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85화>
이두한백.
적사결이 거두어 이백, 두보, 한유, 백거이, 당대 사대시인의 이름을 붙인 하얀 원숭이들이었다.
당시 이두한백의 어미를 죽인 죄책감에 거두어 반려 영물로 삼은 녀석들은 지금에 이르러 당당한 체구로 자라 있었다.
그 덩치는 생전의 어미에 육박했고 풍기는 기세는 몇백 배는 될 정도로 거대했다.
쩝. 쩝. 쩝.
정신없이 녹주독혈사를 포식하는 이두한백은 점차 신체에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겉으로는 눈처럼 하얀 털빛이 점차 녹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속으로는 피와 장기 등 신체 기관이 독에 내성을 띠는 중이었다.
강력한 독을 지닌 영물을 섭취해 만독불침에 가까운 신체를 얻어 가는 것이었다.
이제는 녹원이 된 네 마리 원숭이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서걱. 서걱.
두 자루 쌍도로 사체를 잘라먹는 푸른 띠를 두른 녹색 원숭이.
반야신공을 익힌 녀석은 가장 강한 무력을 지녀 이두한백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찌이익. 쩝. 쩝.
거대한 철봉에 고깃덩이를 끼워 씹어 먹는 자색 띠의 원숭이.
무상대능력을 익힌 녀석은 현기가 서린 눈빛을 띠고 있었다.
우걱. 우걱.
붉은 띠를 두른 녀석은 녹주독혈사의 머리를 가르고 그 속의 독주머니를 꺼내 씹어 대고 있었다.
금강나한기공을 익혀 바위마저 녹이는 절독도 견디는 금강불괴의 신체를 가진 녀석.
한유는 창대 없는 삼지창처럼 생긴 필가차를 쥐고 녹주독혈사의 머릿속을 뒤적거렸다.
까득. 까득.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노란 띠를 두른 녀석은 녹주독혈사의 독니를 빼내 깨무는 중이었다.
한데 독니가 끄떡도 없자 쌍절곤을 양손으로 쥐고 내리치며 부수고 싶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보였다.
쾅. 쾅.
아라한신공을 익혔기 때문인지 가벼운 내려침에도 바닥이 울릴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것일까.
독니 전체에 금이 가더니, 다섯 번을 채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버렸다.
백거이는 기분이 좋은지 부러진 독니를 발로 짓이기며 끽끽 소리를 내었다.
“녀석들 드디어 태행산맥 전체를 발아래 두었구나.”
서 선생은 뒷짐을 진 채 절벽에서 뛰어내려 이두한백의 앞에 내려섰다.
삼십 장이 넘는 높이를 사뿐히 내려선 경신술만으로 그가 어느 정도 경지인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크릉. 크르릉.
이백의 지시가 있자 두보, 한유, 백거이가 서 선생의 앞으로 모였다.
녀석들에게는 서 선생이 아비이고 사월이 어미나 마찬가지였다.
“한유야, 녹주독혈사의 턱밑에 내단이 있을 테니 좀 가져와 주겠느냐?”
서 선생이 말하자 한유는 곧바로 필가차로 턱을 찢고 내단을 꺼내 가져왔다.
주먹만 한 녹색 구슬은 그것만으로도 만독을 막아 내는 피독주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물이었다.
서 선생은 그것을 받아 광목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고 사월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교주에게 전해 주거라. 맡겨 놓은 영약을 저 녀석들이 다 처먹었으니 하나 정도는 남겨 줘야겠지. 그걸 취하든 지니고 있든 만독불침일 것이라 알려 주고.”
“알겠습니다. 한데 선생께서는 같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지존께서 기다리실 텐데요.”
“나야 싸우는 것보다 치료하는 것이 특기니 다치면 찾아오라 전하거라.”
“그리하겠습니다. 이곳에 계속 머무르실 것입니까?”
주기적으로 거처를 바꾸는 서 선생이었다.
약초를 공부하고 의술을 펼치는 그는 한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어 물은 것이었다.
“저 녀석들이 내 단환을 다 먹었으니 다시 만들러 돌아다녀야지. 태행산에 영초와 약초는 씨가 말랐으니 당분간 이곳에 올 일은 없느니라. 너희 적월이 있으니 나 하나 찾는 건 어렵지 않을 터. 알아서 찾아오라 이르거라.”
서 선생은 사월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이두한백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자랄 만큼 자랐으니 다른 영물과 영초는 그만 처먹거라. 지금부터는 스스로 재주를 익히고 몸 안의 기운을 다스리는 데 매진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이백을 필두로 원숭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 선생은 흐뭇한 표정으로 동쪽을 향해 가리켰다.
“가거라. 가서 너희들의 주인을 찾아 따르거라.”
처처척.
이두한백은 바른 자세로 서서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짐승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도 있는 모습이었다.
-그르릉.
이백의 신호에 네 마리 원숭이는 번개처럼 내달렸다.
절정 고수의 신법에 못지않은 엄청난 속도였다.
“이런!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보중하십시오.”
사월이 급하게 포권한 후 그 뒤를 따랐다.
뛰어난 경공 실력을 자랑하는 그녀도 산에서 이두한백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서둘러야 했다.
‘허허. 저 녀석들이라면 교주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
서 선생은 과거 적사결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사지근맥이 잘린 채 찢어진 뱃가죽을 대충 동여매고 자신에게 왔던 사내였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독기 어린 눈빛은 한 마리 늑대를 보는 듯했고, 자신은 홀린 듯 그를 치료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 그가 중화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것을.’
수많은 환자를 보며 관상을 보는 눈이 생긴 서 선생.
그는 사주와 점괘, 복술 등에도 관심이 생겨 오랫동안 수학했고 최근에야 알아볼 수 있었다.
적사결이 천랑성의 기운을 타고난 인물이란 것을.
천랑성은 자미두수에 있어 중요한 성좌는 아니었다.
하나 천문에 가장 밝게 빛나는 그 별은 낭성, 늑대의 별로 불리며 가장 찬란할 때는 다른 별의 빛을 가릴 정도로 광휘를 뿌린다.
천랑성은 다른 별의 기운을 잡아먹는 별인 것이었다.
중요한 사항은 또 있었다.
‘객성이 낭성을 범하였을 때 낭성의 색이 황색이면 길하나 흑색이면 흉하고 적색이면 전쟁이 일어난다 했지.’
서 선생은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는 천랑성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교주, 그대의 빛은 지금 어떠하오?’
* * *
덜그럭덜그럭.
야심한 시각에 움직이는 수레는 바닥의 돌부리를 피하지 못하고 연신 덜컹거렸다.
검은 천을 덮어 놓은 수레는 크게 휘청일 때마다 그 속을 엿보여 주었고 천 아래 감춰진 것은 쇠로 된 창살이었다.
“야 이것들아, 좀 조심해서 몰아. 불편해서 잠을 못 자겠다!”
천을 뚫고 나온 목소리에 왕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진무백, 확실히 점혈을 짚었느냐?”
“예. 적어도 한 시진은 풀리지 않을 텐데…….”
“한데 어찌 저놈이 입을 놀리는 것이냐?”
진무백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당황한 표정이었다.
“쯧, 다시 확인하거라.”
“추…… 충.”
진무백은 수레 뒤편의 자물쇠를 열고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를 확인하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포승줄은 풀려 있고 적사결이 팔을 괴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익. 오라는 또 어떻게 풀었느냐!?”
“풀긴 뭘 풀어. 대충 묶었으니까 주르륵 흘러내린 거지.”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놈! 손을 들고 바닥에 엎드려라!”
진무백이 움찔하며 검대에 손을 대자 적사결은 킥킥거렸다.
“너 쫄았냐? 안 잡아먹으니까 제대로 묶기나 해.”
“…….”
진무백은 굳은 표정으로 포승줄을 쥐고 다가갔다.
자신보다 월등한 고수이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악!”
“이힉!”
“푸하하하하. 공주의 호위 무사란 놈이 간이 콩만 하구나. 킥킥킥.”
“이놈! 죽고 싶은 것이냐!”
진무백은 수치심에 벌게진 얼굴로 검을 뽑았다.
“미안, 미안. 이제 안 놀릴 테니 묶어.”
적사결은 바닥에 누워 손을 뒤로 돌렸다.
진무백은 곧바로 달려들어 무릎으로 등을 누르고 손을 묶은 다음 상체를 꽁꽁 결박했다.
“낮과는 다르게 밤에는 잘 묶네? 이쪽으로 재주가 좋은가 봐?”
음흉한 얼굴로 놀리는 적사결에게 대꾸하지 않고 진무백은 손을 놀렸다.
금의위의 독자적인 점혈법으로 꼼꼼하게 마혈과 아혈을 짚는 것이었다.
‘천축유가신공으로 혈자리를 다 바꿔 놓았는데 통할 리가 없지. 큭큭.’
이혈대법과 동일한 효과.
하나 적사결은 입을 뻐끔거리며 아혈이 짚혔다는 듯 연기했다.
진무백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리저리 신체를 살피다 벼락처럼 일권을 뿌렸다.
뻐어억.
명치에 정확히 꽂힌 주먹에 적사결은 상체를 숙이고 끅끅거렸다.
‘네 손이 더 아플거다, 새끼야. 킥킥.’
기습을 눈치 채고 순식간에 명치 부위를 경화시킨 것이었다.
“그대로 얌전히 있어라. 또 소란을 부리면 혀를 자를 것이다.”
진무백은 주먹이 부러질 듯 아팠지만 내색 않고 옥문을 나섰다.
‘무슨 놈의 몸뚱이가 돌덩이 같단 말인가…… 끄으윽.’
반탄력이 없으니 호신지기도 아니다.
그렇다면 높은 수준의 외공을 익힌 것이 분명했다.
덕분에 금이 간 모양인지, 손등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진무백은 비명을 삼키며 금창약을 꺼내 손등에 발랐다.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 빌어먹을.’
한 달 월봉을 투자해 북경 최고로 불리는 이씨약방에서 구한 귀한 금창약이었다.
죄인을 때리다 손을 다친 것을 왕욱이 알면 안 되기에 진무백은 그걸 쓸 수밖에 없었다.
‘하…… 이게 진짜 무슨 짓인지 모르겠구나.’
모두가 잠든 한밤중의 죄인 이송.
소주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놈을 벌건 대낮에 이동시키다가는 백성들의 반발이 우려되기에 야간 이송을 택한 것이다.
왕욱과 진무백 단둘만이 최소의 인원으로 움직이기에 진무백은 갖은 잡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야간 근무에 온갖 잡무까지.
진무백은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워지고 있었다.
다음 날.
쪼르르르.
웬 방정맞은 물소리에 왕욱과 진무백은 잠에서 깨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깼어?”
한쪽 구석에서 오줌을 누던 적사결이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네, 네놈!”
진무백은 당황한 얼굴로 적사결을 가리켰다.
“아! 미안, 미안.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물건이 워낙 실하다 보니 오줌발도 우렁차네. 근데 옥사 안에다 쌀 수는 없잖나. 하하하.”
“진무백!”
왕욱의 부름에 진무백은 화들짝 놀라 부복했다.
“죄…… 죄송합니다. 분명 포박하고 점혈을 짚었는데 그것이…….”
“됐으니 가서 놈을 잡기나 해라!”
왕욱은 인상을 찡그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진무백도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고 적사결에게 다가갔다.
“워어. 그리 무서운 표정들 짓지 말라고. 물도 뺐으니 알아서 들어갈 테니까.”
적사결은 왕욱과 진무백을 지나쳐 수레 감옥으로 걸어갔다.
“참. 이제 이 천은 걷어도 되겠지? 영 답답해서 말이야.”
그러고는 힘차게 주욱 잡아당기자 천이 펄럭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데 천이 떨어지는 그 짧은 사이에 적사결은 감옥 안에 쏙 들어가 있었다.
진무백은 옥문의 자물쇠가 그대로인 걸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묶어 놓은 건 계속 흘러내리니까 그냥 하지 말자. 너도 소용없는 걸 이제 알겠지?”
적사결은 포승줄을 돌돌 말아 감옥 밖으로 휙 던졌다.
“아 참, 아침은 육포나 건량으로 때우지 말자고. 자고로 사내란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되거든.”
적사결은 할 말 다했는지 벌러덩 누워 버렸다.
왕욱은 그 모습을 보며 노기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야간에도 돌아가며 번을 설 것이니 그리 알거라.”
“……알겠습니다.”
최악이었다.
두 명이 번갈아 가며 경계 근무를 서면 수면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낮에는 종일 수레를 몰아야 하고 밤에는 잠도 못 자게 된 것이었다.
‘좆같다, 진짜…….’
진무백은 당장 옥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빈둥대는 놈을 일장에 때려죽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