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86화>
이송 삼 일째.
왕욱은 인적이 드문 길로 방향을 잡았고 노숙을 택해 최대한 노출을 피했다.
개방의 당주들이 알려 주길, 적사결에게 뛰어난 수하가 있다 했으니 이동 중에 탈옥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그 때문에 진무백은 죽을 맛이었다.
관도가 아니기에 수레를 몰기 힘들었고 노숙을 위해 불을 피우고 밥을 하는 등 잡일이 끝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번을 서느라 잠도 부족하니 강행군도 그런 강행군이 없었다.
적사결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이봐, 백호 양반.”
점혈도 소용없음을 삼 일간 알게 된 왕욱은 놀라지도 않고 적사결을 돌아보았다.
놈에겐 점혈이고 포승줄이고 신체를 결박할 수단 자체가 무용했다.
“무슨 일이냐?”
“알겠지만 본 좌가 도망치려면 진즉에 도망쳤을 것을 알지 않나? 하니 편하게 가는 게 어떤가?”
“편하게라…… 네놈은 지금 충분히 편하게 가고 있는데 무얼 얼마나 더 편하게 가자는 말이냐?”
수레 안에 드러누워 잠만 자고 주는 밥만 먹는 적사결이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 마음 편히 가자는 말이지.”
그 대답에 왕욱은 짜증 어린 말투로 외쳤다.
“마음?! 대역죄인을 그리 대해 줄 만큼 본 위사들이 녹록해 보이더냐!”
“쯧, 계속 고리타분한 말만 하는군. 말이 나와서 그러니 내 묻지. 본좌의 죄목이 무엇이기에 대역죄인 취급을 하는 거지? 내 기억에 그런 죄를 지은 적은 없는데. 소주를 구한 영웅을 이따위로 대하는 것이 금의위 위사들이 할 일인가?”
오리발 내밀며 이죽거리는 적사결에게 진무백이 소리쳤다.
“네 이놈! 네놈의 천인공노할 죄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어디서 세 치 혀를 놀리느냐!”
“그럼 말해 봐. 그 죄가 뭔지.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데 왜 네놈 상관은 모르냐?”
“…….”
진무백은 다시 얼굴이 벌게졌다.
황녀가 직접 심문하고 처벌할 것이라 단단히 주의를 주었기에 자신이 그 사실을 떠벌릴 순 없었다.
“그래, 진무백. 놈을 잡았으니 이제 말해 보거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
진무백은 입술을 깨물며 고심했다.
현재의 놈은 완벽히 잡힌 것이 아니었다.
어떤 수단도 놈을 구속할 수 없는 데다 실력마저 두 위사를 압도하니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상황.
적어도 황성에 당도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황명이 있었기에 제 입으로 발설할 순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으음…….”
왕욱은 내심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자신이 진무백의 직속 상관이었다.
한데 끝까지 입을 닫으니 마음이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역죄라면 나에게 알리지 않았을 리 없지. 말괄량이 공주가 시답잖은 사고를 치고 호위 무사의 입을 막은 게로구나.’
왕욱은 한숨을 쉬고 적사결을 보며 말했다.
“포박, 점혈, 옥사. 어느 하나도 네놈을 강제하지 못했다. 또한 우리 둘의 무위로는 네놈을 당할 수 없지.”
“잘 알고 있군. 이제야 현실감각이 돌아온 건가?”
“네놈이 자수했다는 것을 인정하마. 황궁까지 압송이 아닌 임의동행할 테니 그렇게 알거라.”
“좋은 판단이군. 아주 꼰대는 아닌 모양이야.”
“하면 그만 옥사에서 나와라. 방구석에 들어앉아 누워만 있는 꼴 같아 보기가 싫군.”
그 말에 적사결은 낄낄거리며 일어섰다.
그러고는 철창살을 향해 걸어가 그 앞에 섰다.
스윽.
간단했다.
몸을 세로로 하여 창살 사이를 그냥 빠져나온 것.
신체를 고무처럼 만들었기에 창살의 간격 따윈 상관없었다.
“허…… 신기하군. 몸이 엿가락도 아니건만 그런 식으로 옥사를 나오다니.”
왕욱은 저잣거리의 광대놀음이라도 보는 듯했다.
진무백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백호 어른. 정말 저놈을 저렇게 자유롭게 놔두실 것입니까?”
“하면 네가 저자를 강제해 보거라. 아니라면 대역죄의 죄목이라도 말하든지 말이다. 하면 일만 관병이라도 동원해 놈을 압송할 것이니.”
뒤끝 작렬.
진무백은 입이 바싹 마르고 가슴에 돌덩이라도 얹은 듯 답답했다.
‘하, 꼬였다. 제대로 꼬였어.’
이런 식으로 서로 간에 불신이 생기다니.
말 한마디로 이간계에 당한 것 같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없어 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진무백, 가서 수레에서 말을 분리시키고 행낭을 꾸리거라. 수레는 여기서 버리고 갈 것이니.”
“알겠습니다.”
진무백은 터덜터덜 걸으며 말 쪽으로 다가갔다.
축 처진 어깨는 그 심중이 얼마나 복잡한지 말해 주는 듯했다.
‘좋아, 좋아. 남의 불행은 곧 나의 기회지.’
적사결은 둘 사이가 멀어진 듯하자 기회로 여기고 물었다.
“백호 양반, 하나 물어볼 것이 있소.”
어느새 빈정대는 말투를 반존대로 바꾼 적사결이었다.
“무엇이냐?”
“천관무도회 당시 말이오. 금의위의 무공에서 정공과 사공이 섞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내 느낌이 맞소?”
“본 위의 무공에서 그걸 알아차렸단 말인가?”
“물론이오.”
“한데 그건 왜 묻는 것이냐?”
“그냥 위험한 시도니 그만두라고 경고해 주려 한 거요. 모험적인 발상은 좋지만 그 행위는 만류귀종 같은 초상승 이론이 바탕이니 그만한 그릇이 되지 않으면 주화입마를 당하기 딱 좋은 짓이오.”
“하하하. 그대가 상당한 고수라 하나 본 위사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 말에 적사결은 눈을 반짝였다.
“두 가지를 합칠 방안이 있는 거로군?”
“그렇다. 본 위는 부작용을 완벽히 제거했으니 문제될 것 없지.”
“흐음…… 무호흡만으로 그게 가능했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것까지 꿰뚫어 본 건가? 그래, 무호흡만으로는 불가능하지. 안목이 꽤 훌륭하군.”
금의위의 검초는 사법에 기반해 변칙적이고 예측 불허한 초수가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호흡 자체를 하지 않으니 흐름을 읽는 것도, 무공의 특징을 알아채는 것도 어려웠다.
한데 적사결은 그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역시 다른 비결이 있는 것이로군. 하면 고리타분한 정공으론 불가능하니 돌파구는 좌도방문일 텐데. 그 정도로 수준 높은 사공 중에 그러한 공능이 있는 무공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말이오. 혹시 불알 뗀 병신들이 독자적으로 창안한 것이오?”
“……!”
왕욱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기겁하는 줄 알았다.
정확히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었다.
“맞는가 보군.”
적사결은 왕욱의 동공이 커졌다 작아지는 것을 안력으로 확인했기에 씨익 웃었다.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동공은 자동 반사적인 부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신체 부위가 아니다.
“끙. 생각보다 식견이 넓군.”
부인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시인하는 왕욱이었다.
“통찰력이 깊은 것이지. 흐흐.”
과거 사무련이 동창과 연줄을 만들기 위해 상당한 무공 비급을 바쳤다 들은 적이 있었다.
정파에서 금의위와 동맹 관계를 맺었기에 사파는 견제 세력인 동창을 포섭한 것이었다.
그때 전해진 무공들이 동창 내부에서 이백 년이나 연구되었을 것인즉 독자적인 발전이 있어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 한 가지 더 말해 드리오?”
“무…… 무얼 말인가?”
“금의위는 독자적인 무공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정공이기 때문이지. 정파, 특히 금의위에 바쳐진 구파의 무공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갈고닦아 온 것이오. 전통이 무서운 것은 그 긴 시간이 녹아 있기 때문이지. 무 공 자체가 깐깐한 데다 시간을 들여 완성에 가깝게 다듬어졌기에 발전의 여지는 거의 없었을 터. 하니 금의위에서 변화를 주려해도 녹록지 않았을 것이오.”
“…….”
왕욱은 뭐라 입을 떼지 못했다.
더하고 덜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금의위는 동창의 무공에 줄곧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동창에서도 모종의 이유로 금의위에 협조했기에 지금의 독특한 무공을 지니게 되었겠지. 어떻소, 내 추리가?”
“그대는 도대체 누군가? 정말 무허대사의 제자가 맞는가? 아니면 혹 소림의 은거기인인 것인가?”
가히 일대종사급의 혜안이었다.
천관무도회를 통해 정파의 명숙들은 대부분 만나 본 왕욱이었다.
하나 눈앞의 적사결처럼 정확한 소견을 보인자는 없었다.
이는 정도와 사도에 속하지 않은 마도인의 객관적인 시각 덕분이었다.
“본 좌가 누군지는 차차 알게 될 터이니 그때까지 참으시고. 내가 금의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뭐? 그게 무슨…….”
“동창으로부터 고작해야 초식 몇 개 받고 그것을 정종심법과 잇는 잡술이나 얻었잖소. 제대로 된 협조가 되었다면 그들의 내공심법도 받았겠지.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현재의 심법과 운공 체계도 뜯어고쳤을 테고. 아니오?”
아니, 맞는 말이었다.
빌어먹을 환관 놈들은 가장 중요한 심법은 공개하지 않고 이런저런 잡다한 무공만 제공했으니까.
하나 그것만으로도 꽤 많은 진전을 얻었기에 금의위에서는 이에 강력한 불만을 표하진 못하고 있었다.
“그걸 네놈이 줄 수 있다?”
“물론.”
마도의 내공심법은 머릿속에 차고 넘쳤다.
그중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저잣거리에 파다한 범용심법이나 수준 낮은 하급 심공은 본 위에도 얼마든지 있다. 한데도 말이냐?”
“물론. 적어도 천하백대무공 안에 속할 정도의 심법은 줄 수 있소.”
“백대무공!”
구주천하에 무림문파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한데 백이란 순위 안에 손꼽히는 무공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상승 무학이란 의미였다.
‘뭐 본 교에서 백 등 안에 들어가면 천하백대무공이지.’
적사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그걸 모르는 왕욱은 군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뭔가? 미리 말하는데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거나 무죄판결을 받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은 불가하네.”
“그런 꼼수를 쓰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시오.”
“하면 말해 보게. 뭘 원하는 겐가?”
이제는 반존대로 적사결을 대하는 왕욱의 눈에 탐욕이 이글거렸다.
“그 괴상한 귀식대법과 정공과 사공을 섞은 잡술을 알려 주시오.”
현재 적사결은 보리연화공의 공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나 엄밀히 말하면 금단으로 불가기공의 심리적 거부감을 제거하고, 정신력으로 마공의 초식에 강제로 끌어 쓰는 정도.
하나 좀 더 수준 높은 기예를 사용하려면 내공의 수발을 원활히 할 필요가 있었다.
금의위의 비결은 그것을 위해 꼭 필요했다.
‘그리되면 족히 두 배는 강해지겠지. 어쩌면 본래의 몸보다 더…….’
무허가 신마결에 손을 댄 상황이니 자신도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한데 자네가 정말 상승의 내공심법을 줄 것이라 어찌 믿지?”
“허, 속고만 살았나…….”
“속이고 숨기려는 인간만 만났으니 그런 것이지. 일종의 직업병이네.”
“그럼 이 자리에서 구결을 불러 줄 테니 외우시오. 몇 번 곱씹어 보면 얼마나 뛰어난 심법인지 알 수 있을 테니.”
“들어 보고 정말 뛰어난 심법이라면 지휘사께 간언해 보지. 자의만으로 본 위의 비결을 누설할 수는 없네.”
역시 결정권 없는 아랫것들과 일하기란 심히 피곤하다.
적사결은 예상한 대답이었기에 놀라지도 않았다.
“그러시오. 일단 핵심 구결 한 구절만 빼고 알려 드리리다. 그 구절은 향후 당신네 비결과 교환합시다.”
적사결의 퉁명스러운 말에 왕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처사였으니까.
더구나 한 구절이 없다 하여 심법의 뛰어남을 판가름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집중하시오.”
적사결은 그렇게 한 식경에 걸쳐 구결과 운공요결을 불러 주었다.
알려 주는 심법은 천마신교에서도 대주급 이상이 열람 가능한 마룡심법.
속성으로 내공을 쌓을 수 있고 안정성도 뛰어나지만 기공의 파괴력이 약한 단점이 있었다.
마공의 특징이 거의 없어 정보대 쪽에서 간혹 익히는 자나 있을까.
한마디로 사장되어 가는 무공이었다.
“자, 세 번이나 불러 줬으니 이제 다 외웠겠지? 점검해 볼 겸 한번 읊어 보시오.”
왕욱은 조심스럽게 암기한 구결을 읊조렸다.
한 자라도 틀려서는 안 되기에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모든 구결을 암송한 왕욱은 어떠냐는 얼굴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잘했소. 본 좌는 한 번 듣고 다 외웠었지만, 그 정도면 어디 가서 모자라다는 소린 안 듣겠군.”
“끙…… 한데 심법 이름이 무엇이오?”
왕욱은 칭찬인지 독설인지 모를 말을 꾹 참고 물었다.
‘뭐라 하지? 마룡심법이라 알려 주면 나중에라도 마공으로 알 수도 있잖아.’
에라, 모르겠다.
“천룡심법이오.”
대충 있어 보이는 이름을 갖다 붙인 적사결이었다.
한데 왕욱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이름만 들어서는 희대의 내공심법인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