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03화>
타닥. 타닥.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백천악의 안력은 그 화염을 꿰뚫고 은소령의 시신을 계속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하듯.
하염없이 불꽃을 바라보던 백천악이 입을 연 것은 한 시진이 다 되어서였다.
“묵령.”
“네, 련주님.”
“북경에 있는 류혼에게 알리거라. 살협 엽주평은 황제와 몸을 바꾸려는 것이 아닌, 죽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알겠습니다.”
묵령이 연락을 위해 사라지자 백천악은 혼자 남아 다시 불꽃을 바라보았다.
다섯 시진이 다 되어서야 불꽃은 사그라졌고 타 버린 재 사이에는 하얀 백골이 남아 있었다.
스윽.
백천악이 손을 들자 허공섭물의 힘으로 백골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러고는 가루가 되며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셀 수도 없는 뼛가루들은 하나하나가 백천악의 무형기에 이끌리며 어떤 형상을 그렸다.
생전 은소령의 모습이었다.
“고향에 데려가 뿌려 주고 싶지만 그대가 너무 먼 곳까지 와 그럴 수 없겠구려. 이해하시오.”
신강에서 호남까지는 수만 리.
이동 기간이 긴만큼 시신의 부패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백천악은 아름다웠던 은소령이 그리 변해 가는 것을 원치 않아 신강에서 그녀를 화장한 것이었다.
사아아아.
산의 계곡풍이 불자 은소령의 형상이 일렁거렸다.
백천악은 허공섭물을 유지하던 힘을 거두었고 흩어진 뼛가루들은 하늘 저편으로 휘날렸다.
“부디 다음 생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사시오, 소령.”
* * *
“이곳입니다.”
송만은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의 정문에 멈춰 섰다.
소민은 그 문의 현판에 걸린 ‘유왕부’라는 세 글자를 바라보았다.
그랬다. 이곳은 황자인 유왕 주재기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유왕. 휘는 재기, 이칭은 재후.
형제들이 모두 요절하고 살아 있는 유일한 황자였다.
본래 황태자가 되어 태자궁에 있어야 하나 그는 자금성 밖 유왕부에서 따로 기거하고 있었다.
이는 황제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태자의 책봉을 미루고 있었기 때문.
정말 지독한 권력욕이 아닐 수 없었다.
“들어가죠.”
소민이 앞장서고 송만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유왕부의 문턱을 넘어가자 기다리고 있는 자는 비단옷을 차려입은 노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도중문.
방술사로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자였다.
황제가 도술에 빠지게 된 것은 이자 때문일 정도로 황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었다.
“오셨습니까?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도중문은 소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 은소령이 황제의 자리를 탈취하기 위해 안배한 하오문도였다.
“아니에요. 노사께서 고생이 많으셨지요. 문주님께서도 노사의 노고에 인사를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야 본 문을 위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소민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유왕의 아들에게 자미성의 기운이 들어설 것은 확실한가요?”
“방금 전 태중 아기씨를 다시 한번 살피고 오는 길입니다. 징조가 확실하니 심려치 마십시오.”
자미성.
자미두수 14주성의 하나로 모든 별을 다스리는 제왕의 별.
한마디로 황제를 상징하는 별이었다.
하나 다른 별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위에 오른다 하여 자미성의 기운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미성의 기운 역시 타고나야 하는 것이다.
“자미성의 기운은 하늘이 내리는 진명천자의 상징. 이를 위해 이 도중문이 십 수 년이 넘도록 황제를 타락시켰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황제의 업보는 핏줄에게 이어지기 마련이지요.”
선대의 업보를 후대가 짊어지는 것.
하나 범인과 달리 황족에게 있어 죄를 짊어진다는 것은 후대가 명군이 되어 선대의 죄를 씻어 낸다는 의미였다.
그 명군의 탄생을 상징하는 하늘의 도움이 자미성의 기운이었다.
하나 기운을 타고나는 것은 하늘의 선택이지만 명군으로 성장하는 것은 결국 사람에게 달린 것.
만약 그 업을 짊어진 후대가 다시금 선대와 똑같은 전철을 밟는다면 이는 곧 왕조의 패망을 가져온다 알려져 있었다.
“하나 아이가 그 기운을 온전히 받으려면 당금 황제의 명이 다해야 합니다. 아쉽게도 지금의 황상은 제가 만든 비약을 오랫동안 복용했음에도 기력이 크게 쇠하지 않았지요.”
도중문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향락에 빠지게 만들고 불로장생이란 허황된 말로 몸에 좋지도 않은 약을 장복하게 만들었다.
하나 황제는 타고난 강건함 덕분인지 크게 노쇠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해서 엽주평 그자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황상에 대한 복수심이 강한 자이니 반드시 암살에 성공할 것입니다.”
송만이 웃으며 도중문의 걱정을 덜어 주는 말을 해 주었다.
일신의 무위도 뛰어나지만 그에게는 자신들이 지급한 반선주가 있었다.
더구나 황궁 내부의 인물들 중 별의 기운을 가진 이들에 대한 목록도 별도로 지급했으니 황상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면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엽주평이 잘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아기씨가 태어나기 전 임무를 성공해야 자미성의 기운을 온전히 받은 아이가 세상에 나올 테니까요.”
물론 그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곧바로 소민과 몸을 바꾸게 될 예정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엽주평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신신당부했다 하니 노사께서는 너무 염려 마세요.”
소민은 도중문을 안심시키고는 자신이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물었다.
“저는 황자비의 시비로 가게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황자마마와 황자비마마께는 말씀을 드려 놓았으니 그리 힘든 일은 시키지 않을 겁니다.”
도중문은 준비한 신분패를 소민에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송만을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자네의 자리는 마련하지 못했네. 황족은 자신의 집에 외간 남자를 들이는 걸 꺼리니 이해를 하시게.”
“이미 짐작했습니다. 저는 하북지부에서 머무르면 되니 심려치 마십시오. 저야 연락책이지 않습니까.”
“그래. 자네가 황궁과 유왕부를 오가며 고생 좀 해 주게나.”
“예.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오랜만에 후임을 만나 이런저런 상의할 것도 있으니까요.”
송만은 소민과 도중문을 향해 포권하고는 먼저 길을 나섰다.
유왕부를 나와 빠른 걸음으로 하북지부로 향하던 그는 갑자기 미간을 좁혔다.
‘나도 감이 떨어졌구나. 꼬리가 붙은 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송만은 대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북경의 소로는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어 복잡한 곳은 마치 미로와 같았다.
하나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는 송만은 거침이 없었다.
십 년 전 하북지부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밑바닥의 소매치기부터 지부장까지 올라간 인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아직 북경의 지리는 손바닥 안에 있었다.
‘도대체 몇 놈이나 되는 거냐…….’
골목 귀퉁이를 돌며 언뜻 확인한 꼬리만 네 명.
놈들은 마치 몰이사냥을 하듯 숨통을 죄어 오는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이 길은…….’
송만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자신이 진입한 소로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왜? 더 도망쳐 보지 그래?”
등 뒤에서 단창을 쥔 사내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송만은 돌아서며 물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나를 왜 쫓아오는 거지?”
“하오문 고위층 맞지? 움직임을 보아 현업에 종사하는 놈은 아니고…… 혹시 낙향한 문도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송만이 시치미를 떼자 새롭게 등장한 두 사람 중 노인이 말했다.
매양옥이었다.
“유왕부에 들어가기 전부터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시치미 떼 봤자 소용없으니 인정하세요. 여기 이분들은 흑야귀령대 소속 십이사령들이랍니다.”
“십이사령? 당신은 누구지? 노인네가 여인네 같은 말투를 쓰니 영 듣기 거북하군.”
송만의 말에 매양옥의 얼굴이 구겨졌다.
“푸하하하하. 나도 계속 뭐가 거슬렸었는데 말투였구나. 킥킥킥.”
백류혼이 배를 잡고 웃었다.
매양옥은 토라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만 좀 웃으시죠.”
“알았어. 미안, 미안. 킥킥.”
백류혼은 한참을 킥킥거린 후에야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 사람, 반선주 마시고 노인네와 몸이 바뀌었거든. 원래 여자야. 그것도 꽤 아름다운. 그래서 그러니 당신이 이해해.”
“……!”
송만은 그 말을 듣고 그녀가 항주의 하오문도인 매양옥인 걸 알 수 있었다.
음치 악도겸과 몸을 바꾸는 실험 대상이었던 여인이었으니까.
“대단해. 일말의 내색도 하지 않다니. 강소지부장과는 급이 다르네.”
백류혼은 박수를 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에 잡은 놈은 월척인 모양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몸이 바뀌어?”
송만은 반선주에 대한 것을 모른 체하려고 말했다.
하나 그것은 실수였다.
“한 박자 늦었어. 현업에서 뛰는 게 아니라 감이 떨어졌나 봐?”
백류혼은 싱긋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송만이 내기를 끌어올리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그대로 경공을 발휘해 골목을 뛰어넘었다.
“잡아 와.”
“존명.”
청령을 비롯한 네 명의 십이사령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송만이 아무리 뛰어난 하오문도라 하나 그래 봤자 일개 하오문도일 뿐이었다.
백류혼 앞에 무릎을 꿇는 데 걸린 시간은 반각이 채 걸리지 않았다.
“크윽. 당신은 누구요?”
“십이사령을 부리는 젊은 놈. 누구일 것 같아?”
송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흑야귀령대는 사무련주의 직속 특무대.
그들의 수뇌부가 십이사령이었다.
그런 그들을 말 한마디로 부릴 수 있는 자는 사무련에서 단 두 명이었다.
“서…… 설마 소…… 련주?”
“딩동댕. 감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니구먼.”
백류혼은 히죽거리며 쭈그려 앉았다.
“잘 들어. 지금부터 반선주와 하오문주, 살협 엽주평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를 불어. 숨기거나 거짓을 말하진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눈치가 귀신이거든.”
“도대체 무슨…….”
송만은 사색이 된 얼굴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무련을 위해서지만 그곳에 알리지 않고 하오문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계획이었다.
특급 기밀인 그것을 어찌 알았는지도 의문이지만 영원한 우방이라 할 수 있는 하오문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 강소지부장도 쉽게 입을 열진 않았지. 얘들아.”
백류혼의 명에 네 명의 사령들은 송만의 팔과 다리를 각각 잡았다.
송만은 점혈을 짚는 것보다 강압적인 구속에 더 공포심이 들었다.
“자…… 잠깐. 악. 아악. 끄아아악!”
북경 한적한 소로의 막다른 골목에서 비명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 * *
“뭐라 그랬어? 찾았다고?”
적사결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드디어 드러난 엽주평의 소재.
진무백이 가져온 정보는 그가 머물고 있는 장소였다.
“네. 천금루라는 객잔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것을 어렵게 확인했습니다. 일 년의 대금을 다 치르고 몇 달간 두문불출했기에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합니다.”
“객잔 주인에게 후하게 값을 치르고 비밀로 해 달라 했겠지.”
흔하디흔한 수법이었다.
객주인들은 돈만 많이 주면 투숙객의 정보를 으레 숨기곤 했으니까.
더구나 북경은 객잔의 수가 하늘의 별만큼 많은 도시.
숨기에는 제격이었을 것이다.
“안내해.”
“이미 위사들이 파견되었습니다.”
“그 새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천하십대고수 바로 아랫줄에서 노는 놈이야. 너희들만으로는 못 잡아.”
“해서 동창에도 협조 요청을 했다 합니다. 여공공께서 가셨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여공공? 그때 그 변태 새끼?”
“네.”
“…….”
찝찝하다.
요즘 왜 이렇게 찝찝한 기분이 자주 드는 것일까.
그래, 그놈의 실력이면 엽주평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나 실력을 떠나 재수 없는 놈이라 그런지 괜스레 기분이 더러웠다.
괜히 그런 건가…….
아니다.
변수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가 보자.”
“네?”
“가 봐야겠다고. 빨리 안내해.”
적사결은 진무백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재촉했다.
분명 무슨 사달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