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75화>
* * *
-삐이이익.
동정호 상공에 황금빛 거조가 활강하며 그 거체를 수면 위에 비췄다.
사무련의 수호신조로 불리는 화식조, 붕아였다.
“막상 오니 떨리네…….”
백류혼은 붕아의 등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가를 가늘게 떨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동정호 중앙에 위치한 군산도였다.
그곳에는 사무련의 본단이 있었고 당연히 아버지인 사무련주 백천악이 있을 터였다.
“영감, 화 많이 났다는데…… 어쩌냐, 붕아야.”
백류혼의 말에도 붕아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당연히 혼날 것이니 무슨 소릴 해도 소용없을 것이란 생각이었으니까.
“넌 내 편 들어 줘야 해, 알았지?”
-삐애액.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다는 붕아의 응원.
백류혼은 그제야 가슴을 펴고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다.
“내려가자.”
신조는 크게 선회하며 부드럽게 군산도에 안착했다.
이어서 백류혼이 훌쩍 뛰어 땅에 내려서자 붕아는 금색 기운을 뿜어내며 그 거체를 변모시켜갔다.
파아앗.
빛이 사라지고 난 붕아의 몸은 대략 참새 정도의 크기로 변해 있었다.
-삐익.
붕아는 고개를 탈탈 털며 불편한 표정을 보였다.
본신과 달리 지금의 몸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마치 작은 상자에 신체를 억지로 구겨 넣은 느낌이랄까.
하나 백류혼을 따라 사무련 본단의 건물 내로 들어가려면 모습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고맙다, 붕아야. 내가 나중에 맛있는 거 쏠게.”
백류혼은 어깨에 내려앉은 붕아의 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마중 나온 자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동정호 상공에서 화려하게 나타난 순간부터 자신을 주시하고 있던 사무련의 중진들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아버지를 뵈러 왔는데 만나 뵐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련주님께서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으음.”
백류혼은 침음을 삼켰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보고되고 있었다는 것.
십이사령과 야차혈전대와 함께할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닥치고 보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지.”
무거운 발걸음이 사파의 하늘이 거하는 대전으로 향했다.
* * *
“얼굴은 좋아 보이는구나, 망나니 아들아.”
태사의에 팔을 걸치고 얼굴을 기댄 채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중년인이 말했다.
그가 사파의 지존, 사무련주 백천악이었다.
초대 사무련주인 투신 이후 최초로 파황십결을 대성했다하여 얻은 별호는 파황무존.
사마오대존의 일인으로 천하 십대고수 중 천하제일에 가장 근접했다 알려진 절대 고수였다.
“아버지야말로 혈색이 더 좋아지셨네요. 곧 반로환동도 하시겠는걸요?”
백류혼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꾸했다.
하나 겉보기와 다르게 등에서는 식은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약한 모습을 조금만 보여도 손찌검이 날아들기에 배포 있게 대하고는 있었지만 긴장이 되는 것이다.
만약 그 배포가 선을 넘으면 어김없이 무자비한 폭력이 날아드니까.
“왜? 아비가 젊어져서 계속 련주를 했으면 좋겠느냐? 네놈은 한량마냥 자유롭게 살고?”
“그럼 더할 나위 없죠. 흑도인들은 뛰어난 련주를 계속해서 모실 수 있고 저는 제 뜻대로 살고 말이에요.”
“웃기는 소리. 그렇게 정체된 집단에 미래는 없다. 나는 반드시 네놈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고 말 것이야.”
“수연이도 있는데 왜 꼭 저에게 그렇게 매달리세요?”
“흐흐, 망나니라 해도, 수연이가 네놈에 비하면 부족하지 않느냐.”
“전 아버지만 보면 등에 식은땀이 나고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뛰어나긴요. 더구나 말씀하신 것처럼 망나니로 살고 싶은데 그냥 절 좀 내버려 두시면 안 될까요?”
“내 여러 번 말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그 삶을 원한다면 단전을 폐하고 사지근맥을 자른 후 나가거라. 의무를 짊어지기 싫다면 본련으로부터 받은 것을 내놓고 나가야지.”
아들에게 단전을 폐하고 사지근맥을 자르라니.
백류혼은 그런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아버지가 진심으로 두려웠다.
‘진짜 그럴 수 있는 냉혈한이니 더 무섭네, 시부럴.’
백천악은 흑천백가의 삼남으로 태어나 사무련의 권좌를 손에 넣은 인물이었다.
사무련에 속한 다른 가문과 문파의 후보자들은 물론이오 형제인 두 명의 형님을 직접 처리한 피의 군주.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십 년 전, 처가가 반란을 일으키고 그 일에 자신의 아내가 연루되자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녀를 단죄한 철혈의 사내였다.
백류혼이 권력을 탐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바라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도 한 몫 한 것이었다.
“흥,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무공을 잃긴 싫은 모양이구나. 역시 네놈은 뼛속까지 천상무인. 자유로운 삶은 다음 생에나 살거라.”
“……끙. 정말 말이 안 통하시네요.”
“흰소리는 그만하고 돌아온 용건이나 말해 보거라.”
“용건이라……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영혼을 바꾸는 반선주. 그것을 사용한 금개. 그리고 그 금개를 돌려놓지 않으면 본련으로 복귀하지 않겠다는 네놈의 멍청한 결심. 그 정도랄까?”
“거의 다 아시네요? 혹시 도와주실 거예요?”
백류혼은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물었다.
“흑도인이 도움을 바라는 것이냐? 거래라 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역시나 기대한 내가 바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같으니.
“그럼 거래에 응해 주실 건가요?”
“들어 보고 판단하마.”
“일단 제가 원하는 것은 하오문주의 위치예요.”
“하오문주라…… 꽤 까다로운 걸 요구하는구나. 그자에 대한 것은 왜 묻는 것이냐? 특별한 정보를 원한다면 네 신분으로 하오문에 요구해도 될 터인데.”
거기까지는 보고가 가지 않은 것인가.
백류혼은 그 물음에 자신이 붕아를 타고 이동했기에 사령들이 보낸 보고서가 도착하기 전인 것을 깨달았다.
붕아가 자신을 태웠다지만 전서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비행 속도를 자랑했으니까.
“최신 정보는 모르시네요. 자세히 설명하면 길어지니까 요약해서 말씀드릴게요. 저는 하오문주가 반선주를 만들었다 보고 있어요.”
“그자가? 혹시 사신과 관련된 그 일화 때문이더냐?”
“네. 그분께서 남기신 이혼대법의 유산이 지금까지 이어져 반선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 주술을 몸소 겪으신 사신께서도 완성하지 못한 것을 당대의 하오문주가 완성했다라…… 흠…….”
백천악이 고개를 괴고 생각에 잠기자 백류혼이 말을 이었다.
“무려 이백 년에 가까운 세월이에요. 천하제일의 정보 집단인 하오문이 이백 년 동안 그 비밀을 파헤쳤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 보패를 얻었다면 그것을 분석하여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 하나 사신의 사후, 운남의 이족이 약조대로 보패를 회수해 갔다 전해진다. 불가능해.”
“이족과 연이 닿았다면요?”
“그 역시 불가능하다. 운남의 이족은 이후 이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었으니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자들이나 마찬가지인데 연이 닿았을 리 없지.”
“아버지도 과거의 기록만 아시니 모르는 일이에요. 어쩌면 사신께서 죽기 전에 단서를 남기셨는지도 모르고요. 하오문주를 직접 만나 확인하고 싶으니 위치를 알려 주세요.”
자신의 회의적인 말에도 백류혼이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묻자 백천악은 피식 웃었다.
“뭐, 이 애비를 보면 식은땀이 나고 정신을 못 차려? 나와 마주하고 따박, 따박 제 할 다하는 놈들이 어디 흔한 줄 아느냐?”
은연중에 배어나오는 절대자의 기도.
그 덕에, 백천악을 대하는 모든 이들은 가진 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것이 무공이든 언변이든 말이다.
한데 백류혼만큼은 달랐다.
심지어 무공을 익히기 전에도.
그것은 그가 절대자의 기질을 타고났다는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동류이기에 영향을 덜 받는 것이다.
“갑자기 왜 딴소리세요. 거래 조건이나 말씀해 주시죠?”
“내 조건은 네가 본련으로 돌아와 착실하게 후계를 잇는 것이지. 흐흐.”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백류혼은 머리를 짚으며 물었다.
“다른 건 없으세요?”
“내가 아쉬울 게 무에 있겠느냐?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었거늘.”
“있을 텐데요.”
“뭐?”
심기가 거슬린 백천악의 눈썹이 휘어졌다.
백류혼은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저 말구요. 아버지의 호적수 말이에요.”
“이 아비에게 호적수가 있었더냐? 금시초문이구나.”
광오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한데 백류혼이 담담히 자신을 보자 백천악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천하에 나와 비견될 만한 놈들은 그나마 취불 그 늙은이와 광혈존 그 싸가지 없는 독종 새끼 정도일 텐데. 놈들도 호적수라 하기엔 모자람이 있다. 취불은 팔십이 넘었으니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반시체고, 광혈존 그 새끼는 기껏해야 변방의 골목대장일 뿐이니까.”
백류혼은 원하던 대답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 말씀대로 그렇죠. 본련의 행보에 항상 걸림돌이 되는 창궁검제도 일신의 무위로는 아버지께 미치지 못하니 그 두 사람 말고는 호적수라 할 만한 이들이 없어요.”
백천악이 여전히 미간을 펴지 않고 있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으냐고 묻는 표정이었다.
“특히.”
여기서 강하게 어조를 올리고.
백류혼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광혈존 적사결. 듣자 하니 젊은 시절 아버지와 한 차례 부딪힘이 있었다죠? 혈기왕성하고 미숙한 시기였지만 명백하게 승패가 가려졌었구요.”
“그래, 내가 이겼지. 한데 그건 누구에게 들었느냐?”
“그냥 저냥 알게 되었어요.”
“쯧, 어쨌든 그 얘긴 왜 꺼내는 것이냐?”
백천악은 세상 불편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 생각에는 그자가 아버지의 유일한 호적수인 것만 같아서요.”
“……?”
“물론 당시 승부는 아버지가 이겼죠. 한데 지금 아버지 표정이 말해 주는 것처럼 찝찝한 건 있었잖아요?”
적사결이 적랑대주였던 시절.
당시의 백천악도 사무련의 타격대인 묵혼파천대의 대주였다.
그리고 그때 그들은 각자 주군인 천마신교의 교주와 사무련의 련주를 호위한 채 만나게 되었었다.
천마신교주와 사무련주의 비밀 회동.
은밀했던 만큼 두 절대자는 각자 친위대를 본단에 남겨 둔 채 두 번째로 믿을 만한 타격대를 대동했었고, 그들이 적랑대와 묵혼파천대였다.
“결국 비밀회동은 파탄이 났고 호전적인 두 수장들은 칼부림을 일으켰죠. 그 과정에서 전대 마교주와 전대 사무련주인 조부께서는 양패구상했고, 아버지께선 광혈존을 패퇴시키셨어요. 한데 주목할 만한 것은 조부께서는 당시 현장에서 사망하셨고, 전대 마교주는 살아서 신강까지 돌아간 거예요.”
생사결에서는 이겼지만 임무인 호위에서는 진 것이다.
당시 전대 마교주가 목숨을 부지한 것은 적사결 덕분이었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그 독한 새끼가 뱃가죽이 찢어져 내장이 삐져나오고 사지근맥이 잘리고도 한 수가 남아 있었을 줄 알았겠느냐!? 그럴 줄 알았다면 대갈통을 부숴 놓았을 것이야!”
백천악은 처음으로 격앙된 목소리로 일갈했다.
잠깐의 동요로 새어 나간 기파에 건물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삐걱거렸다.
백류혼은 그 엄청난 기운을 정면으로 받으며 식은땀을 비오듯 흘렸다.
“진정하세요. 그때도 그랬지만 누구도 아버지를 탓하지 않으니까요.”
“젠장. 그래서 그 새끼와 관련해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거래 조건으로 광혈존 적사결. 어떠세요?”
“뭐? 그게 무슨 뜻이냐?”
백천악은 노기를 가라앉히고 아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