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76화 (76/206)

<기적의 이혼대법 76화>

“아버지께서 그자와 단둘이 자웅을 겨룰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죠. 이 기회에 그때 못 다한 승부, 아니 찝찝했던 과거를 청산하는 게 어떠세요?”

“흥, 뭔가 했더니. 그걸 내가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느냐? 그때 네 할아버지와 전대 마교주의 양패구상으로 사무련과 천마신교는 갑작스레 엄청난 혼란을 맞이해야 했다. 그놈도 그렇고, 나도 그 사건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니 녀석과 나는 후계를 탄탄히 하지 않고는 싸우지 않을 것이야. 때가 되면 녀석과 나는 필연적으로 붙게 되어 있어. 서로에게 빚이 있으니 말이다.”

각자의 직위를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싸울 것이란 의미였다.

역시 백천악은 그때의 일을 승패가 난 것이 아닌 빚을 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싸우지 못할 수도 있어요.”

“뭐?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뒷이야기가 듣고 싶으시다면 거래 조건에 승낙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단언컨대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광혈존과 승부를 보지 못할 겁니다.”

당사자가 몸을 빼앗겼으니 되찾지 못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백류혼은 적사결의 상황을 알기에 피식 웃었다.

‘생애 유일한 호적수가 팔십 늙은이가 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이 되었으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겠지.’

숙적 또는 호적수라는 존재.

영혼에 새겨진 듯한 상대의 존재는 그를 넘어서기 전에는 그 각인이 사라지지 않는다.

무인에게 있어 그런 존재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제법 아비를 놀릴 줄 아는구나.”

“거래할 줄 안다고 해야겠죠.”

백류혼의 너스레에 백천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큭큭. 좋다. 네 조건을 수락하마. 하니 말해 보거라. 어째서 놈과 승부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냐?”

“지금 광혈존도 금개님과 똑같은 처지거든요.”

“……뭐?”

“반선주를 마시고 영혼이 바뀌었죠. 소주에서 그를 만나고 바로 오는 길입니다.”

백천악은 멍한 얼굴로 입을 살짝 벌렸다.

그만큼 충격이었던 것이었다.

“노…… 놈이 누구…… 누구와 몸이 바뀌었느냐? 천하사괴 중 누구냐?”

“취불입니다.”

“허…… 이런 미친 땡중 같으니. 불제자란 놈이 마구니의 수장에게 그걸 써?”

백천악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아시겠죠?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아버진 광혈존과 빚 청산 못 합니다. 팔십 노인의 몸이니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거 없다고요.”

“이런 젠장맞을!”

타아앙.

태사의의 팔걸이를 내려친 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너 혹시 그놈과 싸워 보았느냐?”

“네. 불가기공으로 광혈수라공을 사용하더군요. 손강이 아니었다면 못 알아봤을 겁니다.”

“그런 거 말고. 싸워 보니 어떻더냐?”

백류혼은 난감한 듯 볼을 긁적이며 모기 같은 소리로 말했다.

“그게…… 삼십초도 못 버티고 졌습니다.”

“뭐? 제 몸도 아니고 남의 몸을 한 놈에게 져? 그것도 오늘내일하는 팔십 노인의 몸뚱어리를 가진 놈에게?”

“그 취불 무허의 몸이잖아요. 사실 오늘내일하는 건 좀 아니죠.”

“흥, 아까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더니.”

“……쩝. 할 말 없네요.”

백천악은 손사래를 치며 다시 물었다.

“됐고. 놈을 상대한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하듯 자세히 말해 보거라. 보고라 생각하고 조금의 이상한 점도 모두 말해야 할 것이다.”

“네, 그것이…….”

백류혼은 적사결을 만난 과정을 소상히 보고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백천악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풍문으로 듣던 것과는 또 다르구나. 그새 더 강해진 건가?”

“아무래도 천마신교는 변방이란 위치도 있고 폐쇄적이라 정보를 얻기 힘드니 그렇겠죠.”

“그래도 놈은 취불과 몇 번이나 격전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때 흘러나온 정보는 놓치지 않고 챙겼고 말이다. 그중 발출한 기공을 회수해 다시 사용한 기예는 최근 감숙에서 싸웠던 그때 사용한 거긴 한데 나머지 두 가지는 처음 듣는구나.”

늑대…… 인간? 이라 해야 할까?

그런 괴물로 신체를 변형하는 것이나,

기의 단환?

그런 걸 만들어 먹다니.

식견이 풍부한 백천악도 그런 얘긴 처음 들었다.

백류혼의 말이 아니었으면 거짓말이라 치부할 정도로 믿기 힘들었다.

“무허의 사문인 소림에도 그런 건 없다. 그렇다면 놈이 새로이 얻은 기예라는 말인데…….”

백천악의 고민이 깊어지려 하자 백류혼은 그의 상념을 끊으며 말했다.

“생각은 천천히 하시고 일단 거래를 시작하시죠. 하오문주, 만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 순간이었다.

벼락처럼 뻗어 나간 일장.

백류혼은 인지했음에도 아버지의 장심이 가슴에 닿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쩌어어어엉.

“쿠엑!”

쏘아진 포탄처럼 날아간 백류혼은 대전 반대쪽 벽을 반쯤 파고들었다.

그러자 그 지점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은 금이 방사형으로 퍼져 나갔다.

쩌억. 쩌저저적. 후두두둑. 털썩.

처박혀 있던 곳이 무너지며 바닥에 떨어진 백류혼은 거품을 입가에 물고 있었다.

-삐이이익! 삐익!

붕아는 백류혼의 앞에서 날갯짓을 하며 백천악을 막았다.

그러고는 당장이라도 본체로 현신할 듯 황금빛 광채를 뿜어 댔다.

“안 죽이니까 그리 쏘아보지 말거라, 붕아야. 애초에 이거 맞고 뒈질 만큼 나약한 놈도 아니니까.”

백천악이 입꼬리를 올리며 붕아를 지나쳐 백류혼에게 다가갔다.

“아들아, 감히 아비의 생각을 끊고 주둥이를 놀리다니 많이 컸구나. 허허허.”

껄껄 웃는 백천악은 그대로 아들을 어깨에 둘러메었다.

“아까부터 아비에게 건방을 떤 값이니 너무 야속하게 생각지 말거라. 흐흐흐.”

백천악은 대전을 나서며 생각했다.

‘그곳의 위치는 사무련주 말고는 알아선 안 되는 곳이라 부득불 기절시켰으니 네가 이해하거라.’

기절한 아들에게 말하지 못했으나 어차피 녀석이 사무련주가 되면 언젠가 알게 될 일.

이해는 그때 가서 해 주어도 늦지 않을 거라는 게 백천악의 생각이었다.

한데 아들은 달랐다.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백류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망할…… 영감…… 탱…….”

*   *   *

툭툭.

“그만 일어나거라. 그거 한 대 맞았다고 언제까지 잘 셈이냐?”

아 씨, 누구야.

백류혼은 무거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면서 몸을 뒤집었다.

그러자 눈을 비추는 빛줄기를 배경으로, 검은 인영이 보였다.

“으음…… 누구…….”

퍼어억.

“쿠엑!”

옆구리로 파고든 엄청난 경력에 백류혼의 몸은 십여 장이나 붕 떴다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을까.

“콜록. 콜록.”

백류혼은 기침을 내뱉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어딜 아비에게 못된 눈깔을 치켜드느냐!?”

빠악.

“크악!”

뒤통수에 작렬한 충격에 백류혼이 주저앉아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리저리 동네북이 된 것만 같았다.

‘이 노인네는 또 누구야? 언제 내 뒤를 점했던 거지?’

잠이 덜 깬 상태로 얻어맞아 정신이 없었다지만 완벽하게 뒤를 뺐긴 자신이었다.

무인에게 등 뒤를 내준다는 것은 목숨 줄을 내준 것과 진배없었다.

“노인장은 뉘십니까?”

“쯧쯧, 둔해 빠진 놈이로다. 이보시오, 백련주. 이놈보단 수연이가 후계로 더 낫지 않겠소?”

노인은 백천악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장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본 좌의 후계자는 그 녀석이오. 노백께서도 오랫동안 지켜보면 녀석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외다.”

“흐음…… 내재된 잠재력이 깊다는 말인가 보오?”

노백이라 불린 노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백류혼을 향해 말했다.

“정신 차렸으면 이리 와서 앉거라. 내 전후 사정은 련주께 들었으니 네가 궁금한 점에 대해 대답을 해 주마.”

그 말에 백류혼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면 노인장께서 하오문주?”

“정확히는 하오문주였지. 지금은 뒷방 늙은이고. 끌끌끌.”

“네?”

“네는 무슨 네냐, 그렇다면 그런 거지. 덜떨어진 소리 하지 말고 와서 앉으라니까!”

“네…… 네.”

노백의 호통에 백류혼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갔다.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백류혼은 기파를 흘려 주변을 탐색했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에 노백은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흐음. 현재의 지형과 상황을 인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이나, 기의 조절이 실로 섬세하구나.’

백류혼이 흘린 기파는 불어온 바람결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자신조차도 인위적인 흐름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만큼 내공의 수발이 막힘없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융통무애의 경지에 올랐다는 증거였다.

‘저 나이에 융통무애라니…… 무공의 자질만큼은 지금의 련주 못지않구나.’

노백은 벌써부터 백류혼의 진가를 하나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니 백천악의 말대로 오랫동안 지켜보면 얼마나 더 많은 잠재력이 있을지 호기심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이어지는 사이 백류혼은 자리에 앉았다.

“일단 아버지께서 먼저 설명 좀 해 주실래요? 전 하오문주를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왜 전대 하오문주를 만나게 해 주신 거죠?”

“당대의 하오문주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니까.”

“모르신다고요? 정말요?”

백류혼의 물음에 대한 답은 노백에게서 나왔다.

“련주의 말대로니라. 하오문주는 본인 외에는 누구도 그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만날 수 있는 방법조차 없지. 다만 흑천백가의 가주는 전대 하오문주를 통해 당대의 하오문주에게 한 번 정도는 연락을 취할 수 있단다. 해서 나를 찾은 것이야.”

“그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 노백님께서는 어떻게 연락을 취한다는 겁니까?”

노백은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숲속에서 덩치가 송아지만 한 개가 나타났다.

“뭔 놈의 개가 저렇게 큽니까?”

“천리추견이란 놈이다. 천 리 밖의 목표물을 쫓을 수 있는 영물이지. 이놈이 당대 하오문주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으니 연락용 전서구 대신 쓰이는 것이다.”

“한 번이라는 말은 이놈을 통해 연락을 받자마자 당대 하오문주가 죽이기 때문이겠군요.”

“제법 잘 꿰뚫어 보는구나. 그래, 연락을 취한 후 천리추견 이놈과 노부는 하오문의 척살 대상에 오른다.”

“전대 문주까지 죽인다는 말입니까? 끔찍하군요.”

“끌끌. 그걸 알고도 그 자리에 올라갔던 나다. 나 역시 전대 문주를 내 손으로 죽였고 말이다. 하니 녀석에게 죽는다 해도 억울할 것도 없지.”

노백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곰방대를 물었다.

하나 어딘가 측은한 기색을 백류혼은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의 기일이면 보이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물 학대도 하기 싫고, 노백님 목숨도 원치 않으니 저건 못 쓰겠군요.”

백류혼의 말에 노백은 피식 웃었다.

“사무련의 후계자라는 놈이 너무 착한 거 아니냐? 그래서 나쁜 놈들이 모인 흑도의 지존이 될 수 있겠느냐?”

“흑도가 나쁘다고 누가 그럽니까? 나쁜 놈은 정도에도 있고 마도에도 있습니다. 흑도는 그저 이익을 가장 우선할 뿐이죠. 이기적으로 보이기에 나쁘게 보일 뿐, 나쁜 놈들만 모인 건 아닙니다.”

“클클, 젊은 놈의 희망찬 시야는 보기 좋구나. 하나 나쁜 놈들의 비중이 제일 많은 건 사실이지.”

“뭐 그건 부정할 수 없군요. 하나 착하다고 흑도의 지존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건 어째서냐? 착하면 손해를 본다. 지금도 보거라. 너는 당대 하오문주를 만날 기회가 있음에도 그걸 사용하지 않는다 했다. 그것이 필요해 네 아비를 구슬렸음에도 목적을 이루지 못하니 막대한 손실이 아니더냐?”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막대한 손실까지는 아닙니다.”

백류혼은 흔들리지 않는 거목과 같은 자세로 노백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