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20화>
“주군, 오셨습니까.”
사월이 적사결을 보며 반겼다.
그리고.
-크릉크릉.
-가르르릉.
이두한백도 다가와 반가움을 표했다.
“그래, 그래. 너희들도 수고가 많구나.”
검은 야행복으로 전신을 두르고 복면까지 쓰자 녀석들은 얼핏 보기에 덩치 큰 사내들로 보였다.
조금 수상해 보이긴 하나 영물로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주군, 한데 싸우셨습니까? 의복이 엉망입니다.”
“아아, 오다가 한바탕했느니라.”
“상대가 누구였기에 지존의 의복이 이렇게 된 것입니까?”
“도제와 권왕.”
적사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사월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팽가와 황보세가의 가주들 말입니까? 역시 지존께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신교의 하늘이십니다.”
“그건 그렇고 놈은 나타났느냐?”
“아직입니다.”
“생각보다 굼뜨구나. 아니지, 그 정도로 정체를 꽁꽁 숨기고 있으니 당연한 건가.”
상관이 비밀이 많으면 아랫것들의 정보는 늦을 수밖에 없다.
사월은 시간도 남았으니 다른 안건을 꺼냈다.
“그리고 주군.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말을 꺼낸 사월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본 교에 대한 것이냐?”
“네, 일월로부터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래, 상황이 어떠하더냐?”
“일단 정황상 무허가 신마결을 익혀 낸 것은 확실하다 합니다. 마도쌍패라 불리는 두 장로를 말 한마디로 무릎 꿇렸다니까요.”
“역시…….”
놈은 과연 무공의 천재였다.
불가와 정반대되는 신교의 마공, 그것도 정점에 위치한 신마결을 정복하다니.
“한데 두 장로는 어쩌다가 놈과 대립하게 된 것이냐?”
“일월이 대장로와 접촉했다 합니다. 주군께서 남기신 암어가 있으셨다지요?”
“암어? 아…… 그거…….”
그런 적이 있긴 했다.
교주에 오른 집권 초기, 당시 전 교주의 아들, 흑사광을 지지하던 놈들이 반역을 일으킬지도 몰라 안배한 것이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일월은 대장로에게 이혼대법에 대해 알려 주었고, 그가 이장로와 호교대법사, 그리고 우문가와 선우가를 포섭했다 합니다. 다만 세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새어 나가 무허 측과 충돌이 일어났고요.”
“그 정도라면 전력의 삼분지 이 정도 되겠군. 한데 아무리 무허라도 나머지 사대 가문만으로 그들을 막긴 힘들었을 텐데?”
“그것이…… 무허가 탈마동을 해방시키고 그들을 직속 수하로 삼았다 합니다.”
“뭐라! 그 아픈 아이들을 이용했다는 것이냐?!”
마공을 익히는 과정에서 심마에 빠진 불쌍한 교도들이었다.
달리 치료법이 없어 격리된 이들이었는데 그들을 건드리다니.
적사결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
“일월의 보고에 따르면 신마결로 그들에게 정신 지배를 걸었다 합니다.”
“이 쳐 죽일 새끼…….”
적사결은 욕지거리가 연신 튀어나왔지만 인내로 삼키고 물었다.
“그래서 구양 장로 일행은 어찌 되었느냐?”
“다행히 묘 선생께서 재가동한 지하 비밀 통로를 통해 신궁을 벗어났다 합니다. 다만 우문 장로, 선우 장로는 무허를 막다 전사했습니다.”
“두 사람이 희생한 것이로구나…… 후우…….”
신교가 자랑하는 팔대장로 중 두 명이나 잃은 것이었다.
그것도 내분이라는 신교 역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한데 탈출 과정에서 뜻밖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도움?”
“그렇습니다. 사대 가문의 추격에 대장로 일행이 위기에 빠지자 마령존 흑사광과 휘하 흑랑대가 나타나 그들을 구했다 합니다.”
“흑사광?! 그가 거기 나타났단 말이냐?”
“예. 지금 함께 움직이고 있다 합니다. 정보의 누설을 염려해 목적지는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
사월의 대답에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해남도. 그들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주군께선 마령존의 소재를 알고 계셨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알았다면 너희들에게 그를 찾아보라고 하지도 않았겠지. 나도 백가 놈에게 방금 전에 들었다. 흑사광, 그가 사무련의 영역 내에 지낼 테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통보했다더구나. 큭큭, 그때도 그랬지만 배포가 큰 양반이야.”
“뵙진 못했으나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대단한 분이시라고…….”
“그래, 그때만 해도 본 좌가 그를 이길 거라 여기는 교도들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전대 교주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지존의 자질이 있었거든…….”
적사결의 얼굴을 보며 사월은 불현듯 위화감이 들었다.
‘아니야. 주군께서 다른 사람에게 지존의 자질이 있다고 칭찬하시니 이상한 기분이 든 것이겠지.’
그녀는 고개를 흔들고는 적사결에게 물었다.
“하면 주군,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해남도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생각이다. 마음 같아서는 신궁으로 잠입해 무허 그놈을 때려눕히고 몸을 바꾸고 싶지만 혼자서는 버거울 것 같으니까.”
몸을 되찾으려면 그놈에게 반선주를 먹여야 한다.
하나 뻔히 반선주가 무엇인지 아는 그놈이 순순히 마실 리 없다.
한데 강제로 먹이기엔 놈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고 주변의 마인들도 가만있을 리 없었다.
결국 구양 장로 일행과 합류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도 흑사광 그가 신교를 아주 떠난 게 아니었다는 것이 희소식이구나. 마음속에는 교도로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던 게야.”
그가 도와준다면 몸을 되찾기는 더욱 수월할 터.
더구나 이후 백천악과의 생사결을 생각하면 뒤를 맡기기에도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
적사결은 든든한 우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 * *
소민은 불현듯 도 노사가 주고 간 옥패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서둘러 방문을 걸어 잠그고 옥패에 공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파앗.
빛무리가 일어나며 한 사람이 갑자기 모습을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소민 외에 아무도 없던 방 안에 도중문이 나타난 것이었다.
비틀.
“으음…….”
“노사,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전이술은 심력이 상당히 고갈되기에 그런 것이니 심려 마십시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테니까요.”
전이술은 지금에 와서는 그 맥이 거의 끊긴 고등 술법이었다.
도중문은 그런 수준 높은 술법을 사용할 정도로 뛰어난 방술사였다.
“한데 노사. 이건 시급을 다투는 일이 있을 때만 사용한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휴우…… 일이 꽤 복잡해진 상황입니다. 해서 급히 왔고요.”
“무슨 일이기에 그렇습니까? 송만도 소식이 없어 답답하던 차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송만은 실종된 상황입니다. 누구 짓인지 하북지부에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요. 그리고 문주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정황상 소청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헉.”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소민은 들이켠 숨을 내뱉지 못할 만큼 충격이었다.
“아가씨, 천천히 숨을 내쉬세요. 진정하셔야 합니다.”
“무…… 문주께서…… 헉…… 헉. 소청도…… 하악…… 하악.”
은소령은 문주이기 전에 어머니나 다름없었고 소청은 동문이라기보다 남매였다.
더구나 실종된 송만은 숙부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소민은 그들을 한꺼번에 잃은 것이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도대체…… 흐윽…… 흐윽.”
“지부에서도 파악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일이 있어 이리 모시러 온 겁니다.”
“더…… 더 큰일이라니요?”
“엽주평이 암살에 실패했습니다.”
“네에?!”
소민은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역모가 실패하다니…….
“알아보니 그는 단비와 몸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한데 직접 손을 쓰지 않고 궁녀들을 꼬드겨 황제를 암살하도록 꾸몄더군요.”
도중문은 소민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엽주평에게 가담한 궁녀는 무려 열여섯.
단비와 정사를 치른 후 궁녀들이 시중을 들던 중 황제의 팔다리를 누르고 목을 조른 것이었다.
한데 힘이 약한 궁녀들이기에 황제는 죽지 않았고, 이에 그녀들은 독을 바른 비녀로 수차례 가격.
하나 그래도 황제는 죽지 않았다.
그녀들은 몰랐지만 이는 익곤궁 정문에서 대기 중이던 천호 진평이 지닌 피독주 때문이었다.
그 탓에 겁을 먹은 궁녀 하나가 이 사실을 알렸고 암살 시도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단비의 몸을 한 엽주평은 황제 암살을 꾀한 역모의 주동자로 금의위에 추포된 상황이었다.
“왜? 왜 직접 황상을 죽이지 않은 건가요? 이런 멍청한!”
“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천하사괴라 불리는 인물에게 대업을 맡긴 저희들이 잘못 생각한 건지도 모르지요.”
왜 남자가 남자 밑에 깔리면서까지 살행을 미루고 궁녀들에게 맡긴 것일까.
도중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자칫 엽주평이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이번 일을 고하기라도 한다면 저희도 위험합니다.”
“네…… 가죠. 너무 엄청난 일이 연달아 벌어져서 저도 정신이 없군요. 숨 좀 돌린 후에 대처해야겠어요.”
그들은 그 길로 유왕부를 나섰다.
도중문이 따로 마련해 놓은 안가로 피신해 다음 행보를 정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안가에 다다랐을 때였다.
“집 좋네. 하여간 뒤가 구린 놈들이 꼭 이런 곳을 준비해 놓는단 말이야.”
담장 위에서 뛰어내린 적사결은 장원을 둘러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네놈은 누구냐?”
“누구긴. 네놈들 모가지 따러 온 저승사자지.”
“이제 보니 송만이 실종된 건 네놈 짓이었구나…….”
“송만? 아 그 돼지 새끼? 본 좌가 직접 손 좀 봐줬지. 조만간 만나게 해 줄 테니 너무 그리워하지 마. 흐흐.”
적사결은 사왕을 뽑으며 이죽거렸다.
“사월아, 옆의 어린 계집은 네가 맡거라.”
“네, 주군.”
사아악.
사월이 숨죽인 소리로 빠르게 짓쳐 들었다.
그녀의 목표는 소민이었다.
동시에 적사결도 일도를 휘두르며 수십 개의 도기를 도중문에게 발출했다.
한데 그때였다.
파아아앗.
정원 바닥에서 알 수 없는 문자가 떠오르며 빛을 뿜었다.
그러고는 주변 풍경이 확 변해 버렸다.
‘진법? 아니다. 아까의 진언을 보면 술법이야. 이건 술진이다.’
보통 기문진법이라 부르는 진은 주변의 기운을 비틀어 환영과 같은 정신적인 공격을 주로 가한다.
하나 정신적인 공격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진짜라고 느끼면 신체가 그에 반응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 요체였다.
즉,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고도 대상자가 그것을 뜨거운 물이라 믿으면 화상을 입는 구조였다.
하나 술진은 술사의 술력을 바탕으로 구현된 진.
때문에 기문진처럼 간접적인 효과는 물론 얼마든지 공격적이고 물리적인 타격을 직접 가할 수 있었다.
[여긴 노부가 직접 준비한 안가다. 준비된 술사에게 덤비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알려 주마.]
허공에서 마치 전음처럼 말소리가 떠돌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허허벌판이었고 사월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준비된 술사라…… 세상에 술사가 씨가 말랐는데 어디서 너 같은 놈이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좋은 경험이 되겠구나. 어디 마음껏 재주를 부려 보거라.”
적사결은 오만한 표정으로 기감을 넓혔다.
하나 도중문의 위치는 잡히지 않았다.
‘술진의 기운이 기감을 흩트리는구나…… 잡히기만 해 봐라. 아주 모가지를 뽑아 버릴 테다.’
사월이 어찌 된 것인지 모르기에 최대한 빨리 도중문을 처단해야 했다.
하나 도무지 놈이 어디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꿈틀. 꿈틀. 투둑. 툭.
황야에서 수천 구에 이르는 흙 인형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 수는 눈앞의 풍경을 가득 메울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이것 봐라. 저거 다 진짜 실체를 가진 것들이잖아.’
묘 선생과의 인연 덕분에 진법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적사결이었다.
적사결은 흙 인형의 진체를 꿰뚫어 보았고 저 많은 수가 실제 흙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월아,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겠구나. 잘 버틸 것이라 믿겠다.”
* * *
“여긴 어디지?”
사월은 사방이 안개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다.
시야가 미치는 범위는 약 일 장가량.
이대로는 이곳을 빠져나가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
‘기감도 말을 안 듣고…… 주군도 어디 계신지 알 길이 없다…….’
하나 사월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침착하지 않으면 초조함에 사로잡혀 적이 원하는 대로 놀아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군께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시다. 나만 잘하면 돼.’
사월이 집중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때였다.
안개가 갈라지며 모습을 드러낸 자는 소민이었다.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 배짱이 좋은 건지 간이 부은 건지 모르겠군.”
사월이 적월검을 고쳐 잡으며 이죽거렸다.
한데 소민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발산되었고 그 기운에 닿자 사월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딱 보고 알았어. 당신 마인이지?”
소민의 등 뒤에 검은 기운이 혀를 날름거렸다.
그것은 마기의 천적, 천령마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