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74화 (74/206)

<기적의 이혼대법 74화>

“금개, 아니 백리황이지. 계속 헷갈리는군. 너에게 물을 것이 있다.”

청령이 앞으로 나서며 운을 띄웠다.

백류혼 때문에 자신들의 용건을 꺼내지 못한 그들은 따로 적사결과 백리황의 뒤를 따랐던 것이었다.

“낙양에서 우리들 십이사령 중 금령과 녹령, 그들을 만났을 텐데 네가 죽였느냐?”

“그걸 알고 싶어 따라온 것이오?”

“그렇다.”

청령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하자 적사결이 피식 웃었다.

“큭큭, 잘못 짚었다. 이런 애송이가 십이사령을 죽일 수 있을 리 없지.”

“하면 광혈존 당신입니까?”

“그렇다면?”

적사결이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오만하게 쳐다보자 사령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복수를 생각할 수 없는 상대.

십이사령이 알고도 손을 쓸 수 없는 열 명 중 일인이었으니까.

“백리 애송아, 저 똥 씹은 얼굴이 보이느냐?”

“……네.”

“염라대왕도 죽인다는 저 살귀놈들이 흉수를 알고도 표정만 굳히게 만든 것이 무력이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철저히 지배하는 곳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무림, 강호. 본교가 무를 숭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지. 비록 정파인이지만 네놈도 사내라면 강해져라.”

그 말을 끝으로 적사결은 네 명의 사령 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나 누구도 그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않고 길을 비켜 주었다.

‘강함이라…….’

적사결의 뒷모습을 보는 백리황의 눈에서 동경의 빛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다른 사내의 등을 바라보는 소년은 그 대상을 닮아가려 하고 있었다.

*   *   *

“와아, 정파 굼벵이, 정파 느림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정말 가관이구나.”

적사결은 백리세가에 도착해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감노를 필두로 백리세가의 무인들이 그제야 출발할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씨발련과 싸우며 그 소란을 일으켰는데도 이제야 출발 준비를 마쳤다니…… 쯧쯧.’

더구나 백류혼과 싸울 때는 버섯구름이 백장이 넘게 하늘로 치솟았었다.

그뿐인가.

백리황이 성 밖에서 납치되어 적사결 앞에 나타났고 모든 싸움이 정리되고 돌아온 것이 지금이었다.

그런 적사결의 눈빛을 읽었기 때문일까.

감노가 헛기침을 하며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이거 면목이 없소…… 보아하니 이미 상황이 종료된 모양이구려.”

“눈치는 빠른데 왜 행동은 굼뜬 것이오?”

“노부가 은풍대인 것이 독이 되었소.”

“……?”

“휴우…… 가주와 각주가 둘 다 부재중이다 보니 노부의 신분 확인에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소.”

“가주 대리인 이 부인이 있지 않소.”

“이 부인을 만나는 데까지 오래 걸렸고, 부인의 명에도 가문의 평무사들이 나를 믿지 못해 풍령전의 전대 고수들까지 나서느라 그런 것이오.”

한 마디로 가문의 숨겨진 힘이었기에 발언권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백리세가의 가솔로서 활동한 것은 수십 년 전이니 얼굴을 아는 자가 풍령전에만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뭐 나한테 변명할 필요는 없으니 그만하고 들어가지.”

“한데 어찌 이천억이 아니라 도련님과 오는 것이오?”

감노는 주변 무사들이 들을 새라 속삭이며 물었다.

이천억을 쫓은 적사결이 뜬금없이 백리황과 나타났으니 물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들어가서 얘기하자고 하잖소. 보는 눈이 많은데 다 떠벌릴 셈이오?”

“아…… 아니오. 갑시다.”

감노는 머쓱해하며 적사결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향한 곳은 이옥연이 가주 대행을 맡고 있는 천풍각의 가주집무실이었다.

그곳에는 이옥연과 대장로 백리염이 자리해 있었다.

“적 대협, 벌써 돌아온 것입니까? 혹시 금개를 놓쳤나요?”

이옥연의 물음에 적사결은 고개를 저었다.

“놓친 건 아니오. 단지 백리세가보다 실력이 확실한 자들에게 맡겨 놓았으니 안심하시오.”

“그들이 누군가요?”

이옥연의 재촉에 백리황이 나서서 그녀를 진정시켰다.

“어머니, 제 몸 어디 가는 것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적운 님 말대로 뛰어난 자들이 그를 감시하고 있으니까요.”

전 무림을 뒤져도 야차혈전대만큼 뛰어난 타격대는 드물었다.

단일 타격대로는 오직 천마신교의 수라혈검대, 사천회의 암왕대, 남궁세가의 창궁검대만이 그들과 비견할 수 있었다.

“네가 그리 말한다니 알겠다. 한데 넌 언제 돌아온 거니? 아직 검풍대와 다른 이들은 복귀하지 않았는데.”

백리황이 난처함을 드러내자 적사결이 억지로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이 녀석은 이혼대법 관련한 것 때문에 내가 불렀소.”

적사결도 자리에 앉자 백리염이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혹시 이혼대법과 관련한 단초를 얻은 것인가?”

“일단은 그렇소.”

“허어! 무엇인가? 어서 말해 보시게.”

“자자, 너무 호들갑 떨지 마시고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이 녀석에게 들으시면 될 거요.”

적사결이 백리황을 가리키며 말하자 백리황이 ‘저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 자신에게 관련된 사안인데 네가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지. 그들과 함께할 것인지 믿지 못해 네 가문의 어른들과 함께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말씀드리거라.”

백류혼 일행과 함께하는 것은 사무련과 긴밀한 협조를 하게 된다는 것.

천마신교만큼이나 사파와 정파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런 사파를 믿어야 되는 일이니 그에 대한 결정에 적사결은 낄 이유가 없었다.

“일단 왜구와의 전쟁 상황에 대해 듣고 싶은데 전황은 어찌 돌아가고 있소?”

“소주를 공격했던 왜구들은 아직 도주 중에 있어요. 되도록 절강성에서 넘어오고 있는 놈들과 합류하지 않도록 최대한 끝까지 추격할 예정이라 합니다.”

이옥연의 말에 적사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기까진 본좌도 알고 있는 부분이오. 추가된 정보는 없소?”

“남경에서 출발한 지원군에 대한 소식도 있어요. 금의위 위사들이 일군을 이끌고 남하 중이며 절강왜구들을 요격할 계획이라 합니다. 관에서 파악하기로 일군의 규모는 대략 이만. 충분히 일만에 달하는 절강 왜구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섰다 들었어요.”

“그거 다행이오. 소주의 백성들이 변란을 두 번이나 겪지 않게 되었으니 더는 민심이 동요하지 않을 것이고 피해 복구는 더 빨라지겠군.”

“본가도 그리 판단하고 있어요. 난은 여기서 종식되었다 보면 될 것이에요. 그리고 모두들 왜장인 적귀, 그를 막은 적 대협의 공이 크다고 보고 있답니다. 대협께서 본가의 빈객이라 말한 덕분에 본가의 명성도 크게 올랐고 말이에요.”

이옥연이 미소를 지은 채 적사결을 보고 말했다.

“일이 다 해결된 것도 아닌데 논공행상하고픈 생각은 없소. 한데 그 제금상단 놈들은 어찌 되었소? 듣자 하니 강소성에서 꽤 영향력 있는 장사치들이라는데 이 기회에 뿌리 뽑을 수는 있을 것 같소?”

“제금상단의 소상단주 제궁명과 금룡표국의 국주 황자기를 추포했고 증거도 넘쳐 날 정도로 확보되었으니 빠져나가지 못할 거예요. 물론 이 또한 적 대협과 대협의 수하 덕분이니 강소의 백성으로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군요.”

역시 십이월이 일 처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했다.

그처럼 증거가 탄탄하니 아무리 영향력 있는 놈들이라도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중앙에 연줄이 있다면 미리 손을 써 두시오. 잘 알겠지만 황실의 고관대작들은 썩을 대로 썩은 자들이니 확실한 증거도 덮어 버릴 놈들 아니오.”

강소의 패자라 불리는 집안이니 중앙에 연줄 하나 없을 리 없었다.

이런 일은 모방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발본색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해적왕 왕직과 관련된 자들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았기에 이번 일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가왜의 준동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한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말해 보세요.”

“내 알기에 강소성은 그리 척박한 땅이 아닌데 제금상단에 동조한 상인 놈들은 어찌 가왜라는 황망한 짓을 한 것이오? 아무리 이득이 막대하다지만 본좌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니 강소의 백성인 그대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소.”

강소성보다 백배는 척박한 신강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살기 팍팍한 민초들이 비적이 되는 경우는 있었으나 이렇게 상인들이 집단행동을 취해 대규모 변란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적사결은 이곳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싶어 물은 것이었다.

“복잡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리적인 문제 때문이라 할 수 있겠군요.”

“지리라니?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시오.”

“이곳 강소성은 동쪽으로는 바다, 서쪽으로는 안휘성, 남쪽으로는 절강성, 북쪽으로는 산동성을 접하고 있어요. 강소성은 평야 지대라 주로 농업을 통해 생산된 곡물을 안휘의 휘상들에게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생계를 지탱하고 있죠. 한데 휘상들은 교통의 요지를 독점하고 있다는 이유로 중간 유통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지만 정작 강소의 상인들에게는 제값을 치르지 않고 있어요. 한마디로 발전에 한계가 있는 것이죠. 해서 과거부터 바다를 통해 운송이나 교역업이 발달했는데 황실의 해금 정책으로 무역이 금지된 탓이 가왜의 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죠.”

이옥연의 설명을 들은 적사결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휘상놈들은 강소 상인들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모양이군.”

“바로 보았어요. 아마 휘상이 고관대작들에게 해금 정책을 유지하도록 알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휘상은 전국구의 상인연합.

천하 오대거부 중 두 사람이나 속한 곳이었다.

휘주 상인이 상계에 얼마나 큰 입김을 발휘하는지는 천하인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면 남쪽은?”

“절강성은 왜구의 침입이 잦아 상업자체가 쇠퇴했기에 진출에 어려움이 많죠. 또한 사파의 영역인 만큼 사무련과 관계가 깊은 상단이 확실한 입지를 다지고 있으니 그것도 문제였을 테고요.”

“흠…… 북쪽은 말할 것도 없으니 살길은 동쪽, 바다뿐이었다는 말이군.”

북쪽의 산동성.

그곳은 남궁세가와 함께 오대세가의 일원인 황보세가의 영역.

안휘의 패자인 남궁세가와 깊은 연관이 있는 휘상이었으니 산동성의 상계도 그들의 손아귀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휘주 상인을 상대할 배짱도 없고, 사파의 영역에서 자리 잡을 용기도 없으니 그 짓을 했다라…….’

어쩌면 선조로부터 이어진 해상 무역이라는 전통이 법으로 금지되자 마치 희망을 빼앗긴 것 같은 느낌도 들었을 것이다.

하나 그것은 힘들고 어렵다하여 쉬운 길을 택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적사결은 신강의 백성들이 더 처절한 삶을 산다는 것을 알기에 강소 상인들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구제불능. 관계자 모두 머리가 잘려도 할 말이 없다.”

적사결은 이옥연의 설명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결심을 다잡았다.

어쨌든 돈에 대한 욕망이 민초들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죽어 마땅했다.

‘만약 관이 엄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본좌가 단죄할 것이다.’

적사결은 이번 사건은 신교의 교주로 돌아가 엄혹한 신의 철퇴를 내릴 생각이었다.

십이월을 비롯한 적월에게 한 마디만 명하면 관련자 모두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터.

뛰어난 손발이 있으니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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