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05화>
음양이기.
태극을 구성하는 기운으로 따뜻함과 차가움, 간단하게 물과 불을 뜻한다.
무공 역시 크게 나눈다면 양강의 무학과 음유의 무학으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 모든 것을 딱 잘라 나눌 수 없듯 대략적인 구분만 할 수 있을 뿐 실제로는 두 가지의 기운이 뒤섞여 있는 상태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딱 잘라 나눌 수 있는 극히 드문 경우는 있었다.
오대지체라고도 부르는 특이 체질이 그것이었다.
그중 태양신맥은 전신 경혈이 양기를 띠며 화기의 성질을 지니게 되고, 구음절맥은 반대로 음기를 띠며 수기의 성질을 지닐 수 있었다.
하나 이 같은 체질은 백 년에 한 명 꼴로 태어날까 말까한 천골.
그마저도 운이 좋지 않으면 약관을 넘기기 전에 명운이 다할 난치병이기도 했다.
지금 여공공이 보이는 기운은 화기와 수기가 섞이지 않고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다.
태양신맥도 아니고 구음절맥도 아니라는 의미.
두 가지 순수한 기운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은 무언가 또 다른 특이체질이란 의미일까?
“음양이기를 다루다니 뭐지? 특이 체질인가? 아니면 무공?”
적사결은 음양이기를 다루는 무인을 처음 보았다.
아니, 음양이기 중 한 가지만 순수하게 다루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
고금을 통틀어도 그게 가능했다 알려진 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신기하죠? 쿄쿄. 이 무공을 접하는 모든 무림인들은 다 그런 얼굴을 하더군요.”
여공공은 단정적으로 무공이라고 답했다.
무공으로 완벽히 구분된 두 가지 상극의 기운을 다룰 수 있다니.
적사결은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순수한 화기와 수기를 신체가 버틸 수 있단 말인가? 무공으로 그것이 제어가 된다고?”
오장육부를 비롯해 전신대맥과 세맥을 호신강기로 감싸면 되겠지.
강기라면 화기에 몸이 타고 수기에 얼어붙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하나 그렇게 내공을 운용하며 싸울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규화보전이라 합니다. 창위들이 이백 년 동안 발전시킨 신공절학이지요.”
여공공은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그 말에 적사결은 핵심을 집었다.
“창안이 아니라 발전? 그 말은 기초를 잡은 자는 창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란 말이군? 누구지? 사무련인가?”
동창 무공의 근원은 사파다.
그러니 규화보전의 기틀이 되는 무공 역시 그럴 것으로 짐작되었다.
“하아, 꼭 그렇게 원조 타령을 해야겠어요? 맛집이면 됐지, 뭘 그렇게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려 하죠? 고리타분하게.”
여공공은 동창의 이백 년 노력을 봐주지 않자 뾰루퉁한 표정으로 투정을 부렸다.
“뿌리란 그만큼 중요하니까. 거름을 주고 물을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역시 종자가 좋아야 하거든.”
적사결의 대답에 여공공은 입을 삐죽 내밀고 답했다.
“이대째.”
“뭐?”
“초대 사무련주 투신의 반려이자 이대 사무련주. 그녀가 규화보전의 창안자예요. 그만하면 종자는 확실하죠?”
“봉황무후…….”
불혹을 갓 넘기고 죽은 투신에 이어 사무련주의 위에 오른 여인.
여인으로 한정 짓는다면 그녀는 고금제일로 불릴 정도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절세무인이었다.
투신의 죽음 후 붕괴되는 사파연합체, 사무련을 다시 통합하고 이전보다 강대한 영토와 세력을 구축한 여걸.
고대 병기라 불리는 무구, 보패를 한 가지도 아니고 세 가지나 다룬 신인이 바로 그녀였다.
“이제 보니 엄청난 거목의 뿌리였군.”
“그 뿌리를 애지중지 길러 진짜 거목으로 기른 건 창위랍니다.”
“진짜 거목? 어디? 안 보이는데?”
적사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시치미를 뗐다.
여공공은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그런 저급한 도발이라니 실망이네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리를 좁힌 여공공이 우장를 휘둘렀다.
장법임에도 밀치는 형세가 아닌 마치 뺨을 때리는 듯 후려갈긴 것이었다.
그러자 붉은 기운이 뭉치더니 불꽃으로 이루어진 강기가 적사결이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하나 그는 이미 이형환위로 공격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후끈하군. 저급하다더니 꽤 잘 먹힌 것 같은데?”
지붕에 내려앉은 적사결은 입꼬리를 올리며 이죽거렸다.
“후끈? 그렇다면 시원하게 해 드리죠!”
빛살처럼 뻗은 좌수.
그 투로를 따라 푸른 기운이 따르며 쩌저적거리는 기음을 발생시켰다.
파바바바바바.
순식간에 형성된 얼음송곳 수백 발.
적사결은 신형을 날리며 지붕 위를 내달렸다.
파삭. 파삭. 파사사삭.
그 뒤를 얼음송곳에 적중된 기와들이 깨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휘릭. 촤아악.
공중제비를 돌며 미끄러지듯 바닥에 착지.
암기술과 유사한 수법을 피하기 위해 달려들며 접근전을 시도했다.
달려드는 힘을 더해 정면으로 지르는 사왕의 공세.
하나 여공공은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보법으로 피하며 우수로 사왕의 도신을 움켜쥐었다.
칼등을 내리누르며 손가락 끝으로 도배를 쥔 것이었다.
그러자 사왕의 도신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도파를 쥔 적사결의 손바닥이 지글거렸다.
“예상했어, 새끼야.”
퍼어어엉.
화탄처럼 사왕으로부터 불꽃이 폭사되었다.
사왕의 공능으로 놈이 주입한 화기를 흡수해 증폭한 후 발산한 것이다.
지척에서 터져 나간 폭염에 여공공은 좌장을 발작적으로 휘두르며 열기를 걷어 냈다.
“그 칼 되게 까다롭네요.”
여공공은 왼손으로 손부채를 하며 땀을 식혔다.
“흐음. 너도 불이 뜨겁긴 한가 보군.”
몇 수 겨루었지만 대략 짐작이 갔다.
규화보전이라는 무공의 성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나 놈은 두 팔에 한 해 음양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분명했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맞아요. 뜨겁죠. 사람인데 불에 닿으면 뜨거울 수밖에요.”
“손바닥으로 불을 토해 내는 놈이 사람 타령이냐?”
“그렇게 따지면 일반인이 봤을 때 무림인도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죠. 호호홍.”
여공공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한쪽 팔을 건물을 향해 뻗었다.
“아무래도 맨손으로는 어려울 것 같으니 나도 내 귀염둥이를 써야겠어요.”
쉬이잉.
허공섭물에 이끌려 건물 내부에서 날아온 것은 창이었다.
여공공은 창을 잡아채며 풍차처럼 휘돌린 후 멋들어진 기수식을 취했다.
“그…… 그건?”
“어머? 알아보시나 봐요?”
“네놈이 어찌 그것을 지니고 있지? 그건 연 노사의 독문병기가 아니냐.”
“그를 죽이고 얻은 전리품이죠. 이젠 내 귀염둥이라구요. 아시죠? 규화보전의 창안자인 봉황무후가 창의 고수였단 거?
“몰라. 알게 뭐냐. 옛날 옛적에 뒈진 사람을.”
그딴 것보다 중요한 건.
“한데 정말 네놈이 죽인 것이냐? 독패존 연무흔을?!”
사마오대존 중 가장 배분이 높은 자.
굳이 따지자면 무허와 비슷한 배분의 노고수였다.
평생 세력을 일구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강호에 우뚝 선 절대 고수.
그는 주로 정도의 문파들과 잦은 다툼을 일으켜 사파인으로 분류된 자였다.
홀로 강호를 독보한다하여 붙여진 별호는 독패존.
여공공이 지니고 있는 창은 그의 애병이었던 절륜창이었다.
“죽였으니 제가 가지고 있죠. 그가 절륜창을 어디 맡겨 둘 인물인가요?”
그래, 그럴 수밖에.
절륜창은 천하십대기병의 하나였으니까.
천하에 손꼽히는 무구를 어찌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언제 죽였지? 그가 강호에 모습을 보인 지 벌써 오 년이 넘어가는데.”
“삼 년 정도 됐을 걸요?”
“그랬군…….”
적사결은 입술을 깨물었다.
젊은 시절 그와는 몇 차례 손을 섞어 본 적 있었다.
사마오대존으로 불린 이후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와의 기억은 꽤 좋게 남아 있었다.
비무로 서로의 무위에 경탄하고 사흘 동안 무에 대해 논한 그 경험이 향후 상승의 경지에 오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는 사인가 봐요?”
“조금은.”
“소림의 후기지수가 사마외도의 지존급 무인인 독패존과 아는 사이라…… 흐응.”
“빡대가리 굴리지 말고 덤벼. 과거의 인연을 생각해 절륜창은 본 좌가 회수해 갈 테니까.”
“어머. 복수? 좋죠.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이야기가 복수극 아니겠어요? 효효효.”
“언제까지 재밌는지 볼까?”
우드드득. 우득.
무공에 대한 견적이 나왔으니 전력으로 간다.
적랑 의태로 변화한 신체가 터질 듯한 힘을 내포했다.
“뭐…… 뭐야?!”
퍼어엉.
지축을 터트리며 쏘아진 섬광.
금빛이 물결치는 도강이 어느새 코앞에 자리했다.
여공공은 화들짝 놀라며 창대를 들어 올렸다.
쩌어어엉.
“끄윽!”
팔목에서 우드득 소리가 들렸다.
여공공은 상대가 괴물로 변한 모습에 정신을 못 차렸고 엄청난 압력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크오오오오!”
적사결은 포효와 함께 창대를 내리눌렀다.
평범한 창이었다면 벌써 반으로 갈라져 토막이 났을 것이다.
하나 절륜창은 사왕의 예기와 적랑 의태의 거력에도 끄떡없었다.
“으이이익.”
여공공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 힘을 버텨 내었다.
하나 애초에 외공의 조예가 깊지 않았기에 근육이 파들거리고 관절이 삐걱거렸다.
그때 여공공의 눈에서 안광이 폭사했다.
“카하압!”
좌수와 우수에서 흘러 들어간 푸르고 붉은 기운.
그것이 절륜창을 타고 회전하며 발경의 묘리를 발했다.
떠어엉.
사왕이 마치 돌진하는 마차에 들이받힌 것처럼 튕겨 나갔다.
동시에 절륜창이 음양의 강기를 품고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빠바바박.
근접 거리였기에 창대로 후려친 연환초.
어깻죽지와 종아리, 허리와 늑골에 가해진 연격에 적사결이 휘청이며 물러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파파팟.
창대로 후려친 부위가 마치 예리한 칼로 자른 것처럼 자상을 남겼다.
강기를 싣더라도 창대는 둔기와 같은 상흔을 남기는데 마치 창날로 베어 낸 것만 같았다.
“크르르르.”
절륜창의 공능이었다.
기공을 주입하면 창대를 따라 기운이 회전하며 예기를 띠는 것.
절륜창은 창의 공격 범위인 중장거리가 아닌, 초근접전에서도 방심할 수 없는 무구였다.
하나,
쫩. 쫘아압.
곧바로 상처가 달라붙으며 재생되었다.
천축유가신공의 회복력은 적랑 의태일 때 더 사기적인 능력을 보여 주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르릉.”
아씨, 이럴 때 빈정거려 줘야 하는데.
뭐라 말을 못 하겠네.
“크아아아!”
그냥 뒈져!
다시금 초신속의 공세.
수라천살검의 격혈경혼이 펼쳐졌다.
연환초로 가랑비, 아니 폭우에 홀딱 젖게 만들 의도였다.
콰과과과과광.
아까처럼 튕겨 낼 여지도 주지 않고 몰아치는 폭우와 광풍.
천하십대고수의 수좌인 남궁건도 뇌기를 쓰기 전엔 이 속도에 적응하지 못했다.
독패존을 용케 죽였겠으나 여공공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쿠헥.”
계속되는 패력에 내력이 들끓자 여공공의 입에서 토혈이 뿜어졌다.
규화보전은 순수한 음양기를 사용하기에 무척이나 섬세한 기공 운용을 기반으로 했다.
마치 정교한 톱니바퀴와 같다고 할까.
양기와 음기라는 이가 맞물리면 천하에서 으뜸가는 위력을 발휘하나, 그렇지 못하면 그 힘이 반절 이하로 줄어들고 내상을 입기도 쉬웠다.
태양신맥과 구음절맥, 두 가지 특이 체질을 한 몸에 지니는 전무후무한 천골, 음양지체.
그 체질을 타고난 봉황무후는 그 신체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규화보전을 고안한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과 같은 특이 체질을 찾지 못하자 양기와 음기를 한 몸에 지닌 환관이라는 족속들에게 전한 것이었다.
사장될 바에 변질되고 쇠퇴하더라도 자신의 무맥이 이어지길 바라면서.
“자…… 잠깐…… 크웩.”
여공공은 절륜창을 지지대로 삼아 비틀거리며 연신 각혈했다.
적사결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 새끼 유리 몸이었잖아. 겨우 몇 대 처맞았다고 이 꼬라지야?’
투벅. 투벅.
아랑곳 않고 다가가는 걸음은 묵직했다.
적사결은 사왕을 도갑에 납도하고 두 손을 마주 잡고 손을 풀었다.
“이…… 이봐. 난…… 태감이다. 동창의 이인자, 태감이란 말이다. 쿨럭.”
“크릉?”
그래서?
“나…… 날 죽이면 대역죄인이 될 것이다! 황궁의 위사들과 창위, 아니 군부에서도 네놈을 추포하기 위해 칼을 빼 들 것이란 말이다!”
“크아아앙!”
상관없어, 이 씹새야!
떠엉. 쿠지직.
솥뚜껑만 한 주먹이 아가리를 후려쳤다.
적사결의 주먹은 입을 뚫고 뇌까지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드드드드.
침투경으로 쏟아부은 공력이 여공공의 몸을 가득 채워 갔다.
오 갑자의 내공을 쏟아붓자 전신에서 실금이 가며 황금빛이 그 사이로 새어 나왔다.
퍼어어엉.
여공공의 몸은 그대로 가루로 화하며 허공에 흩어졌다.
“크오오오.”
좆밥 새끼가.
아, 좆밥도 없는 놈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