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10화>
“야율 선배셨군요. 구양패라 합니다.”
구양패가 먼저 포권으로 예를 올렸다.
이후 관패와 염마천도 소개를 하며 포권했다.
“관패입니다.”
“염마천입니다.”
어쨌든 그는 천마신교의 살아 있는 화석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야율헌은 세 사람을 일견하고는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툭 내뱉었다.
“쯧, 진력을 다한 모양이로구나. 이래선 영 재미가 없는데 말이야.”
“재미라니요?”
구양패의 물음에 야율헌이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녀석이 맹극을 죽였다지? 내 너와 재미 좀 볼까 하여 여기까지 걸음을 하였는데 안타깝구나.”
“그의 복수를 하러 오신 거였습니까?”
“하하하, 복수라니? 마인으로 태어나 한바탕 재미지게 싸웠고 전장에서 죽었으니 그 정도면 호상이지.”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구양패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흐, 배교자가 되었다지만 그래도 대장로직을 맡을 만한 놈이로구나. 그런 독실한 마음으로 어찌 본 교를 배신했을꼬.”
“지금의 지존은 제가 모시던 지존이 아니니까요.”
“궤변이로다. 너 정도의 고수가 영혼이 바뀌었다는 의미를 모르진 않을 터. 한데도 그걸 믿는 것이냐.”
“그분께서 워낙 불가능한 일을 많이 겪으셔서 말입니다. 선배께선 모르시겠지만 역대 교주님들 중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으신 분입니다.”
“주군에 대한 마음가짐도 좋구나. 하나 불가능은 불가능으로 받아들여야지. 쯧쯧. 미련한지고.”
야율헌은 혀를 차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어찌 되었든 너희들은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하나 힘 빠진 놈들을 베는 것은 나무토막으로 장작을 만드는 것보다 의미 없는 일이지.”
“흐흐, 운기조식할 시간을 주시렵니까? 그리해 주신다면 기꺼이 선배의 목을 따 드리겠습니다.”
“클클, 기백은 좋다만 눈앞에 닥친 상황을 있는 그대로 극복하는 것 또한 패도 아니겠느냐. 네놈이 기력을 회복하도록 기다려 줄 아량은 없다.”
“그런가요. 하면 정신력으로 내력을 대체해야겠군요.”
구양패가 투지를 불태우며 전의를 일으키자 그 불길이 주변으로 번져 갔다.
“클클클. 좋군, 좋아. 내 거기에 좀 더 기름을 끼얹어 주도록 하마.”
야율헌이 눈짓하자 야율가의 마인들이 열 명의 사람들을 끌고 왔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구양패 측 마인들이 동요했다.
“외원의 평교도들이다. 급한 나머지 손에 잡히는 대로 막 잡아 왔는데, 네놈들 오천 명 중에 아는 자가 있겠지?”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구양패가 거대한 살기를 흘리며 일갈했다.
“흐흐. 좋은 표정이 되었구나. 네놈이 아는 자도 있는 모양이야? 죽이면 더 멋진 표정이 될 것 같은데?”
야율헌의 입꼬리가 귀까지 걸리며 사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야율가의 무인들조차 주춤거렸다.
선조의 명으로 죄 없는 형제들을 죽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모습에 야율헌이 호통쳤다.
“멍청한 놈들! 저길 보거라. 저놈들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여기 이놈들이 배교자들과 내통했다는 증거이니라! 네놈들이 이 야율헌의 후손이라는 것이 한스럽구나!”
야율헌은 싸늘한 눈빛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배교자들을 죽여라! 당장!”
그 명에 야율가의 마인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은 안절부절하며 야율결을 바라보았다.
‘젠장.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야율결은 수하들과 야율헌, 양측의 눈치를 보느라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자신도 그의 미친 짓거리를 말리고 당장 배교자들을 연행하고 싶었다.
저들은 내력이 소진되어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으니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에게는 증조부를 말릴 만한 강단이 없었다.
“주…… 죽여라. 선조님의 명을 따르지 않고 무엇들 하느냐?!”
야율결은 열 명의 평교도들을 제압하고 있는 가솔들에게 명했다.
그 말에 그들은 사색이 되었다.
선조라 하나 야율헌은 가주가 아니다. 한데 당대 가주인 야율결이 명을 내렸으니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신교에서 가문에 속한 마인들에게 가주의 명은 교주의 명 못지않게 절대적이었다.
“쳐…… 쳐라! 어서!”
야율결이 재차 명하자 마인들은 마지못해 검을 들어 올렸다.
한데 그 순간.
쇄쇄쇄쇄쇄쇅.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과 함께 검을 들었던 마인들이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들의 가슴에는 하나같이 비도가 꽂혀 있었다.
“웬 놈들이냐?”
야율결이 비도가 날아온 방향을 보며 소리쳤다.
나타난 자들은 흑색 전포를 걸친 괴인들이었다.
“호오?”
야율헌이 그들을 보며 이채를 띠었다.
“본 교에 너희 같은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신궁의 애송이들보다 더욱 짙은 마기라니 대단하구나.”
“흥. 마기가 골수에 미친 늙은이가 제정신인 척하는 꼴이라니. 역겹군.”
선두에 선 중년인이 코웃음 치며 야율헌의 말을 받았다.
“흐음…… 이거 구양가의 핏덩이와 놀러 나왔다 대물을 건졌구나. 흐흐. 이름이 무엇이냐.”
“흑사광.”
“흑…… 사광? 흑씨 성이라…… 혹시 맞느냐?”
“맞아. 당신이 모셨던 분이 내 조부님 되시지.”
“크하하하하. 그분의 후손임에도 교주의 위에 오르지 못한 멍청이가 누군가 했는데 네놈이었구나.”
야율헌은 앙천광소하며 흑사광을 비웃었다.
“정정. 골수에만 마기가 미친 게 아니라 대갈통 깊숙이 파고들었군.”
“끌끌끌. 마의 근원은 여기서 나오는 법이란다. 애송아.”
손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린 야율헌은 두 눈의 흰자위가 검게 변해 갔다.
“야수권마라고 불렸던 극강의 마인이 마기에 휘둘리는 꼴이라니. 말년이 처참하군.”
흑사광이 야율헌을 직시하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후왁.
태산이 쏟아지는 듯한 일권이 전면으로 날아들었다.
폭발적인 기세와 더불어 거칠기로는 당할 자가 없다는 야율가의 마공.
야율헌의 주먹에는 그 정수가 녹아 있었다.
꽈앙.
벼락이 꽂히는 듯한 굉음과 함께 흑사광이 서 있던 자리가 터져 나갔다.
한데 비산한 먼지가 걷힌 자리에는 그 자세 그대로 오연히 선 흑사광이 있었다.
방어도 하지 않고 야율헌의 주먹을 얼굴로 받은 것이다.
“이...이건 묵혼마신체?”
흑사광의 얼굴 반쪽을 뒤덮고 있는 검은 마기.
그것은 암흑천마공의 무공인 묵혼마신체가 분명했다.
초대 교주인 흑마신에 의해 반쪽 무공이라는 평가를 받은 후 아무도 익히지 않은…….
“늙어서 악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군. 고작 이 정도라니. 권마라는 별호가 울겠어.”
흑사광이 씨익 웃자 반쪽을 덮고 있던 묵혼마신체의 마기가 전신을 덮어 갔다.
그리고 한쪽 손을 들어 야율헌의 손목을 붙잡았다.
우드드득.
“끄으윽.”
야율헌은 손목이 부러지는 듯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바…… 반쪽짜리 무공으로 어찌…….”
그 말에 흑사광은 피식 웃었다.
“뼈마디도 부실한데 거기다 뇌 기능도 떨어진 건가? 반쪽이라도 천마 조사의 무공이다. 역대 교주들이 불완전한 무공이라서 익히지 않은 것 같으냐? 익히기가 너무도 난해하기에 손도 대지 못한 것이다.”
촤르륵.
그때 검은 쇠사슬이 흑사광의 팔을 지나 야율헌의 팔목을 타고 올랐다.
“이건 또 무슨...”
검은 사슬은 그렇게 그의 전신을 칭칭 감았다.
뿌득. 뿌득.
야율헌은 전신의 마기를 끌어올렸건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제정신도 아닌 노인네에게 이런 말을 해서 뭐하겠나 싶지만. 죽기 전에 똑똑히 들어라. 본 좌가 교주에 오르지 못한 것은 흑가의 수치가 아니다. 보다 강한 자가 나타났으니 그가 교주가 되는 것은 신교의 율법에 따른 당연한 수순. 누구의 핏줄이니 누구의 후손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말은 당신들 시대가 끝날 때 함께 무덤에 집어넣었다 이 말이다.”
“크으윽…….”
“탈마를 이루지도 못하고 뇌옥에서 기어나온 과거의 망령아. 내 친히 너의 주군인 조부님의 곁으로 보내 주마.”
슈르르륵.
흑사광의 오른손에 흑색 강기로 형성된 검은 뿔이 솟아났다.
그는 그것을 그대로 야율헌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끄윽…….”
야율헌은 종잇장처럼 뚫린 호신강기를 가슴에 집중하며 검은 뿔을 밀어내려 했다.
끈질긴 생을 이어 가려는 무시무시한 집념이었다.
“천강마각수.”
흑사광의 입에서 초식 명이 나온 그때였다.
퍼퍼퍼퍼퍼퍽.
야율헌의 내부에서부터 검은 뿔 수십 개가 솟아났다.
마치 고슴도치처럼 전신에 돋아났고 흑사광이 기운을 거두자 휑한 빈자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야수권마라고 불렸던 전대의 거마가 처참한 모습으로 숨을 거둔 것이었다.
“야율 장로.”
흑사광이 차가운 눈빛으로 야율결을 보며 말했다.
“증조부의 시신을 거두고 가솔들을 물려라. 그리고 협곡에서 접근 중인 마인들도 책임지고 막아야 할 것이다. 몇 천이든 몇 만이든 나와 흑랑대를 상대하려면 야수권마 이상의 고수를 데려와야 할 테니까. 눈치는 빠르니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
“아, 알겠습니다.”
야율결은 고개를 조아린 후 야율헌의 시신을 수습하여 떠났다.
그들이 떠나자 구양패가 흑사광에게 다가왔다.
“부교주, 돌아오신 겁니까.”
“누가 부교주인가. 나는 그런 직위를 받은 기억이 없다.”
흑사광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면 어찌 여기 오신 겁니까?”
“부교주는 아니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신교의 교인이라 자부하고 있다. 본 교에 변고가 생겼으니 와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허허, 계속 지켜보고 계셨던 거로군요.”
“흠흠, 고향 생각에 근처에 왔다가 자네들이 곤경에 처한 걸 본 것뿐이야. 확대 해석하지 말게.”
“암요. 하하하.”
구양패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교주쟁패전에서 패한 후 교를 완전히 떠난 줄 알았던 그는 아직 신교와 함께하고 있던 것이다.
그것도 마령존이라는 사마오대존의 일인이 되어 더 강해진 채로 말이다.
* * *
“흑사광?”
무허가 한쪽 눈썹을 씰룩이며 짜증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예. 전대 교주님의 아들이자 지금은 마령존으로 불리는 천하십대고수 말입니다.”
“그래서, 그놈이 네놈들의 앞을 막아서 그냥 되돌아왔다? 야율헌 그놈도 잃은 채?”
무허의 물음에 네 명의 장로들은 입을 떼지 못했다.
“이런 천하의 쓸모없는 똥막대기들 같으니!”
콰앙.
내려친 태사의가 가루가 되며 바스러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무허는 네 장로를 단매에 쳐 죽일 듯 미친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냈다.
“목 내밀어라. 내 친히 그 쓸모없는 머리통을 잘라서 개 먹이로 던져 줄 것이니.”
핏빛의 강기가 일렁이자 피로 얼룩진 부처의 형상이 등 뒤에 떠올랐다.
기괴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저희가 미력하여 지존의 명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니 어찌 거부하겠습니까. 너무도 나약한 제 자신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사마독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나머지 세 장로들도 그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무허는 갈등했다.
‘약해서라…… 나약한 자신이 싫다…… 강자존…….’
무허의 머릿속에 강자로 존재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신교의 이념이 떠올랐다.
마인들의 육신과 정신에 깊숙이 각인된 근본이념, 강자존.
그것을 갈구하며 한탄하는 네 장로를 보자 차마 들어 올린 손을 내려칠 수 없었다.
“일어서라, 이 똥막대기들아.”
“예?”
“두 번 말해야 하느냐!”
무허의 호통에 네 장로들이 번개처럼 일어섰다.
“내 네놈들에게, 아니 모든 교도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무슨…… 기회 말씀이십니까?”
“너희 똥막대기들이 본 교의 신검이 될 기회를 준다, 이 말이다.”
무허는 혈포를 젖히며 소매 속에서 하나의 구결이 적힌 종이를 빼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신마결을 대신해 본 좌가 새로이 창안한 것이다. 혈마열반결이라 하지.”
혈마열반결의 구결이 적힌 비전서가 허공섭물에 의해 천천히 사마독의 손 위에 안착했다.
“전 교도들은 이것을 익히도록 하거라. 하면 강해지는 것은 물론이요, 본 좌와 함께 미륵의 세계로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신마결의 구결을 재해석해 만들어 낸 혈마열반결.
무허는 모든 마인들이 자신과 같은 신마지경에 발을 들이길 원했다.
그는 궁극의 마에 닿는 것이 곧 열반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백천악, 그 악귀 놈을 처단하려면 더 충직하고 더 강한 수하들이 필요해.’
실력 문제는 혈미륵신공을 대성하면 해결된다.
하나 놈은 천하에서 가장 거대한 무력 단체를 거느린 놈이었다.
무허는 사무련을 걷어 내지 않으면 놈과의 일대일 승부가 힘들다 여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