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79화>
강소성 북부 회안.
중화를 남북으로 나눌 때 그 기점이 되는 도시로, 예로부터 강소 북부의 물류 중심지였다.
회화강을 통해 서안과 낙양까지 이어지는 미곡 집산지였고, 강소성 해안의 염업 거래상이 모이는 거점이기도 했다.
남부에 남경과 소주가 있다면 북부에는 회안이 있어 강소성의 부를 삼분하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이곳 회안의 무림문파를 대표하는 곳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단목세가.
소주의 패자 백리세가와 함께 강소성의 대표 명문가였다.
그곳의 가주인 단목우는 강동십대고수의 수좌를 타두는 무인.
일신의 무위만으로는 백리세가주 백리검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 단목우의 방문으로 백리세가는 일촉즉발의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돈께서 심기가 많이 상하신 모양이군요.”
백리검이 쓰게 웃으며 눈앞의 단목우를 대했다.
전신에서 가감 없이 발산되는 날카로운 기세.
언제든 출수할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사돈이라? 허허. 아직 혼례를 올리지도 않았는데 사돈이라 부르긴 이르지 않소? 게다가 ‘예비’ 사위가 주화입마라니 심기가 상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 지경이오.”
물론 주화입마가 핑계라는 것을 알기에 화가 치민 것.
늘그막에 얻은 딸이 혼례를 앞두고 퇴짜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단목우는 지금이라도 출수해 백리검의 목을 따 버리고 싶었다.
“휴우. 아비인 저만 하겠습니까. 저 역시 그때는 하늘을 원망했지요.”
“그때라? 하면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오?”
“물론입니다. 다행히 아들이 주화입마에서 벗어났으니까요. 천운이 있었으니 어찌 하늘을 원망하겠습니까?”
“……?”
단목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주화입마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역시 거짓 주화입마가 분명했다.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겠다는 건가? 두 가문 사이에 일어날 전쟁이 염려되어서?’
단목세가가 자랑하는 다섯 개의 정예 타격대를 모두 이끌고 온 단목우였다.
겉으로는 가왜변란으로 혼란스러운 소주 치안에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이었으나 속내는 달랐다.
여차하면 백리세가를 상대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무력시위인 것이다.
“단목가주께서는 제 아들이 나았다는데 기쁘지 않은가 봅니다?”
“……아니오. 하면 내 직접 예비 사위를 만나 볼 수 있겠소?”
“당연합니다. 지금 가 보시겠습니까?”
“그럽시다.”
단목우는 백리검의 안내를 받아 걸음을 옮겼다.
거침없는 발걸음과 달리,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양화의 안목은 틀린 적이 없다. 분명 거짓 주화입마가 분명할진대 어째서 이러는 것일까? 혹시…….’
은풍대 때문은 아닐까.
단목련은 백리림에게 은풍대에 대한 관심을 간파당했다 했었다.
그 이유로 혼례 자체를 파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다시금 그 생각을 고쳐먹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사이에 백리황 그 아이가 은풍대의 유산을 얻었다는 것인가?’
그것이 맞다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단목우는 침중한 눈빛을 한 채 백리검의 뒤를 따랐다.
한데 백리검이 향하는 곳은 백리세가의 북쪽 풍림이었다.
“황아가 이곳에 있다는 말이오? 소가주가 기거하는 곳은 신풍각이 아니었소?”
단목우의 물음에 백리검이 말했다.
“그랬지만 아들의 상세가 얼마 전까지 위중했기에 본가의 심처인 백풍각으로 옮겼었지요. 어쩌면 아들이 나은 것도 백풍각의 선조께서 그 아이를 보살펴 주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백풍각은 백리세가의 초대 가주가 자리를 잡았던 장소.
선현들의 영혼은 풍령전에서 모신다 하나 백풍각은 초대 가주의 영령이 거하는 곳이라 믿었고, 단목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면 좋겠구려.”
단목우는 조용히 읊조리며 걸음을 옮겼다.
백리검은 그 의미를 아는지 조용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은 백풍각에 도착하자마자 백리황을 볼 수 있었다.
백리황이 땀을 흘리며 연무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장인어른!”
백리황은 백리검과 단목우를 보자마자 포검식을 하며 예를 올렸다.
수련 중이었기 때문일까, 흘러나오는 기백이 사뭇 대단하여 두 가주가 움찔할 정도였다.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라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백리황이었다.
적사결의 주입식 교육이 빛을 발한 것이었다.
“어허, 황아. 나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검을 잡는 것이냐?”
백리검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기하며 아들을 타일렀다.
“괜찮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답답해서요.”
“하나 쉬엄쉬엄 하거라. 지난번에도 너무 서두르다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아버님.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여기 사돈께도 사죄드려야겠지?”
백리검이 한 발짝 옆으로 물러서자 단목우를 마주 보며 백리황이 고개를 숙였다.
“장인어른, 제 사적인 문제로 귀가에 심대한 누를 끼쳤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니다. 어디 주화입마가 뜻대로 된다더냐. 그래, 몸은 이제 괜찮고?”
“멀쩡합니다. 오히려 전보다 무공이 상승한 느낌도 들곤 합니다. 몸이 근질근질하달까요?”
“그래, 위기를 겪은 후에 더 성장하는 것이 진정한 무인이지. 주화입마가 전화위복이 되어 벽을 뛰어넘은 모양이구나. 축하한다.”
“과찬이십니다, 장인어른.”
백리황은 활짝 웃으며 단목우를 대했다.
연모하던 단목련의 아버지가 자신의 기도에 감탄하고 축하한다는 말까지 해 주다니.
그에게 진정한 사위로 인정받은 듯하여 기쁜 것이었다.
“한데 주화입마에서 빠져나오던 경험을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느냐?”
“예?”
“나도 무인이니 궁금해서 말이다. 그 무서운 주화입마에 어찌 빠진 것이며 어떻게 그리 빠른 시일 내에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인지 소상히 말해 다오.”
“…….”
백리황은 말없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모습을 단목우는 차가운 안광을 빛내며 지켜보았다.
‘조금이라도 거짓이 섞여 있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주화입마란 증상은 사람마다, 무공마다 모두 다른 법이다.
하나 주화입마를 겪어 본 자는 감으로 주화입마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몸에 각인된 감각이 진실을 가려 주는 것이었다.
알려지진 않았으나 단목우는 젊은 시절 주화입마에 빠졌다 벗어난 경험이 있었다.
비록 일 년 가까이 식물인간 상태로 지냈으나 주화입마를 벗어난 후 큰 성취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제가 주화입마에 빠진 것은…….”
백리황은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후 다음 단계에 대한 강렬한 욕심으로 성급했던 지난날의 자신.
처음 주화입마에 빠질 때의 느낌과 완전히 입마에 들어선 후의 감각.
갑작스러운 깨달음으로 닫혔던 오감이 열리며 느낀 환희까지.
자세하고 꾸밈없는 설명은 단목우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있었다.
‘휴우. 적운님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구나.’
이 모든 것은 적사결은 알려 주었다.
단목우가 과거 주화입마에 빠졌던 사실부터 주화입마의 세계가 어떠한지까지 말이다.
단목우뿐만 아니라 주화입마를 경험한 무인에 대한 정보는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않고 모은 천마신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위적인 주화입마를 이용해 마기를 일깨우는 것이 마공.
한데 주화입마를 겪은 자들은 그 마기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니 사전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주화입마에 대해 천하의 어떤 단체보다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으며, 세 번의 주화입마를 몸소 겪어 본 적사결의 설명이었으니 단목우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대단하구나. 반신반의했건만 진정 강동제일신룡이라 불릴 만해. 아니, 천하제일신룡이라 해도 될 것이야.”
단목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양화의 안목이나 거짓 주화입마, 그리고 은풍대의 유산은 사라지고 없었다.
백리황은 진짜 주화입마를 겪었고 스스로 빠져나온 것이 확실했다.
단목우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릇이 다르다. 은풍대의 유산을 얻는다고 련이가 품을 수 있는 재목이 아니야.’
이어진 생각이 단목우의 복심 자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은풍대의 유산을 얻고 단목이 역으로 백리를 삼킨다는 그 복심 말이다.
단목우는 백리황에게 일대종사의 자질이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내 백리가주께 사죄를 청해야겠소.”
단목우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복심을 가지고 혼약을 진행하고, 의심을 품고 백리세가를 찾은 자신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백리검은 단목우의 갑작스러운 저자세에 화들짝 놀랐다.
그 꼿꼿하고 고고한 단목가주가 고개를 숙였으니 순수하게 놀란 것이었다.
더구나 배분은 같다지만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단목우였으니 더욱 그러했다.
“다 알지 않소? 내가 백리가주의 제안에 응한 것은 본가의 반쪽짜리 무공 때문이었고, 오늘 귀가를 찾은 것은 딸아이가 내쳐진 것으로 여기고 따지기 위해 온 것임을 말이오.”
“허어, 아닙니다. 저 역시 가전무공의 한계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고, 단목가주께서 그리 여기신 것은 아비로서 당연한 처사이지 않습니까. 오해가 풀렸으면 그만인 것을 사죄라니요.”
백리검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을 했다.
사위가 앞에 있으니 장인이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의미인 것이었다.
“내 백리가주를 보기 부끄럽소. 늙으면 인내심이 없어지고 괴팍해진다더니 너무 오래 산 모양이오. 허허.”
“하하하, 더 오래 사셔야지요. 손주도 보시고 그 아이가 단목과 백리를 화합으로 이끄는 것도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리검의 너스레에 단목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두 가문을 이끄는 것은 이런 듬직한 사위가 있으니 손주까지 갈 필요 있겠소? 단목과 백리는 우리 대에서 다시 한 가문으로 만들고 사위가 이립이 되면 통합 가주가 되는 것으로 합시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런 그림이 된다면 단목세가가 백리세가에 흡수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그것이 기정사실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본디 단목가는 백리가의 분가였으니 괜찮고 말고 할 것이 무에 있겠소? 더구나 본가의 세가 점차 줄고 있으니 그리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세가 줄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단목세가는 여전히 회안의 지배자, 강소성 북부를 주름잡는 거대 무가였다.
“몇 해 전부터 상계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소. 안휘성의 휘상부터 섬서성의 섬방, 산서성의 산서회까지 천하의 이름난 거대 상방이 물밀듯이 회안으로 몰려들어 난리도 아니었소.”
“회안이야 회화운하의 집결지라 늘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나 최근 강소상인연합 소속의 상인들이 회안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그 빈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떼로 몰려들었지 뭐요. 그 때문에 본가의 수입원이 되는 곳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말이오.”
단목우는 생각만 해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는 듯 이를 갈았다.
“이거 제금상단의 제문종 그놈이 북부 쪽에도 그런 장난질을 쳐 놓았군요.”
“제문종? 강소상인연합회의 회주 말이오?”
“그렇습니다. 실은…….”
백리검은 소주에서 일어난 가왜 사건의 전말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회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단목세가의 이목을 북부에 잡아놓기 위한 수작이었음도 알려 주었다.
단목세가를 비롯한 북부 무림인들이 소주를 도왔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쳐 죽일 놈의 새끼들! 어찌 인두겁을 쓰고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단 말인가!”
단목우의 일갈에 백리검이 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자자, 전범들은 모두 색출해 가두었고 빠르게 일단락되고 있으니 진정하십시오.”
“한데 그런 변란을 진압하는 데 무명의 무인이 큰 공을 세웠다는 말이오? 그런 자가 정말 알려지지 않은 자요?”
“그렇습니다. 본가의 빈객으로 있는 적운이라는 자로, 저희도 뒷조사를 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백리세가의 힘으로도 알 수 없었다면 무명객이 맞겠군. 허어…… 강호는 정말 넓고도 넓은 듯하오. 본 가주도 그런 영웅과 일면식을 가지고 싶으니 언제 한번 자리를 부탁하오, 백리가주.”
“이를 말입니까. 조만간 함께 한잔하시지요.”
그렇게 두 사람의 대담이 마무리되는 듯하자 백리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 장인어른. 한데 아까 단목가와 본가의 반쪽 무공이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