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99화 (99/206)

<기적의 이혼대법 99화>

“이것 좀 보시겠소?”

수백 권을 뒤적인 후 악도겸이 가져온 것은 낡은 책자들이었다.

연표로 보아 명나라 초기, 그것도 개국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만들어진 것이었다.

“강호무림사?”

“그렇소. 이것 말고도 연대별로 기록된 강호무림사가 이백여 권 있고 이건 최초의 발행본이오.”

“일 년을 기준으로 무림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이로군.”

그걸 지켜보던 진무백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말 그대로 과거의 무림에 대해 기록해 놓은 것일 뿐인데 그걸 왜 보려는 겁니까?”

“과거에서 배우는 것이 역사니까. 강호에는 이런 게 없거든. 너는 읽어 본 적 없나?”

“견습위사일 때 정규수업으로 강호무림사에 대해 배운 적은 있습니다. 한데 별 건 없던데요?”

그 말대로다.

무림강호라 부르지만 결국 명이라는 한 국가의 일부.

조금 특이한 백성들이 사는 세계지만 어쨌든 그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을 뿐인 것이 강호무림사니까.

“여러 내용이 있지만 여길 좀 보시오.”

책장을 주르륵 넘기며 악도겸이 짚은 곳은 열 명의 무인에 대한 것이었다.

“삼존, 칠절?”

“그 당시의 천하십대고수들을 지칭하던 말이오. 지금의 사마오대존과 의천오무제와 같이 말이오.”

이어서 악도겸은 십 년 단위로 천하십대고수에 준하는 무인들의 기록들을 보여 주었다.

“알겠소?”

악도겸의 물음에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경이라는 경지가 실제로 존재했단 거야?”

화경.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신인의 경지가 그것이었다.

천지간에 존재하는 자연의 기운을 사용해 무한에 가까운 힘을 발휘한다는 경지.

단전이라는 그릇을 넘고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초인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존재했소. 보다시피 중화는 십이라는 숫자를 좋아하기에 천하십대고수의 틀은 유지했지만 화경의 고수는 다르오. 단순 기록으로 보면 열 명이었던 화경의 고수들이 점차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소.”

“믿을 수가 없군…….”

대자연의 기운을 호흡으로 받아들여 쌓은 것이 내공이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나 운기조식으로 구결을 외며 기운을 도인하고 정제하는 일련의 과정이 불필요한 경지라니.

당금 천하십대고수인 적사결로서는 믿기지 않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기록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강호무림사는 금의위와 동창이 모은 정보를 황실의 사관들이 기록한 것이니까요. 거짓이나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다간 구족을 멸하기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임은 분명합니다.”

진무백이 옆에서 지켜보며 거들었다.

그도 악도겸의 말에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던 거요. 전체적인 무인들의 숫자는 늘어났을지언정 그 수준은 점차 퇴보하고 있었던 것이오!”

악도겸은 상기된 표정으로 책자를 덮었다.

적사결은 충격이었다.

수많은 무공이 배출되며 초식을 갈고닦고 다양한 내공심법이 등장한 무림이었다.

그를 비롯해 대다수의 무인들은 무공이 점차 발전되고 있다 여겼지만 현실은 반대인 것이었다.

“화경의 고수 말고 다른 건? 다른 증거는 없어?”

적사결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눈으로 물었다.

“다른 증거라…….”

악도겸은 잠시 고민하더니 백 년 전의 강호무림사를 펼쳤다.

“단전의 크기를 재량한 갑자의 개념을 처음 고안한 이가 누군지 아시오?”

“누군데?”

“백 년 전, 천하제일인으로 불렸던 무신불 법륜대사의 스승, 각운대사. 그가 고안하고 강호에 퍼트린 것이오.”

일 갑자.

육십년 동안 쌓은 내공을 이르는 말로 그 기준은 강호에서 가장 흔한 심법인 삼재기공이다.

삼재기공으로 육십년 동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을 쌓으면 일 갑자의 공력을 얻는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정종 무공을 익히는 정파의 무인들은 보통 사십 대를 넘어야 일 갑자의 공력을 쌓을 수 있었고, 방문좌도라 불리는 사파나 마교의 무인들은 삼십 대면 일 갑자의 공력을 쌓을 수 있었다.

심법이 지닌 특징 중 속도만 따지면 방문좌도의 그것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득 채운 단전을 일 갑자. 한 명의 무인이 평생을 수련해야 가질 수 있는 힘이라 지칭했다.

하나 평범하지 않고 비범한 자들은 더 짧은 시간에 일 갑자를 채웠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채워진 일 갑자의 힘으로 단전을 재구성해 그 그릇을 넓히는 수법, 그 모든 것을 고안한 자가 각운대사였다.

“참고로 각운대사의 제자인 법륜대사가 만든 보리연화공은 그 갑자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어 만든 무공이라오.”

“그래서 그런 병신 같은 동자공을 생각한 것이군.”

도가와 마찬가지로 축기의 속도가 느린 불문 정종의 심법 속도를 높이려 편법을 쓴 것이다.

덕분에 한 사람의 몸에 오 갑자라는 미친 공력을 쌓았지만.

“동자공을 알고 있었소?”

“이천억이 말해 주었지. 한데 당신도 아는 걸 보니 무허 노괴의 입이 가벼운 모양이야.”

“술 취하면 무거운 입도 벌어지기 마련이지 않소?”

“그래서 갑자와 무공의 퇴보가 무슨 상관이지?”

악도겸은 강호무림사를 보이며 한 무인에 대해 보여 주었다.

“화산마검. 자하신공을 대성하고 마지막 화경의 고수로 기록된 자요. 물론 강호에는 알려지지 않았소. 화산파에서 철저히 함구했고 소림의 각운대사와 백팔나한이 나서서 처단했다 기록되어 있소.”

“흐음…… 주화입마에 들어서서 마검이 되었다라…….”

“금의위와 동창의 정보력이 실로 대단하지 않소? 화산이라는 대문파가 이만큼 철저하게 숨겼던 비사를 기록해 놓았다니…….”

“그런 건 됐고. 그래서 요점이 뭐야?”

“각운대사는 무공의 퇴보를 짐작한 것이 분명하오. 기록에는 화산마검 이전에도 몇 번이나 같은 경우가 있었다고 되어 있으니까. 해서 각운대사는 화경을 다다를 수 없는 꿈같은 경지라 단정 짓고, 그 대안으로 단전의 크기를 넓히는 갑자이론을 배포한 것이라 생각하오. 한 마디로 화경을 목표로 하는 이들을 단전을 넓히는 방향으로 유도한 것이지.”

상승의 경지로 진입하는 것은 그만큼 주화입마의 위험을 동반하는 것과 같다.

적사결은 천하에서 주화입마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기에 알 수 있었다.

화산마검을 비롯해 몇 번이나 그런 경우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화경으로 진입하는 문이 좁아지고 불안정해졌다는 뜻.

이는 곧 무공의 퇴보를 의미한다는 것을 말이다.

“당금의 천하십대고수는 과거와 비교해 어떻지?”

적사결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기록을 기준으로 전체적으로 판단하자면 백 년 전까지는 큰 차이가 없으나 그 이전을 비교하면 다소 손색이 있소.”

악도겸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천하십대고수 중 가장 성질 더러운 사람을 눈앞에 두고 대답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크크크크.”

적사결은 실소를 흘리며 이마를 짚었다.

천하에 자신과 비견될 고수는 정파의 무허와 사파의 백천악 둘 뿐이라 여겼다.

언젠가 천하제일인이 될 거라 자신했고 그다음인 고금제일인을 최종 목표로 두기까지 했었다.

한데 우물 안 개구리였다니.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 좌가 고금제일을 꿈꾸려면 일단 화경이라는 자격부터 얻어야겠군.”

나직이 중얼거리는 말에 악도겸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마교주 아니랄까 투지 하나는 발군이군.’

화경의 고수가 사라진 지 백 년이다.

지금의 절대 고수들에게 그 경지는 뜬구름이 되었다는 말.

그것은 무공을 창안하는 대종사의 경지, 그 너머에 있었다.

악도겸은 그 경지가 감히 짐작도 되지 않기에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무허, 백천악. 나는 화경의 고수가 될 것이다. 너희들은 어떠냐?’

적사결은 황궁 서고를 나서며 새로운 목표의 다짐을 세웠다.

*   *   *

“주군. 몇 달 내에는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라 합니다.”

십이사령의 일인, 묵령이 돌아와 보고했다.

백천악은 비탈길 아래 작은 모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당에는 십수 명의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듯 뛰어놀고 있었다.

“어디로 갔느냐?”

“하오문의 암어를 분석해 보니 신강과 북경 두 곳이었습니다. 어디로 가 보시겠습니까?”

백천악은 잠시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이런 벽지에서 고아들을 돌보며 살았다니…….’

노백이 들려주었던 얘기들.

그 속에서 당대의 하오문주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것은 백천악이었다.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추억 속 단어.

백천악은 그것만으로도 당대의 하오문주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그녀의 흔적을 더듬어 지금의 장소까지 온 것이었다.

“이 지역 유지라는 자가 하오문도라 했더냐?”

“네. 이름은 송만. 십 년 전까지 하오문 하북지부 지부장이었던 자입니다.”

“그놈도 자리를 비웠나?”

“그렇습니다. 목적지를 알리지 않아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백천악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지난번 보고로는 천마신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했었지?”

“그렇습니다. 야차혈전대를 전원 서북쪽으로 파견한 상황입니다.”

광혈존의 몸을 얻은 취불. 그리고 천마신교의 준동.

때를 맞춘 듯 적시에 사라진 하오문주 은소령.

백천악은 앉아 있던 바위에서 일어나며 명했다.

“신강으로 갈 것이다.”

*   *   *

구양가.

천마신교 대장로의 사가로 칠대마가의 수장격인 가문이다.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권세와 무력을 지닌 마도 명문가인 것이었다.

한데 그곳에 모여 있는 마인들은 하나같이 패색이 짙은 얼굴이었다.

“구양 장로, 이를 어찌한단 말이오?”

이장로 관패의 물음에 구양패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반선주에 대한 사태를 설명한 교주의 숨은 비선 일월과, 그간 교주의 행동을 수상쩍게 여긴 수라혈검대의 합류.

그 덕분에 상당한 세력을 구축한 그들이었다.

칠대마가 중 두 개의 가문, 선우가와 우문가가 힘을 보태었고, 대가문에 속하지 못한 마인들은 흑마검귀 관패의 영향력 덕분에 상당수 흡수한 상황.

전체적인 전력은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 할 수 있었다.

하나 세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생긴 정보의 누설.

끈질긴 설득에도 교주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인자들에 의해 반역자로 몰린 것이었다.

그렇게 탈마동의 마인들과 1차 격돌.

전세는 비등했으나 교주, 아니 무허의 등장과 함께 승패는 기울어졌다.

마도쌍패라 불린 구양패와 관패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선우가와 우문가 가주들의 희생으로 겨우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만마앙복의 힘을 지닌 이상 우리는 그를 이길 수 없소.”

마를 굴종시키는 절대적인 마.

무허의 앞에서 그들은 굽혀진 무릎을 세우지 못했었다.

신마결의 공능은 두 초고수를 뱀 앞의 개구리로 만들 정도였다.

“퇴각합시다. 교주님과 합류해야 하오. 우리들만으로는 무허 노괴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소.”

구양패는 어두운 표정으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

패도를 걷는 마인이 후퇴를 입에 올리는 것은 자존심을 꺾는 일이었다.

“그러고 싶어도 이미 천마신궁과 인근 백 리에 천라지망이 펼쳐졌소. 이를 어찌 뚫고 나간단 말이오?”

관패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해결책을 물었다.

한두 명의 고수라면 모를까 그들의 세력은 무려 오천 명에 이르는 대병력이었다.

신궁 내원의 총병력 만 명 중 절반.

그들은 절대 잃어선 안 되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있어야 향후 신궁 외부에 파견된 마인들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허. 그간 비밀 통로는 쥐새끼들이나 이용하는 쥐구멍이라 치부했었는데 참으로 안타깝군. 이런 때 본가에 비밀 통로가 있었다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을…….”

구양패는 진심으로 한탄했다.

패도는 죽을지언정 도망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자신이었다.

한데 오천에 이르는 형제들과 식솔들의 목숨이 달리니 신념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비밀 통로. 있습니다.”

일월이 앞으로 나서며 구양패와 관패에게 말했다.

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신궁 내에 비밀 통로가 있어?”

“혹시 적월들이 이용하는 통로가 있는가? 하나 오천 명이라는 인원이 한 식경 내에 대피할 수 있어야 하네.”

철옹성이나 마찬가지인 천마신궁에 비밀 통로가 있는 것은 놀랍지만, 지금의 병력을 수용할 정도가 아니라면 쓸모가 없었다.

“규모는 충분할 겁니다. 과거 마교에서 신궁의 토대를 쌓을 때 만들었던 곳이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