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80화>
백리황은 이전에 백리림으로부터도 얘기를 들은 바가 있었다.
가전무공이 지닌 한계 때문에 아버지인 백리검이 단목세가와의 혼례를 추진했다는 것.
그 말을 아버지의 입에서 다시 들었으니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다.
“말씀해 주세요. 강동십대고수에 속하는 두 분 모두 반쪽짜리라 하시다니, 어째서 그렇습니까?”
백리세가의 천풍검법.
하늘의 바람을 담은 검의는 백리세가에게 풍신가라 불릴 정도로 이름 높은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단목세가의 은림검법 역시 마찬가지.
고요한 숲을 내재한 듯한 검의는 진중함 속에 변화를 품었으니 단목가의 고수를 상대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검림을 마주한 것 같다고 칭했다.
강동의 거목, 단목세가는 은림검법으로 한때 오대세가를 위협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강동이 한계이기 때문이다.”
백리검과 단목우는 합창이라도 하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게 무슨…….”
강동십대고수를 배출할 정도로 뛰어난 검법들이었다.
그 말은 다른 의미로 천하백대무공에 속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라 불린 분이 누구인지 아느냐?”
백리검의 물음에 백리황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천하제일로 불린 자들은 고금을 통틀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 년 전이라면 소림이 배출한 천하제일인 무신불 법륜대사님이시죠.”
“그래. 그리고 그분에게 유일하게 반수 차이로 패하신 분이 본가의 개파 조사이신 백리단 님이시지.”
“네? 반수? 그럼 거의 비등했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반수라는 미세한 차이는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승패가 달라질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 더구나 천풍검법도 그렇고 은림검법도 뚜렷한 장점과 단점이 혼재하고 그 간극을 줄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두 검법이 본디 하나의 검법에서 분리되어 파생되었기 때문이란다. 아비와 단목가주께서는 장점을 극대화시켜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무공을 향상시켰고 각자 극에 달했다 자부하지만 단점 자체를 해결하기는 요원했다. 해서 우리 두 사람은 너희들의 혼례에 뜻을 합친 것이었다.”
백리황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조사님께서는 어째서 무공을 둘로 나누신 거죠? 무려 천하를 넘볼 수 있는 무공이지 않았습니까?”
“당시 조사님께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그리고 두 분에게서 각자 아들을 보셨지. 본처의 소생이신 백리무 님과 후처의 소생이신 백리극 님이 그분들이시다. 가문은 응당 장자인 백리무 님께서 잇는 것이 순리였으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단다.”
“무슨 문제였습니까?”
“차남인 백리극 님께서 천고의 기재였던 것이었다. 혼자서도 능히 일가를 세울 수 있는 무재였기에 조사님께서도 그분을 많이 아꼈었다 한다. 가문을 물려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신의 무공을 천풍검법과 은림검법으로 나누어 전수해 주셨지. 어느 쪽이든 두 무공을 합하는 자가 진정한 자신의 후계자라 천명하시고 말이다.”
백리황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조사께서 두 사람 중 누구에게 가문을 물려주고 싶었는지 말이다.
“한데 아무도 합하지 못한 건가요?”
어쩌면 백리극이 합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인인 백리단이 마음을 빼앗길 정도의 재능이었다면 능히 그럴 수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말해 주마.”
단목우가 백리황을 보며 말을 이었다.
“실은 두 가지 무공은 애초에 나뉜 무공이 아니었다. 교묘하게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창안 무공이었고, 조사님의 진신절기인 천수풍림검공에서 파생된 불완전한 무공이라 할 수 있었지.”
“하면 조사님께서는 왜 거짓말을 하신 거죠?”
“단목가의 조사이신 단목극, 아니 백리극님께서는 천풍과 은림을 합치지 못하자 수행을 떠나시려 했는데, 그 직전 우연히 은풍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다. 조사께서 그들에게 천수풍림검공의 비급을 남겼다는 것이었지. 천풍과 은림을 합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당시 백리극 님께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것이 아니었다는 오해를 하시고 지독한 배신감을 느끼셨지. 이후 강호를 떠돌다 자신의 일가를 세워 끝내 백리가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말년에서야 조사님의 의중을 조금 엿보았다 한다.”
백리황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엇이죠?”
“두 분께서 천풍과 은림으로 천수풍림검공을 뛰어넘길 바라셨던 것이지. 두 무공을 합하려 노력하다 보면 각 무공의 장점과 단점을 뛰어넘어 새로운 무의 길에 들어설 것이라 믿으셨던 거란다. 백리극 님께서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그 사실을 깨달아 무척이나 한탄하셨단다. 젊은 시절을 배신감으로 보낸 것을 아쉬워하며 말이다.”
단목우의 설명에 백리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백리무 님께서도 가주직을 이어받은 후 은풍대의 존재를 알게 되셨고 천수풍림검공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한다. 은풍대의 유산은 가주라 하여 이어받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 말을 오해한 백리무 님께서는 천수풍림검공이 백리극 님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 여기고 원망의 나날을 보내셨지. 그분은 끝내 조사님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셨고 말이다.”
“하면 결국 본가와 단목세가 모두 천풍과 은림으로 천수풍림검공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로군요.”
위대한 무인의 너무도 원대한 뜻이 안타까웠다.
두 아들이 그 뜻을 알아주길 바랐겠지만 천수풍림검공을 남긴 것이 독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천수풍림검공을 없애기도 아깝지만, 없는 무공을 넘어설 수도 없으니 비급을 남겨 기준으로 삼은 것이겠지…….’
백리황은 다시 한번 질린 표정을 지었다.
천하제일에 근접한 무공을 뛰어넘으라는 과제라니.
자신이라도 진즉에 포기하고 천수풍림검공에 매달렸을 것 같았다.
“한데 황아. 너는 은풍대의 유산인 천수풍림검공을 얻지 못한 것이냐?”
단목우가 궁금증을 가지고 물었다.
“네. 은풍대의 유산에 대한 얘기도 처음 들었습니다.”
“허어…… 하면 천풍검법만으로 그 나이에 벌써 절정을 이루었다 이 말이더냐?”
천풍검법의 약점 중 가장 큰 문제, 초반 벽의 두터움은 단목우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성이 뛰어나다 하여 극복할 수 없다 여겼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네가 천수풍림검공을 얻었기에 지금의 경지에 오른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구나. 정말 대단하구나, 대단해…….”
단목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어쩌면 백리황이 조사인 백리단의 염원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예? 무엇이 말입니까?”
단목우의 물음에 백리황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너는 천풍검법으로 천수풍림검공을 뛰어넘고 싶으냐, 아니면 얻을 수 있다면 천수풍림검공을 얻고 싶으냐?”
“…….”
한참을 고민하던 백리황은 어렵게 입을 뗐다.
“저는 두 분이 결정하신 길을 걷겠습니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지금의 천풍검법과 은림검법은 백 년 동안 독자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 두 무공을 분석하고 결합하면 백 년 전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해서 두 분께서 혼인으로 가문을 합쳐 서로의 가전무공을 얻으려 하셨고 말입니다.”
“하하하, 그러하냐. 너무 정석적인 답이라 뭐라 트집도 못 잡겠구나.”
단목우는 껄껄 웃으며 백리황의 어깨를 두드렸다.
백 년 후인 지금에 이르렀다 해도 두 무공을 합치진 못한다.
하나 천풍과 은림은 한 차원 더 높은 경지에 오를 것이 분명했다.
그 경지에 올라 정상을 바라볼지, 아니면 다른 산인 천수풍림검공으로 갈아탈지는 그때 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명분과 실리 모두를 얻는 대답이었으니 영리한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 * *
“이런 씨발!”
적사결은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백류혼을 당장이라도 쳐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그의 입에서 하오문주라는 흉적의 실체가 추측이 아닌 확실하다는 말이 나왔으니까.
“체통을 지키시오. 마도의 지존 아니었소?”
“닥쳐, 새끼야. 이게 다 니들 때문이었는데 체통을 지켜? 지킬 체통을 뺏겨서 못 지키겠다, 씨발아!”
“거참…… 우리도 황당하다니까 그러네.”
“황당하긴 뭐가 황당해! 결국 니들이 관리 못 하고 아랫것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이 사달이 난 건데!”
“말했잖소! 그들은 수하가 아니라 일종의 동맹 같은 관계요. 지들이 멋대로 우리를 위해 움직인 걸 우리 탓이라 말하는 건 어폐가 있소!”
“좆까고 있네.”
전대 하오문주로부터 반선주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고, 그 배후인 당대 하오문주에 대한 정보를 알아 온 백류혼.
그런 그를 적사결은 들들 볶고 있었다.
“그럼 다 때려치우든가! 나도 이런 대접받고는 협조 못 하지!”
“어쭈 반말? 그래, 이 새끼야 때려치워! 나도 저 금개 새끼 대갈통 박살내고 서역을 가든 천축을 가든 알아서 할 테니까!”
적사결이 당장이라도 출수할 듯 손을 쳐들자, 백류혼은 화들짝 놀라며 금개의 앞을 이형환위로 가로막았다.
“그런다고 본 좌의 살수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공파결이든 뭐든 막아 봐라. 이번엔 둘 다 핏덩이로 만들어 줄 테니까.”
“젠장! 나도 당신만큼 좆같다니까요!”
억울한 표정으로 존대를 한 백류혼이었다.
“당신?”
“이런 우라질! 어르신! 됐습니까?”
“흑도와 마도가 가는 길은 다르지만 배분은 지키자. 어린노무 새끼가 건방지게 말이야.”
“…….”
백류혼은 똥 씹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금개의 본래 몸을 백리황이 가지고 있으니 그 몸을 인질처럼 적사결에게 저당잡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해서 진짜 때려치울 수도 없기에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눈깔하고 턱에 힘 빼라. 죄다 뽑아 버리기 전에.”
백류혼은 자신이 약자라는 것이 오늘처럼 서러운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눈에 힘을 빼고 악물었던 이를 벌렸다.
“그래서 그 하오문주 씨발 새끼. 어디 있어?”
“말씀드린 것처럼 아직 분석 중에 있어서 뭐라 말해 줄 것이 없습니다.”
기가 눌린 탓에 공손해진 백류혼은 완전한 존대로 적사결을 대했다.
“조금도 없어?”
“그렇게 신출귀몰한 자를 상대로 일을 대충할 순 없지요. 자칫 유인책에 빠져서 다른 사람을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더 알아낸 것은 없어?”
“있습니다.”
“읊어 봐.”
적사결이 허락이라도 하듯 손가락을 까딱하자 백류혼은 심기에 거슬렸지만 꾹 참고 입을 열었다.
“하오문주가 노리는 곳들을 알아냈습니다.”
“노리는 곳들?”
“정확히는 반선주를 사용해 얻고자 한 두 집단이지요. 그는 그 집단을 얻어 본 련에 바치려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게 어딘데?”
“한 사람만 얻으면 그가 속한 집단 자체를 얻을 수 있는 곳. 천하에서 딱 두 곳만이 유일한 절대권력체. 한 곳은 잘 아실 텐데요?”
그 말에 적사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절대권력을 지닌 집단, 두 곳 중 하나는 천마신교였기 때문이었다.
“예. 먼저 하오문주는 천마신교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신교의 교주는 신이나 다름없고 교도들의 맹목적인 신봉을 받는 절대권력을 지니고 있으니, 그 자리를 차지하면 신교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의심조차 하지 않겠지. 무얼하든 거침없을 테고. 한데 본 좌와 몸을 바꾼 놈은 무허 땡중이다. 그 녀석이 하오문주와 결탁이라도 했다는 것이냐?”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죠.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빌어먹을…….”
도대체 무허 노괴의 의중은 헤아리고 싶어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하다하다 이젠 하오문주와도 연루되다니.
“골치 아프니 신교는 됐고. 하면 두 번째 집단은 어디냐?”
“어디겠습니까? 만인지상의 자리밖에 없죠.”
“미친…….”
살협 엽주평이 북경으로 간 이유가 진짜 황제였다니.
명나라 황제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자였다.
천하의 모든 대소사를 직접 결정하고, 옥쇄의 인장을 받지 않으면 어떤 사소한 정책도 실현되지 않는 절대적인 중앙집권체제의 중심에 위치한 인물인 것이다.
“천마신교와 황실을 통째로 바치려 하다니 천하사괴를 뛰어넘는 미친놈이 또 있을 줄은 몰랐군.”
적사결의 중얼거림에 백류혼도 툭 내뱉었다.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줘도 싫다고요.”
“뭐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