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94화>
“대주님, 어찌합니까? 보고만 있을 생각이십니까?”
창궁검대 대원들은 한목소리로 남궁진에게 물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주군인 남궁건의 싸움에 불안감을 가진 상태였다.
“지켜본다.”
남궁진의 대답에 대원들은 침음을 삼켰다.
늑대 괴물의 엄청난 공격에 남궁건의 호신강기가 출렁이며 그 형태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내공이든 체력이든 한계에 부딪혔다는 방증인데 대주는 지켜보자니 가슴이 답답했다.
“너희들의 마음은 이해하나 섣불리 개입할 수는 없다. 소림의 후기지수 한 놈을 상대하는 데 가주님과 우리들 창궁검대가 모두 나섰다는 사실이 알려져 보거라. 가주님은 물론이고 천하제일검가로 불리는 본가의 명성도 땅바닥에 떨어질 것이 자명하지 않느냐?”
실체는 없으나 명성을 얻음으로써 가질 수 있는 힘도 있다.
남궁세가는 그런 명성을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가지를 가진 명문가였다.
천하제일검가, 오대세가의 수좌, 천하십대고수를 배출한 가문, 천하제일금력을 지닌 문파 등등.
안휘성의 패자지만 천하를 대상으로 한 수식어가 자연스러운 이들이 남궁세가였다.
그로 인해 얻는 이점을 가장 잘 아는 곳 또한 그들이다.
“무엇보다 가주님도 우리들의 도움을 원치 않으실 것이다. 아직 완전히 패색이 짙은 것도 아니니 지켜들 보자.”
“패색이 짙지 않다니요?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금방이라도 호신강기가 깨질 듯 위태로웠다.
방호기공이 깨지면 당장이라도 다진 어육을 생각할 정도로 늑대 괴물의 공세는 거칠었다.
“발밑을 보거라.”
“예?”
대원들은 늑대 괴물과 가주의 발밑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굉음이 날 때마다 방사형으로 금이 가는 것은 물론,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푹푹 파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범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설마 저 엄청난 공격을 흘려 내고 계신 겁니까?”
한 대원의 물음에 남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에 익숙해지니 화경으로 위력을 죽이고 힘을 바닥으로 흘려 내고 계신 것이다.”
하나 남궁진은 속내를 있는 대로 꺼내지 못했다.
비켜 낸 힘만으로 저만한 크기의 흔적을 발밑에 만들려면 직격은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아무리 천하십대고수라도 적중당한다면 즉사를 면치 못하리라.
‘심력의 소모가 상당하실 텐데 괜찮으실지 모르겠구나…….’
마치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은 생사의 갈림길.
조금이라도 실수한다면 그대로 황천행이었다.
‘아니야. 괜찮으실 것이다. 천하에 단 세 명만 존재하는 위대한 무인이신 가주께서 질 리가 없어.’
무패 전설을 써 내려가는 주인공 중 한 명이 남궁건이다.
남궁진은 늘 그렇듯 그가 그 기록을 갱신해 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소가주는 괜찮으냐?”
무호십객의 일인 이극의 물음에 철갑기린대 대원 중 하나가 답했다.
“침투한 암경에 기혈이 뒤틀려 정신을 잃으셨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 갑옷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겠지. 참으로 다행이구나.”
이극은 팽천기와 백류혼의 싸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만일 흉갑이 없었다면 팽천기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했다.
‘설마 천기를 압도할 정도라니. 백천악도 그 나이에 그 정도는 아니었건만 실로 엄청난 놈이 후계자가 되었구나.’
이극은 날카로운 눈으로 반대편에 있는 백류혼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쪽에서 경천동지한 싸움을 벌이는 두 괴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극의 시선도 그쪽을 향했다.
‘이상한 변신술을 쓴 저놈은 소림 출신이라 했었지. 이거 하룻밤 사이에 천기를 능가하는 후기지수가 두 명이나 나타나다니.’
심지어 소림의 속가 놈은 창궁검제와 자웅을 겨룰 정도.
젊기에 후기지수라 불렀지만 이미 그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저 나이에 저만한 무위라면 천기가 앞으로 얼마나 강해지든 무리다. 다음 세대도 정파의 기둥은 소림이겠구나.’
이극은 저만한 실력자를 지금껏 감추고 있던 소림의 저력에 전율했다.
천년소림이라 불리는 무림의 태산북두는 취불에 이어 이번에도 일대종사를 배출한 것이었다.
* * *
“마공 중에 저런 무공이 있었나?”
백류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야차혈전대가 말했던 그것이 분명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본 련이 파악한 바로는 없습니다. 고대에 존재했던 여러 술법 중에 둔갑술이라는 것이 있다는 문헌은 본 적이 있지만 저자가 보인 현상과는 달랐습니다.”
청령은 막힘없이 머릿속 지식을 술술 읊었다.
과연 정보를 다루는 흑야귀령대의 수뇌부다웠다.
“그럼 창안 무공이란 얘기잖아? 무공의 천재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굉장하군…….”
백류혼은 감탄 어린 시선으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그가 창안한 광혈수라공은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공입니다. 수라진결이라는 희대의 마공 덕분에 무공을 창안하는 데 천마신교만큼 뛰어난 문파는 없다지만 그래도 대단한 인물이지요.”
흑야귀령대의 최우선 첩보 대상 중 하나인 천마신교의 교주, 광혈존 적사결에 대한 정보다.
이는 사무련주 백천악의 엄명이었기에 그들은 천마신교의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보를 입수했었다.
“소싯적 적랑대를 이끌고, 천마신교 사상 최연소 대주에 오른 그는 사막의 혈풍으로 불릴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천마신교에는 수많은 타격대가 있었지만 적랑대만큼 위명을 떨친 부대는 없었죠.”
“그랬나? 흑랑대도 있지 않았나?”
천하사대세력에 대한 기본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후계자 수업의 기본.
백류혼은 천마신교에 대한 과거사 중 흑랑대를 기억하고 물었다.
“흑랑대는 당시 마교의 최정예 타격대로 사대세력의 주력 부대가 준동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해서 궂은일은 적랑대가 도맡아 했고 워낙 일 처리가 빨라 많은 풍문을 남겼습니다. 그 소문들은 그대로 적랑대의 명성으로 이어졌고요.”
“아하! 세다고는 해도 움직이지 않는 흑랑대보다 동분서주하는 적랑대가 더 무서웠던 거군.”
“가까이 있는 주먹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요.”
청령의 대답을 들은 백류혼은 고개를 주억거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한데 청령. 그는 비밀 회동 사건으로 아버지에게 큰 부상을 입고 적랑대도 모두 잃었잖아. 한데 흑랑대를 제치고 어떻게 교주가 된 거지? 흑랑대주도 꽤 고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 지금은 사마오대존의 일인인 마령존 흑사광이 당시 흑랑대주였죠. 소교주로서 광혈존과 경쟁했던 호적수였고 말입니다.”
“그런 자를 어떻게 이긴 거지?”
“그것까지는 저희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천운으로 생사 신의를 만나 몸을 회복했고 단신으로 흑랑대와 흑사광을 패퇴시켰다 합니다.”
“젊었을 때도 괴물이었네…….”
백류혼은 질린 눈으로 싸움이 한창인 적사결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기에 마령존 흑사광은 전대 마교주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 혈통에 어울리게, 당시 마교의 대표 후기지수였고 지금은 사마오대존의 일인이었다.
그런 능력자와 배경을 혼자서 이겨 내고 교주에 오른 것이다.
‘마령존은 당시 광혈존에게 패배하고 천마신교를 떠났다 했었지, 아마.’
이후 흑랑대를 이끌고 강호를 주유하며 마령존이라는 별호를 얻고 사마오대존으로 불리게 된 흑사광.
그는 아직까지 세력을 가지지 않고 은거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었다.
이인자가 되면 부교주라는 직책을 얻었던 과거의 마인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은 교주의 아들이란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란 소문만 무성했다.
“어쨌든 잘 봐두자. 저런 괴물을 우리 영감이 생사대적으로 찍었으니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련주님께서요?”
“내가 말 안 했었나? 저자와 못 다한 승부 때문에 영감이 날 이렇게 놔두는 거야. 내가 나중에 둘이 붙을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했거든.”
“그걸 왜 이제야 말씀하십니까?!”
“어쭈? 왜 목소리를 높여? 언제 나한테 물어봤냐?”
계급이 깡패다.
청령은 그 중요한 일을 입 다물고 있던 백류혼이 답답했지만, 더 대꾸하지 못하고 적사결의 싸움에 집중했다.
그제야 련주께서 광혈존에게 관심을 둔 이유를 알게 된 청령이었다.
‘설마 생사대적으로 여기고 계셨다니. 그걸 왜 몰랐을까.’
그저 사대세력의 수장이라 신경 쓰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광혈존 적사결은 비밀 회동 당시 지금의 련주에게 패배하고 수하들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었다.
완벽히 이겼는데 패자를 생사대적으로 여긴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자신은 주군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었다.
* * *
뒷담화에 귀가 간지럽다.
적사결은 남궁건의 호신강기를 두들기는 와중에도 주변의 대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뛰어난 청각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백천악이 날 생사대적으로 여겨?’
놈에게는 제법 큰 빚이 있었다.
언제고 갚아 주고 싶었는데 놈도 그때의 일을 염두에 둔 모양이었다.
‘저 애송이 놈이 있으니 홀가분하게 싸울 수 있다 이거군. 이거 나도 후계를 빨리 세워야 하나.’
수장이라는 직책을 벗어던지고 싸울 수 있는 자리.
그 자리여야만 놈과 자신의 못 다한 승부를 결착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청령과 백류혼이 언급했던 인물이 떠올랐다.
‘흑사광, 그 인간이 맡아 주면 좋을 텐데.’
사실 후대를 어느 세월에 잇는단 말인가.
전대 교주의 아들이자 사마오대존으로 불릴 정도로 극강의 마인이 흑사광이었다.
자신을 대체하기에 그자만큼 적합한 인물은 없었다.
‘적월에게 한번 찾아보라고 해야겠다. 하나 그것은 나중 일이고 일단 눈앞의 놈을 처리해야겠지.’
화경의 묘리로 공세를 받아넘기는 남궁건.
진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지만 기회를 노리는 눈은 매처럼 매서웠다.
‘질긴 놈.’
반격은 못 하지만 수비를 굳히고 기회를 노리는 인내심이 대단했다.
수세에 몰렸지만 역전을 노리는 정신력은 높이 사는 적사결이었다.
‘이것도 버텨 봐라.’
역전의 기회는 상대가 큰 걸 노릴 때 오는 법.
적사결도 그걸 알기에, 남궁건에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주변 일대 전부를 대상으로 했다.
광역기인 혈겁멸세의 초식으로 폭발 범위에 남궁건을 넣은 것이었다.
꽈과과광.
사왕에 의해 증폭된 강기가 터져 나가고 반경 수십 장이 벽력탄을 터트린 듯 터져 나갔다.
이후 드러난 남궁건의 몰골은 처참할 지경이었다.
뚝. 뚝.
상의가 다 너덜너덜해진 채 피투성이가 된 창궁검제.
두 눈의 핏줄도 터졌는지 혈안이 된 남궁건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것은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분노에 치를 떠는 것이었다.
‘감히…… 감히…… 사술로 나를 이 꼴로 만들어?!’
괴물로 신체를 변화시키는 괴공.
남궁건이 보기에 그것은 절대로 정종 무공이 아니었다.
더구나 초식 역시 살기가 짙음은 물론, 지나치게 패도적이고 공격적이었다.
도저히 소림의 신공인 보리연화공이라 생각이 들지 않은 것.
남궁건은 상대가 소림의 후기지수란 생각을 버렸다.
“죽여 버리겠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말투.
남궁건은 한쪽 팔을 옆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화식조와 싸우던 뇌조가 선회해 하강하더니 남궁건의 팔에 내려앉았다.
그 모습에 남궁진이 기겁하며 외쳤다.
“가주님! 안 됩니다!”
하나 그 외침을 무시한 남궁건은 뇌조로부터 시작된 뇌기를 두르며 푸른빛에 휩싸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