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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91화 (91/206)

<기적의 이혼대법 91화>

“와, 내가 황궁에 와 보다니…….”

백리황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환락의 도시라는 소주에서 자란 그였지만 황궁이 주는 위압감과 장대함은 차원이 달랐다.

“백리 애송아, 촌티 좀 내지 말거라. 이거 원, 일행인 게 부끄럽구나.”

적사결이 핀잔을 주며 백리황을 반겼다.

진무백은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자기는 북경에 들어서자마자 입을 벌리고 다녔으면서…….’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이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 공주에게서 모든 편의를 봐주고 예를 지켜 깍듯이 대하란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역적에서 하루아침에 부마가 된 것만 같아 진무백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 진가 애송이. 속으로 욕하면 모를 줄 아냐? 또 그러면 작살날 줄 알아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하는 적사결은 귓구멍을 후비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뭐야, 저 인간. 관심법이라도 쓰는 거야?’

진무백은 침을 꼴깍 삼키며 괴물 같은 인간의 등을 주시했다.

“주군,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백리황 옆에서 곱게 궁장을 차려입은 여인이 무릎을 꿇으며 포권했다.

그녀는 삼월.

적월 중 하북성의 정보를 총괄하는 여인이었다.

백리황과 접선한 그녀는 적사결의 연락을 받고 황성 내 영안궁까지 함께 온 것이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한데 그렇게 강녕해 보이진 않지?”

적사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하자 삼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괴사를 겪고도 주군의 마음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산악과 같이 굳건하시니 강녕해 보이십니다. 잃은 것은 곧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야겠지.”

삼월을 보며 흐뭇하게 웃은 적사결은 두 사람에게 물었다.

“한데 씨발련 놈들은 왜 같이 오지 않은 것이냐?”

분명 백류혼 일행과 합류해 영안궁으로 입성하라 명한 자신이었다.

한데 그놈들은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이었다.

“주군, 그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니?”

“팽가의 이목에 걸려 지금 쫓기고 있는 중입니다.”

“뭐? 사령 놈들이 붙어 있는데 걸렸다고? 팽가의 실력이 내 생각보다 뛰어난 것이냐, 아니면 그놈들이 행적을 노출할 만한 실수라도 한 것이냐?”

십이사령은 사무련의 정보대인 흑야귀령대의 수장들이었다.

북경이 아무리 팽가의 코앞이라지만 정보 교란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놈들이 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남궁세가가 하북에 들어서기 전부터 놈들을 추적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팽가에 정보를 흘렸습니다.”

“쯧, 안휘에서 걸린 것이로구나.”

백류혼이 금칠대로서 음치 악도겸을 조사하기 위해 머물렀던 안휘성.

나중에 듣기로는 꽤 거침없이 움직였다 했었다.

하면 안휘의 패자인 남궁세가가 모를 리가 없었다.

“상황은?”

“팽가의 신진 타격대인 철갑기린대가 추적 중입니다. 그리고 남궁세가의 창궁검대가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중입니다.”

“팽가의 영역이니 일단 양보를 한 것이로군. 철갑기린대라는 애송이 놈들은 몰라도 창궁검대까지 뿌리치긴 힘들 텐데…….”

천하제일검가라 불리는 남궁가의 최정예가 그들이었다.

이전에 상대한 야차혈전대처럼 천하를 무대로 명성을 다투는 무력부대 말이다.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 창궁검제도 그곳에 있으니까요.”

“뭐? 그놈도 거기 있어?”

적사결은 눈썹을 크게 휘며 삼월에게 재차 물었다.

“네. 새끼 봉황 죽이기는 남궁세가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백천악의 후계자가 나타났으니 직접 움직인 것이지요.”

사무련의 후계자를 암살하는 새끼 봉황 죽이기.

오대세가 중에서도 남궁세가는 독하게 그 일을 추진하는 놈들이었다.

“야, 진가 애송이.”

적사결은 갑자기 뒤에 서 있던 진무백을 불렀다.

“왜 그러시오?”

“너 전에 본좌한테 천하삼대고수에 대해 말한 적 있지?”

“아, 소림에서 말이오?”

“그래. 그때 그 세 사람이 누구라 그랬었지?”

“음…… 취불 무허대사와 파황무존 백천악, 그리고 창궁검제 남궁건이라 했었소.”

오래된 기억이지만 진무백은 고민하지 않고 얘기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적사결은 코웃음을 쳤다.

“흥! 타 세력의 후계자나 암살하는 놈이 그 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 생각하느냐? 먼 훗날의 위협이 될 것이니 싹을 자른다? 웃기는 소리. 그런 놈은 묵혀 두었다가 잘 익었을 때 담가서 무의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지! 그놈은 애초에 생각이 글러 먹었어, 생각이.”

그 설명에 진무백은 혀를 내둘렀다.

‘저 인간은 세상 모든 무인들이 자기 발아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모두가 자기 성장을 위한 거름일 뿐인가?’

광오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이라도 미래의 위협이 될 만한 싹은 죽일 수 있을 때 제거할 것이다.

진무백은 적사결의 자신감이 이해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하면 당신은 창궁검제 남궁건이 빠지고 누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오? 혹시 당신 자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요?”

“당연하…… 가 아니지.”

반사적으로 당연하다, 라고 말했다가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지금은 무허의 제자라는 거짓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좆같다. 진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보다 좆같았다.

내가 나라고 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럼 누가 천하삼대고수에 속한다 보시오?”

“당연히 천마신교의 지존이지.”

“광혈존 말이오? 한데 그는 취불 무허대사께 패했잖소? 패한 자를 천하삼대고수에 넣는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진무백의 말에 적사결의 이마에 혈관이 빠직 솟았다.

“안 졌어! 안 졌다고! 크아악! 이 새끼, 너 좀 맞자!”

“아니, 왜 이러시오? 당신 무허대사님의 제자라면서 왜 광혈존 얘기에 열 받는 거요?”

“닥쳐, 새끼야!”

적사결은 그대로 진무백의 점혈을 짚고 사왕의 도집을 들었다.

소림에서 보였던 그때의 광경이 재현되었다.

무려 스무 대의 볼기짝을 치고 나서야 적사결은 진무백의 점혈을 풀어 주었다.

“부처님께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계신데 또 유언비어 퍼뜨려라. 그땐 엉덩이가 아니라 허리를 분질러 줄 테니까.”

격통에 일어나지 못하는 진무백은 울컥하고 솟구쳐 오르는 억울함에 몸서리를 쳤다.

‘개…… 씨발…… 내가 무슨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울먹이는 진무백을 뒤로하고 적사결은 삼월에게 물었다.

“남궁건, 그 씨발 새끼 지금 어디 있어?”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볼기 스무 대로도 풀리지 않는 울화.

그것을 풀 만큼 격렬한 화풀이 대상 말이다.

*   *   *

쩌저저정. 촤아악.

한 호흡에 무려 다섯 초의 연격을 쏟아 부었건만 쓰러지지 않았다.

땅을 긁으며 밀려난 팽천기는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아오, 저거 더럽게 단단하네.’

보도라 불리는 것들도 작정하고 일점 집중으로 힘을 실으면 부수지 못한 적이 없었다.

한데 기린도는 중심점을 연거푸 공격당하고도 실금조차 가지 않았다.

공파결에 호신강기가 뚫리고도 팽천기가 버티고 있는 이유는 오직 그것이었다.

“기린도가 아니라 용귀도라 해야 하는 거 아냐? 거북이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는 꼴에 걸맞게 말이야.”

백류혼은 손을 털며 이죽거렸다.

방어에 전력을 기울인 팽천기의 수비를 뚫기가 꽤 까다로웠기에 정신이나마 흔들려는 것이다.

“후욱. 후욱. 자네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니 그리 보여도 할 말이 없군.”

현실을 인정한 팽천기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방어를 굳건히 하여 필승의 기회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내 뛰어난 실력으로 그 수비를 뚫어 주지.”

백류혼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머리를 굴렸다.

힘으로 뚫는다?

파신결의 파괴력이면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철갑기린대라는 놈들에 이어 저 멀리 흉흉한 기운을 가진 놈들이 더 있었다.

아직은 여력을 남겨야 했다.

그렇다면 급소를 막는 기린도의 궤적을 피해 공격을 꽂아 넣을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속도. 그리고 변화다.’

파황십결 중 쾌와 변의 묘리에 중점을 둔 요결은 환사결.

익히고 있는 여섯 개의 요결 중 가장 성취가 낮은 기예였다.

아직 완벽히 익혀 내지 못해 미숙하지만 당장 효용성이 높은 수법은 환사결 하나였다.

“잘 막아 봐, 팽가의 거북아.”

스스슷.

일순간 백류혼의 손이 흐릿해졌다.

퍼어억.

‘무슨!’

팽천기는 갑자기 왼쪽 얼굴에서 발생한 타격음에 고개가 젖혀졌다.

예비 동작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 장에 가까운 거리가 무색하게 맞는 그 순간까지 공격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스스슷. 퍼억.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공간을 뛰어넘은 것처럼 갑자기 어깨에 공격을 허용한 것이었다.

‘이형환위는 아니야.’

극한의 순간 가속인 이형환위라도 이처럼 낌새조차 없을 순 없다.

이것은 속도만이 아닌 모종의 무언가가 있었다.

‘다행인 것은 지금의 공격은 호신강기를 뚫을 정도는 아니야. 더구나 정확성도 낮다.’

무방비로 공격을 허용했음에도 요혈의 근처를 건드릴 뿐 정작 급소는 비켜 나갔다.

초식의 비밀을 알지는 못하지만 당장 침몰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퍼억. 퍼억. 퍼버벅. 퍼퍽.

하나 계속해서 얻어맞기 시작하자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철갑기린대가 대주인 팽천기의 패색이 짙은 모습에 불안해진 것이었다.

지금의 모습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가지고 노는 듯한 모양새였다.

‘뭐냐. 도대체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크윽.’

수하들의 동요가 느껴지자 팽천기도 조급함이 느껴졌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은 둘째 치고 철갑기린대가 방진을 풀고 총공격을 하는 즉시 놈을 놓칠 수도 있었다.

백류혼의 실력이면 느슨해진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빌어먹을.’

부우우욱.

피부 바로 위를 감싸고 있던 호신강기가 부풀어 오르며 마치 검막처럼 팽천기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아낌없이 내공을 퍼부은 방어에 환사결은 어떠한 타격도 주지 못하기 시작했다.

승기를 잡기 위해 무리를 한 것이었다.

‘드디어 기어 나왔구나. 징글징글한 놈…….’

백류혼은 환사결의 공세를 늦추지 않고 퍼부었다.

공세를 멈추는 그 순간이 이 싸움의 향방을 가를 승부점이었다.

퍼퍼퍼퍼퍼퍽.

환사결이 폭풍처럼 쏟아지는 순간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명줄을 끊을 순간을 탐색했다.

한쪽은 내공을 아낌없이 퍼붓고,

다른 한쪽은 환사결에 혹사된 오른손의 근육이 시퍼렇게 변할 때까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   *   *

‘허어. 저놈들이 정말 후기지수란 말인가.’

남궁건은 질린 눈으로 팽천기와 백류혼의 생사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만한 규모의 호신강기를 일각 이상 지속하는 팽천기의 엄청난 내공 수위는 웬만한 절정 고수 이상으로, 저 나이 대에 걸맞지 않았다.

분명 일 갑자를 넘어선 것이 분명했다.

‘이립도 되지 않았는데 일 갑자를 넘었다? 영약을 취한 것인가? 팽가에서 그 정도의 영약을 얻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비밀리에 영약을 입수했거나, 팽천기의 타고난 그릇이 그만큼 크다는 뜻.

같은 내공심법이라도 사람마다 단전의 크기가 다 다른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물론 그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으나 극히 드물게 그 차이가 어마어마한 그릇을 지니고 태어나는 자들이 있었다.

팽천기가 그에 속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간의 평가가 오히려 부족한 놈이었구나. 이미 후기지수의 범주를 넘어 절정 너머를 보고 있는 괴물이었어.’

남궁건은 팽천기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아들 남궁룡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팽천기를 넘어설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데 저런 놈을 압도하는 저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란 말인가.’

파황십결에 대해서는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파황무존 백천악과 몇 차례 겨뤄 보기까지 했었으니 말이다.

‘미숙하기 그지없지만 분명 환사결이다. 한데 그 환사결을 저렇게 연격으로 사용하다니.’

변화의 극점에서 초신속의 움직임을 발휘해 상대의 인지 범위와 공간까지 뛰어넘는 기예가 환사결.

내공의 소모가 적은 반면, 단 한 번의 사용으로도 근육을 혹사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외공이 받쳐 줘야 했다.

놈의 체격을 생각한다면 다섯 번이 한계일 터.

한데 벌써 수십 초가 넘어가고 있었다.

‘외공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다. 백천악이라도 연환초는 열 번은 넘지 못해.’

물론 상대하는 적수의 인지 범위와 무위에 따라 환사결의 수준도 달라진다.

하나 남궁건은 백류혼의 잠재 능력이 백천악 이상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두 놈 다 여기서 제거해야겠구나…….’

살심을 품은 남궁건의 눈에서 혈광이 번뜩였다.

그리고 승부는 종결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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