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93화>
쉬아아악.
황금빛 궤적을 남기며 날듯이 달려온 이는 적사결이었다.
그 한참 뒤에는 삼월이 처졌지만 열심히 쫓아오고 있었다.
십 장까지 다가온 적사결은 방진을 형성하고 있는 철갑기린대를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경공으로 공중제비를 돌며 착지했다.
“네가 남궁건이냐?”
창궁검제와는 초면.
아니, 그만이 아니라 오대세가주 모두와 한 번도 일면식이 없었다.
의천맹에 속했지만 그들은 항상 사무련만 상대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하나같이 예의범절을 모르는구나! 네 이놈! 기운을 보아하니 소림의 속가제자인 듯한데 감히 신룡검의 주인을 보고도 무뢰배 같은 행동을 취하느냐!”
남궁건은 신룡검을 바닥에 박아 넣으며 호통쳤다.
천하십대기병의 하나인 신룡검은 남궁세가주의 신물.
다른 문파라면 몰라도 정파에 속한, 그것도 정파의 기둥이라는 소림의 제자가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신룡검이면 맞구나, 창궁검제 남궁건.”
“……이이.”
까마득한 배분이 분명하건만 이런 개망종 같은 태도라니.
구파일방이 쇠퇴한 지금까지도 정파의 기둥으로 불리는 소림의 제자이기에 더욱 분노가 솟구쳤다.
도가와 불가, 남궁건에게 그들은 산구석에 처박혀 신선놀음이나 하는 한량이나 다름없었다.
나이를 떠나 그런 놈이 자신을 무시한 것이다.
“내 네놈의 사지근맥을 자르고 소림에 죄를 물을 것이다!”
“그러든지.”
그래 주면 고맙지.
치링. 쇄애액.
선수필승.
도집을 긁으며 발도한 사왕이 거력을 품고 공간을 베었다.
이미 금단을 먹었기에 공력은 충만한 상태였다.
쩌어어어어엉.
남궁건 역시 천하십대고수의 이름이 아깝지 않게 신룡검을 마주했다.
두 기병의 부딪힘과 기공의 충격파에 대지가 뒤틀리고 갈라지며 하늘로 비산했다.
“네놈은 누구냐!?”
자신이 알기에 도를 쓰는 소림의 속가제자는 없었다.
불제자인 그들은 속가라 할지언정 날붙이를 쓰지 않았으니까.
한데 눈앞의 사내는 불가기공을 사용하며 이형도를 다루고 있었다.
“알 것 없어. 당신은 오늘 무명의 신인에게 져야 하니까.”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자에게 무패 기록이 깨지는 것.
그냥 지는 것이 아닌, 새파란 애송이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고 알려지는 것이 적사결의 목적이었다.
“중놈들이 꽤 거창한 꿈을 꾸는 모양이구나. 하나 뜻대로 될 성싶으냐.”
소림의 대표 무승인 무허대사의 나이는 세수 팔십.
점차 입적할 시기가 다가오니 이후에 내세울 간판이 필요한 것일 터.
소림의 신예가 의천오무제의 일인에게 도전해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그야말로 강호의 신성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상황도 보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오늘 본 좌에게 도전한 일은 사무련의 후계자를 비호한 것으로 강호에 알려질 터이니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 적사결은 씨익 웃었다.
아주 멋대로 소설을 써 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창궁검제가 검이 아니라 입으로 싸우자는 건가?”
치이잉.
사왕을 비틀며 신룡검을 튕겨 냈다.
하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꼬인 적사결의 팔.
그러고는 다시 풀려나며 전면으로 폭풍이 몰아쳤다.
광풍폭살이었다.
쩌저저저저정.
검막을 전개한 남궁건의 방어는 완벽했지만 광풍폭살의 위력에 다섯 보나 밀려났다.
천축유가신공의 공능으로 급조한 초식이었지만 파괴력만큼은 천하십대고수를 물러서게 만들 정도였다.
‘이 무슨 괴의한 초식이란 말인가.’
연체동물도 아니건만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넘어선 공격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공세에 남궁건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대가 소림 출신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쉬쉬쉬식.
남궁건의 생각을 끊는 듯 적사결의 검초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광혈수라공의 수라천살검 연환초인 격혈경혼이었다.
따다다다다당.
하나 검제라 불릴 정도로 검의 대가.
그 역시 마주하는 연환검의 속도와 위력이 명불허전이었다.
‘이 자식 점차 가속하잖아.’
적사결은 남궁건의 움직임에서 그가 검속만이 아닌 발을 쓰는 것을 눈치챘다.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찰나에 사용하는 이형환위.
순간적으로 거리감과 속도감에 혼란을 주는 초상승의 수법이었다.
‘나도 쓸 수 있는데, 씨발…….’
상대의 공간을 제압하고 자신의 공간을 지키는 것이 무의 기본.
그것을 효율적으로 득할 수 있는 절대 고수들의 전유물이 남궁건이 보이는 수법이었다.
하나 지금의 적사결은 무리였다.
검초를 쓰며 이형환위까지 조절해야 하는 내공 운용의 극치.
보리연화공의 운공요결을 모르는 지금으로서는 내공의 수발이 완벽하지 않았다.
촤아악.
결국 대처하지 못한 검격에 앞섶이 갈라지며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물러난 적사결은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짚었다.
‘역시 하수들을 상대할 때와는 다르구나.’
아무리 높은 전각이라도 대들보 하나가 빠져서는 전체적으로 삐걱댈 수밖에 없는 이치.
낮은 위치에서는 없던 흔들림도 꼭대기에서는 지진이 난 것처럼 요동치는 것이다.
‘이상하구나. 초식의 깊이는 뛰어난데 연계가 불안정하다니…….’
남궁건은 상식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상단 베기와 횡 베기는 일품이나, 두 가지를 이으면 삐걱대는 모양새랄까.
극히 미미한 빈틈이었지만 상대의 초수가 동급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신기한 놈이로구나.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 네놈 사부가 누구더냐?”
불가사의한 놈에 대한 호기심에 물은 질문이었다.
“소림에서 누가 날 가르칠 수 있을까?”
소림 따위가 마도지존을 가르칠 수 있냐는 의미지만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르다.
적사결은 일부러 애매하게 대답했다.
“역시 취불이로군. 누가 괴승 아니랄까, 제자도 희한한 놈을 들였어.”
남궁건은 무허대사가 아니라면 이 정도 후기지수를 키울 수 없다 여겼다.
인성은 괴의하지만 실력만큼은 정도제일인인 것을 자신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운도 취불과 비슷하구나.’
의천맹의 공식 행사에서 몇 번인가 만난 적이 있었기에 무허대사의 기운은 견식한 바가 있었다.
더구나 소림승 중에서 일인 전승의 보리연화공을 익힌 유일한 자이기에 그 특유의 기운은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보리연화공. 내 언제고 그 무공을 상대해 보고 싶었는데 잘되었구나.”
지이잉. 크르르릉.
신룡검에 검강이 일어나자 용울음과 같은 창룡음이 발생했다.
기공이 더해지면 상대의 심혼을 뒤흔드는 음공을 발하는 신룡검.
천하십대기병에 속한 네 자루의 신검 중 하나였다.
‘신룡검이라…… 적령을 지니고 있었다면 좋은 승부가 되었을 텐데 아쉽군.’
적사결의 애병, 적령검 역시 천하십대기병 중 하나였다.
세인들은 네 자루의 신검 중 어느 쪽이 위인가 항상 떠들어 댔지만 한 번도 겨뤄 본 적 없기에 설전만 무성할 따름이었다.
“나 역시 그 신룡검이란 거 부러뜨려 보고 싶었는데 잘되었어.”
적사결이 히죽거리며 강기를 일으켰다.
사왕의 도신에서는 물결 무늬의 도강이 형성되어 찬란한 황금빛을 뿌려 댔다.
“애송이가 패기는 좋구나. 내 오늘 이후 네놈이 본가의 표식만 봐도 벌벌 떨게 해 주리라.”
남궁건의 신룡검이 천지를 울리는 포효를 발했다.
남궁세가의 대표 검공인 창궁무애검법, 풍인뇌절의 참격이 폭풍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쩡. 쩡. 쩌정. 쩌저정.
적사결은 수라천살검의 수비초인 귀문혈천의 수법으로 전면 방어에 나섰다.
하나 소극적인 방어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사왕의 공능으로 증폭된 도강이 참격을 부수고 남궁건에게까지 향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공격을 되받아친 듯한 모양새였다.
보통이라면 공세를 뿌린 후의 일시적인 힘의 공백 때문에 당하는 것이 일반적.
하나…….
쩌저저저정.
번개같이 검을 거둔 남궁건은 도강을 모두 받아쳤다.
공방 일체의 자연스러움.
절대 고수에게 공격 후 생기는 빈틈 따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이형도. 생긴 것만 특이한 것이 아니로구나.”
남궁건은 지금의 한 수가 무구에서 비롯된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혹시 지금 탐내는 건가? 꽤 음흉한데?”
눈빛에 일렁이는 탐욕은 감추는 기색도 없이 노골적이었다.
“신룡검과 마주해도 흠집 하나 없고 그만한 공능이 있으니 어찌 탐이 나지 않겠느냐? 수업료로 받기엔 딱이겠구나. 흐흐.”
“수업료? 있는 놈들이 더한다더니.”
휘주상인의 지원 덕분에 천하제일금력을 지닌 가문이 남궁세가일진데 코 묻은 돈을 입에 올리다니.
“네 녀석의 실력이 제법이라 수업료를 안 받을 수가 없구나. 흐흐흐.”
“하긴 실력으로 따지면 남궁세가 기둥뿌리를 뽑아야겠지. 한데 수업료를 들먹이려면 일단 이겨야 하지 않을까?”
적사결이 이죽거리자 남궁건도 비릿한 미소로 답했다.
“제법이긴 하나 본신의 힘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놈이 자만심만 가득하구나.”
대환단 서너 개는 먹었는지 생각보다 높은 내공 수위.
취불이 창안했을 터라 짐작되는 고절한 초식.
신룡검 못지않은 신병이기.
그것이 놈이 가진 무기다.
하나 막대한 내공을 초수에 매끄럽게 연결시키지 못하는 미숙함이 모든 장점을 가리는 것이 자신의 눈에는 훤하게 보였다.
“다룰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일부러 안 다루는 거지. 연장자 우대 몰라?”
역시 모조리 꿰뚫어 보고 있다.
적사결은 호기롭게 말하고 있었지만 남궁건의 눈빛에서 천년 거목과 같은 묵직함을 느꼈다.
‘쫌생이 같은 놈이지만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해.’
성정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실력만큼은 중원에 나와 만난 어떤 자들보다 뛰어났다.
백천악의 사무련을 막아서는 오대세가의 수좌라 평가 받을 만했다.
“우대 따윈 필요 없으니 전력을 다해 보거라. 숨겨 놓은 실력이 더 있다면 말이다. 흐흐흐.”
남궁건은 네놈의 바닥은 다 보았다는 듯 거들먹거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한 시선.
적사결은 심기가 거슬리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새끼가.”
우드드득.
“감히.”
뿌득. 뿌득.
천축유가신공으로 전신에서 근육과 뼈의 기음이 연신 발생했다.
이는 잠재 근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잠재 근력으로는 남궁건을 압도할 수 없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뿌드드득.
적사결은 야차혈전대를 상대할 당시 선보였던 늑대 인간이 되려 했다.
내공의 수발과 초식의 연계에 미숙함이 존재하면 이는 외공, 강화된 육체 능력으로 메운다.
그것도 인외의 범주에 속하는 엄청난 힘과 속도로 노련함과 기술을 짓누르는 방법이었다.
“그딴 눈깔로 본좌를 내려다봐? 다시는 그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마지막 말을 내뱉은 후 주둥이와 송곳니가 나오며 변화는 끝이 났다.
붉은 늑대로 현신한 적사결.
적랑의태라 이름 붙인 천축유가신공 구성의 성취였다.
파팟.
순간 가속은 이형환위나 마찬가지.
그대로 휘두르는 일도는 저잣거리의 평범한 태산압정의 초식이었다.
하나 그 힘과 속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콰아아앙.
천둥이 치는 듯한 뇌성벽력.
신룡검으로 적사결의 일도를 막자 발생한 천지개벽을 알리는 듯한 굉음이었다.
‘이런 미친!’
본능이 주는 위기감에 반사적으로 막았다지만 손목이 부러지는 것 같았다.
남궁건은 진짜 태산이 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다급히 내공을 쏟아부었다.
부우우욱.
호신강기가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며 부풀어 올랐다.
둥글게 형성된 강기막은 사왕을 밀어 올리기까지 했다.
전력을 기울인 창궁검제의 절대 방어였다.
“크아아아앙!”
구슬 깨기 좋지.
박살을 내 주마.
콰아앙. 콰앙. 콰쾅. 꽈아아아앙.
연속으로 후려치는 사왕의 맹렬한 공격.
마치 초대형 범종 두 개를 서로 부딪치는 듯한 굉음이 대기를 쩌렁쩌렁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