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21화>
“이이익!”
사월은 진신내력을 개방해 온몸에 공력이 휘돌게 했다.
하나 여전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발바닥이 땅에 붙어 버린 기분이었다.
“소용없어. 당신이 마인인 이상 절대로 저항할 수 없을 테니까.”
“설마…… 천령마기인 것이냐?”
“음? 어떻게 알았지? 아! 송만, 그분을 통해 알아냈나 보군.”
소민은 미간을 좁히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사월의 발이 저절로 움직이며 소민에게 다가갔다.
“으윽…….”
손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
하나 사월은 도리어 적월검을 소민에게 건네고 있었다.
“좋은 검이네. 손질이 잘된 걸 봐서 꽤 아끼나 봐?
“주군께서 직접 하사하신 것이다. 그 더러운 손으로 건드리지 마라.”
사월이 노기가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으나 소민은 미소 지을 뿐이었다.
“후후, 그럼 더더욱 이 검으로 죽게 해 줄게. 원래 자살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송만 님의 복수는 직접 해야 할 거 같아서.”
소민은 적월검은 들고 사월의 가슴을 겨누었다.
“망할 년. 네년은 꼭 내 손으로 죽여주마.”
“호호, 심장이 뚫리고도 살아남아야 그럴 수 있겠지?”
적월검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소민은 단번에 명줄을 끊는 것이 아닌 최대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으으으…… 아아악!”
그것은 비명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천령마기의 구속을 벗어나기 위해 사월이 피를 토하는 소리였다.
눈의 실핏줄이 터져 혈안이 된 사월은 눈빛으로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무섭네. 한데 눈빛만으로 사람이 죽겠어? 좀 더 기를 써 봐. 혹시 알아? 구속이 풀릴지? 호호.”
소민은 웃으며 검을 한 치 더 밀어 넣었다.
“커헉…….”
사월의 입에서 선혈이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의식이 흐릿해지며 죽는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주…… 주군…….”
사월이 그렇게 읊조릴 때였다.
쩌어어억!
안개가 흩어지고 그 틈 사이에서 황금빛 서기가 엿보였다.
그리고 공간이 갈라지며 네 개의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쿠와아아아악!
-크워어어어!
이두한백이었다.
동물적인 본능인지 사월의 위기를 감지하고 힘으로 술진을 뚫은 것이었다.
“뭐…… 뭐야…….”
소민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두한백이 지닌 불가기공, 그 제마멸사의 기운에 압도된 것이다.
그 덕분에 사월도 천령마기의 구속이 풀려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두보는 그런 그녀를 보호하듯 안아 들었다.
“쿨럭. 죽이면 안 돼. 사로잡아.”
사월의 명령에 백거이가 순식간에 소민을 제압했다.
그녀는 마치 인형처럼 백거이의 두 손에 잡혀 공중에 떠 있었다.
“흐흐, 전세 역전이네. 기대해. 천령마기의 구결을 알아낸 후 아까와 똑같은 방법으로 죽여 줄 테니까.”
사월의 서슬 퍼런 말에 소민이 악다구니를 썼다.
“흥! 내가 그걸 알려 줄 것 같아! 당장 죽여! 죽이라고!”
“말하기 싫어도 말하게 될 거야. 손톱, 발톱을 뽑는 것부터 팔다리를 뭉개 사지를 찢고, 내장을 네 입에 물려 놓고 아가리를 털어 버릴 거니까. 그래도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얘들한테 산 채로 잡아먹힐 테니까 알아서 해.”
사월의 말에 백거이가 송곳니를 드러내고 소민의 얼굴을 핥았다.
그리고 맛있겠다는 듯 포효했다.
-크워어어억! 크워억! 크릉. 크릉.
* * *
퍼퍼퍼퍼펑.
주변을 둘러싼 다섯 구의 흙 인형이 폭발하며 흙먼지가 날렸다.
파괴된 흙 인형만 벌써 삼천여 구.
하나 그걸 실행에 옮긴 당사자는 너무도 멀쩡한 상태였다.
도중문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젊은 나이에 말도 안 되는 내공 수위는 둘째치더라도 체력이 무한대라는 말인가.
호흡이 흐트러지긴커녕 숨을 쉬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저자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하오문에 적을 두고 있으니 도중문도 강호의 이름난 고수는 모두 알고 있었다.
하나 저런 이형도나 불가기공을 사용하는 자는 들어 본 적 없었다.
‘은거기인의 제자? 전대? 전전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구나.’
근 오십 년 이내의 무인들을 떠올려 보아도 알 수가 없다.
상대의 무공 연원은 물론, 그 실력도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
그렇다면 술력이 떨어지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토인비술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다니 대단하구나.]
“헹!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그래, 네놈 술력이 무한하진 않을 테니 슬슬 힘이 부칠 때도 되었겠지.”
적사결은 사왕을 어깨에 지고 허공에 떠 있는 도중문을 바라보았다.
능공천상제도 아닐진대 놈은 움직임도 없이 공중부양을 하고 있었다.
‘일종의 비행술인가? 되게 유용하겠네. 쩝.’
허공을 걷고 뛰는 허공답보는 몰라도 능공허도, 능공천상제라 불리는 기예는 전설적인 경지였다.
하늘을 나는 것이 인간의 꿈인 걸 생각하면 말 그대로 꿈 같은 경지인 것이다.
“좋은 말로 할 때 내려와라. 아니면 처맞고 내려올래?”
도발성 발언에도 도중문은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집중하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뭘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씨부렁거리지? 술법 발현을 위한 진언인가?’
청각을 강화해 들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이마에는 이상한 빛의 문자가 떠올라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신체의 술력과 뒤섞여 재배열되는 중이었다.
‘허점투성이군. 지금이라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펑하고 몸이 터져 죽겠지? 흐음…… 조금 기다려 줄까.’
이마를 중심으로 변형되는 기의 변화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더구나 쉽게 만나기 힘든 뛰어난 술사.
적사결은 놈의 진짜 실력을 보고 싶었다.
[역시 내 계산대로 네놈은 술법의 완성을 기다려 주었구나. 큭큭. 하나 그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한이 될지 즐거운 여흥이 될지 겪어 보면 알겠지.”
[광오한 놈. 후회하게 해 주마.]
바닥이 들썩이더니 흙과 바윗돌이 떠올라 도중문에게 날아갔다.
그러고는 그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그 크기를 불려 가던 도중문은 적사결이 손바닥 정도 되어 보이자 술법을 멈추었다.
거인이 된 그는 돌과 흙더미로 둘러싸여 신체가 보이지 않았다.
“와…… 크네.”
[열토거인술이란 것이다. 쥐새끼처럼 밟아 죽여주마.]
“쥐가 흙을 팔 수 있는 건 모르나 봐?”
[지금 이 몸은 강철보다 단단하다. 할 수 있으면 해 보거라, 하하하.]
“이거 보이지. 얘가 강철도 두부 자르듯 하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해하지 마. 그런 표정을 보면 일그러지는 걸 보고 싶은 악취미가 있거든.”
적사결이 사왕을 흔들며 말했다.
[흥! 이쑤시개 따위!]
도중문은 집채만 한 손바닥을 들어 힘껏 내리쳤다.
꽈아아앙.
거대한 손바닥 자국이 생기고 먼지가 모래 폭풍처럼 사방으로 날렸다.
한데 적사결은 어느새 그 손등 위에 서 있었다.
그러고는 사왕을 내리꽂았다.
쩌저저저적. 퍼퍼퍼퍼펑.
침투경이 사왕을 통해 증폭되어 발출되자 거인의 손은 팔꿈치까지 부서지며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하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도중문은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장정의 두 배는 됨직한 바윗돌이 포탄처럼 쏟아졌다.
쾅. 쾅. 쾅. 쾅.
적사결은 여유롭게 이형환위를 사용, 날아오는 바윗돌을 도리어 디디며 접근했다.
그러고는 코앞까지 다가가자 왼손을 벼락같이 내질렀다.
거대한 강기로 이루어진 수라멸천장이었다.
“싸다구는 이렇게 때리는 거야. 이 무식한 놈아.”
거인이 비틀거리자 이번엔 천근추를 사용해 그대로 뚝 떨어졌다.
발등을 사왕으로 찍은 것이었다.
역시나 침투경으로 발목까지 파괴.
이어서 도강을 뿌려 반대쪽 발목까지 싹둑 잘라 버렸다.
쿠우웅.
균형을 잡지 못한 거인이 쓰러지며 남은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하나 적사결은 그 손마저 잘라 버렸다.
“커지면 좋을 줄 알았지? 한데 이거 어쩌나? 때릴 데가 많아서 본좌만 좋은 거 같은데.”
적사결은 거인의 등에 올라타 이죽거렸다.
그러고는 아래를 향해 수라천살검, 혈겁멸세의 초식으로 난도질을 시작했다.
꽈과과과과과광.
광역기인 혈겁멸세는 바닥에 깔린 거인의 전신을 다져 버리기에 충분할 만큼 공격 범위가 넓었다.
“이제 그만 나와라. 재미없구나.”
적사결은 손바닥을 거인의 엉덩이 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허공섭물에 의해 그곳에서 도중문이 조금씩 삐져나왔다.
“와, 거인이 사람처럼 생긴 똥을 싸는 것 같네. 하필이면 거기 숨어 있었냐. 쯧쯧.”
“으아아악!”
도중문은 강제로 술법에서 빠져나오는 탓에 엄청난 격통을 느꼈다.
술력이 역으로 폭주하는 듯 전신에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그, 그만! 그만둬! 아아악!”
도중문의 외침에도 적사결은 아랑곳 않고 무형기에 집중했다.
조금만 더 하면 뽑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변비냐? 더럽게 안 나오네. 끄응.”
“끄아악. 아악! 아파! 아아악!”
“참아, 새끼야! 형이 빨리 싸게 해 줄게! 차압!”
뻐어엉.
엉덩이에 반쯤 걸친 채로 도중문의 몸이 터져 버렸다.
술력이 역행하며 폭발해 버린 것이었다.
“웁쓰, 피똥 쌌네…….”
* * *
도중문의 술력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적사결은 다시 아까의 장원에 소환되듯 나타났다.
그곳엔 이두한백과 사월, 그리고 제압되어 무릎을 꿇고 있는 소민이 있었다.
“사월아, 다쳤느냐?”
“조금요. 이제 괜찮습니다.”
“빨간약은 발랐고?”
적월만의 비상구급약. 그것은 적사결이 적월 창설 당시 대원들에게 나눠 준 명약이었다.
“예. 걱정 마십시오.”
“그래. 다행이구나. 한데 얘는 왜 살려 놓은 거냐?”
적사결은 소민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자신을 상대로 뒷공작을 일삼은 하오문주와 패거리인 년이니 당연히 죽어 마땅했다.
한데 사월이 사로잡은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여인, 천령마기를 익히고 있었습니다.”
“뭐? 천령마기? 정말이냐?”
“예. 그 때문에 죽을 뻔했습니다. 아니, 이두한백 이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겁니다.”
사월은 앞섶을 열어 가슴에 난 상처를 보여 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봉긋한 봉우리가 탐스러운 육체를 자랑하는 듯 출렁거렸다.
“커…… 커험. 알았으니 그만 여미거라. 상처에 찬바람이 들어가면 풍이 올지도 모르느니라.”
“네, 주군.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월은 앞섶을 여미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적사결은 소민에게 시선을 돌리며 근엄하게 말했다.
“내 너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마.”
“……?”
“첫째, 본 교에 천령마기를 온전히 돌려준다면 은인으로 여겨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다. 죽은 하오문주의 최측근은 이제 너뿐이다. 그녀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음모가 다 분쇄된 마당에 스스로의 보신을 꾀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야. 살아남는다면 죽은 자들의 제삿밥 정도는 챙길 수 있을 테니까.”
“…….”
소민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둘째, 입 꾹 처닫고 혼이 나갈 정도로 고문을 받다 뒈져라. 본 교의 고문은 네 생각보다 더 끔찍할 것이니 각오 단단히 하고. 아! 그리고 네년과 관련된 자는 설사 무덤에 있더라도 꺼내 갈기갈기 찢어 주마. 살아 있다면 네년이 당한 고통 그대로 느끼게 해 줄 것이고 말이다.”
그 말에 소민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함께 자란 고아들이 떠오른 것이었다.
사월에게 그가 천마신교의 교주라는 말을 들은 상황.
마교의 지존인 그의 명령이라면 세상 누구든 찾아서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이 자란 그곳이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두 번째 선택지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반응이 즉각적인 걸 보면?”
핏기가 가신 소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은 이제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