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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92화 (92/206)

<기적의 이혼대법 92화>

백류혼의 공세가 멈춘 찰나.

팽천기는 보았다.

시퍼렇게 변한 그의 오른팔이 경련으로 부들거리는 것을.

‘지금이다.’

두 호흡만 더 길었어도 호신강기는 흩어져 버렸을 터.

다행히 최후까지 버틴 쪽은 자신이었다.

호신강기를 형성했던 기운이 기린도를 타고 흐르며 도강이 형성되었다.

팽천기로서는 최후의 일격을 위해 쥐어짠 힘이었다.

터엉.

오른발로 진각을 밟으며 경공을 시전.

부러진 왼쪽 허벅지 때문에라도 두 번은 없을 단 한 번의 질주였다.

이어지는 초식은 왕자사도 제삼도, 비호경파.

기린도가 그 투로를 따라 움직이는 그때였다.

스스슷.

일 장의 거리를 앞에 두고 경련하는 백류혼의 오른손이 다시금 흐릿해졌다.

환사결이었다.

퍼퍽.

팽천기의 얼굴에서 코피가 흐르며 고개가 뒤로 젖혔다.

‘그만한 공세를 멈췄다 다시 펼치는 게 가능하다고?’

팽천기는 믿을 수 없었다.

최대 한도로 발휘하는 힘을 지속시킬 순 있을지언정, 가해진 힘을 끊었다 다시 잇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한계 이상의 힘을 유지하던 중이 아니었는가.

가혹한 연환초로 시체처럼 변한 팔은 일부러 꾸며 낼 수 없었다.

‘침착하자. 방어, 방어를…….’

이를 악물고 젖힌 고개를 되돌린 팽천기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미 백류혼의 왼손이 자신의 가슴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가라, 거북아.”

퍼어어엉. 우지직.

가슴에 찬 흉갑이 우그러지며 일장을 얻어맞은 팽천기가 허공을 날았다.

그 뒤를 철갑기린대원들이 달려들며 팽천기를 받아 내었다.

“크윽…….”

백류혼은 파들거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며 인상을 찌푸렸다.

요상결을 동시에 써서 환사결을 연환으로 펼쳤지만 한계를 넘은 대가는 상당했다.

더구나.

‘못 죽였어. 젠장.’

마지막 환사결을 사용하며 내기가 꼬였기에 공력도 충분히 싣지 못한 것이다.

또한 팽천기에게는 또 하나의 구명 요건이 있었다.

‘저 갑옷도 비싼 거구나, 씨발.’

흉갑이 없었다면 비록 내상을 입었다 하나 죽일 수 있었을 터.

백류혼은 차라리 처음부터 파신결을 썼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자존심 대결이 되자 환사결에 매달린 것.

그 대가는 내상과 오른손의 부상이었다.

‘환사결의 성취가 오른 것에 만족하자.’

그래도 사투를 치른 보상은 있어 다행이었다.

“청령.”

백류혼의 부름에 철갑기린대와 대치중이던 청령이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저만한 놈을 상대하고 이 정도면 싼 거지. 괜찮아.”

“그래도 이번엔 좀 무모하셨습니다.”

“그런 것치곤 얼굴이 너무 태연한데?”

“당신께서 본 련의 후계자니까요. 어련히 알아서 잘하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청령의 대답에 백류혼은 피식 웃었다.

평소라면 후계자 따위 안 할 거라고 대꾸했을 테지만 왠지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만 가자. 더 무서운 놈들이 오고 있어.”

“예.”

백류혼은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힘껏 불었다.

-삐이이이.

신호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자 즉시 반응이 있었다.

-삐애애애액.

구름 아래로 나타난 황금빛 거조는 사무련의 수호신조, 붕아였다.

한데 한 마리가 아니었다.

반대쪽에서 나타난 새는 보통의 독수리만 한 크기였지만 붕아에 못지않은 존재감이 있었다.

그 새는 푸른 깃털에 뇌기를 품은 영물이었다.

“저건 뇌조? 설마?!”

한눈에 뇌조를 알아본 백류혼과 청령의 고개가 녀석이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뇌조는 남궁세가주의 반려 영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벅. 저벅.

오연한 발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접근하는 시린 안광의 중년인.

허리에 패용한 천하십대기병, 신룡검의 주인인 그는 의천오무제의 일인, 창궁검제 남궁건이었다.

*   *   *

“가주님, 가보지 않으셔도 괜찮겠습니까?”

걱정이 가득한 물음에 팽도극은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팽호운은 답답했다.

사무련의 후계자가 북경에 나타난 마당에 남궁세가주까지 직접 움직이는 상황이다.

더구나 그 사이에 소가주인 팽천기가 끼여 있는 형국.

아무리 뛰어난 무재라지만 아직은 새끼 호랑이이기에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운아, 초조한 모양이구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네 판단에 최악은 무엇이겠느냐?”

팽도극의 물음에 팽호운은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소가주가 놈에게 패하고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천기가 질 것 같으냐?”

“모르겠습니다. 놈이 파황무존의 진전을 얼마나 이었느냐에 따라 다를 겁니다.”

“뭐, 질 수도 있겠지. 역대 사무련주들은 하나같이 괴물이었으니.”

“가주님!”

“해서 무호십객을 보내지 않았느냐. 목숨이 위험하다 판단될 시 개입하라 일러뒀으니 죽지는 않을 게다.”

팽도극은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물었다.

“하면 차악은 무엇이겠느냐?”

“양패구상입니다.”

“그건 아닐 것이야.”

“어째서 그렇습니까?”

“천기 녀석은 깔끔하게 패배할지언정 동귀어진이나 양패구상처럼 애매한 결과를 싫어하거든. 더구나 녀석이 익힌 왕자사도는 기본을 갈고닦기 위한 도법. 기본에 무승부가 어디 있느냐. 이기든 지든 둘 중 하나지.”

“그럼 가주님께서 생각하시는 차악은 무엇입니까?”

“검제 그 친구가 손을 쓰는 거지.”

“예? 그게 왜 차악입니까?”

창궁검제가 직접 손을 쓴다면 소가주는 절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다.

아무리 새끼 봉황이 출중한 실력을 지녔다 하나 성체가 된 용을 상대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팽호운의 좁혀진 미간이 펴질 줄 모르자 팽도극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잘못 짚었다. 검제가 손을 쓰는 대상은 새끼 봉황만이 아닌 그 자리에 있는 모두야.”

“……!”

팽호운은 심장이 덜컥거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왜 검제가 팽가의 소가주를 해한단 말인가.

그것도 철갑기린대와 무호십객이라는 팽가의 가솔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검제 그 친구, 보기보다 음흉하거든. 천기의 실력을 보면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몰라.”

팽도극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아들의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가주님, 그건 차악이 아니라 최악이지 않습니까?”

“아니지. 그리되면 얻는 게 있지 않느냐.”

“얻는…… 것이라니요?”

“안휘.”

남궁세가의 영역인 안휘성.

하북성과 함께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하나 팽도극이 의미하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었다.

“본가의 소가주를 해한 명분이면 강호의 수많은 무가들이 본가를 도울 터. 꼴 보기 싫은 남궁씨를 말려 버릴 좋은 기회가 되겠지. 늘 오대세가의 수좌니, 천하제일검가니 거들먹거리는 모습에 속이 뒤틀렸는데 말이야. 큭큭.”

팽도극의 설명에 팽호운은 입을 열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후계자로서 최고의 자질을 지닌 아들조차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는 버릴 수 있다는 팽도극.

방계인 팽호운으로서는 닭살이 돋을 정도로 서늘한 욕망이었다.

“왜? 천륜을 저버리는 비정한 아비라 말하고 싶으냐?”

속내를 꿰뚫어 본 듯한 물음에 팽호운은 그늘진 얼굴만 한 채 입을 열지 못했다.

“하하하. 너는 아직도 우리 부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구나.”

“…….”

“천기도 알고 있다. 녀석은 소가주의 자리를 받은 순간 그 의미를 꿰뚫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녀석은 자신의 죽음이 본가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말이다. 새끼 봉황과 검제 사이에 무슨 음모가 있든 실력으로 돌파하면 그만. 그렇지 못하고 죽는다면 무인으로서 거기까지란 의미지. 하나 무인으로서는 죽지만 소가주로서는 죽지 않는다. 본가의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되어 영원히 살아 있을 테니 말이다.”

팽도극의 말에 팽호운은 숙연한 마음이 되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본가의 소가주를 믿으면 되는 것이다. 알겠느냐?”

팽가의 후계자에게 탄탄대로 따윈 없다.

그것이 하북의 호랑이로 이백 년을 이어 온 팽가의 저력이었다.

*   *   *

“간만에 좋은 구경이었다. 과연 사파의 신성이더구나.”

남궁건은 뒷짐을 진 채 백류혼을 직시하며 말했다.

“정파의 퇴물께서 사파의 신성에게 무슨 일이지? 구경 다 했으면 갈 길 가지 그래?”

백류혼은 입꼬리를 올리며 쏘아붙였다.

“어린놈이 입이 거칠구나. 백천악이 그리 가르쳤더냐?”

“어. 자기보다 약한 놈에게 기죽었다가는 아비 손에 죽을 줄 알라며 엄포를 놓으셨지. 당신, 우리 영감보다 약하잖아?”

꿈틀.

남궁건의 볼살이 이를 악문 듯 옅게 씰룩였다.

“본 좌가 백천악보다 약하다? 무슨 근거로 그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본 련과 오대세가의 수많은 분쟁 속에서 당신만 우리 영감과 끝까지 싸워 보지 못했으니까.”

“흥, 이래서 어린 애송이들이란. 쯧쯧. 수하들을 이끄는 집단전에서 그런 상황을 만나는 것이 흔한 줄 아느냐. 나 역시 백천악과 자웅을 겨루려 했으나 늘 십여 초를 주고받음에 안타까웠느니라.”

백류혼은 피식 웃으며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핑계지. 오대세가의 다른 가주들은 다 붙어 봤는데 당신만 아니라는 게 우연일까?”

“우연이다!”

남궁건의 말처럼 그것은 정말 지독한 우연이었다.

그도 그 사실에 화가 나 직접 일대일 비무를 요청한 적도 있을 만큼 말이다.

하나 하늘은 그와 백천악의 생사결을 아직까지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창궁검제가 아니라 천운검제라 해야겠는걸. 하늘이 도운 무패 기록 덕분에 오대세가의 수좌를 차지했으니 말이야.”

“백천악이 무공보다 말싸움을 먼저 가르쳤나 보구나. 도발이 제법이야. 어디, 무공은 어느 정도인지 좀 볼까?”

짙은 살기를 뿌리는 남궁건의 일보에 백류혼의 목울대가 출렁였다.

하나 엄청난 압박감에도 입은 닫히지 않았다.

“아깐 좋은 구경했다더니 벌써 매병(치매)인가 봐? 기억 안 나?”

“놈!”

푹, 촤악.

일수에 뿌린 검격이 순식간에 백류혼의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하나 내상을 입어 운기가 원활하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피할 수 없었다.

“일부러 죽이지 않았음을 알거라. 살려 달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그 명줄을 거둘 테니 말이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남궁건의 말에 백류혼은 이죽거렸다.

“핑계는!”

다시 볼살이 씰룩인 남궁건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하나…….

쩌어엉.

그 앞을 막아선 것은 청령이었다.

“도련님,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제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아서라. 넌 천운이 겹쳐도 일각도 못 버텨.”

“목숨으로 버틸 겁니다.”

“멍청아, 난 내상 때문에 못 벗어나. 너나 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십시오. 신조께서 곧 뇌조를 해치우고 오실 겁니다.”

청령의 말에 남궁건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저 빌어먹을 괴조 때문에 천하를 뒤져 찾아낸 영물이다. 말처럼 그리 쉬울 것 같으냐.”

수년의 싸움에서 이미 여러 차례 붙어 본 두 영물이었다.

덩치는 작을지언정 뇌조의 비행 속도는 화식조, 붕아를 상회하고 있었다.

이기진 못해도 신조의 움직임을 묶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영물이 뇌조였다.

“도련님, 어서 가십시오!”

청령은 남궁건의 말을 듣지도 않고 백류혼을 채근했다.

“비루한 희망을 품고 있구나, 사무련의 개여. 하면 먼저 가거라. 내 네놈의 주인을 곧바로 보내 줄 테니.”

남궁건이 처음으로 기수식을 취하며 신룡검을 들어 올린 그때였다.

“청령, 안 가도 될 것 같아.”

백류혼이 그 말을 내뱉자 남궁건도 그 의미를 아는지 신룡검을 내리고 우측을 보았다.

그 방향에서 엄청난 기도를 지닌 무언가가 접근 중이었다.

“당신 천운도 다한 것 같네. 저 사람 재수는 좀 없지만 존나 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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