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89화>
황제 암살.
예로부터 황제라는 지위는 암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권력의 정점이기에 정적, 또는 타국으로부터 암살 시도가 있을 수 있었고, 심지어 황위를 물려받을 자식들에게 당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권력은 혈육의 정도 끊을 정도로 비정하고 냉혹했다.
“뭐라?! 암살?!”
오늘 벌어진 일 중 가장 크게 놀란 왕욱과 진무백.
황제의 호위를 담당하는 금의위의 위사로서 가장 경계되는 일이기에 그런 것이었다.
“자네가 그걸 어찌 아는가? 어디서 그런 얘길 들었는가?”
왕욱은 심각한 얼굴로 연신 질문했다.
“사부님께 들었소.”
“자네 사부님이라면?”
“취불 무허. 그분이 나의 사부요.”
주녹정에게는 무허라 밝혔지만 서로 얘기가 끝난 상황이었다.
그녀도 반로환동에 대한 것을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권력을 지닌 자들은 독점을 좋아하는 것이 사실인 듯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입을 맞춘 거짓 신분은 무허의 제자였다.
“무허대사께서는 어찌 암살 음모를 아신 건가?”
“그분께서 천하사괴의 일인인 것은 알고 있소?”
“물론이네.”
“그 천하사괴 중 살협 엽주평이라는 자가 암살의 주구요. 해서 사부께서 나에게 그를 막으라 지시하셨소.”
왕욱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살협이면 손속이 과하긴 하나 정도를 행하기에 별호에 협이라는 글자를 얻은 의인이 아닌가? 어찌 그런 자가 황상을 시해하려 한단 말인가?”
실은 황제와 몸을 바꾸려는 것이 예상되지만 그 사실 그대로 말해 봤자 믿을 리 만무했다.
해서 적사결은 암살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사안의 중함을 대신한 것이다.
“정녕 모르겠소?”
“모르니 묻는 것이지.”
“황상의 평판 때문이지 뭐겠소?”
정사를 등한시하고 도술에 빠져 불로장생 약에만 관심을 두는 암군.
안으로는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밖으로는 오랑캐와 왜구에 시달려도 이를 외면하는 무능하고 무심한 황제였다.
“그렇다고 그런 짓을 벌이면 나라가 더 혼란에 빠질 것은 자명한 사실. 한데도 그런 미친 짓을 한다는 말인가?!”
“그런 건 당사자에게 물어보시오. 난 놈을 대변하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왕욱은 골치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자 이번엔 진무백이 물었다.
“살협 엽주평이라면 일신의 무위가 천하십대고수에 근접한다는 초고수인데 그런 자를 막으라고 제자인 너를 보냈단 말인가? 무허대사께서 직접 움직이지 않고?”
적사결은 한심한 얼굴로 답했다.
“소주에서 그 빨갱이 왜구 새끼도 때려죽인 나다. 직접 보진 못했어도 귀가 닳도록 본 좌의 무명을 들었을 텐데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하나? 다 그럴 만한 능력이 있으니까 온 거지. 쯧쯧.”
“……끙.”
진무백은 적사결의 꾸중을 들으며 마치 노강호가 젊은 신진고수를 나무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놈이 황상을 노리고 있으니 두 사람은 금의위를 총동원하여 북경을 이 잡듯이 뒤지시오. 최대한 빨리 엽주평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요.”
적사결의 말에 왕욱과 진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공주.”
“말해.”
“여기 방 많소?”
“많지. 왜?”
“같이 지낼 놈들이 있으니 준비 좀 해 주시오.”
“뭐?”
주녹정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넉넉잡아 예닐곱 개 정도 필요할 거요. 하니 집주인이 알아서 배정해 주시오.”
적사결은 백리황과 이천억, 악도겸과 매양옥, 그리고 백류혼까지 이곳 영안궁에서 지내게 할 생각이었다.
특히 사무련 놈들은 시야 내에 두고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이런 씨…… 날 무슨 객잔 주인으로 아는 거야? 반로환동만 아니면…….’
공주의 좁혀진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 * *
“가주님, 하북팽가로 바로 가시겠습니까?”
창궁검대의 대주 남궁진의 물음에 남궁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북경은 팽가의 영역이니 알아서 찾아올 테지. 바로 가는 것보다 초대를 받고 가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겠느냐. 일단 요기나 하자꾸나.”
“알겠습니다. 하면 객잔으로 모시겠습니다.”
남궁진은 마부에게 목적지를 알렸다.
마차를 모는 마부도 창궁검대의 대원.
그는 능숙하게 마차를 몰아 북경제일루로 향했다.
달리 천하제일루라고도 불리는 북경제일루는 십층에 이르는 거대한 주루였다.
북경 중앙 관도에 위치해 교통도 좋고 전각에 올랐을 때 북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 전망도 일품인 이곳은 숙수들의 솜씨 또한 훌륭했다.
북경을 방문한 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라 해도 될 만큼 유명한 곳이 바로 북경제일루였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백 명이네. 가능하면 한 층을 통째로 잡고 싶은데.”
“저기…… 고층은 비어 있는 곳이 없고 저층이지만 삼 층은 가능합니다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일 층부터 삼 층까지는 가장 신분이 낮은 자들이 이용하는 장소였다.
점소이는 남궁진의 복식에서 무림인, 그것도 귀한 신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최대한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니 안내하게.”
“감사합니다, 나으리.”
점소이의 안내를 받고 올라간 삼 층은 평범한 주루 정도의 수준이었다.
고급 주루만 드나들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들은 없었다.
잠시 후.
점소이가 음식들을 내어 오자 일행들은 묵묵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검을 옆에 두고 긴장을 풀지 않고 날 선 눈빛으로 일관했다.
가주인 남궁건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아.”
“네, 가주님.”
“도극, 그 친구의 아들내미 이름이 뭐라 했었지?”
“팽천기입니다. 나이는 스물다섯. 별호는 옥기린으로, 달리 천하제일 후기지수라 불립니다.”
팽천기.
하북팽가의 적장자로 의천오무제의 일인 단천도제 팽도극의 아들이었다.
갓 스물에 절정의 경지에 오른 불세출의 천재.
그것도 온실 속의 화초로만 자란 것이 아닌, 사무련과의 전쟁에서 수많은 사파 고수들을 베어 넘긴 신진 고수였다.
“스물다섯이라…… 용이 녀석과는 일곱 살 정도 차이가 나는구나. 어떠냐? 네가 보기에 용이가 그 아이보다 부족하다 보느냐?”
남궁룡.
남궁세가의 삼남으로 갓 약관이 된 아들이었다.
아직 세가 내에 머물러 있어 별호가 없지만, 인중룡이라 불리며 그 재능은 안휘성을 넘어 강동으로 뻗어 나가는 중이었다.
남궁건의 아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무재가 그였다.
“팽천기를 직접 보지 못해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 용이의 오성은 단연 발군이 아닙니까. 당장은 부족하더라도 실전 경험이 더해져 재능이 꽂을 피우면 능히 넘어설 수 있다 여겨집니다.”
“그래, 무엇보다 실전이 중요하지. 이거 그 아이도 함께 데려올 걸 그랬구나.”
사무련의 후계자를 처리하는 중요한 일이기에 최정예만 추려 온 것이다.
남궁룡이 뛰어난 후기지수라지만 그래 봐야 후기지수.
중요한 실전에서 쓰기에는 부족함이 있기에 배제한 것이었다.
하나 북경에 도착해 세인들의 입에서 옥기린이란 애송이의 별호가 자주 오르내리니, 자연히 아들 남궁룡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가주님, 이번 임무는 새끼 봉황을 사냥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칫 그 아이가 오해할 수 있으니 잘하신 것입니다.”
남궁진의 말에 남궁건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술잔을 들었다.
“그래, 그렇지. 그 나이에는 그런 것이 중요한 때니까. 하하하. 진이 너도 한때는 노발대발했었지.”
“어렸으니까요. 흠흠.”
백 명에 이르는 정예 검수들이 이십 대의 무인 하나를 척살하기 위해 나선 상황.
어린 남궁룡이 보기에는 다수가 한 명을 핍박한다느니, 암살은 정파가 행할 일이 아니라느니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었다.
“한데 그 새끼 봉황의 소재는 파악이 되었느냐?”
“창궁비연대의 연락으로는 며칠 전 북경에 입성했다 합니다. 정확한 위치는 곧 확인될 것입니다.”
“최대한 빨리 확인하거라. 팽도극이 알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니.”
남궁건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술을 마셨다.
관도에는 수많은 상인과 행인들이 오가며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남궁건의 시선을 끄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거 새끼 호랑이가 먼저 찾아왔구나. 허허.”
북경에 도착한 지 한 식경도 채 되지 않았다.
한데 팽가의 자식 놈이 가장 먼저 자신들을 찾아온 것이었다.
* * *
“여기냐?”
팽천기의 물음에 철갑기린대의 부대주 팽염이 답했다.
“네. 남궁세가주 이하 창궁검대가 북경제일루 삼 층에 오른 것을 확인했습니다.”
“창궁검제가 북경에 왔다라…….”
“그들은 사무련과 관계된 일이 아니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자들입니다. 사파 놈들과 연루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더구나 검제께서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사안이 중대하다는 뜻. 어쩌면 사무련주와 관련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본가에 사전 연락이 없었으니 단순한 유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파황무존 백천악과 관련된 특급 경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데 그런 중차대한 일을 팽가의 앞마당에서 팽가의 허락 없이 처리할 수는 없다.
팽천기는 팽가의 후계자로서 이를 두고 볼 만큼 성정이 녹록하지 않았다.
“가자. 검제를 뵈어야겠구나. 대원들은 여기서 대기하고 있거라.”
팽천기는 팽염을 대동한 채 북경제일루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들어가자 철갑기린대는 마치 정병처럼 빈틈없는 자세로 서서 대기했다.
팽가의 타격대 중 가장 튀는 외양의 그들이었기에 사람들이 몰려들며 시선을 집중했다.
무림인임에도 중갑기병용 갑주를 입고 참마도를 쥔 채 말까지 탄 철갑기린대.
얼핏 보기에는 군의 기병대로 보일 정도였다.
* * *
“팽가의 소가주 팽천기입니다. 창궁검제 어르신께 인사드리겠습니다.”
팽천기가 절도 있게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장신에 떡 벌어진 어깨를 지닌 전형적인 호한. 그럼에도 얼굴은 미공자라 할 정도로 선이 가늘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라 할 정도로 보기 좋았다.
누가 지었는지 옥기린이란 별호가 딱 들어맞는 팽천기였다.
“반갑네. 내 자네의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직접 보니 소문이 오히려 못한 부분이 있군.”
“아닙니다. 아직 부족하니 어르신의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물어 가는 해가 젊은 신성에게 무슨 가르침을 내리겠는가. 다 잔소리일 뿐이지. 하하하.”
팽천기는 볼 근육이 미세하게 씰룩거림을 느꼈다.
자신은 저물어 갈지언정 태양이고, 너는 빛나 봤자 별이라는 은유적인 비하.
입으로는 추켜세우는 듯했으나 남궁건의 눈빛은 너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싸늘했다.
‘흥. 선조가 남긴 무학도 제대로 잇지 못한 주제에 잘난 척은.’
뇌제라 불렸던 남궁세가의 초대 가주는 하늘의 힘이라 불리는 뇌기를 다룬 경세의 무인이었다.
하나 이후 후대는 더 이상 뇌기를 다룰 수 없었고 결국 천뢰기라 불린 그 힘을 잃은 남궁세가였다.
천뢰기를 잃었어도 여전히 천하제일검가라 불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데 어르신께서 북경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팽천기는 직설적으로 방문 용건을 물었다.
자칫 무례할 수도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안의 중함은 때론 예를 따지지 않아도 되니까.
“혹 사무련과 관련된 일로 오신 것은 아닙니까?”
“이거 북경에서는 팽가의 눈을 피할 수 없는 모양이군. 자네들도 놈의 행적을 파악했나 보이.”
남궁건은 일부러 흘리듯 말했다.
마치 미끼를 덥석 물라는 듯 꼬리치며.
“맞네. 백가의 애송이 놈을 잡으러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