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90화 (90/206)

<기적의 이혼대법 90화>

‘백가의 애송이? 백가라면 흑천백가 말이구나.’

팽천기는 남궁건의 말에서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의 입에서 백가의 애송이라 불릴 정도라면 파황무존 백천악의 자식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은막에 가려진 백천악의 후계자 말이다.

‘사무련의 후계자를 잡으러 온 것이었어.’

오대세가의 정적이라 할 수 있는 사무련.

그곳의 후계자는 오대세가의 최우선 척살 대상에 오른다.

팽천기도 과거엔 그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두 집단은 무려 이백 년 동안 살벌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

가솔들의 피를 조금이라도 덜 흘리게 하려면 후계자가 설사 갓난아기라도 죽여야 했다.

“역시 그랬군요. 하면 본가로 모실 테니 가시지요. 북경은 저희 앞마당이니 놈의 소재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곳이지 않습니까.”

“하면 그리할까? 오랜만에 팽가주와 술 한 잔도 할 겸.”

남궁건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깜박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아! 이런, 이런. 늙으면 건망증이 는다더니. 내 잠시 들를 곳이 있으니 팽가로 가는 것은 이후로 하세.”

“사전에 약조가 있으셨습니까?”

“약조까지는 아니네. 북경에 금창약으로 유명한 약방이 하나 있다기에 거기 좀 들를까 하네. 돌아갈 때 선물로 사 가려고 말이야.”

“이씨약방 말이군요. 거긴 거의 외곽 끝에 위치해 하루 정도 날을 잡고 다녀와야 할 텐데요. 필요하시면 경공이 뛰어난 수하를 시켜 사다 드리겠습니다.”

“아니네. 듣자 하니 종류가 여러 가지라는데 직접 보고 골라 보고 싶네. 늘그막에 얻은 딸아이가 허구한 날 칼을 휘둘러 다치기 일쑤니 말이야.”

“하하. 알겠습니다. 하면 내일 도착하시는 것으로 본가에 기별을 해 놓겠습니다.”

“그리하게나.”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팽천기는 팽염과 함께 북경제일루를 나섰다.

그러고는 대기 중이던 대원들에게 명했다.

“북경에 사무련의 후계자가 나타났다. 분명 혼자가 아닌 수행원들이 있을 터. 비선을 총동원해 놈들의 행방을 찾아라.”

“충!”

철갑기린대는 그 즉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부대주는 가서 아버님께 작금의 상황을 알리고 내일 남궁세가 일행이 방문한다 말씀드리게.”

“알겠습니다. 한데 대주님.”

“왜 그러는가?”

“남궁가주 말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저희를 이용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겠지. 약방 핑계로 하루를 끈 것을 보면 말이야.”

아마도 자신들을 사무련의 후계자를 찾기 위한 정보꾼으로 이용한 것일 터.

하루는 팽가의 전력을 기울이면 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니 그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함이 분명했다.

“하나 그분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야. 백가의 애송이를 잡는 것은 나 하북의 옥기린, 팽천기니까.”

*   *   *

“도련님, 꼬리가 붙었습니다.”

청령의 말에 백류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경도 팽가 땅이다 이거지. 팽가가 냄새는 꽤 잘 맡는 모양이야. 하북의 호랑이가 아니라 똥개였나 봐.”

“송구합니다. 저희가 부족해서 도련님께 위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니야. 똥개도 자기네 집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는데 정보 교란도 한계가 있는 거지 뭐. 하아암.”

백류혼은 태연하게 기지개를 켠 후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자령, 금개 어르신을 모셔. 백령은 악도겸, 홍령은 매양옥을 맡아. 청령은 나와 함께 놈들의 이목을 끈다.”

“도련님, 위험하십니다. 미끼는 저희들에게 맡기십시오.”

“아니야. 미끼도 나 정도 거물은 되어야 먹음직스럽지. 여차하면 붕아를 부르면 되니까 걱정 마.”

기감으로 훑어본 주변은 점차 기척들이 늘어 가는 상황.

이 정도 규모의 작전이라면 십이사령들을 노리고 왔다기엔 과한 부분이 있었다.

“도련님의 신분이 어찌 노출된 것인지 모르지만 놈들은 작정하고 움직였습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신조를 이용하십시오.”

홍령도 백류혼과 같은 짐작을 했기에 신신당부했다.

자신들이 미끼가 될 상황이 아니기에 위험하면 서둘러 몸을 빼라는 의미였다.

“걱정 마, 홍령.”

백류혼은 싱긋 웃어 주고는 전면으로 달려 나갔다.

청령도 동료들에게 고개를 주억거린 후 그를 따라 달렸다.

*   *   *

“대주님, 2인 1조로 흩어지는 모양입니다. 전부 추격할까요?”

수하의 물음에 팽천기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우리는 백가 놈 하나만 쫓는다. 다른 놈들은 무시해.”

“알겠습니다.”

“다른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우리들만으로 놈을 잡아야 하니 각자 몸 상태를 최적으로 맞춰 놓도록. 한데 본가에서는 누가 나왔는지 들은 거 있어?”

“가주님께서 무호십객을 보내셨다 합니다.”

“그분들 전부?”

“예. 비선들을 통해 사무련의 후계자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바로 명을 내리셨답니다.”

“하여간 아버지도 성질이 불같다니까. 그분들이라면 길어야 한 식경 정도면 도착하겠군.”

팽천기는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현장의 정보가 빨리 본가로 전해진 데다 파견된 무인들의 무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한 식경, 아니 일다경 내에 놈을 잡는다. 이랴.”

고삐를 틀어쥐고 애마의 배를 박찬 팽천기는 백류혼으로 짐작되는 남자의 뒤를 쫓아 달렸다.

그 뒤로 스무 기의 기마, 정예 철갑기린대원들의 말발굽이 지축을 울렸다.

두두두두.

기마들은 하나같이 명마들이었다.

덕분에 백류혼과 청령은 생각보다 빨리 철갑기린대와 조우해야만 했다.

“자칭 하북의 호랑이라는 놈들이 말등에 업힌 꼴이라니, 쯧쯧. 무림인이면 경공을 써야지, 이 나태한 새끼들아.”

백류혼의 빈정거림에 선두의 기마에 탄 사내, 팽천기가 되받아쳤다.

“무식하면 몸으로 때우는 법이지. 말본새를 보아하니 네놈이 백가의 애송이로구나.”

“그러는 네놈은 팽가의 애송이냐?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꼰대 같은 말투하고는.”

“싸가지가 없는 걸 보니 확실하군.”

팽천기는 기마에서 뛰어내리며 일도양단의 기세로 도를 휘둘렀다.

촤아아악.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도격은 백류혼과 청령을 좌우로 떨어뜨릴 정도로 거센 위력이었다.

“놈은 내가 맡을 테니 너희들은 단창을 지닌 놈을 죽여라.”

팽천기의 지시에 철갑기린대가 참마도를 휘두르며 청령에게 짓쳐 들었다.

주변을 둘러싼 열다섯 명을 제외하고 오 대 일의 상황이 벌어지며 격전이 시작되었다.

팽천기는 도를 어깨에 걸치고는 백류혼에게 말했다.

“도망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이미 이중 삼중으로 포위망을 짜 놓았으니까.”

“고양이 몇 마리가 어슬렁거린다고 못 갈 건 없지.”

“패기는 좋군. 나는 팽가의 팽천기라 한다. 강호에서 옥기린이라 불리고 있지. 너는?”

“백류혼. 별호는 없다. 앞으로도 무명을 얻을 생각은 없고.”

“그렇게 될 거다. 오늘 넌 내 손에 명이 다할 테니까.”

“너무 자신하네? 듣자 하니 천하제일 후기지수라며? 혹시 천하제일 허세지수가 잘못 알려진 거 아니야? 하하.”

백류혼의 도발에도 팽천기는 무덤덤했다.

이미 전투에 무섭게 몰입한 상태.

그의 관심사는 오직 백류혼의 움직임에 집중되어 있었다.

‘시선, 어깨, 허리, 발끝. 모두 조금의 변화도 없다. 아까 첫 도격을 피할 때도 마찬가지였어.’

나아가든 물러나든 피하든, 움직임이 생기기 전엔 예비 동작처럼 신호가 감지된다.

한데 자신의 눈에 비친 백류혼은 그런 부분이 조금도 없었고 찰나에 움직임을 보였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신과 동급이거나 상승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라는 방증이었다.

‘역시 사무련의 후계자인가…….’

천하제일 후기지수로 불린 자신이었지만 세간의 평가에는 한 가지 단서가 있었다.

사무련과 마교의 후계자가 강호에 등장하면 그 별호는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꾸욱.

애병, 기린도를 쥔 손에 힘이 더해졌다.

오늘 그 두 개의 꼬리표 중 하나를 뗄 것이라는 다짐이었다.

파아앗.

한달음에 거리를 좁힌 팽천기의 기린도가 나아가는 힘을 실어 횡으로 도기를 뿌렸다.

팽가의 후계자가 익히는 도법인 왕자사도.

도초의 기본에 입각한 무공이기에 단순하지만 쾌속함과 파괴력이 장점이었다.

제일도, 천지양단.

하늘과 땅을 나누는 듯한 일격이 백류혼의 허리를 베었다.

촤아악.

하나 백류혼은 잔상을 남기며 이미 사라진 직후였다.

‘이형환위!’

신형을 회전시키며 전후좌우를 찰나에 살핀 팽천기.

그의 안력이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백류혼의 움직임을 잡았다.

진원결의 강기를 두른 오른손은 만근 거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쩌어어엉.

도신을 세워 막아 낸 팽천기는 열 보나 밀려나며 거목을 들이받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기린도가 아닌 평범한 도였다면 치명상을 입었을 맹격이었다.

‘크윽. 이형환위를 펼친 직후에 이 정도 강기공을 운용하다니…….’

막대한 내공이 수반되는 기예를 연이어 사용한 고절한 수법.

팽천기는 백류혼을 얕보았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고는 자신도 도강을 일으켜 기린도에 덧씌웠다.

강기를 머금자 기린도는 표면에 비늘 무늬가 떠오르며 범상치 않은 자태를 보였다.

“그거 꽤 좋은 건가 봐? 방금 한 수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막아 낸 걸 보면.”

백류혼은 기린도를 가리키며 꽤 놀란 눈을 했다.

진원결을 막아 냈다는 것은 이름 있는 무구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도신의 무늬를 보고도 모르겠나?”

“어. 난 무기에 별 관심이 없거든. 사나이는 주먹이지.”

백류혼은 들어 올린 오른손을 뿌득 소리가 나도록 움켜쥐었다.

팽천기는 기린도를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똑똑히 봐라. 이것이 천하십대기병의 하나인 기린도니까.”

“와, 그거 비싼 거였네. 하하.”

도는 주로 중의 묘리를 살린 병기이기에 일반적으로 보도라 불리는 무구에는 현철을 사용했다.

재질 자체의 단단함과 더불어 무게감이 다른 철금속보다 월등하기에 그런 것이었다.

하나 기린도는 만년한철을 통째로 사용한 보도.

덕분에 그 절삭력과 더불어 기공의 전도성은 천하십대기병의 상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참고로 만년한철은 현철보다 희귀하고 비싼 금속이었다.

번쩍.

내려치는 일도는 전광석화와 같았다.

왕자사도, 제이도. 맹호악렵의 도초는 그저 상단세로 내려치는 기예가 아니었다.

기공을 이중으로 운용해 바닥에서도 공세를 펼치는 상하 동시 공격.

마치 호랑이가 아래위 송곳니로 사냥감을 물어뜯는 듯한 형세였다.

‘위아래 모두 실초로구나.’

백류혼은 한 개의 도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도강이 지닌 진의를 파악했다.

견적이 나오자 양손이 마치 무당파의 그것처럼 태극을 그리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진원결을 더해 충분한 방어력을 갖춘 것은 기본이었다.

터터터텅.

두 개의 실초를 튕겨 낸 손속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맹호악렵의 진초라 할 수 있는 기린도의 일격을 받아 내기 위해서였다.

실초 뒤에 숨겨진 진초.

기린도의 지르기를 백류혼은 공수입백인의 수법으로 받아 냈다.

지지지직.

수강과 도강이 서로를 파괴하려는 듯 힘 싸움을 시작했다.

마치 내력 대결과 같은 모습.

하나 진원결의 파괴적인 강기는 도강을 점차 밀어내고 있었다.

‘기린도로 발휘된 최대치의 도강이 밀리다니!’

팽천기는 백류혼의 양 손바닥에 낀 기린도의 비명에 경악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나약한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크아아압!”

수세를 뒤집기 위한 기합성.

잔뜩 부풀어 오른 두 팔의 근육이 씰룩이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한 듯 전력을 토했다.

스륵.

한데 백류혼은 도리어 힘을 빼며 기린도를 당겼다.

그러고는 비틀며 바닥을 박찼다.

휘릭. 퍼억.

기린도를 가슴에 품은 채 회전한 신형에 하체가 딸려 오르며 무릎이 팽천기의 얼굴에 꽂혔다.

이어서 무릎을 내리며 진각을 밟듯 찍은 곳은 허벅지.

뿌가각.

“크으으윽!”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팽천기는 양손으로 잡고 있던 도파에서 한 손을 떼어 일장을 내질렀다.

하나 백류혼은 얄밉게 거리를 벌린 후였다.

‘이럴 수가……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단 말인가.’

처음 보는 도초를 한눈에 꿰뚫어 본 것은 물론이요, 도강을 상대로 공수입백인을 시전하는 대담함까지.

무위를 떠나 상대가 보여 준 수법은 재능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으득.

부러질 듯 이를 악문 팽천기가 다시금 투지를 불태웠다.

상대가 강하다 하여 무너질 정도로 자신의 정신력은 나약하지 않았다.

“와라.”

상처 입은 호랑이가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기수식을 취했다.

하나 백류혼은 선뜻 달려들지 못했다.

‘저런 눈빛을 한 놈이 제일 위험한 법인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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