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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13화 (113/206)

<기적의 이혼대법 113화>

“허어, 이런 기물을…….”

진평은 둥근 물체가 든 주머니를 받아 들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완전히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이 해결되면 돌려주셔야 합니다. 그거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것이니까요.”

“하하하, 알겠소. 내 잘 간직했다가 꼭 돌려주리다.”

곧은 의지와 호탕한 기개.

적사결이 보기에 그는 청렴결백하고 결기가 센 부류였다.

보물에 혹해 뒤통수를 치는 자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건청궁을 드나드는 자들 중에 수상한 낌새는 없었습니까?”

분명 그들 중 한 사람과 몸을 바꾼 엽주평이 있을 터.

놈이 누군지 확인하면 자신이 얼굴을 바꿔서라도 건청궁에 침입할 요량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자는 없었소.”

“하면 앞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 잘 살펴보고 진 위사를 통해 알려 주십시오. 저희도 첩보를 입수하면 알려 드겠습니다.”

“그리하겠소. 혹 이는 본 위에도 비밀인 것이오?”

“그렇습니다. 금의위와 동창에서는 용의자가 주살되었으니 방심하고 있는 상황. 죽은 엽주평의 내통자가 움직이기에 딱 좋은 상황이니까요.”

“흠…… 함정을 파고 기다리자는 말이로군.”

“해서 천호께서 잘해 주셔야 합니다. 이번 일은 모두 당신께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적사결은 팔자에도 없는 존댓말까지 써 가며 진평을 띄워 주었다.

그렇다고 들뜰 진평도 아니지만 그가 중요한 인물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고맙소. 폐하를 위해 무림인들이 이렇게 나서 주다니.”

진평이 생각하는 무림인은 세상 제멋대로 살아가는 야인이었다.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도 나라를 위해 힘쓰지 않는 자들.

제 자신의 잇속을 채우고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재능 낭비자들 말이다.

한데 그런 생각이 눈앞의 적사결을 보자 다소 희석되는 것 같았다.

“저희들도 명국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적사결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 얼굴을 보는 진무백은 가증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 나중에라도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으면 말씀하시오. 내 지휘사께 간언드려 그대가 중책을 맡을 수 있도록 힘써 보리다.”

그 말에 이번엔 진무백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 아버지의 입에서 직접 청탁을 넣겠다는 말이 나오게 하다니.

지난밤 적사결과 약조했던 일이 떠오르자 이번엔 울상이 지어졌다.

“내기 하나 할까? 내가 네 아버지가 청탁을 해 주겠다는 말이 나오게 하면 내 승리. 아니면 나의 패배.”

“하! 아버지께서 제일 싫어하는, 아니 증오하는 게 청탁인데 가능할 것 같습니까?”

“그럼 네가 유리하니까 좋은 거 아니야? 왜 쫄려?”

“쪼…… 쫄리긴 누가!”

“그럼 내기를 받아들이는 건가?”

“좋습니다! 당연히 내가 이길 테니까 손해 볼 거 없지! 내기 조건은 뭡니까?”

“그래, 네가 손해 볼 건 없어. 내가 이기면 넌 내 가르침을 받는 거니까.”

“또 그 소리. 정말 날 가르치고 싶은 겁니까?”

“말했잖아. 난 진정 강해지고 싶어 하는 놈을 보면 몸이 근질거려. 너 볼 때마다 똥구멍에 똥 찌꺼기가 낀 것 같다니까.”

“비, 비유도 참…… 그럼 내가 이기면 뭘 해 줄 겁니까?”

“뭐든 말해.”

“그럼 그 외모를 바꾸는 역용술을 알려 주십시오.”

외모를 바꾸는 수법이 인피면구가 아님은 진작 파악했다.

진무백은 그것이 첩보와 감찰, 비밀 호위와 같은 금의위의 임무에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역시 꽤 똑똑한 새끼라니까. 그건 또 언제 알아냈데.’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자세 잡아.”

진무백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진가 애송아.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 하마. 지금까지 본 좌의 참교육을 받고 절정 고수에 오르지 못한 놈들은 없었다. 왜 그런지 아느냐?”

“……?”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가르침을 따라오지 못하는 등신들은 다 쳐 죽였거든. 아마 그 똥 같은 표정을 계속 유지하면 십중팔구 뒈질 거야. 흐흐.”

진무백은 미간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귀공께서는 절 죽이고 싶은 겁니까? 왜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데 내기까지 하면서 가르치시려는 거죠?”

“말하지 않았나? 몸이 근질거린다고.”

“끄응. 그런 이상한 이유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 주십시오. 하면 진지하게 가르침을 받을 테니까요.”

“그런 거 없다. 그리고 넌 어차피 진지하게 가르침을 받게 될 텐데, 흐흐.”

“과연 그럴까요?”

“그럼. 누구나 제 목숨 귀한 줄은 아는 법이거든. 네놈이 금의위 위사고 이곳이 황궁이라서 내가 손을 못 쓸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야. 네놈 말대로 본 좌는 얼마든지 다른 얼굴로 역용할 수 있으니까. 큭큭.”

물론 다른 이유가 있지만 녀석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진무백이 지금의 인연으로 먼 훗날 신교와 황실 간의 접점이 된다면 그때쯤 말해 줄까.

더구나 적사결은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백리 애송이는 워낙 군말 없이 따르는 부류였는데, 네놈처럼 강단 있는 놈들은 어떨까.’

언젠가 들일 제자를 들일지도 모르니 그때를 위한 예행연습.

교육도 많이 해 봐야 느는 법이기에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적사결은 진무백처럼 말 안 듣는 놈을 자신의 주관대로 가르치면 어떤 식으로 결과가 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적사결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진무백의 허리에 묶여 있던 검집이 허공을 날아 그 손에 들어왔다.

“허…… 허공섭물?!”

진무백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 입을 쩍 벌렸다.

내공의 수발이 자유로워진 적사결에게는 당연한 기예였음에도.

“왜? 좀 진지해지는 것 같아?”

“…….”

당연하지!

자존심 때문에 당장 그렇다고는 못 하지만 무형기는 절대 고수들의 전유물이다.

그런 고수가 가르침을 내리는데 안 진지해지고 배길 무인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지금부터는 더 진지해질 거야. 기억하지, 이거.”

적사결은 진무백의 눈앞에서 검집을 흔들어 댔다.

“가…… 가르침이 설마…….”

“맞아. 넌 일단 좀 맞아야 돼. 쓸데없는 자존심을 굽히는 데 매질만큼 좋은 게 없거든.”

탁. 탁.

손바닥에 검집을 두드리는 모습에서 진무백은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자…… 잠깐……!”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검풍이 은밀히 날아들어 자신의 혈을 짚은 것이었다.

‘검집을 흔들 때 검풍을 발산한 거야? 이럴 수가.’

단순히 분위기를 잡을 뿐만 아니라 은밀하게 제압까지 하다니.

진무백은 사색이 된 얼굴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더 경악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주우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반야심경.

적사결의 입에서 읊어진 것은 그 구절이었다.

‘저…… 저게 다 몇 대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과거 소림에서 그 열한 대를 맞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었다.

저걸 다 맞는다면 병신이 아니라 죽을지도 몰랐다.

“눈치 빠르네. 때리면서 외치기 번거로워서 주욱 읊었는데 말이야.”

검집을 바닥에 끌면서 다가오는 그의 뒤로 저승사자가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진무백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   *   *

백류혼은 팔짱을 끼고 냉담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앞에는 이천억, 악도겸, 매양옥이 있었다.

“용건이 무엇입니까?”

“그대에게 할 말이 무엇이겠소? 우리를 그만 풀어 달라는 것이지. 원하는 대로 각자의 영혼이 제 육신을 찾았으니 가도 되는 거 아니오?”

악도겸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적사결 측 인물인 백리황은 진작 황성을 떠나 자신의 세가로 돌아갔다.

하나 자신들은 십이사령의 감시 탓에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 깜박하고 있었네. 좋소, 당신은 가도 되오. 이제 볼일 없으니까.”

“고맙소. 하면 이만 가 보겠소.”

그가 정중하게 포권한 후 쏜살같이 나가자 그 뒤를 자령이 은밀히 따라붙었다.

혹시 따로 숨겨 둔 반선주가 있다면 찾아내 없애기 위함이었다.

“나…… 나도 가 봐도 되겠지?”

이천억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요. 금개 님은 안 됩니다. 반선주에 관한 모든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제가 모실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

“아…… 아니. 악가 놈은 되고 왜 나는 안 된다는 말인가!”

“악도겸이 뭔 짓을 하든 저와 상관없으니까요. 하나 금개 님께서 또 다른 놈과 몸을 바꾸실지 모르니 저로서는 풀어 드릴 수 없습니다.”

대쪽 같은 백류혼의 대답에 이천억이 붉어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대관절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 이러는 것이냐!”

“억하심정이라니요. 이미 여러 번 보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금개 님을 존경하고 흠모하기에 금개 님께서 다른 이와 몸을 바꾸시는 걸 두고 볼 생각이 없습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 완벽하니까요.”

“이런…… 미친…….”

이천억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하나 상대는 자신보다 몇 수 위의 고수였다.

더구나 그 수하들인 십이사령도 무시 못 할 고수들이었으니 자력으로는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모든 반선주를 없애고 당신께서 쓸데없는 것에 미련을 버리시면 놓아드릴 겁니다.”

“……이이.”

이천억의 붉어진 얼굴색이 더 시뻘게졌다.

천형과도 같은 재복을 벗어날 기회라 여겼다.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다시 살 방법이 있는데 웬 미친놈 하나가 그 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죽어엇!”

폭발한 분노가 취팔선권의 투로를 따라 날아들었다.

하나,

터텁. 콰앙.

청령과 백령이 그의 양팔을 붙잡고 제압해 탁자에 처박았다.

“이거 놔! 크아아악!”

이천억은 발작적으로 저항했지만 두 절정 고수를 뿌리칠 순 없었다.

“청령, 백령. 어르신을 부족함이 없게 모셔라. 자진이든 도주든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생긴다면 목숨으로 그 죄를 묻겠다.”

“존명.”

청령과 백령은 이천억의 점혈을 짚고 방을 나섰다.

이천억은 눈에서 시퍼런 광망을 뿜으며 나가는 순간까지 백류혼을 노려보았다.

한데 백류혼은 정작 생각이 달랐다.

‘역시 나의 우상. 자유를 빼앗기니 저토록 극렬한 저항 정신을 발휘하시는구나.’

이미 마음속에 이천억이란 존재는 우상화되어 있었다.

백류혼은 그의 어떤 모습을 보든 맹목적인 동경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눈이 반짝반짝하시네요. 그렇게 저 노인이 좋으신가요?”

매양옥이 백류혼의 눈을 보며 말했다.

“하하, 왜? 질투 나나?”

“질투 나죠. 공자님같이 잘생기고 집안 좋은 분이 저런 다 늙어 빠진 노인네를 동경하는데.”

“뭐? 다 늙어 빠진 노인네?”

“아차차, 실수. 노사님라고 부를게요. 화 푸세요.”

매양옥이 한 번만 봐 달라는 듯 눈웃음치며 말했다.

“흥. 늙은이 몸을 하고 있을 때는 역겹더니. 이렇게 보니 그런대로 봐줄 만하군.”

“그게 다예요? 항주의 보옥이라 불린 강동제일미가 저 매양옥이에요. 겨우 봐줄 만하다니요?”

“강동? 장강의 동쪽 일부 지역? 흐음. 그럼 내 동생은 천하제일미겠네.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걔가 당신보다 백만 배는 이쁘거든.”

“……끄응.”

매양옥은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백류혼의 얼굴을 보면 동생도 짐작이 갔으니까.

“훗. 그건 그렇고 당신은 어쩔 생각이야? 항주로 돌아갈 건가?”

백류혼의 물음에 매양옥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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