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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17화 (117/206)

<기적의 이혼대법 117화>

팽도극과 황보겸은 잠시 침묵했다.

잠시 후, 두 사람 중 입을 연 자는 팽도극이었다.

“실은 무림의 미래가 염려되어 장군을 만나 뵙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황성의 문턱만을 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실상은 팽천기의 주장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한 결과 군부와 손을 잡는 것이 오대세가에 득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무림의 미래라니? 알기 쉽게 설명해 주겠소?”

“작금의 무림은 명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관무불가침이라는 태조의 황명이 있다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러한 역할이 있기에 무림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지요.”

황군도 아니면서 수천 수만의 무력을 지닌 무림.

이를 용인하는 것은 군부가 안으로는 반란, 밖으로는 북로남왜를 상대하는 데도 벅차기 때문이었다.

“한데 북로남왜 중 왜구가 평정된 마당에 북의 오랑캐마저 제압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무림문파는 많은 견제와 압박을 받게 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곽주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부에서도 그런 가정을 수차례 해 보았었다.

무림이란 곳은 명국 내부의 칼 중 가장 날카롭고 위험했으니까.

더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관무불가침이란 조약이 힘을 잃어 가고 있으니 그럴 가능성은 다분했다.

“장군께서도 아시겠지만 저희 오대세가는 무림에서 가장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입니다. 해서 상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요. 저희들과 손을 잡는다면 군부에도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진 않을 것입니다.”

팽도극은 그 말을 끝으로 곽주명의 눈을 직시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다가올 미래.

황실이 무림문파를 해산시키고 그 힘을 흡수하는 그때 오대세가는 황실의 첨병이 되겠다는 의지가 전해진 것이다.

“귀공의 의견은 잘 들었소. 나로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군.”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장군. 하나 한 가지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저희가 무공을 알려 드린다 하여 바로 효과를 보진 못할 것입니다. 무공이란 기를 느낄 수 있는 재능이 없다면 익힐 수 없으니까요. 모든 병사들에게 가르칠 수 없으니 이는 인지하고 계셔야 합니다.”

“우리도 이미 겪어 보았소. 같은 심법이라도 사람마다 축기가 가능한 자가 있는가 하면 효과가 없는 자도 있더군. 결과가 천차만별이라 내공심법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었소이다.”

“예, 자질에 대한 문제는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선별하는 방법이 체계적일 뿐이지요.”

“선별 방법이라니?”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나이 제한이나 골격, 체격, 육감 등 조건이 꽤 까다롭지요.”

“흐음, 무공의 역사가 깊다 하더니 과연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겠군.”

팽도극은 옅은 미소를 띤 채 용건을 넌지시 던졌다.

“해서 그런데 황성 내부를 좀 돌아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황군 하나하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직접 말이오?”

“하하하, 이런 건 연륜이 깊을수록 정확한 법이지요.”

“알겠소. 내 사람을 붙여 줄 테니 뜻대로 하시오.”

곽주명은 흔쾌히 팽도극의 요청을 허락했다.

이제 황성의 문턱을 넘어 남궁가주를 해한 흉수와 사무련의 새끼 봉황을 잡을 차례였다.

*   *   *

“한데 우리끼리 오대세가를 대표해 이런 자리를 가져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

황보겸이 곽주명의 사가를 나오며 넌지시 말했다.

회합을 통해 다섯 가주의 의견을 모은 것이 아닌 두 사람의 독단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사람 참. 자네나 나 둘 중에 한 명이 오대세가의 수장이 될 터인데 뭐가 걱정인가? 남궁가주야 회복 불능이고 모용세가는 요녕성이라는 동북면 촌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논외고 말이야. 제갈세가는 가장 세가 약하니 말할 가치고 없고. 걱정도 팔자구먼.”

팽도극이 황보겸의 등을 두드리며 껄껄 웃었다.

“그래도 이번 일이 끝나면 회합을 가져 다른 가문에도 알리도록 하세. 사소한 일로도 관계가 틀어질 수 있으니 말이야.”

“알았네,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네.”

황보겸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어서 가세. 꼿꼿하던 머리를 하도 조아렸더니 골이 다 아프군. 가서 우리 윤아나 봐야겠네.”

“손녀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이거 천기 놈도 빨리 장가를 보내든지 해야지 원.”

*   *   *

“떠나겠다고?”

주녹정은 자신에게 알현을 요청한 적사결을 보며 되물었다.

“나 같은 야인이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순 없지 않소?”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으니 그렇지.”

그녀는 다소 어두운 표정이었다.

“흐흐, 언제는 죽일 듯이 달려들더니 이젠 간다니 아쉬운 것이오?”

“나는 인재를 아껴. 그대 같은 사람을 또 어디서 얻겠어? 당연히 아쉽지.”

그의 도움만 있다면 당대의 여황제 측천무후처럼 자신이 옥좌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려 준 비술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지고 있었으니까.

만일 그 비술로 아바마마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황위를 양도받을 수 있을 터.

명국 최초의 여황제도 꿈은 아니었다.

“하긴 나를 만난 여인들은 모두 그랬지.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소.”

“뭐…… 뭐라고?”

주녹정이 어이없어하자 적사결은 대뜸 물었다.

“그나저나 성취는 좀 어떻소? 떠나기 전에 확인할 겸 온 것이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시오.”

공주에게 알려 준 것은 천축유가신공이었다.

물론 그녀의 몸 상태에 맞게끔 독자적으로 변형시킨 것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전수는 불가능했다.

다만 바뀐 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니 확인이 필요했다.

“아주 좋아. 최근 들어 몸도 가볍고 피부도 탱탱해지고 말이야. 다들 내가 몇 년은 어려진 것 같다고 한다니까. 근데 이거 지금 익히는 무공과 병행해도 문제없을까?”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는 모양이다.

여러 가지 무공을 잡다하게 익히면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일종의 심공이나 마찬가지니 문제는 없소. 오히려 움직임이 매끄러워지고 군더더기가 없어지니 무위가 더 상승하겠지. 그것 말고 뭐 이상한 기분이 들거나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하는 증상 같은 건 없었소?”

“그런 건 없었어. 답답한 궁 안에서 수련만 했는데도 오히려 심신이 건강해진 것 같다니까.”

역시 난 천재로구나.

생경한 천축의 무학도 완벽하게 변형시키다니.

“하루도 빠짐없이 정진하시오. 하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수 있을 것이니.”

“뭐? 똥칠?”

“오래 산다는 얘기요.”

적사결은 손을 휘휘 젓고는 뒤돌아섰다.

“이봐. 소림을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거지?”

“흐음…….”

뭐라 해야 하나.

정체가 무허대사라는 거짓말을 해 놓긴 했는데.

놈은 내 손에 뒈질 텐데…….

“노납이 해탈해서 열반에 들지 않았다면?”

에라, 모르겠다.

*   *   *

영안궁을 나선 적사결은 황궁을 가로지르며 걸었다.

앞으로 다시 보지 못할 곳이기에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눈에 담았다.

‘확실히 일국의 황제가 대단하긴 대단해.’

규모는 물론, 장인이 한 땀 한 땀 새겨 놓은 조각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이면 어김없이 존재했다.

밟고 다니는 바닥조차 그러하니 아직 구경거리는 넘치도록 있었다.

“하앗! 하앗!”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은 곳은 연무장이었다.

그곳에는 황성수비를 맡은 군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근무시간에는 번을 서고 대기시간에는 훈련을 하고. 참 너네들도 빡세게 사는구나.’

어느 곳이 안 그렇겠냐마는 황성수비대는 필요 이상으로 긴장감을 달고 살았다.

황제의 안위와 직결되는 부대이기에 그런 것이었다.

‘저러면 정작 일이 터졌을 때 굼뜰 텐데. 쯧쯧. 비효율적이야.’

적사결의 눈에는 빈틈투성이에 마치 꼬마아이들이 장난하는 듯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어서 빨리 신교로 돌아가 패기 넘치고 위세 등등한 교도들의 연무를 보고 싶을 정도로 비교되었다.

그때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두 중년인이 연무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 또한 연무장을 사이에 두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보게, 권왕.”

“그래, 보고 있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팽도극은 뒤에 선 사내에게 물었다.

“저기 젊은 놈이 그 흉수가 아니더냐?”

“예. 맞습니다. 분명 그놈입니다.”

철갑기린대 소속이자 이지산 장군가의 자제인 이숭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남궁건과 적사결의 생사결 당시 얼굴을 보았기에 두 가주와 함께 입성한 것이었다.

“클클, 생각보다 빨리 찾았군.”

“그러게나 말일세. 영안궁까지 갈 필요도 없을뿐더러 연무장까지 있으니 제격이 아닌가.”

팽도극은 자신들을 안내하던 병사에게 다가가 모종의 부탁을 했다.

병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무 중이던 황성수비대를 물려 연무장을 비워 주었다.

“도제, 자네 뭐라고 한 건가?”

“흐흐흐, 별거 아닐세. 무공 시연을 좀 하고 싶으니 자리를 마련해 달라 했을 뿐이지.”

팽도극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연무장을 가로질러 갔다.

“사람 참. 나이가 들어도 거침없구먼그래. 그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거지만. 하하하.”

황보겸은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이야. 네가 남궁건 그 친구를 암습했다는 흉수더냐?”

일 장 앞까지 다가온 팽도극의 음성은 마치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낮은 어조임에도 내력이 실리자 위압감이 있었다.

“남궁건이 친구라? 당신은 누구지? 오대세가의 일원이라도 되나?”

“클클. 어린놈이 공경이란 단어를 모르는 모양이구나.”

“나이도 얼마 안 처먹은 것 같은데 공경 소리 하고 자빠졌네.”

“예의가 없는 걸 보니 사파 새끼가 맞군. 역시 소림의 속가제자는 아니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흐흐흐.”

“다행?”

“폐인으로 만들어도 뒤탈이 없으니 다행이지. 내 너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마, 아해야.”

적사결은 팽도극의 얼굴을 보더니 킥킥 웃었다.

“혼자서는 안 되니까 둘이서 온 주제에 혓바닥은 살아 있구나. 큭큭큭.”

그 말에 두 가주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직접 보니 이런 젊은 놈에게 남궁건이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는데 정곡을 찔리자 수치심이 들었던 것이었다.

“놈! 누가 둘이라더냐! 나 혼자 네놈을 단죄할 것이다!”

“헹, 정곡을 찔려서 발끈하긴.”

“자신 있으면 나와라, 본 가주가 진짜 하늘을 가르쳐 주마!”

팽도극은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가며 외쳤다.

그러고는 황보겸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자네는 나서지 말게. 저런 하룻강아지 같은 놈은 혼자서도 충분하네. 검제가 몸이 안 좋았던 게지. 저런 애송이에게 당하다니 말이야.”

“…….”

황보겸은 팽도극의 성정을 알기에 한발 물러나 주었다.

그사이 적사결도 연무장에 올라 팽도극을 마주 보았다.

“흐음…… 하는 짓을 보아하니 오대세가의 가주인 건 맞는 것 같은데. 단순무식하고 폭급한 성정인 걸 보면 팽가인가? 단천도제 팽도극?”

“다…… 단순무식?! 폭급?!”

“맞네. 대범한 척, 생각이 깊은 척 혼자 다 하지만 조금만 찔러 주면 폭발하는 성미. 딱인데 말이야.”

“……이익!”

“그럼 그쪽은 철탑권왕 황보겸인가?”

적사결이 황보겸을 가리키며 물었다.

“허허, 맞느니라. 나에 대해서는 어찌 알고 있느냐?”

“팽도극 따까리.”

“뭐…… 뭐라?”

“둘이 성정이 비슷해 자주 어울리는데 늘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는 쪽이 당신이라던데. 함께하는 일도 주도는 주로 팽도극 저자가 하고 말이야. 이번에도 당신은 따라온 거지?”

“…….”

“맞나 보네.”

적사결이 이죽거리자 황보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무시무시한 기세에 머리칼이 공중에 넘실거렸다.

“그래, 둘 다 한꺼번에 덤벼. 둘이서 한 묶음이잖아.”

그 말에 두 절대 고수가 지축을 박찼다.

적사결은 순식간에 금단을 생성해 삼켰다.

“드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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