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96화>
‘뭐…… 뭐야 이 짐승들은?’
얼핏 보기에도 영물로 보이는 네 마리 거대 원숭이들.
한데 마치 무인처럼 각자 병기를 지니고 있었다.
‘쌍도, 곤봉, 필가차, 쌍절곤이라니…….’
모두 평범한 무림인들이 쓰는 무기가 아니었다.
먼저 쌍도. 강호에는 쌍검을 사용하는 무인들은 더러 있지만 쌍도는 드물었다.
도라는 무기 자체가 단순함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병기를 사용하는 것은 변칙적이고 변화에 무게를 두기 위한 것.
쌍검은 몰라도 쌍도는 그 의도에 걸맞지 않은 선택이었다.
두 번째인 곤봉. 이는 소림을 제외하고는 사용하는 문파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라리 창을 사용하면 했지, 살상력이 떨어지는 곤봉은 생사결에서 불리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통짜 철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니 나무 곤봉보다는 낫겠지만 중량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필가차와 쌍절곤은 두말하면 입 아픈 삼류병기들.
떠돌이 낭인들이나 사용할 법한 변칙성 무구일 뿐이었다.
“소림에서 키운 반려 영물인가?”
남궁진이 이두한백에게서 풍겨지는 익숙한 기운을 느끼고 물었다.
은은한 황금빛과 정기는 분명 불가기공이었다.
영물에게 소림의 기공을 익히게 하다니 실로 파격적이라고 생각을 하는 남궁진이었다.
“하여튼 껍데기만 보는 새끼들이라니까.”
적사결이 이죽거리며 내뱉었다.
남궁건이나 남궁진이나 제멋대로 오해하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아니라는 말인가?”
“몰라, 새끼야. 네 좆대로 생각해.”
그러고는 남궁진을 무시하고 이두한백에게 명했다.
“저 새끼들 다 조져 버려.”
-크아아아아!”
우렁찬 포효와 함께 네 줄기 녹색 번개가 창궁검대 사이로 돌진했다.
선두에 선 이백의 두 자루 도가 현란하게 춤을 췄다.
마치 전설 속 아수라가 된 듯 팔이 여섯 개로 늘어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촤좌좌좌작.
변화가 아닌 제각각 움직이는 두 자루 도.
그럼에도 각각의 투로가 얽히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단순했다.
마치 두 명의 뛰어난 도객이 합격진을 구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이백의 도법에, 선두에 선 창궁검수 다섯이 순식간에 토막이 났다.
그러고는 더 깊게 진입하려 도기를 뿌리는 그때였다.
-쿠오오!
중앙에서 두보가 이백을 제지하며 철봉을 찔렀다.
장병기의 이점을 살려 이백 뒤에서 뿌린 철봉에 달려들던 창궁검수 두 명의 머리통이 박살났다.
그러고는 이어진 지시에 좌우의 한유와 백거이가 전선을 밀어붙였다.
금강나한기공의 호신강기를 두르고 수십 개의 검기를 몸으로 받아 내는 한유.
접근전이 되고는 필가차로 사정없이 적들을 찔러 댔다.
퍽. 퍽. 퍼퍽.
보통의 필가차는 단병.
하나 거체인 한유의 몸에 맞게 만들어진 전용 필가차는 일반적인 철검 수준으로 길었다.
그 덕에 한 방에 한 명씩 격살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반대쪽 백거이의 전투는 몸으로 공격을 받아 내고 되받아치는 한유와는 정반대였다.
빠바바바박.
그야말로 작은 태풍이 소용돌이치는 듯한 현란함.
짓쳐 드는 검을 쳐 내는 동시에 부러뜨림은 물론, 연환 쌍절곤으로 상대의 전신 뼈를 박살내었다.
쾌속의 아라한신공을 백분 발휘한 극쾌의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좌우가 밀려나 창궁검수들이 중앙으로 모이자 이백의 보호를 받으며 힘을 모으던 두보의 안광이 번득였다.
후아아앙.
마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며 두보의 철봉에 빨려 드는 듯했다.
무상대능력의 강기를 터질 듯 담아낸 필살의 일격.
세인들은 농담 삼아 소림 방장이 익히는 무상대능력을 다른 말로 무쌍대능력이라 부른다.
그만큼 강맹한 위력이 무상대능력의 장점이었다.
꽈과과과광.
일직선으로 뻗은 강기폭풍이 창궁검대를 휩쓸었다.
수십 겹의 검막은 종잇장처럼 찢기고 박살나며 그 앞을 막지 못했다.
하나 마지막 한 겹의 방어는 달랐다.
꽈아앙.
지축이 뒤흔들리는 것 같은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갈라지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남궁진이었다.
검막을 뚫으며 약해진 두보의 공세를 일검에 잘라 낸 것이었다.
“쿨럭. 커흡.”
충분히 대비했음에도 각혈할 정도로 미친 파괴력.
남궁진은 내장이 뒤집어지는 듯한 충격에 정신이 아찔했다.
“일 조. 가주님을 모시고 퇴각하라. 뒤는 우리가 맡겠다.”
대주의 명이 떨어지자 일 조는 반박도 없이 신법을 발휘했다.
그들도 순식간에 창궁검대 절반을 도륙한 괴물들을 눈앞에서 보았기에 가주의 목숨을 살리려면 그 수밖에 없다 판단한 것이다.
가주의 목숨은 곧 남궁세가의 목숨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크르릉.
이백이 앞으로 나서며 나직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즉시 백거이가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일 조와 남궁건의 뒤를 쫓은 것이다.
‘빌어먹을…….’
남궁진은 백거이를 보고도 움직이지 못했다.
선두에서 쌍도를 든 괴물이 눈빛만으로 자신들의 움직임을 묶었기 때문이다.
“쳐라! 더 이상 한 마리도 가주님께 향할 수 없도록 목숨을 걸어라!”
피를 토하는 남궁진의 명에 창궁검수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검을 뿌렸다.
이백과 두보, 한유도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며 그에 맞섰다.
“사월아, 왔느냐.”
적사결은 이두한백의 싸움을 지켜보다 불현듯 내뱉었다.
그러자 바닥에서 쑤욱 하고 검은 인영이 솟아올랐다.
“주군,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그간 저 녀석들을 돌보느라 고생 많았구나.”
“아닙니다. 서 선생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는걸요.”
“한데 저 녀석들 털 색깔이 왜 저렇게 바뀐 거냐? 분명 흰둥이였거늘…….”
“녹주독혈사라는 영물을 잡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말로는 녹주독혈사의 독은 천하에서 으뜸가는 절독 중 하나이기에 만독불침이 되었을 것이라 하더군요.”
“만독불침? 허허. 대단하군.”
무림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독이다.
절대 고수라도 극독에 당한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하니 만독불침은 꿈과 같은 경지나 다름없었다.
“그건 그렇고, 저 덩치는 어찌 저렇게 커진 거냐? 뭐 특별한 것이라도 먹은 게야?”
짐승들은 성체가 되는 기간이 짧다지만 헤어진 지 몇 달 만에 저 정도라니.
상식을 벗어난 성장이었다.
“그것이…… 저 녀석들이 주군께서 맡기신 영약들과 서 선생께서 제조하신 영단, 그리고 태행산맥 인근의 영물들까지 거의 다 취했습니다. 선생의 말로는 그 많은 기운들을 소화하기 위해 급격한 성장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하셨습니다.”
사월의 설명을 들은 적사결은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대…… 대환단과 만년삼왕, 그리고 공청석유까지 다 먹었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른 건 몰라도 그 세 가지는 천고의 영약이다.
적사결은 아껴 뒀다 본신을 되찾은 후 먹으려고 했던 것들이었다.
그것들만 다 취한다면 무허의 오 갑자 공력에 못지않은 막대한 내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죽여 주십시오, 주군!”
사월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고했다.
적사결은 관자놀이를 짚으면서 이백, 두보, 한유의 싸움을 보았다.
녀석들은 남궁세가의 주력 부대인 창궁검대를 말 그대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일어나. 공짜로 얻은 것들로 저만한 놈들을 키웠으니 상을 받아야지, 죽긴 왜 죽어.”
적사결이 사월의 등을 두드리며 수고했다는 치하를 했다.
사월은 감격하며 품에서 광목천으로 만들어진 주머니를 꺼내 내밀었다.
“주군. 다행히 녹주독혈사의 내단은 챙길 수 있었습니다. 서 선생의 말로는 지니고 있으면 피독주의 역할을 할 것이고, 취한다면 만독불침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 피독주?”
적사결은 흥미로운 눈으로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천축유가신공으로 독을 배출하고 빠른 해독 능력을 지니게 되었으나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적사결이 내단을 꺼내 이리저리 돌려 보며 관심을 가지자 삼월은 사월에게 인사했다.
“사월, 오랜만이네.”
“그러네.”
사월은 가늘게 뜬 눈으로 웃으며 답했다.
둘은 적월 내에서도 경쟁 관계에 있었다.
오월과 함께 단 세 명만이 여인인 상황에서 삼월과 사월은 특히나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었다.
“하북은 내 관할지니까 넌 그만 가보는 게 어때?”
삼월이 날카로운 눈을 뜨며 말했다.
‘주군을 모시는 데 나 혼자면 차고 넘쳐. 넌 그만 사라져 주겠니?’
삼월의 그런 속내를 눈빛으로 읽었다는 듯 사월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어쩌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이두한백 저 아이들, 내가 없으면 안 되는데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날 어미로 생각하거든. 물론 아비는 누구라 생각하는지 말 안 해도 알겠지?”
사월이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삼월은 도끼눈을 뜨며 되물었다.
“다 컸는데 무슨 어미 타령이야? 독립해도 되겠는데. 그리고 하남을 그렇게 비워도 돼?”
“몸은 다 컸는데 하는 짓은 아기라 내가 주는 밥 아니면 입에도 안 대니까 그렇지. 그리고 하남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하북이나 신경 쓰지 그래?”
두 여인의 눈에서 파직거리며 불꽃이 튀었다.
“그만들 하거라. 너희들은 아직도 그렇게 티격태격하느냐.”
적사결이 보다 못해 두 사람을 책했다.
“본 좌가 없을 때 녀석들을 제어할 사람이 필요하니 사월이는 당분간 함께 하거라.”
“네! 주군!”
사월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포권했다.
반면에 삼월은 똥 씹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호오. 벌써 끝난 건가.”
적사결이 다시 고개를 돌리니 싸움판은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세 마리 원숭이들은 병기에 묻은 피를 털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월아. 저 녀석들 어찌 병장기를 쓰는 것이냐? 심법에 맞는 초식을 가르치라 하지 않았느냐?”
반야신공, 무상대능력, 금강나한기공, 아라한신공의 심법 기초를 잡아 준 적사결이었다.
이후 초식 부분은 비급에 따라 가르치라 지시했거늘 돌아온 결과는 생각지도 못한 병기술이었다.
“서 선생께서 초식을 가르치려 백방으로 노력하셨지만 불가능했습니다.”
“내 새끼들 지능이 그리 떨어질 리 없는데.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저 녀석들 어미는 일류 고수 못지않은 초식을 사용했었다.”
“어…… 어려서 그런 건 아닐까요?”
사월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리고 서 선생께선 사람이 만든 초식은 결국 사람에게 맞춰진 것이라, 저 아이들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했습니다. 결국 저 아이들이 인근 영물들과 싸우며 직접 심법에 맞는 움직임을 독자적으로 체득했고요.”
사월의 설명을 들은 적사결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쩌면 야생의 본능일지도 몰랐다.
사람의 범주에서는 알 수 없는 타고난 감각 말이다.
“하면 그 움직임에 맞게 병기를 쥐여 준 것이구나?”
“네. 서 선생께서 성체가 된 녀석들의 몸에 맞는 것을 제작해 주셨습니다.”
적사결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세 마리 원숭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멀리서 날듯이 뛰어온 나머지 한 마리.
남궁건의 뒤를 쫓았던 백거이가 다시 돌아왔다.
“놓친 것이냐?”
-크릉.
분명 필사적으로 막았을 터.
더구나 놈들의 뒤를 따랐던 팽가의 애송이들이 있었으니 백거이를 방해했음이 분명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구나? 흐흐. 검제 놈 속이 꽤 뒤틀리겠어.”
적사결은 백거이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물체를 보며 끌끌 웃었다.
그 손에는 남궁건의 반려 영물인 뇌조의 목줄기가 잡혀 있었다.
주인을 해하려는 백거이를 막다 도리어 잡혀 버린 것이었다.
-크릉. 크르릉.
백거이가 뇌조를 들어 올리며 먹어도 되냐는 듯한 눈빛으로 그르렁거렸다.
“내단만 빼놓고 나눠 먹거라. 푸하하하.”
두 눈과 반려 영물, 창궁검대까지 잃은 남궁건이라니.
적사결은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꽤애애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