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14화>
“뭐지 그 웃음은?”
갈 거냐고 물었을 뿐인데 야릇한 미소라니.
백류혼은 웃음의 의미를 짐작하지 못해 물었다.
“여자에게 갈 거냐고 묻는 건 가지 말라는 의미잖아요.”
매양옥의 대답에 백류혼은 무심하게 받아쳤다.
“아닌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본 건데.”
“에이, 거짓말. 공자님 마음 다 알아요.”
“달라붙지 마. 진짜라니까.”
백류혼은 팔짱을 끼는 그녀를 밀쳐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이서 그녀의 체취를 맡으니 사고 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흠흠, 홍령에게 항주까지 데려다주라고 할 테니까 그리 알아.”
“피…… 무슨 남자가 나처럼 예쁜 여인을 보고도 꿈쩍도 안 해요?”
“꿈쩍도 안 하긴. 이번 일이 끝나면 당신 찾아가서 기둥서방 될 건데.”
“아…… 그러세…… 네? 뭐라고요?”
“왜 싫어? 이래 봬도 내가 은인 아닌가?”
“아니, 좋아요.”
매양옥이 화색을 띤 얼굴로 답했다.
“몸 파는 기녀도 아니면서 밝히긴.”
“청기도 기녀거든요. 한데 반대로 내가 사무련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사무련의 안방마님이 되고 싶은 거야? 그럼 잘못 짚었는데. 련주는 수연이에게 넘길 거고 난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련을 떠날 거거든.”
“진짜요?”
“그래. 나도 금개 님처럼 마음 가는 대로 살 거야.”
“헐…… 천하에 그 자리를 걷어차는 사람은 공자님뿐일 거예요.”
“멋지지?”
백류혼의 물음에 그녀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실망이 이만저만 아닌가 보네?”
“까놓고 말하면 그렇긴 하죠. 한데 어쩌겠어요? 정승도 본인이 싫으면 할 수 없다는데. 다행히 얼굴만 파먹고 살아도 될 만큼 멋있긴 하네요.”
매양옥은 강동제일미로 불린 항주제일기녀였다.
수많은 화화공자와 풍류남아를 만나 보았지만 백류혼 만큼 근사한 외모는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다른 계산도 있었다.
‘이 사람은 낭중지추야. 가만있어도 주머니를 뚫고 나갈 송곳인데 주변에서 가만있을 리 없지.’
천하제일 후기지수인 옥기린 팽천기를 일대일로 압도한 백류혼이었다.
매양옥은 어떤 식으로든 그가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흐흐흐, 눈빛을 보아하니 평생 기둥서방으로 놀고먹어도 미안할 일 없겠군.’
어떻게든 자신이 지닌 배경의 득을 보려는 여자였다.
백류혼 역시 철저히 빈대 붙을 생각이었으니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될 듯했다.
‘항주야. 기다려라. 오빠가 일 마치면 금방 갈게.’
향락의 도시, 항주.
그곳은 백류혼이 한참 남은 여생을 보내기에 적격인 곳이었다.
* * *
적사결은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목록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것은 건청궁을 드나드는 자들의 이름이었다.
“주군. 이들 모두는 궁 외부를 드나들 수 있는 자들입니다. 누구 하나 솎아 낼 수는 없겠습니다.”
사월이 동일한 목록을 손에서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특정하기가 어렵구나. 신강 같았으면 모조리 잡아 놓고 조사했을 텐데 그것도 어렵고 말이다.”
“어찌할까요? 그래도 하나씩 잡아 족칠까요?”
“아니다. 다들 황제의 측근들이라 그랬다간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적사결이 얼굴을 굳히고 고심하자 삼월이 자신의 의견을 간언했다.
“교주님. 속하의 판단으로는 여기서 가장 의심스러운 자는 동창의 제독인 풍보 대태감이라 생각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를 제외하면 남은 자들은 모두 귀비들입니다. 만일 귀비들 중에 엽주평이 있다면 이미 살수를 뻗치지 않았겠습니까?”
황제와 동침할 수 있는 여인이 그녀들이었다.
호위 무사인 천호 진평의 감시도 없이 단둘이 살을 맞대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없는 여인이 되었다지만 엽주평의 실력이라면 머리에 꽂은 비녀로 단번에 죽일 수 있었다.
“흐음…… 일리가 있구나. 혹시 엽주평이 북경에 입성한 후 귀비들이 황상의 시중을 들었는지 확인해 보았느냐?”
“물론입니다. 모두 동침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하면 동창제독이 놈일 가능성이 더 높겠군.”
모종의 이유로 살행을 늦췄더라도 황제 밑에서 가랑이를 벌리면서까지 늦출 이유가 있을까?
여인의 몸을 지녔다지만 남자가 남자에게 당하는 것이니 정상적인 남자라면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가만? 정상적인?’
놈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 중에서도 가장 괴짜라는 천하사괴.
적사결은 불현듯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 그것은 곧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구나 놈은 천하사괴 중에서 유일하게 ‘협’이라는 별호를 얻은 자가 아닌가.
그나마 사괴 중 제정신이 박힌 놈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풍보라는 놈은 본좌가 따로 만나 보마. 너희들은 황실의 움직임을 잘 살피고 신교의 상황도 어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있거라.”
“주군. 그는 동창의 수장입니다. 황녀의 주선이 있더라도 만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금의위나 동창 같은 특수 임무를 띤 집단의 수장은 여간해서는 만날 수 없었다.
실례로 천룡심법을 제공하고 황제 암살 음모까지 제보했는데도 불구하고 금의위 지휘사는 코빼기도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걱정 말거라, 내 방법이 있으니.”
적사결은 궁 바깥에 숨겨 놓은 절륜창을 떠올리고 있었다.
* * *
“아아아아악!”
“어흐흐흑! 끄으으…….”
“꺄아아악!”
십여 명의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들의 하초에는 쇠붙이가 꽂혀 있었고 그것을 따라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그리고 또 다른 궁녀들은 그릇을 대고 그 피를 받아 내고 있었다.
“아…… 아파. 아파. 그만. 그만…… 으윽.”
“흑, 흑. 조금만 참아. 아직 양을 못 채웠단 말이야.”
피 그릇을 쥐고 있는 궁녀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월경액 채취.
월경을 하는 궁녀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이런 식으로 자궁에 상처를 입혀 억지로 피를 받아 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황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짓인지 모르겠어. 흐으으윽.”
작금의 궁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참혹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월경액은 황제가 직접 만든다는 불로장생의 단약을 위한 재료였다.
그것을 위해 궁녀들은 돌아가며 월경액을 채취해야 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만들어진 단약의 성능이 좋지 않아 귀비들과의 동침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그 짜증을 궁녀들에게 풀었다.
모진 학대와 변태 성행위부터 시작해, 죽기 직전까지 몽둥이찜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참아. 어제 숙비마마 쪽 애들 중에는 맞아서 반신불수가 된 애도 있어.”
“금영아…… 난 이제 더 이상 이렇게 못 살 거 같아. 미쳐 버릴 것 같단 말이야…… 흑흑.”
그녀의 오열에 금영이라 불린 궁녀가 눈가를 잘게 떨었다.
“취련아…… 나중에 잠깐 나 좀 볼래?”
“응? 왜…… 왜?”
설마 이런 가벼운 불만을 고변하려는 걸까.
형취련은 흠칫하며 두려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궁녀들은 서로를 믿기 힘들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황이었다.
“단비마마께서 좋은 금창약을 주셨거든. 너도 나눠 주려고.”
“저…… 정말이야?”
강제적인 월경액 채취는 자궁에 심각한 상처와 끔찍한 격통을 안겼다.
궁녀들 중에는 며칠을 앓아눕고 복통이 고질병으로 악화된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귀비가 내린 금창약이라면 고통을 완화하고 후유증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럼.”
양금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그녀의 표정에 답했다.
그날 밤.
형취련은 은밀히 양금영의 처소를 찾았다.
한데 그곳에는 양금영 혼자만이 아닌 단비가 함께 있었다.
“마…… 마마.”
형취련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
한낱 궁녀의 처소에서 단비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그리 놀랄 것 없느니라. 내 너를 한번 보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 말이다.”
“저…… 저를요?”
설마 아침의 불만을 고한 건가.
형취련이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죽여 주십시오, 마마. 감히 폐하께 불만을 가지고 지엄한 황실을 욕보였습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니 어서 일어나거라.”
“예…… 예?”
단비는 형취련의 두 손을 잡고 일으켰다.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내 금영이에게 들었느니라. 네가 특히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말이다.”
“아…… 아닙니다…….”
하나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맞잡은 손을 툭툭 두드린 후 몸을 돌렸다.
“금영아. 이 아이도 믿을 수 있겠구나. 차후 일은 네가 잘 설명을 해 주거라.”
“예, 마마.”
단비가 금영의 처소를 떠나자 형취련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금영아, 이게 다 무슨 말이야? 믿을 수 있다니? 설명이라니?”
“일단 앉아.”
그녀가 불안한 얼굴로 앉자 양금영은 얘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길었지만 핵심은 간단했고 형취련의 표정은 갈수록 사색이 되어 갔다.
“저…… 정말 단비마마께서 그 일을 도와주신다는 거야?”
“그래. 마마께서도 궁녀들이 이런 일을 겪는 걸 더 두고 보지 못하겠다고 하셨어.”
“그…… 그래도 폐하를…… 이건 여…… 역모잖아.”
“난 널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너…… 아까 자진할 생각이었지?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마당에 역모면 어때?”
형취련뿐만이 아니었다.
황궁에는 학대를 이기지 못한 궁녀들이 수도 없이 자살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죽은 궁녀가 몇 명인지 확인하는 게 일상일 정도였다.
“함께하자. 폐하의 총애를 받는 단비께서 도와주시는데 실패할 리 없잖아.”
양금영의 설득에 형취련은 잠시 고민하더니 눈에 기광이 스쳤다.
“그래, 그러자. 어차피 부모형제도 없는데 역모죄가 나와 무슨 상관이겠어?”
“고마워, 취련아. 함께해 줘서.”
“아니야, 나야말로 너와 함께할 기회를 줘서 고마워. 한데 몇 명이나 모은 거야?”
“너까지 일곱 명. 아직 더 필요해. 폐하가 늙었다지만 체격이 크고 힘이 세니까 말이야.”
“몇 명 정도 생각하는 거야?”
“적어도 열 명은 넘어야 될 것 같아. 문제는 믿을 수 있는 자들로 모아야 한다는 거고.”
“그건 걱정 마. 궁녀들 중에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너도 주변에 잘 찾아봐. 다른 애들도 지금 물색 중이거든.”
“응, 그럴게.”
그렇게 형취련과 양금영은 스산한 눈빛을 교환했다.
* * *
단비는 정원에서 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조만간 저 암군이 죽으면 자미성이 태어나겠지. 부디 다음 옥좌에는 자미성의 성군이 앉아 세상을 바로잡아 주었으면 좋겠구나.’
암군의 죽음과 함께 태어나는 진명천자.
그것을 위해 많은 계획이 이루어졌고 그 끝자락에 자신이 와 있었다.
단비, 아니 그녀와 몸을 바꾼 엽주평은 손쉽게 황제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단비는 황제에게 가장 사랑받는 귀비였기에 며칠에 한 번은 자신의 처소인 익곤궁을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엽주평은 그에게 가랑이를 벌리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살행을 옮기지 않았다.
직접 목도한 궁녀들의 처참한 생활 때문이었다.
분노와 원한, 피로 얼룩진 증오의 소용돌이 속에서 엽주평은 과거 대역죄인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멸문당한 가문을 떠올렸다.
해서 엽주평은 그녀들에게 직접 복수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죽은 가족들의 복수는 자신이 할 수밖에 없지만, 그녀들은 아직 살아 있으니 직접 원한을 풀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또 다른 이유,
‘궁녀들의 손으로 그 개새끼를 죽인다면 죽은 궁녀들의 원혼을 달랠 수 있겠지.’
황성에 가득한 원혼 때문이었다.
진명천자의 탄생과 앞길에 조금의 부정함도 없길 바라는 마음이 그를 참도록 만든 것이었다.
‘다음 번 익곤궁을 찾는 날이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