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83화>
남경지원군의 소주 입성 당일.
소주 백성들의 환호는 하늘을 찔렀다.
그 환호의 대상은 특히 남경지원군의 선두에 선 대장군과 두 명의 금의위 위사들에게 쏟아졌다.
대장군은 지원군을 승리로 이끌었고, 위사들은 군이 일어나도록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투항한 가왜들의 압송은 줄을 이어 지평선 끝까지 향했고, 그들을 향해 던진 비난과 돌팔매질도 끝없이 이어졌다.
그날의 하루는 그렇게 환호와 비난으로 저물어 갔다.
“잘 버텨 주었군요. 고생들 하셨소.”
왕욱은 삼살개와 두 당주들에게 포권하며 인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위사님들께서 빠르게 움직여 주신 덕분입니다.”
“개방도들이 아니었다면 소주가 함락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소. 하니 우리에게 공을 돌리지 않아도 되오. 이번 변란으로 개방의 의기를 중화 전역이 알게 되었으니 당주들께서는 자랑스럽게 여기시오.”
“하하하, 하나 거지들에게 과분한 칭찬인 건 사실이지요. 일단 이리 앉으십시오.”
삼살개의 안내에 왕욱과 진무백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가왜변란에 대한 것은 남경지원군의 대장군과 소주 위지휘사에게 일임한 상황.
그들은 다른 사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따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삼살개는 인사를 나눌 때의 화답과 달리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먼저 결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저희 분타주님께서는 안전하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저희들에게도 알려 주지 않으셨으나 그분께서 무탈하시니 다른 건 논외로 쳐도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다행이군요. 보국공께서 무사하시다니. 그러면 된 것이지요.”
진무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왕욱을 대신해 자신들에게 중요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자는 화법이었다.
“네. 그리고 물결무늬의 이형도를 사용하는 자에 대한 것입니다. 그자의 소재를 파악했고 현재 백리세가의 빈객으로 머무르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다만…….”
“무슨 문제가 있소?”
“위사분들께서 찾는 자가 맞는지 모르지만 그자의 현재 위상이 상당한 상황입니다.”
“위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번 변란에서 그자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성벽수성전에서 기백이 넘는 왜구를 베었음은 물론, 야습으로 장수의 수급을 다수 취했습니다. 또한 가장 난적이라 평가받은 왜장 적귀와 수하 살귀들을 처리했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변란의 배후인 제금상단과 금룡표국의 음모를 밝히고 증좌까지 확보한 인물입니다. 명실공히 최고의 무공을 세운 영웅이지요.”
삼살개의 답변에 왕욱과 진무백은 눈을 부릅떴다.
개인이 이루었다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런 자가 이형도를 쓴 것이 맞소?”
“확실합니다. 소주 전체를 확인했지만 그런 도를 쓰는 자는 그자가 유일했으니까요.”
“…….”
그런 영웅적 행보를 보인자를 역모죄로 추포하면 백성들의 원성은 불을 보듯 뻔했다.
왕욱과 진무백은 놈을 지척에 두고 다시 골이 아파짐을 느꼈다.
‘미치겠구나. 이건 다른 자라 하더라도 문제고, 정말 그놈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아닌가.’
놈이 아니라면 더 이상 추적의 단서가 없는 상황.
그렇다고 놈이 맞다면 추포하더라도 반발이 상당할 것이다.
“한데 말입니다.”
옆에서 묵묵히 있던 붕산개가 운을 띄웠다.
“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진무백이 골머리를 싸매는 왕욱을 대신해 그의 말을 받았다.
“두 분께서 그자를 잡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 이건 두 분의 실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자의 무위가 실로 경천동지할 수준이라 묻는 것입니다.”
과거 53인의 소수 정예로 남경을 초토화시킨 적귀였다. 더구나 이번엔 새 머리를 한 괴물로 변해 하늘을 울리고 땅을 진동시키던 위용을 보였다.
한데 그런 괴물도 황금빛 광휘를 뿌리는 그자를 넘어서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금룡표국 정문에서 그 기세를 받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이 친구가 좀 무례했어도 용서하십시오. 하나 저 역시 두 분께서 충분한 준비가 있으셔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진덕개가 붕산개의 말에 동의하며 첨언했다.
그 말에 진무백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소주에는 일만이 넘는 관병과 수천 명에 이르는 무림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설마 그 정도로도 부족하다는 말입니까?”
“부족합니다.”
대답은 삼살개로부터 나왔다.
“어찌 한 명의 개인이 그 많은 병력을 당해 낸다 여기는 겁니까? 진정 당주께서는 그리 생각하십니까?”
“그도 그렇지만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자에게 감화된 무림인들이 그를 탈출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저희가 확인한 바로, 그자에게는 뛰어난 수하도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혼자라면 모르겠으나 조력자가 여럿 붙는다면 놓칠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왕욱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소. 더구나 내 들은 바로 백리세가의 빈객이라 하니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 백리세가라면 강소성의 패주라 불린다 들었는데 그것이 맞소?”
“맞습니다. 백 년 전만 해도 천하제일에 근접한 무인을 배출했던 명문가입니다.”
“그들이 돕는 것이 사실상 가장 문제가 될 터. 적어도 백리세가의 이목을 돌릴 필요는 있겠군. 아니면 놈을 혼자 꾀어내든...”
“그자를 추포할 생각을 굳히셨나 보군요?”
삼살개의 물음에 왕욱은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어려운 건 사실이나 우리들은 황실의 지엄한 명을 받들고 있소.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 할 임무라는 뜻이지.”
“허…… 역모와 연루된 자였습니까?”
“그렇소. 하니 금의위 소속으로서 우방인 의천맹 소속 개방 당주들께 협조를 요청하겠소.”
“그렇게 말씀하신다니 거절할 수 없군요. 말씀하십시오. 개방의 힘이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삼살개가 굳은 표정으로 포권했다.
소주를 구한 협개들로 칭송이 자자한 개방이 어쩌면 이번 일에 대한 협조로 천하의 배은망덕한 집단으로 전락할까 두려워 표정이 굳은 것이었다.
하나 의천맹 소속으로서 금의위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이는 이백 년이 넘도록 다져진 동맹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그 동맹이 있었기에 이백 년 동안 관무불가침이라는 태조 주원장의 어명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 * *
“신변은 다 정리되었느냐?”
적사결의 물음에 백리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적운 님 덕분에 단목가주님과의 오해를 해결했고 혼인은 잠시 미루는 것으로 얘기가 끝났습니다.”
천풍검법의 다음 경지를 목전에 두고 있기에 당분간 혼인을 미루자고 주장한 백리황이었다.
단목우는 흔쾌히 승낙했고, 혼인 전이라 하나 백리검과 함께 무공의 교류를 시작할 것이라 선언했다.
혼례만 올리지 않았을 뿐 두 가문은 이제 한 가족임을 천명한 것이었다.
“네 가문은?”
“피해 입은 소주의 백성들을 도와야 하고 회족의 연금술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하니 상당히 바빠질 예정입니다. 해서 금개 건은 제게 일임하는 것으로 아버님께서 결정하셨습니다.”
“다행이구나. 애송이들을 줄줄이 달고 가지 않아도 되니.”
적사결은 품에서 봉서를 꺼내 백리황에게 건넸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본 좌는 금의위 놈들과 북경으로 가야 하니 너는 먼저 가서 하북성의 적월과 접촉해야지.”
백리황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십이월과 접선할 때도 다짜고짜 살수를 펼쳐 간이 떨어질 뻔했었다.
이번에도 그걸 또 겪어야 하니 마음이 편할 리 만무했다.
“휴우, 마도인들은 원래 그렇게 살벌합니까? 아니면 적운님께서 그렇게 교육하신 건가요?”
“반갑게 인사 한번 한 거 가지고 별 호들갑을 다 떠는구나.”
“그게 반갑다고요? 두 번만 반가우면 황천 구경을 할 수도 있겠네요.”
“본 좌 앞에서 빈정댈 줄도 알고 많이 컸구나.”
“예, 제가…… 아니요, 그럴 리가요.”
백리황은 말을 하다 적사결의 눈빛을 받자마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봉서를 낚아챘다.
“여기 적혀 있는 곳으로 가면 되는 거죠? 먼저 가서 기다릴게요. 천천히 오세요.”
백리황은 한 대 맞을세라 취팔선보를 발휘해 바람처럼 사라졌다.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이번 일이 해결되면 돌아가서 제자나 하나 키울까…….’
역대 천마신교의 교주들은 제자를 두지 않았다.
스스로의 무를 갈고닦아 천마조사와 같이 지고무상한 존재가 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수라진결이라는 희대의 무공이 있어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무공을 창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다.
한마디로 선대가 창안한 무공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이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으면 손색이 있는 법.
천마신교의 마인들은 입교 때부터 입마결을 익히기에 그런 사상이 내재되어 있었다.
즉, 선대의 무공을 참고해 수라진결로 자신만의 무공에 녹여 내는 것이 최고라 여긴 것이었다.
해서 소교주란 신교 무력부대의 젊은 대주들 중 선별하여 극마결을 익힐 자격을 부여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교주가 서거하거나 은거를 결정하면 극마결을 완성한 자들끼리 생사비무를 통해 새로운 교주를 선출하는 체계였다.
‘제법 재미가 쏠쏠하단 말이야.’
무공을 떠나 기분 전환이 되었다.
키우는 재미는 물론 커 가는 걸 지켜보는 맛도 있었다. 더구나 가르침을 내릴 때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도 있으니 새로운 관점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때 한 명의 시비가 내실로 들어왔다.
“적운님, 관부에서 파발이 왔습니다. 순무께서 소주에 입성하셨으니 곧 논공행상이 있을 것이라 합니다.”
순무란 1개 성을 총괄하는 직위로 군권의 도지휘사사, 행정의 포정사사, 감찰의 안찰사사 위에 선 관리.
시비가 언급한 강소 순무는 강소성을 총괄하는 최고 권력자였다.
‘남경에 숨어 있던 겁쟁이가 싸움이 끝나니 나타나서 논공행상? 빌어먹을.’
권력자라는 놈이 위급할 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으니 고깝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적운님. 지금 출발하셔야 늦지 않게 당도하실 것 같습니다…….”
적사결의 언짢은 기색을 느낀 시비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백리황으로부터 익히 성질이 더럽다는 주의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거라.”
* * *
논공행상은 소주의 중앙광장에서 이루어졌다.
한데 그 과정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소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관병들이 물샐틈없이 에워싼 가운데 진행된 것이었다.
그것도 군부의 장수들 따로, 무림인 따로 말이다.
또한 최고의 무공을 올린 당사자인 적사결은 가장 마지막에 무림인들을 해산시킨 이후에 이루어졌다.
‘어쭈, 이거 공을 치하하는 게 아니라 죄인을 잡으려는 것 같잖아.’
중무장한 관병들이 철벽처럼 적사결이 지나간 길을 메웠다.
마치 퇴로를 차단당하고 수천 군세의 중앙에 선 것만 같았다.
‘큭큭. 애송이 새끼들이 잔대가리를 굴렸구나.’
틀림없이 금의위 위사들이 손을 쓴 것이다.
강소 순무까지 동원해 논공행상을 핑계로 자신을 추포할 자리를 만든 것이 분명했다.
“쓸데없는 짓 하기는. 쯧쯧.”
적사결은 산보 나온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느긋하게 걸었다.
준비된 단상 위에는 뒤룩뒤룩 살찐 돼지와 낯익은 무인 두 사람이 있었다.
‘백호 왕욱과 신입 위사 진무백이랬지. 소림에서 만났던 놈들을 여기서 만나다니. 큭큭.’
놈들은 자신의 외모가 그때와 다르니 긴가민가했다.
다만 그 시선이 사왕에 머물러 있어 긴장을 놓지 않는 모습이었다.
“환영식이 제법 거창한데.”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오른손을 턱밑으로 가져가 살을 움켜쥐었다.
쫘아악.
그러고는 순식간에 벗겨진 얼굴 가죽.
준비된 인피면구 아래 드러난 외모는 왕욱과 진무백이 아는 그 얼굴이었다.
“그렇게 본좌가 보고 싶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