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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78화 (78/206)

<기적의 이혼대법 78화>

“연금술이다.”

백리림의 말에 백리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용어였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서역의 주술이라 할 수 있다더구나.”

“서역의 주술요?”

“그래. 서방 세계 역시 그들만의 독자적인 주술이 있고 연금술이 그중 한가지라고 한다. 평범한 돌덩어리도 금덩이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 시초라 하는데 천사도에 남겨진 자료만으로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

금을 만드는 주술이라니.

왠지 사기꾼들이나 입에 올릴 법한 말이다.

“우리도 처음엔 허풍이나 민담 같은 이야기로 치부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더구나.”

“어째서 그렇습니까?”

“회족을 아느냐?”

“물론입니다. 중화의 소수 부족 중 그 규모가 큰 곳이지 않습니까.”

중화는 한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가장 큰 비중을 한족이 차지하지만 한족 외에도 장족, 묘족, 회족 등 다수의 소수 부족이 그들만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회족은 과거 중화에 정착한 이슬람 상인들의 후예라 할 수 있었다.

“그래. 알고 보니 연금술이 기록된 그 고서는 회족이 작성한 것이더구나. 회족은 서역인들의 후예라, 산법과 천문학을 비롯해 각종 경물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지. 그런 그들이 연금술을 기록으로 남긴 것은 아주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라 할 수 있단다.”

“한데 이혼대법과 비슷한 효과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기록에 따르면 연금술 중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정령, 서역에서 진이라 부르는 영령을 물건에 담을 수 있는 계파도 있다고 적혀 있었다.”

“사람의 영혼이 아닌 자연계의 영령…….”

“그래, 제법 유사하지 않느냐?”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영령이나 영혼이나 실체가 아닌 영체의 일종.

별개의 것이라 치부할 순 없었다.

“연금술 중에서도 그 주술은 무척이나 특별하다고 했다. 기록에는 기존의 연금술을 기초로 원소학과 점성술이 결합되어 소수의 전승자들에게 이어지는 비전이라 되어 있었단다.”

백리림의 말을 들은 백리황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점성술!”

“그래, 기억하느냐. 반선주의 사용 조건인 별의 기운을 타고난 자들. 자미두수는 바로 중화의 점성술이지. 단순한 추리일 수 있으나 나는 서방의 연금술이 중화에 전해져 이혼대법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단다.”

당금의 명은 쇄국정책을 고수하나 과거의 중화는 달랐다.

국경을 넘어 활발하게 교역을 했고, 건국 초기 정화라는 환관은 서방과 동방의 온갖 국가를 대상으로 대규모 원정을 한 적도 있었다.

회족이 중화에 정착한 것처럼 서방의 문물이 얼마든지 흘러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나 우리가 얻은 단초는 여기까지였다. 이혼대법의 뿌리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 얻었을 뿐, 실제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얻지 못했구나.”

백리림이 착잡한 얼굴로 답하는 그때였다.

“그래도 꽤 엄청난 정보를 알아왔구려.”

회의실로 들어선 이는 적사결.

바깥에서 이미 귀를 열고 백리림의 말을 들었고 이야기가 끝나자 때를 맞춰 들어온 것이었다.

“적운 대협, 어서 오시오.”

백리검이 자리에서 일어나 적사결을 환대했다.

“얘기는 들었소. 본가를 비롯해 소주의 백성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더군. 본가의 힘이 되어 주어 정말 고맙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괘념치 마시오.”

적사결은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 앉았다.

“그건 그렇고 재미있는 얘기를 듣고 오셨던데. 하면 회족을 조사하면 그 연금술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지 않겠소?”

그 물음에 백리검이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소수의 전승자들에게 전해지는 특별한 연금술이라 하니 힘들 것이오. 회족도 결국 일개 상인의 후예들이니까. 하나 시도할 가치는 있을 것 같소.”

“지금으로서는 단 하나의 단초라도 소홀히 할 수 없으니 그래야 될 것이오.”

“회족은 중화 전 지역에 퍼져 있으니 일단 본가와 인연이 있는 회인들을 통해 알아보겠소.”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족에 관해 그렇게 정리가 되자 백리림이 심각한 얼굴로 적사결에게 물었다.

“한데 정체불명의 고수들이 풍림에 잠입해 금개를 데리고 갔다던데 어찌 된 일이오? 그들을 쫓았던 적 대협은 오히려 황아와 돌아왔다 들었는데.”

“백리황 저 녀석에게 듣지 못했소?”

적사결이 쳐다보자 백리황은 찔끔거렸다.

‘이 새끼, 사무련에 관한 건 입을 닫은 것이로구나.’

사무련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한마디를 못한 것이 분명했다.

사파에 대한 반감은 가문의 어른들이 더 크니 그런 것이리라.

적사결은 미간을 찌푸리며 백리황을 데리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단둘만 있게 되자 한숨을 쉬며 물었다.

“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몇 번을 고심했지만 그렇습니다.”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말하면 더 피곤해질 것 같아서요.”

“정면 돌파가 아니라 돌아가는 길이 종래엔 더 피곤해지는 법이다.”

“전 아직 적운님만큼 강하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그들에 대해 얘기하면 적운님에 대한 것까지 흘리게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쯧, 쥐가 고양이 걱정을 하는 게냐? 본 좌는 네 걱정 따윈 필요 없다.”

“압니다. 그래도 저는 가문의 어른들께서 ‘적운님’을 선입견으로 보길 원치 않습니다.”

백리황은 ‘적운님’이라 강조하며 말했다.

자신의 심정은 천마신교의 교주 적사결과 적운을 분리해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적사결은 그 마음을 아는지 혀를 차며 회의실로 다시 들어갔다.

“두 사람 꽤 비밀이 많은 모양이오?”

백리검의 말에 적사결은 피식 웃었다.

“함께 사선을 넘다 보니 없던 비밀도 생기더이다.”

“해서 내 물음에 대한 답은 말해 줄 수 있겠소?”

“이건 말해 줄 수 있소. 금개를 데려간 놈들은 본 좌가 다 때려죽일 수 있는 잔챙이들이니 염려 말라는 것. 그리고 금개는 비처에 숨겨 두었고 적어도 이곳 백리세가보다는 보안이 확실한 곳이라는 것이오.”

“본가의 비처인 풍림에서 놈을 빼앗겼으니 가주인 나로서는 할 말이 없군.”

백리검의 말에 백리림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은풍대가 실책을 했다지만 풍림에서 일어난 일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개에 대한 것은 나와 당신 아들에게 맡겨 두시오. 우리들은 반선주에 당한 당사자들이라 누구보다 놈을 중히 여기고 있으니.”

“그리하겠소.”

“형님!”

백리림이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본가는 이미 한 차례 놈을 놓쳤다. 우리는 이에 더 따질 명분이 없으니 그만하거라.”

“하나…….”

“나는 내 아들을 믿는다. 하니 너도 황아가 금개를 맡은 것이라 생각하거라.”

“……알겠습니다.”

두 번째 안건이 일단락되자 백리검은 새로운 문제를 입에 올렸다.

“다음으로 본가에 닥친 후폭풍을 논의해 볼까 한다.”

“후폭풍이라니요?”

“단목세가 말이다.”

“아…….”

백리검의 말에 백리림을 비롯해 이옥연, 백리염까지 탄식을 내뱉었다.

다들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었다.

백리황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워 주화입마를 핑계로 혼인을 미루자는 일방적인 통보를 한 상황.

그것도 당사자를 보여 주지 않았으니 단목세가로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 수밖에 없었다.

“상공, 뭐라고 연락이 온 거죠?”

이옥연이 담담하게 물었다.

피할 수 없으니 벌써 마음을 다잡은 그녀였다.

“단목가주가 조만간 방문하겠다 하오. 귀한 영약을 구했으니 예비 사위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서신도 있었고 말이오.”

“직접 확인하겠다는 뜻이군요.”

“련이 그 아이가 눈치 챈 것인지도 모르겠소. 재지가 뛰어난 아이니 말이오.”

“그 아이일 수도 있고 유모라는 그 수행인이 알아챈 것일지도 모르죠. 알아보니 단목가의 전대 가주를 모시던 여인이라더군요.”

“그랬었소? 하면 영약은 핑계고 황아의 병세를 확인하기 위함이 분명하군.”

백리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심했다.

영혼이 뒤바뀐 아들을 보여 주더라도 이혼대법을 믿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 단목가주가 직접 온다는데 백리황을 보여 주지 않고 버틸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뭘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오? 백리황 저 녀석을 보여 주면 될 일인 것을.”

적사결은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었고 그런 그를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상황을 모르는 바가 아닐진대 너무 쉽게 말해 그런 것이다.

“백리세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단목가와 혼약을 맺는 것이오, 아니면 파혼을 하는 것이오?”

적사결의 물음에 백리검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물론 혼약을 맺길 바라오. 이번 일이 없었다면 아무 문제없이 혼인을 진행했을 것이오.”

그렇겠지. 가주인 그가 직접 진행한 일이었으니.

“하면 애송이 너도 마찬가지겠구나? 단목련인지 그 아이를 마음에 품고 있다 했으니.”

“저…… 적운 님.”

백리황은 얼굴이 벌게져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남자가 남자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좋다는 걸 뭘 그리 부끄러워하느냐. 쯧쯧.”

“그…… 그게 아니라…….”

어른들 앞이라 부끄러운 백리황이었다.

“여하튼 마음은 변치 않은 것이렷다?”

“그…… 그렇습니다.”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저번에 말한 바 있지 않소? 무허의 얼굴을 지금 이 얼굴로 바꾼 것이 본 문의 비전이라고. 내 특별히 이 녀석의 얼굴을 바꿔 줄 테니 가능하면 서둘러 혼례를 치르시오.”

“아니, 그게 가능하오?”

백리검이 화색을 띠며 되물었다.

아들의 얼굴을 늙은 거지에서 본래의 외모로 바꿀 수 있다면 아무 문제없기 때문이었다.

“가능하니 말을 꺼낸 것이지 않소? 단, 얼마나 유지될지는 시험을 해 봐야겠지만 그리 오랫동안 효과가 가지는 않을 거요.”

금개가 풍사환혼진 내에서 자해했을 당시, 적사결은 의식을 잃은 놈의 상처를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의념법이기에 물리적인 간섭 없이 타인의 신체를 뜻대로 조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결론 내린 것은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타인에게 천축유가신공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탁하오, 적 대협.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니 부디 그렇게 해 주시오.”

백리림의 화답에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본 좌를 전적으로 믿으시면 되오. 흐흐.”

*   *   *

풍림 백풍각으로 돌아온 백리황은 적사결에게 물었다.

“적운 님, 정말 외모를 일시적으로 바꿀 수 있나요?”

“본 좌가 허언이나 일삼을 위인으로 보였더냐?”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본가에 처음 왔을 때 그걸 써먹었다면 일이 수월했을 것 같아서요.”

“과거에 얽매이는 그 나쁜 버릇 버리거라. 내 어련히 알아서 했겠느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리 가까이 오거라.”

적사결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백리황은 짐짓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적운 님, 천마신교의 비술과 제 내공이 충돌하지는 않을까요? 괜찮겠죠?”

이런 똥멍청이가.

적사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짜증을 비쳤다.

“이 새끼야, 지금 본 좌의 몸은 땡중의 것이란 걸 잊었느냐? 충돌? 그래, 의식을 잃으려면 본 좌의 주먹과 충돌은 해야지!”

“예? 의식을 잃다니요?”

뻐억.

“끄어어억.”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격.

적사결의 주먹은 백리황의 명치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호신강기도 미처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빠른 기습에 백리황의 눈동자는 허옇게 뒤집어졌고 이내 의식이 날았다.

의식이 없어야 더 용이해지니 손을 쓴 것이었다.

백리황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힌 적사결은 손바닥을 안면에 대고 의념을 집중했다.

꿈틀. 꿈틀.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안면 근육이 경련하며 천축유가신공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역시 되는군. 좀 느리긴 하지만 이 정도면 일각 안에 바꿀 수 있겠어.”

치료보다는 일시적인 변형을 주는 것이 더 쉬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적사결은 백리황의 본래 외모를 떠올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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