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00화>
“그곳은 폐쇄되었잖은가?”
구양패와 관패도 알고 있는 통로였다.
하나 천마신교로 새롭게 개파하며 그곳을 무너뜨린 것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
“전부 무너뜨린 것은 아니고 일부만이었으니 되살리면 됩니다.”
“말이 쉽지, 이 사람아. 거긴 각종 진법과 기관이 뒤섞인 곳이라 입구를 여는 데만 몇 달은 족히 걸릴 걸세.”
두 사람은 실망 어린 표정을 했다.
당장 턱밑에 닿은 무허의 칼날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유롭게 그걸 되살릴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차라리 정면 돌파를 택하는 것이 나았다.
“거의 뚫려 있으니 심려 마십시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황당해하는 두 노인의 표정을 뒤로하고 일월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지존께서 몇 달 전부터 그곳을 개방시키라 명하셨습니다. 이미 막바지 작업이라 하니 곧바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적사결의 명을 받고 십만대산에 도착한 묘 선생의 작업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열과 성을 다해 비밀 통로를 되살리는 데 전력을 기울인 것이었다.
“설마 지존께서는 지금의 상황을 예측하시고 안배를 해 놓으신 것인가? 허어…….”
두 노인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입을 벌렸다.
일월은 적사결의 위상이 더 높아지자 자신이 뿌듯해했다.
“저희들의 지존이시니까요. 그분께서는 늘 몇 걸음 앞을 내다보십니다.”
구양패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늘 그러셨지. 항상 기대 이상의 결과만 보여 주는 분이셨어. 허허허.”
관패는 구양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갑시다, 대장로. 어서 지존을 뵈어야 하지 않겠소!”
두 사람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망이 떠올랐다.
* * *
“뭐라? 갑자기 사라져?”
무허의 표정이 씰룩거리자 보고를 올린 수하가 벌벌 떨었다.
저러고서는 관심법 운운하며 때려죽인 게 벌써 수십 번이었다.
“이런 멍청한! 내 집 안방에서 벌레가 들끓었는데 그것들이 사라져? 한데도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몰라?”
“…….”
수하는 더욱 심하게 몸을 떨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퍼어어억.
수박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허가 내리쳤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 핏물을 할짝이며 말했다.
“패도를 걷는 마인이 고작 이 정도 공포에 몸을 떨다니. 한심한 놈. 쯧쯧쯧.”
무허는 머리가 박살 난 시체를 걷어차고 명했다.
“벌레 놈들이 하늘로 솟았든 땅으로 꺼졌든 찾아라. 못 찾는다면 너희들의 머리통으로 그 수를 채워야 할 것이다.”
마인들은 움찔거리며 뒷걸음으로 대전을 나섰다.
무허는 붉은 승포를 젖히며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승복을 입고 머리를 민 무허.
그는 더 이상 정신적인 혼란을 겪지 않았고 정체성을 확립한 상태였다.
덕분에 혈미륵신공의 성취는 9성에 이르렀고 마교의 가장 강한 고수 중 두 사람인 구양패와 관패까지 발아래 둘 수 있었다.
무허가 집무실에 도착하자 곧이어 네 명의 노인들이 들어왔다.
칠대마가 중 구양패 일행과 함께하지 않고 신실한 신앙심으로 무허의 편에 선 자들이었다.
“교주님, 잠시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장로 중 우두머리격인 사마가의 사마독이 읍하며 물었다.
“무엇인가, 사마 장로?”
“역적 놈들이 갑자기 사라진 데 대해 짚이는 게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대전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있더니 이제 와서 짚이는 게 있다? 그건 또 무슨 똥막대기 같은 소린가?”
무허는 눈살을 찌푸리며 따져 물었다.
“그…… 그것이 그저 짐작일 뿐이라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씀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사마독은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쯧, 앞으로는 짐작이라도 말해. 모든 것은 본 좌가 듣고 판단할 테니 말이야.”
“예, 교주님.”
사마독은 순순히 답한 후 천마신궁 지하 깊숙이 존재하는 비밀 통로에 대해 언급했다.
초대 마교의 개파 당시 신궁의 초석 아래 마련된 안배.
하나 정마대전의 패배 이후 폐쇄된 곳에 대해 설명한 것이었다.
“교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신궁 내에서 오천 명이란 인원이 갑자기 사라졌다면 그곳 말고는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없습니다. 다만 벌써 천 년도 넘게 폐쇄된 곳인데 구양 장로가 언제 그곳을 재가동했는지 그것이 의문일 따름입니다.”
사마독에 이어 야율가의 야율결이 첨언했다.
“추측일 뿐이지만 저희들의 판단으로는 그곳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료됩니다. 하나 그곳은 신교의 금지이니 조사하려면 교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기에 이렇게 찾아뵌 것입니다.”
무허는 턱을 쓰다듬으며 안광을 빛냈다.
장로들의 설명을 듣고 나니 기억 한편에 고대의 비밀 통로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적사결의 몸에 각인된 기억이 계기만 있으면 수면에 비친 달처럼 과거의 기억을 비춘 것이었다.
이는 이전에는 몰랐던, 심신이 안정된 후 얻은 능력이었다.
“가 봐. 필요하면 탈마동 녀석들도 데려가고. 본 좌의 판단으로도 그놈들은 그곳으로 기어 들어갔을 것 같으니까.”
“선우가와 우문가의 수장들도 죽었으니 저희 사대 가문으로 충분합니다.”
개개인이 독불장군에 미치광이들인 탈마동의 마인들은 추적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역도들의 수괴 중 주의해야 할 자들은 구양패와 관패, 그리고 수라혈검대의 대주 정도이니, 자신들 네 명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 자신하면 구양패 그놈은 꼭 산 채로 잡아 와. 본 좌가 직접 대갈통을 부수고 싶으니 말이야.”
무허의 지시에 사마독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수적인 우위가 있다 하나 구양패는 대장로의 직함을 지닌, 교주 다음의 실력자였다.
죽이는 것과 사로잡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흐흐. 관심법으로 보니 영 자신이 없나 보군.”
“그…… 그것이 아니오라…….”
“됐고. 야율헌 그놈을 데려가. 그 녀석 정도면 구양패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에 야율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초마혈수 맹극과 마찬가지로 극마결에 도전했다 입마에 빠진 전대의 거마, 야율가의 큰 어른이 야율헌이기 때문이었다.
배분으로는 야율결의 조부격이니 그로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야율 장로는 싫은가? 왜? 다 늙어서 노인네 뒤치다꺼리 하는 것 같아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야?”
무허가 이죽거리며 묻자 야율결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아닙니다, 교주님. 집안 어른을 모시는 것인데 싫을 리가 있겠습니까.”
“뭐라? 아니야? 지금 아니라 했는가?”
무허의 눈에서 시뻘건 혈광이 비쳤다.
관심법으로 보았다 말했음에도 이를 부정하자 진노한 것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속하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이 나이에 어른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감히 불경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야율결은 재빨리 부복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눈치 백 단의 야율결은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 목숨을 보전하는 길이라 여겼다.
“그래, 그래야지. 귀신은 속여도 본 좌는 못 속여. 자네들도 귓구멍 열고 똑똑히 들어.”
무허는 사마독과 야율결을 비롯해 두 명의 장로, 상관중과 완안지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경고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본 좌는 미륵이야. 감히 미륵을 앞에 두고 거짓을 고했다간 내 친히 지옥불에 던져 줄 것이니 그리 알도록 해.”
네 명의 장로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예, 교주님. 지존의 지엄한 명,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장로들은 포권하며 읍한 후 빠르게 집무실을 나갔다.
더 있다간 살 떨려서 간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혼자 남은 무허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창문 밖을 향해 툭 내뱉었다.
“들어오려면 들어와. 그리 밖에서 얼쩡거리다 처맞고 뒈지지 말고.”
그 말이 끝나자 창이 열리며 검은 인영이 날듯이 들어왔다.
검은 야행복을 입은 수상한 자는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무허대사님을 뵙습니다.”
무허는 자신의 정체를 말한 그를 보며 눈가를 씰룩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 사실을 거론한 놈은 자신도 처음 보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소청이라 합니다. 엽주평 어르신께서 보내셨습니다.”
“엽가 놈이?”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인 살협 엽주평.
무허는 그가 자신에 대한 것을 다른 이에게 말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곳은 듣는 귀가 많으니 장소를 옮기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만날 분도 있으니 말입니다.”
“감히 본 좌를 오라 가라 하는 것이냐?”
“그분께선 무공을 익히신 분이 아닙니다. 저로서는 천마신궁의 심장부인 이곳까지 혼자 오는 것도 벅찼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 중에 엽가의 소개로 자신을 찾아온 자라?
무허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자가 있을 리 없다 생각했다.
허튼 수작일 수도 있으나 그렇기에 무허는 도리어 호기심이 생겼다.
마치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행동하고 싶은 반항심.
위험이 있다면 도리어 뛰어들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무슨 수작인지 모르나 한번 어울려 볼까. 큭큭.’
어차피 반역자들을 잡아 올 때까지 할 일도 없었다.
무허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근엄하게 말했다.
“안내하거라.”
* * *
천마신궁 외성 밖 야산.
무허는 그곳에 도착한 후 자신을 기다리는 여인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아한 궁장을 입은 중년의 미부인.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여인이고 엽가 놈과 인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저 정도의 미부인을 알고 있었다면 절친한 친우인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을 리 없었으니까.
“그대가 날 만나고 싶다 했소? 엽가와는 무슨 사이지?”
무허의 물음에 은소령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사님. 저는 은소령이라 합니다. 미욱하나마 하오문을 맡고 있지요.”
무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관대작의 정실부인일 것으로 보이는 여인이 하오문주라니.
더구나 내공 한 톨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말도 사실인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천하삼대 정보집단의 한 곳을 책임지는 수장이라는 것은 쉽게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하오문주라……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모르겠군.”
하오문은 정사지간의 정보집단이라지만 개방과 달리 사파에 가까운 자들.
살협이란 별호를 가진 엽주평은 티끌만 한 죄라도 용서치 않는 단호한 친구였다.
그런 그가 하오문주와 인연이 있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대사님께서 의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 저희로서는 친절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를 이 자리로 불러 놓고 설명할 필요가 없어?!”
무허는 당장에라도 은소령의 입을 찢어 버릴 듯 살기를 내비쳤다.
심장이 약한 자는 절명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었으나 그녀는 입가의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어차피 그 몸을 내어놓고 죽을 사람이니 입 아프게 설명해서 무엇하겠어요? 호호호.”
무허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기감으로 주변을 훑었다.
혹시나 잠복한 놈들이 있는지 확인한 것이었다.
하나 인근에 눈앞의 두 연놈을 제외하고 다른 생명체는 없었다.
그때 소청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공들여 주변을 살필 필요는 없습니다. 대사님을 상대할 자는 저니까 말입니다.”
“별 볼 일 없는 애송이 놈이 배짱은 좋구나. 큭큭.”
단전에 갈무리한 한 줌의 진기가 훤히 보일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
자신과 눈앞의 애송이가 지닌 무위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소청의 몸에서 어둠보다 짙은 마기가 흘러나와 주변을 잠식했다.
그리고 그 기운이 안개처럼 무허의 발밑에도 깔려 갔다.
“이게 무슨…… 헛!”
그저 기운에 닿았을 뿐인데 온몸이 사슬에 얽매인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꿇으십시오.”
쿵.
소청의 한마디에 무허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마치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상대의 뜻대로 몸이 멋대로 움직인 것이었다.
‘설마…….’
당황스러웠지만 익숙했다.
자신도 혈미륵신공으로 이처럼 마인들을 제압했었으니까.
한데 도리어 자신이 당하다니?
무허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천령마기라 합니다. 대사님은 모르시겠지만 천마가 남긴 암흑천마공의 반쪽. 음…… 간단히 설명하자면 천마신공의 진체라 할 수 있겠네요.”
은소령은 생긋 웃으며 무허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