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81화 (81/206)

<기적의 이혼대법 81화>

황실 오물통은 몰라도 감히 천마신교를 줘도 싫다?

마도 전체를 욕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봐. 둘 다 싫다고 말한 거 맞냐?”

“……아, 그게 그, 아니요. 황실 말이에요, 황실.”

살기가 어린 스산한 눈빛에 백류혼은 얼렁뚱땅 둘러댔다.

한 번 졌다고 위축된 것인지, 금개의 몸이 인질이기에 그런 것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자신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새가슴이 됐지? 끙…….’

아버지의 혹독한 가르침도 이겨 낸 자신이었다.

한데 아버지와는 다른 위압감에 백류혼은 중압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딜 먼저 갈 겁니까? 황실? 천마신교?”

대화의 방향을 바꾸기 위한 말이었지만 적사결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천마신교로 향하고 싶었다.

하나 하오문주 놈이 엽주평을 통해 황제를 차지한다면 그 파장은 무림만이 아니라 천하를 뒤덮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역대급 암군이라 불리는 황제였으나 천하제일 미친놈이 그 권력을 손에 쥔다면 국가 전복이라는 재해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인원을 나눌까?’

사무련과 따로 움직일 수도 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하오문주 놈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지금, 놈들과의 공조는 반드시 필요했다.

적사결은 한참을 고심하더니 결론을 내렸다.

“황실로 먼저 간다.”

백류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견을 표하지 않았다.

자신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으니 말이다.

“본 교는 미친놈의 수중에 통째로 떨어질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니 황실에 다녀올 시간은 있을 터. 하나 서두르는 편이 좋을 것 같군.”

“황실은 서두른다고 서두를 수 있는 곳이 아닌데요?”

“사무련이 불알 뗀 병신들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을 모르는 무림인도 있나? 힘 좀 써 봐, 새끼야.”

“지금 환관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은데. 순순히 우리 요구를 들어줄 것 같습니까? 아쉬울 게 없는 놈들은 움직이기 힘듭니다.”

자고로 황제가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 간신과 환관이 득세한다.

작금의 명은 재상 엄숭이 절대권력을 쥐고 있지만 환관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하여간 좆같은 부정부패. 되는 일이 없구먼.”

적사결은 인상을 구겼다.

사무련을 이용하기 힘들다니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백리황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정확히는 녀석이 지닌 금개의 신분.

막대한 재산을 황실에 환원해 보국공의 칭호를 받았으니 황제를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적사결의 시선이 백리황의 몸을 한 금개에 이르렀고.

‘끙…… 아니야. 황제를 그냥 만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황궁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놈이어야 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국공이라는 칭호야 그저 칭호일 뿐.

아무런 힘도 없는 걸 알고 있으니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

번쩍 떠오른 놈들이 있었다.

“왜 그래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

“금의위가 있잖아.”

“뭐 썩어도 준치라고, 금의위 정도면 좋은 조력자죠. 의천맹을 움직이려고요?”

무허의 신분을 이용하면 의천맹주를 움직여 금의위에 연이 닿을 수 있을 터.

백류혼은 타당한 의견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종리천 그놈까지 엮이면 골만 더 아파.”

“응? 아니라고요? 하면 신교에서 금의위와 연이 있습니까?”

“없지.”

“그럼 어떻게 금의위를 이용할 생각입니까?”

“이미 본 좌를 모시러 오고 있으니까. 그들이 황성 내부까지 안내해 줄 것이야. 큭큭.”

왕욱과 진무백이라 했었나.

친절하게도 놈들은 황족인 공주와도 관계가 있으니 여러모로 이용 가치가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백류혼이 멍청히 있자 적사결은 손을 휘휘 저었다.

“너는 가서 짐이나 싸라. 북경까지 가려면 산도 넘고 강도 건너고 먼 길이 될 테니까.”

백류혼이 입을 삐죽 내밀고 나가자, 적사결은 의자 깊숙이 몸을 눕히며 생각했다.

신교에 대한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구양장로가 있으니 괜찮겠지…… 여차하면 일월도 나설 테고.’

불안한 마음에 믿음직한 수하들을 떠올려 보지만 잠깐이었다.

무허가 신마결에 손을 댔다는 보고 이후, 새로운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설마 진짜 신마결을 완성하진 않았겠지?’

신마결은 과거 천마께서 선보인 만마앙복의 공능을 구현하기 위해 창안된 것이라 했었다.

수라진결의 창안자인 흑마신이 그에 미치지 못해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만일 완성에 이른다면 전설 속에나 존재했던 그 광경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신마지경에 이르렀다면 마공을 익힌 마도인은 누구도 그에 거역할 수 없다. 아직 일월에게서 소식이 없었으니 익히진 못한 모양인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적사결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무허가 신마지경에 이르러 혈미륵신공을 창안하고 탈마동의 마인들을 해방시켰다는 것을.

그리고 이는 향후 천마신교가 반으로 쪼개지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사실도 알 수가 없었다.

*   *   *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입에서는 단내가 물씬 풍겼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단전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으윽.”

쑤우욱.

옆구리에 박힌 비수를 빼내어 멀찍이 던진 일월은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무허가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탈마동을 개방하고, 이어서 한 짓은 천마신궁을 포위하는 일이었다.

탈마동의 마인들로 하여금 철저하게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일월은 적사결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궁을 드나드는 새 한 마리도 빠짐없이 감시하니 전서구도 날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직접 움직이다 되려 덜미가 잡히다니. 다른 적월들이 알면 욕을 퍼붓겠군.’

미숙한 수하들이 움직이다 곤욕을 치를 수 있기에 직접 움직인 일월이었다.

한데 탈마동의 마인들은 그런 자신을 감지하고 추적에 나선 것이었다.

상처를 대충 지혈하고 한숨을 돌린 일월은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한곳에 오래 머물수록 흔적이 많이 남고 추격의 빌미를 줄 수 있었다.

‘이지를 상실했던 마인들이 정신을 차리다니. 정말 무허 땡중이 신마결을 익혔단 말인가…….’

경공을 전개하는 일월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지존인 적사결은 물론, 역대 교주들도 불가해의 영역이라 여겼던 신마결이었다.

그것을 평생 불도에 정진했던 중놈이 성공했다는 것은 신교의 교도로서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툭. 투툭.

그런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하늘에서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월은 빗방울을 맞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이 돕는 모양이구나. 잘하면 놈들을 따돌릴 수도 있겠어. 더, 더 많이 내려라.’

비가 내리면 발자국이 지워지고 자신이 흘린 핏자국도 씻겨 내려갈 터.

더구나 비를 맞은 수풀은 하룻밤 사이에도 무성히 자라 자신이 지나간 흔적을 가려 줄 것이다.

쏴아아아.

빗방울은 금세 폭우가 되어 산속을 어둡게 물들였다.

차박. 차박.

그런 빗줄기를 뚫고 흑색 피풍의를 입은 다섯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주변을 살펴보더니 곧 어느 지점에 모여 바닥에 떨어진 비수를 집었다.

“놈에게 박아 넣은 비수입니다.”

“여기서 치료하고 도주한 모양이군. 꽤 재빠른 녀석인데 이 정도로 빠른 놈이 본 교에 있었나?”

“제가 알아본 바로는 없습니다.”

“하면 의천맹, 사무련, 사천회. 그중 하나에 속한 세작인가?”

“그럴지도 모르죠. 해서 교주님께서 저희에게 신궁 주변을 철저하게 단속하란 지시를 내리셨으니까요.”

천마신교의 변화를 대외에 알리지 않기 위한 단속이었다.

천하정화작업은 들불처럼 번져 순식간에 천하를 삼킬 겁화가 되어야 했다.

그를 위해 무허는 정보의 철저한 차단을 우선한 것이다.

저벅. 저벅.

새롭게 등장한 발소리가 다섯 사내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쥐새끼는 잡았느냐?”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은 사내들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고목나무처럼 비쩍 마른 노인은 피풍의도 걸치지 않았건만 조금도 젖은 모습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빗방울이 옷자락에 닿자마자 튕겨 나갈 정도의 고수였기에 그런 것이었다.

“아직입니다. 하나 곧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못 잡았다는 말이구나.”

쿠구구구.

노인이 서 있는 바닥을 중심으로 오 장가량.

마치 기름을 두른 냄비 위에 오른 것처럼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매…… 맹극 님. 일다경이면 잡을 수 있으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거의 다 잡았습니다.”

“호오. 빗줄기가 이렇게 거세건만 추적할 수 있다?”

맹극은 내공을 회수하며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습니다. 놈에게 박은 비수에는 추적을 위한 공력이 실려 있었습니다. 아직 놈의 체내에 잔존해 있으니 잡을 수 있습니다.”

침투한 공력이 추적의 단서가 되도록 기감과 연결되는 비술이었다.

사내의 말에 맹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이번에도 실패하면 노부가 직접 저승으로 보내 줄 것이다.”

“충!”

다섯 사내는 한목소리로 답하고 벼락처럼 달려 나갔다.

“자. 노부는 천천히 뒤를 따라 볼까. 흐흐흐. 재밌구나, 재밌어.”

오랜만에 세상에 나온 맹극은 지금의 추적이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의 심정이 된 듯 재미있기 그지없었다.

*   *   *

쇄애애애액.

일월의 신형이 쏘아진 화살처럼 십오 장가량을 날듯이 나아갔다.

중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경공이었지만 일월은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쉬이익. 쉬쉬쉭.

그 속도를 따라잡으며 다섯 개의 검기가 짓쳐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월은 그 즉시 적월검을 꺼내 발작적으로 휘둘렀다.

펑. 퍼퍼펑. 퍼펑.

가죽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검기를 막은 일월은 곧바로 검초를 전개했다.

일월의 반격은 변초처럼 어지럽게 흩어지며 어둠에 녹아 들어갔다.

마치 부서진 달빛과도 같은 검초였다.

서걱.

짧은 절개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산월단살의 암검이 추적자 중 하나의 목숨을 거두었음을.

일월은 다시금 재빠르게 도주를 선택했다.

“쫓아!”

동료를 잃은 탈마동의 마인들이 이를 갈며 일월의 뒤를 쫓았다.

다 죽어 가는 사냥감이던 놈이건만, 손을 쓰자 순식간에 한 명이 죽었으니 분노가 치민 것이었다.

“후욱. 후욱.”

경공을 전개하며 일월의 시선이 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사방을 경계하며 달리는 그의 감각에, 남은 네 명의 사내 외에 위험 인자가 더 있다고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저 네 명보다 숨어 있는 한 명이 문제다. 지금은 상황을 구경하듯 지켜보고 있지만 곧 전면에 나설 텐데 어쩌지.’

비록 상처 입었다지만 네 명의 추적자는 동귀어진을 각오하면 처리할 수 있었다.

하나 숨은 고수는 목숨을 걸어도 끄떡없을 초고수가 분명했다.

‘그래, 이 시간이면 그분께서 거기 계시겠구나. 지존께 지금의 상황을 전하려면 어쩔 수 없다.’

일월은 그대로 방향을 꺾어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향하는 방향에는 천마를 기리는 사당이 있는 천마봉이 있었다.

*   *   *

쏴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향을 든 노인은 고개를 숙이며 참배했다.

작고 조촐한 사당에는 ‘평천’이라는 글자가 음각된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노인, 구양패는 향을 사당 안쪽 향로에 꽂고 숙연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사당을 나와 사당 위쪽.

정확히는 하늘 끝까지 솟은 듯한 천애절벽을 바라보았다.

먹구름과 세찬 빗줄기에 그 끝이 보이지 않았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인이 새긴 듯 엄청나게 거대한 글자 ‘마(魔)’였다.

그 위에는 몇 개의 글귀가 더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천마시여.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구양패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폐관 수련을 끝낸 교주는 그야말로 폭정을 일삼고 있었다.

천마신궁을 폐쇄하고 모든 자원을 전쟁 물자로 삼아 인근 교도들은 물론, 민초들까지 피폐한 삶을 살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척박한 신강이건만 신교까지 벼슬아치와 마찬가지로 고혈을 빨아먹으니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음?’

그때 짧은 상념을 지운 구양패가 고개를 돌려 한쪽을 바라보았다.

파사삭.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옆구리에 피를 흘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누구냐?”

구양패의 물음에 사내는 무릎을 꿇고 포권하며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교의 대장로님을 뵙습니다. 피의 바다에 뜬 첫 번째 달, 인사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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