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16화>
백류혼은 소매에서 쪽지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교주를 대신해 신교를 지탱할 수 있는 거목의 소재입니다. 후계가 꼭 젊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뭐라? 혹시…….”
“예. 마령존 흑사광의 위치입니다. 그분이라면 신교를 짊어지는 데 충분하지 않을까요?”
“네가 어찌 마령존의 위치를 알고 있지? 흑야귀령대라도 그의 위치를 알아내진 못할 텐데.”
본 교의 정보대인 흑영단은 물론 적월의 정보망도 벗어난 흑랑대와 마령존이었다.
하니 아무리 사무련이 하오문과 정보를 연계한다지만 그들을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알아낼 필요가 없으니까요.”
“알아낼 필요가 없다? 하면 그가 사무련에 몸을 의탁하기라도 했다는 것이냐.”
“의탁까진 아니고 저희들에게 통보했었거든요. 강남에서 지낼 것이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요. 대단한 배짱이었죠.”
장강 이남. 강남으로 부르는 방대한 영역은 사무련의 관할지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그 속에서 살겠다고 말 한마디로 거취를 논하다니.
적사결은 실소를 내보이며 웃었다.
“큭큭. 여전히 배포가 남다른 양반이군. 그래서 어디 있지?”
“해남도라고 중화의 최남단입니다. 거기서 낚시도 하고 쉬엄쉬엄 왜구도 잡고 지낸다더군요.”
신강이 중원을 기준으로 서북의 변방이라면 해남은 서남의 변방이었다.
어찌 보면 섬이기에 신강보다 더 오지라 할 수도 있었다.
“멀리도 갔군. 평생 못 본 바다, 원 없이 봤겠어.”
신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형은 사막과 황야.
그리고 천마신궁이 위치한 십만대산은 십만 개의 봉우리가 둘러싼 첩첩산중이었다.
중화에서 가장 바다를 보기 힘든 지역이라 할 수 있었다.
“해서 어떻습니까, 제 생각이?”
“본 좌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동안 그를 찾기가 힘들어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네 덕분에 문제가 해결된 것 같구나.”
“그럼 승낙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마령존을 설득하는 것 정도는 교주께서 하실 수 있으시죠?”
“본 좌를 따라 하는 것이냐? 건방진 애송아.”
“하하, 무림말학이 하늘같은 선배를 보고 배우는 거죠.”
“말학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놈이 말학이면 무림인 대부분은 칼을 물고 죽어야지.”
적사결은 백류혼의 손에서 쪽지를 낚아채 품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삼월을 보며 명했다.
“너는 이 녀석 옆에서 엽주평의 생사를 확인하고 보고하거라. 일이 끝나면 진평에게서 내단도 회수해 오고.”
“예, 주군.”
적사결은 집무실을 나서기 전 말했다.
“일 년 후, 그때 그곳에서 보자고 전해라. 그리 말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 * *
쉬쉬쉬쉭.
허공을 수놓는 쾌검은 호쾌하기 그지없었다.
중검에 분류되는 장군검이기에 그 속도와 움직임이 더 빛이 나는 듯했다.
“그만 발발거리고 이리 와 보거라.”
연무장에 나타난 적사결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진무백은 절도 있게 납검한 후 그에게 다가갔다.
“오셨습니까.”
포권과 함께 극진한 예우로 대하는 진무백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역시 반야심경이 효과가 좋아. 심신을 다스리는 데는 그만한 게 없나 봐. 그치?”
“그…… 렇죠.”
진무백은 땀 한 방울이 턱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반야심경이란 말만 들었는데 몸이 절로 반응한 것이다.
“그래, 몸은 어떠하냐? 효과가 있느냐?”
“예. 확실히 이전보다 기의 수발이 자연스럽고 초식의 흐름도 막힘이 없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맞아 죽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될지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흐흐, 괜히 사랑의 매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한 대 한 대에 추궁과혈의 묘가 녹아 있지. 반강제로 임독양맥을 타통시켰으니 아프긴 하나 성공하면 그만큼 쉽게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것이야.”
임맥과 독맥을 연결해 운기의 대주천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
이를 다른 말로 생사현관을 타통한다 일컫는다.
생사를 넘나들어야 할 정도로 목숨을 걸어야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뭐 맞다가 뒈졌으면 그 정도가 한계라는 거지만.’
반강제라도 그만한 토대가 쌓여 있으니 열 수 있는 것.
진무백이 최연소 위사로 금의위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한 노력과 고련의 시간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녀석은 자신의 매질을 견뎌 낸 것이었다.
“한데 적운 님.”
“뭐냐?”
“임독양맥이 타통되고 대주천이 가능하면 강기성강의 경지에 오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흐흐, 너도 무인이긴 한가 보구나. 강기에 욕심이 나느냐?”
“욕심납니다. 안 날 수가 없지요.”
적사결은 그 대답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몸은 준비가 되어 있지. 하나 네놈처럼 준비가 되었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해 검기상인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는 무인은 부지기수로 많다. 특히 단순무식한 놈들이 그런 경우가 많지. 절정의 경지는 머리가 나쁘면 오를 수 없거든.”
“끄응…… 제가 머리가 나쁜 편인가요?”
어디 가면 뛰어나다, 잘났다, 천재다, 라는 소리만 들었던 자신이었다.
한데 눈앞의 괴물딱지 같은 이 사람은 자신을 언제나 둔재 취급하고 있었다.
“딱 잘라 말하면 평범하지. 그냥저냥 봐줄 만한 정도니까. 애초에 바보천치였으면 본 좌가 참교육을 내리지도 않았겠지?”
“아…… 예…….”
진무백은 처음으로 들어 보는 평범이란 단어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너 조루냐?”
“예? 아…… 아닌데요.”
“그럼 사내새끼가 그딴 걸로 왜 시무룩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너는 평범하니까 한 오십 줄 가까이 되면 강기성강이 가능할 게야. 그 정도면 어디 가서 멍청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테니 평범한 거지.”
“…….”
그래도 죽기 전에 가능은 한 건가.
진무백은 무림에서도 일문의 장로급 정도는 되어야 강기성강이 가능하다 알고 있기에 그리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거 봐, 안도하는 거. 이래서 네놈이 범재라는 것이다. 본 좌 같은 진짜 천재들은 안도하기보다 그 세월을 어찌 뛰어넘을지 고민하거든. 남들보다 빨리 가고 멀리 가고 오래가는 게 진정한 재능인 것이야.”
고개가 절로 끄덕거릴 정도의 설교였다.
진무백은 자신이 너무 안이했음을 인정했다.
“요는 사고방식이다. 그걸 바꾸고 고정관념을 깨트려야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
“사고방식…… 고정관념…….”
“그 첫걸음이 바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자신을 알다니요?”
“사람은 의외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거든. 너도 네 맷집과 인내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본 좌의 매질을 견딘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건…… 그렇죠.”
“심, 기, 체. 그것은 수치화되어 있지 않기에 끊임없는 참오와 실전을 통해 한계에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에 대해 개미 코딱지만큼이라도 알게 되는 것이야.”
해서 신교의 마인들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을 즐긴다.
자신의 현 위치를 자각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데 생사결만큼 좋은 것이 없다 배웠기 때문이었다.
“저기…… 적운 님. 오늘은 어째 말씀이 많으신 것이 꼭 떠날 사람 같으시네요. 항상 몽둥이를 먼저 휘두르셨으면서…….”
“흐흐, 네놈이 눈치는 제법 빠르단 말이야. 그래, 본 좌는 곧 떠날 예정이다. 암살 음모에 대한 것은 사파 놈들에게 일임했으니 녀석들과 공조하면 될 것이야. 그래 봬도 사무련의 최정예니까.”
“…….”
진무백은 아쉬운 눈빛으로 뭐라 입을 열지 못했다.
임독양맥의 타통은 물론 승룡비천검의 부족한 부분을 짚어 주고 보완해 준 적사결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이 얻은 것은 지난 몇 십 년의 수련에 맞먹을 정도였다.
한데 벌써 그 가르침이 끝난 것이다.
“아직 몇 군데 손볼 부분이 있긴 하나 지금의 너라면 부족한 부분을 다듬을 능력이 충분하니 너무 의기소침해하지 마라. 누가 보면 얼마나 때렸기에 애 기가 다 죽었냐고 뭐라 하겠구나.”
“너무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배우면 벽을 넘을 것 같아서요.”
“무릎 정도밖에 안 되는 장애물 가지고 끙끙대긴. 쯧쯧.”
적사결은 핀잔을 주고는 약간의 충고를 곁들였다.
“정공과 사공. 그것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 보거라. 네가 생각하기에 천지연원공으로 엮인 두 무공이 이도저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천지연원공은 단순한 잡술이 아니다. 본 좌조차 감탄한 무리를 품고 있으니 대성한다면 네가 보게 될 무의 경지는 누구보다 넓을지도 모르느니라.”
“명심하겠습니다.”
진무백은 정중하게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변태 놈도 없으니 최연소 황궁최고수 자리도 한번 노려 봐. 본 좌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지?”
“하…… 하하. 네.”
진무백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기본이라니…….
* * *
“장군께서 안으로 드시라 하십니다.”
기별을 하러 갔던 시비가 접객실로 돌아와 말했다.
팽도극과 황보겸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어서들 오시오. 곽주명이라 하오.”
집무실로 들어서자 칠 척에 달하는 거한이 그들을 환대했다.
그가 바로 군부의 정점이자 대장군의 지위를 지닌 곽주명이었다.
“팽도극이라 합니다.”
“황보겸입니다.”
“반갑소. 내 십대고수의 위명은 익히 들었소. 이리들 앉으시구려.”
팽도극과 황보겸은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대장군이라는 자가 초면임에도 자신들을 한껏 추켜세우니 어색한 것이었다.
황실을 지탱하는 네 개의 세력 중 한 곳의 수장인 것치고는 저자세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리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장군.”
“아니오. 나 역시 그대들을 만나고 싶었는데 이제야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애석할 따름이오. 듣자 하니 팽가는 황도에 장원이 있다던데 앞으로는 종종 들러 주시오.”
“그리하지요. 허허.”
세 중년인은 차를 마시며 간단한 담소를 나누었고 이내 곽주명의 입에서 제법 무거운 주제가 나왔다.
“요즘 군부의 자제들이 귀하의 자제와 철갑기린대라는 모임을 만들어 다닌다는 걸 들었소. 오늘의 만남도 이지산 장군의 자제가 주선했고 말이오. 혹시 귀공들께서는 군부와 연을 맺으려 하시는 게요?”
“장군의 의향은 어떠십니까?”
“나야 대찬성이오. 무공이라는 것이 얼마나 뛰어난 무력을 주는지 금의위와 동창을 통해 경험한 바 있으니 말이오. 군부에서는 항상 무공을 도입하고자 했었소.”
하나 두 집단에서는 군부의 힘이 강해질 것을 우려한 바 있었다.
그 때문에 군부는 아직 무공을 도입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물론 자체적으로 무림에 떠도는 삼류 무공들을 수집하고 멸문한 문파들의 비전을 사들이며 연구를 꾀했다.
하나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무공을 도입하면 황상께서 강해진 군부의 힘을 견제하실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지금의 황상은 정사에 관심이 없으시오. 오히려 지금은 엄숭 그 씹어 먹을 놈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군부의 힘을 키울 필요가 있소.”
“하면 저희들이 미력하나마 장군의 손을 잡겠습니다. 여기 황보가는 권장술에 조예가 깊고 저희 팽가는 병기술에 재주가 있으니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고맙구려. 모든 무림문파가 금의위와 동창의 눈치를 보느라 군부에는 등을 돌렸는데 그대들이 진정한 애국자들이오.”
“아닙니다. 이제야 힘이 되어 드려 송구할 따름입니다.”
곽주명은 그 말에 미소를 지우고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말이 나와서 내 묻겠소. 어찌 이제 와 군부를 찾은 것이오? 혹 우리에게 청탁할 것이 있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