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09화>
콰콰쾅. 쩌저저정.
천마신교 정예 중의 정예.
최강의 무력부대로 불리는 수라혈검대의 무위는 무시무시했다.
백 명이 일직선으로 늘어선 방어선이 만 명의 공세를 막아 낸 것이었다.
협곡의 입구라는 지형적 이점이 있긴 했지만 엄청난 무력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나서겠소.”
완안지가 검대를 고쳐 잡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런 그의 어깨를 사마독이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염마천에게 밀릴 것이라 보시오?”
“그것이 아니오.”
“하면 어찌 말리는 것이오? 수라혈검대요. 이쪽에서도 주력 부대가 나서야 하지 않겠소.”
“나설 것이오. 하나 지금은 아니오. 전황을 자세히 보시오.”
“……?”
사마독의 말에 장로들은 전장을 다시금 살폈다.
안력을 집중해 확인한 상황은 놀라웠다.
“지금…… 봐주면서 싸우고 있는 것인가? 허어…….”
상관중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수라혈검대는 상대를 죽이지 않고 있었다.
피치 못할 시 팔이나 다리를 잘라 불구로 만들지언정 절대로 살수를 가하지는 않는 것이다.
“실력을 자신하는 것은 아닌 듯하오.”
완안지가 미간을 좁힌 채 말했다.
살수를 쓰지 않는 것은 봐주는 행위나 마찬가지이지만 그 의도가 달랐다.
수라혈검대는 같은 교도들을 죽이지 않기 위함이 분명했다.
“저들은 교주가 영혼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분을 모셔 오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 여기는 것이겠지. 멍청한 놈들. 참으로 멍청한 놈들이야…….”
사마독은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믿는 수라혈검대가 안타까웠다.
아니, 그들을 필두로 구양가와 우문가, 선우가, 그리고 이장로를 따르는 수많은 고수들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사마 장로. 그대의 심정은 우리들도 잘 알고 있소. 하나 저들의 신앙이 깊지 못한 걸 어찌하겠소?”
“……후우.”
“그대는 수라혈검대의 힘이 빠지길 기다렸다 사로잡으려는 것이겠지. 하나 내 생각은 최선을 다해 저들을 죽여 천마 조사의 곁으로 보내 주는 것이 저들을 위하고 신교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오.”
“…….”
사마독은 완안지의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
그의 말도 패도에 기반한 의사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소. 하면 완안 장로, 그대가 나서 주시오.”
완안지는 고개를 끄덕인 후 앞으로 나서며 일갈했다.
“완안철검대, 본 가주를 따라라.”
완안지를 필두로 서른에 이르는 완안가의 검수들이 움직였다.
* * *
“대주님, 완안 장로가 나섰습니다.”
수하의 말에 염마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호하면 일제히 대원들을 물리거라.”
“예.”
염마천은 선두에서 다가오는 완안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등 뒤에 두 자루의 검을 차고 있었다.
한 자루는 자신의 애병인 혈우, 다른 한 자루는 교주의 신물인 적령이었다.
신궁을 떠나기 전 염마천은 적사결의 애검을 챙긴 것이었다.
스릉.
한 번 뽑히면 피의 비를 내린다는 혈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귀기가 넘실거렸다.
그런데 그때 염마천은 돌연 왼손으로 검신을 잡더니 무릎을 세워 그대로 혈우를 부러뜨렸다.
챙강.
수십 년간 교주를 지켜 오며 수많은 적을 베었고 그럼에도 흠집 하나 없던 혈우였다.
그런 보검이 주인의 손에 부러진 것이다.
“염 대주. 무슨 짓인가? 지금 본 장로를 모독하는 것인가?”
완안지가 노기를 띤 얼굴로 물었다.
“완안 장로, 그대를 인정한다는 뜻이오. 검을 쓴다면…… 솔직히 죽이지 않을 자신이 없소.”
“하면 맨손으로 본 장로를 제압할 수 있다 여기는가?”
“열세겠지. 하나 내가 죽을지언정 완안 장로는 죽지 않을 것이오. 잘하면 양패구상일 것이라 생각하오.”
“흥, 아직도 자신이 본 교의 호교대법사인 줄 아나 보군.”
“물론. 해서 교의 형제들을 다치게 한 대원들의 검을 대표해 혈우를 꺾은 것이기도 하오.”
염마천은 씁쓸한 눈으로 혈우의 검파를 놓았다.
수라혈검대의 상징이었던 검이 그렇게 부러진 채 나뒹굴었다.
“너무 상심하지 말게. 내 자네도 혈우를 따라 두 동강을 내 줄 터이니.”
완안지가 시커먼 검강을 피워 올리며 스산하게 내뱉었다.
“최선을 다해 주어 고맙소, 완안 장로.”
파앗.
선공은 염마천이었다.
검수가 검을 버리고 스스로를 열세에 던져 놓은 상황.
조금의 이득이라도 취하기 위해 먼저 공격한 것이었다.
거리를 좁힌 염마천의 검결지가 빛살처럼 뻗어 나갔다.
터터터텅.
완안지는 검배를 절묘하게 움직이며 방어했다.
좁은 검신임에도 그의 방어는 완벽에 가까웠다.
‘역시 철벽의 완안으로 불리는 가문의 수장답구나.’
수백 초를 뿌려도 완안지의 검막은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가끔씩 펼치는 반격은 염마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후우웅.
검결지가 펼쳐지며 염마천이 쌍장을 떨쳤다.
힘으로 찍어 누른 후 빈틈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투웅.
한데 완안지의 호신강기가 출렁이더니 엄청난 반탄력으로 장세를 되받아쳤다.
완안가의 마공은 기의 반진력에 있어서는 천하일품이라는 명성을 떨치는 곳.
하나 염마천은 십성 공력을 펼쳤기에 손쉽게 튕겨 나올 것이라 예상치 못했다.
뻐어엉.
가죽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염마천이 주르륵 밀려났다.
입가에는 선혈이 묻어 있었다.
“퉤. 완안가의 호신강기는 질기기가 용의 힘줄 같다더니. 과연 명불허전이군.”
피가 섞인 침을 뱉어 내며 완안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눈동자를 굴려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음…… 슬슬 힘에 부치는 모양이구나.’
하나 아직 더 기다려야 했다.
일부러 유인하는 것이 아닌 마지못해 퇴각하는 느낌을 주려면…….
“완안 장로, 그렇게 수비만 해서 언제 나를 죽일 수 있겠소?”
“허허, 나야 검을 꺾은 그대에서 선공을 양보한 것이었지. 이제 본격적으로 해볼까 하네.”
쉬잉.
한 번 떨친 검에서 수십 가닥의 검은 빛줄기가 바닥을 미끄러지며 날아들었다.
마치 검은 뱀이 공격해 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흑사탐혼. 내 움직임을 먼저 묶으려는 것이로군.’
염마천의 보보가 어지럽게 움직이며 귀영수라보가 펼쳐졌다.
한데 흑사탐혼을 피해 낸 그의 앞에 어느새 완안지가 자리해 있었다.
검로를 조종해 염마천이 지금의 장소에 오도록 유도한 것이다.
스가각.
“크으윽.”
옆구리를 길게 베어 낸 후 선회한 완안지의 검이 독사처럼 염마천의 심장을 노렸다.
마공임에도 검세가 부드러운 완안가의 검초는 한 번 피한다 하여 끝이 아니었다.
염마천의 상체가 잔상을 남길 정도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염 대주. 어찌 된 것인가? 이대로라면 양패구상은 구경도 못 해 볼 것 같은데?”
“치잇.”
염마천은 회피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주변을 힐끔거렸다.
일부러 혈우를 꺾고 지닌 실력의 삼 할까지 숨긴 염마천.
그는 수세에 몰린 연기를 실감나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었다.
그때 수라혈검대의 몇몇이 기공을 크게 터트리는 것이 보였다.
‘한계에 달했구나. 지금이야.’
염마천의 검결지에서 강기로 이루어진 검이 쭈욱 늘어났다.
혈룡멸악검, 만악멸격. 수백에 이르는 변환초가 사방을 뒤덮으며 쏟아졌다.
그 초식은 완안지를 쓰러트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만악멸격을 알아본 완안지가 거리를 벌리자, 광범위한 초식이 수라혈검대와 추격대 사이를 가로지른 것.
바로 퇴각을 위한 신호였던 것이었다.
“염 대주!”
완안지가 그 의도를 눈치 채고 소리쳤다.
“더 상대해 주고 싶지만 이 이상은 어렵겠소. 하하하.”
염마천은 웃음을 보이고는 그대로 후방으로 신형을 날렸다.
완안지는 이를 악물고 물러서던 보보를 억지로 멈추고 전면으로 신법을 발휘했다.
하나 전력으로 거리를 벌리던 상황이었기에 방향을 반전시키는 것이 그리 빠르지 못했다.
“쫓아라! 놓쳐서는 아니 된다!”
완안지의 외침에 완안철검대와 마인들이 수라혈검대의 뒤를 쫓아 경공을 전개했다.
* * *
“염 대주가 잘해 준 것 같소.”
협곡 위에서 구양패가 전황을 보며 감탄했다.
아무리 최정예라도 고작 백 명이 전부인 수라혈검대였다.
협곡의 입구라지만 그들만으로 만 명을 멈추게 만든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그것도 단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말이다.
“우리도 준비합시다.”
관패가 흐뭇하게 웃으며 정해진 자리로 움직였다.
협곡을 기준으로 양쪽 절벽 위에는 사천구백의 마인들이 바닥에 검을 꽂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 잘 듣거라. 한순간이다. 한 번에 전신내력을 개방해야 하니 차질 없이 준비하거라.”
“예!”
그 모습을 묘 선생은 기가 막히다는 듯 쳐다보았다.
‘헐…… 절벽에 기공을 때려 박아 무너지게 만든다고? 벽력탄 수십 발은 족히 필요할 것 같은데?’
대협곡 중 가장 좁은 곳이라지만 사람이 막을 만한 넓이가 아니다.
한데 저들은 그걸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무식하다. 적 교주를 봐서 예상은 했지만 정말 무식해.’
천하에서 기공의 파괴력이 가장 강하다는 마공이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묘 선생은 그렇게 눈앞에서 사람의 힘으로 절벽이 무너져 협곡을 막는 현상을 직접 목도했다.
* * *
콰콰콰콰쾅.
사마독을 비롯해 세 장로들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무너지는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라혈검대가 없었다면 척후를 보내 협곡 위까지 확인하며 왔을 터.
아니, 척후가 없었더라도 눈앞의 미끼에 현혹되지만 않았다면 협곡이 무너지기 전에 절반 이상은 경공으로 빠져나갔을 것이었다.
한데 백 명에게 만 명이 꼼짝 못 했다는 수치심이 마인들의 분노를 극도로 자극한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앞뒤 절벽을 막아 추격대를 가두는 책략을 성공시켰다.
“뒤쪽은 그나마 높이가 낮으니 그쪽을 통해 우회합니다.”
사마독의 결정에 두 장로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휴우, 그분의 말대로 야율가를 따로 움직인 것이 천만다행이오.”
완안지가 경공을 펼치며 한 숨을 내쉬었다.
“본 교의 일장로와 이장로, 그리고 호교대법사까지 있으니 한 번은 추격을 뿌리칠 거라더니 그 말 그대로 되었소그려.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상관중이 씁쓸한 얼굴로 대꾸했다.
자신들의 무능을 입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어쩌겠소, 이리된 것을. 서둘러 갑시다. 야율가만으로 역도들을 당해 낼 수는 없으니 말이오.”
사마독이 두 장로와 수하들을 독려하며 말했다.
아직 그들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었다.
* * *
“빌어먹을…… 언제…….”
관패가 입술을 깨물며 협곡 출구에서 기다리는 야율가를 바라보았다.
“협곡 안에서 드잡이질을 할 동안 우회한 모양이오.”
구양패의 말에 염마천이 어두운 기색으로 말했다.
“그렇다 해도 너무 빠릅니다. 야율 장로의 판단만으로 움직인 것 같진 않군요.”
야율결은 칠대장로 중 가장 말석.
장로들 중 가장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덕분에 눈치는 기가 막히게 빨랐지만 말이다.
지금 야율가의 움직임은 분명 그의 능력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저기 있군. 그 움직임을 이끌어 낸 당사자가…….”
구양패는 식은땀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낸 노인을 주시했다.
“야율헌. 전전대 본 교의 대장로였던 야수권마네.”
탈마동의 마인들 중 초마혈수 맹극 이상의 괴물.
구양패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최고수인 자신들 삼 인은 물론, 모든 수하들이 협곡을 무너뜨리는 데 내력을 거의 소진한 상황.
경공을 위한 최소한의 공력만 남았기에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허허, 본 교의 대장로와 이장로, 호교대법사가 배교도가 되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야율헌이 야율결을 대동한 채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