는 부류가 아닌지라 그 정도로 생각을 일축했다.
“한데 소환단은 몇 개나 제조되었다던가?”
“약왕전 전주의 말로는 열 개 정도라고 합니다.”
“겨우 열 개인가…… 휴우…….”
“그나마도 인근 상방과 약방을 다 뒤져서 만든 것입니다. 사백께서 영단과 핵심 재료들을 다 싹쓸이하셨으니까요.”
“하면 그거라도 남궁세가로 보내게. 남궁가주의 병세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전언도 함께.”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그때였다.
장문전을 지키던 나한승이 내실로 들어오더니 다급히 두 개의 서신을 건넸다.
봉서의 표면에는 팽가와 황보세가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서…… 설마.”
무산대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봉서를 뜯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하고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악! 사혀어어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