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71화>
십결 중 세 개를 익힌 것도 경악스러운데 또 다른 기예가 있었다니.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백류혼은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비교적 멀쩡히 살아 있었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중상은 아니었다.
“쿨럭. 쿨럭.”
공파결이 아니었다면 죽었을 터.
아니 처음 격돌한 순간부터 부지런히 기운을 분석하지 않았다면 공파결을 사용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었다.
비록 모든 기운을 해소하지 못했으나 방금 목숨을 살린 것은 기본을 지킨 덕분이었다.
짝. 짝. 짝.
“대단해. 그 나이에 공파결을 익히고 있다니.”
적사결은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공파결은 상대의 기공을 분석해 기운 자체를 파훼하는 기예.
파황십결이 절대 두 번은 패하지 않는 무공이라 알려지게 된 것은 공파결 덕분이었다.
“더구나 처음부터 공파결로 본좌의 기운을 분석하고 있었다니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군.”
“당신 누구지? 파황십결을 그렇게 잘 알고 있다니…… 무명소졸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말이야.”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단다, 애송아.”
적사결이 이죽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직접 백류혼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였다.
요상결로 회복을 꾀하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처처척.
그런 자신을 막기 위해 야차혈전대가 백류혼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련님, 피하십시오. 저희가 막겠습니다.”
“손강. 비켜.”
백류혼의 명령에 손강은 고개를 저었다.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본련의 후계자를 이렇게 잃을 수는 없습니다.”
“나 아직 안 졌다. 저놈 내공에 대한 분석 끝났어. 이길 수 있어.”
“내공 없이도 저희를 가지고 논 놈입니다. 저자는 천하 십대고수 수준입니다.”
“그렇다고 너희를 희생하고 갈 수는 없어. 그렇게 살아남아 봤자 영감이 내 대갈통을 부숴 버릴걸.”
수하를 방패삼아 살아남는다면 자신의 아버지는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 주십시오.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까 그 초식, 본 적이 있습니다.”
“뭐?”
“분명 극혈파천. 마교주 적사결의 성명절기인 광혈수라공이었습니다. 어째서 혈마기가 아닌 불가기공이 바탕인지 모르나 확실합니다.”
상극인 불가기공과 마공의 초식.
그 두 가지를 한 몸에 지닌 수수께끼의 인물.
소림과 마교가 손을 잡았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에서 키워 낸 후기지수라는 판단이 들었다.
“살아남아 저자에 대한 존재를 본련에 알려야 합니다. 신조께서 함께하시니 누구도 도련님을 잡을 수 없습니다. 가십시오.”
손강의 말이 끝나자 야차혈전대가 비장한 표정을 담은 채 기수식을 취했다.
앞서 경험했던 야차멸살검진이었다.
“하루살이 목숨이라도 걸어서 주인을 살려 보겠다? 갸륵하구나, 큭큭큭.”
아직 약간의 공력이 남은 상태.
내공이 없다면 모를까 지금의 자신은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저벅. 저벅.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며 다가가는 적사결 앞으로 야차혈전대는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일각은 버티겠다는 각오만을 되뇌고 있었다.
우뚝.
그런 그들 앞에 적사결이 걸음을 멈추고 우측을 바라보았다.
“이런, 이런. 아직 남은 하루살이들이 있었나?”
아까의 폭발로 버섯구름이 하늘높이 치솟았기 때문일까.
서두른 듯 보이는 자들은 하나같이 헐떡이며 장내에 등장했다.
그들은 별도의 임무를 띠고 나갔던 야차혈전대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마혈이 짚인 백리황이 있었다.
‘저…… 저 덜 떨어진 새끼…….’
백리세가 외 다수의 정파 무인들과 행동하게 했던 놈이었다.
더구나 일신의 무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해 주었는데 저런 꼴이라니.
적사결은 울화가 치밀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다.
‘음?’
손강은 적사결의 변화에 시선을 백리황에게 돌렸다.
‘분명하다. 저자를 보고 반응을 보였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했던가.
손강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구명의 동아줄이 내려온 것만 같았다.
“저자와 인연이 깊은가보오?”
적사결은 그제야 속내를 보인 실수에 혀를 찼다.
“눈치 빠른 새끼들. 그래, 빌어먹을 연이 있긴 한가 보구나. 이 자리에 생각지도 못한 저놈이 저꼴이 되어서 나타날 줄이야.”
“저자를 넘겨줄 테니 우리를 보내 주시오.”
손강이 협상안을 내밀었다.
하나 백류혼이 다급히 외쳤다.
“야! 지금 금개님의 몸을 넘기겠다는 거야?”
“도련님. 상황을 보십시오. 그럼 수하들 다 죽이겠다는 겁니까?”
“……이런 씨…….”
적사결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손강과 백류혼을 바라봤다.
‘뭐야, 저 병신 같은 말은. 금개님?’
앞서 금개를 흠모한다는 백류혼의 말에 개소리라 치부하고 넘어갔으나 두 번이나 들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설마 진짜 사무련의 후계자라는 놈이 개방도를 흠모한다는 말인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하나 정말 그렇다면 한 가지 시도해 볼 방법이 있었다.
“어이, 네놈들 뭔가 착각하나 본데 인연이 있다 해서 놈이 인질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 본좌는 저 멍청한 놈 목숨 살리는 것보다 앞으로 위협이 될 저놈을 죽이는 게 더 이득인데 말이야. 흐흐.”
적사결의 말에 손강을 비롯한 야차혈전대의 표정이 싸늘히 굳었다.
대놓고 백류혼을 죽인다 하니 적대감이 절로 일어난 것이다.
“표정 좋네. 어디 젖 먹던 힘까지 꺼내 덤벼 봐.”
사왕을 까딱거리며 적사결이 빙긋 웃었다.
강자의 여유가 묻어나는 태도는 절대자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도련님. 여립 저놈과 먼저 가십시오. 더 이상 지체하시면 곤란합니다.”
손강의 말에 백리황을 둘러멘 여립이란 사내가 백류혼의 곁으로 다가왔다.
“미안해, 모두. 금개님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을 알아냈으니 난 여기서 죽을 수 없어. 대신 본련에 놈에 대한 정보를 알려서 반드시 복수할 수 있도록 할게.”
작지만 오감이 강화되어 있던 적사결이 귀는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
방법을 알아냈다는 말.
그것은 반선주 사건이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며 지금의 현상을 돌릴 방법을 밝혀냈다는 의미였다.
“잠깐! 너 방금 뭐라 그랬느냐!? 원래대로 돌릴 방법을 알아냈다!? 분명 그리 말했으렷다!”
적사결의 격앙된 어조에 백류혼은 경계하며 답했다.
“귀가 좋으시군. 분명 그리 말했는데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지?”
“상관이야 있지. 아까 말했을 텐데 저기 기절해 있는 저놈과 인연이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휴전을 제안하지.”
“휴전?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가 얻는 건 우리 목숨인가?”
“그렇다.”
“그걸로는 수지가 안 맞는데.”
백류혼은 어깨를 으쓱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나 적사결이 눈을 부라리니 백류혼은 곧바로 태도를 바로잡았다.
“크흠, 어쨌든 칼자루는 그쪽이 쥐고 있으니 따를 수밖에 없겠지. 한데 누군지도 모르는 자와 휴전 협약을 맺을 수 있을까? 당신은 우리 정체를 아는데 우린 그쪽이 누군지, 소속이 어딘지 전혀 모르는데 말이야.”
“본좌는 협약이라 한 적 없다. 협약은 동등한 자들끼리 맺는 것. 약자인 네놈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제안을 받아들이고 살거나, 거부하고 죽거나.”
“……칫. 무시무시하군. 그럼 하나만 더 묻지. 보아하니 당신도 금개님과 백리황이란 저자의 몸과 영혼이 서로 뒤바뀐 걸 알고 있나 본데 혹시 금칠대에 지원할 때 그걸 미리 알고 지원한 건가?”
재밌는 녀석이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의 현상을 원상태로 돌릴 의지가 있는가라니.
적사결은 지금의 질문으로 놈의 목적이 금개를 원래대로 돌리는 데만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맞다. 알고 지원했고 그 장난질을 되돌리고자 한다. 하니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본좌 역시 최대한 협조할 것이니.”
원하는 대답을 들었기 때문일까 백류혼이 예의 가벼운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거면 충분하겠군. 제안을 받아들이지.”
“흥. 죽고 싶지 않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적사결은 백류혼을 지나쳐 백리황에게 다가갔다.
“까칠하긴…….”
백류혼은 머쓱해진 손을 쓰다듬으며 뒤를 따랐다.
“이봐, 그거 보기보다 난해하거든. 내가 해혈 해줄게.”
“필요 없다.”
“뭐?”
타탁. 타타탁.
놀랄 겨를도 없이 적사결은 단숨에 백리황의 마혈을 풀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야차혈전대의 점혈법은 사무련 내에서도 아는 자가 거의 없었다.
오직 사무련주인 백천악과 자신, 그리고 야차혈전대의 대원들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한데 그걸 단숨에 푸는 자가 있다니.
백류혼은 세상이 넓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그때 당했던 경험이 영 쓸데없는 건 아니구먼.’
적사결은 젊은 시절, 야차혈전대의 점혈을 당해 본 적이 있었다.
직접 몸으로 겪어 보았고 천재적인 재능으로 해혈법을 만든 지는 오래되었다.
언제고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역시 뭐든 익혀 두면 언제고 쓸모가 있는 것이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으음…….”
막힌 혈이 풀리고 백리황은 점차 의식을 찾아갔다.
“정신이 드느냐?”
“어? 적운 님?”
어리둥절한 백류혼이 벌떡 일어나며 적사결과 주변을 살폈다.
빠아악.
“끄악!”
갑작스레 머리를 쥐어 박힌 백리황이 비명을 질렀다.
“꼴값도 가지가지 하는구나. 넌 오늘 닥치고 좀 맞자!”
적사결이 팔을 걷어 부치며 다가가자 백류혼이 앞을 가로막았다.
“어허. 안 되지. 저 몸은 금개님의 것. 때리려면 원상태로 돌린 후에 하지?”
“……이런 썅…….”
적사결은 백류혼을 쏘아보다 백리황에게 외쳤다.
“넌 이 새꺄, 돌아가면 뒈질 줄 알앗!”
백리황이 구석에서 깨갱거리자 적사결은 백류혼에게 이를 갈며 물었다.
“말해. 알고 있는 것 전부! 반선주에 대한 것부터 원래대로 돌릴 방법, 모두 다!”
“알았으니 진정하고 자리를 좀 옮기자고. 만나 볼 사람들이 있으니까.”
“누구를?”
“가 보면 알걸.”
백류혼은 적사결을 살살 구슬려 가며 다루의 중앙 전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야차혈전대는 다시 전각 주위를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내실로 들어선 적사결의 눈에 들어온 이들은 네 명이었다.
먼저 도망쳤던 이천억, 그리고 두 명은 용모파기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인 음치 악도겸과 항주의 기녀 매양옥이었다.
하나 의자에 묶여 있는 나머지 한 명은 모르는 자였다.
“악도겸과 매양옥을 확보하고 있었다니 이거 놀랍군. 한데 저놈은 누구지?”
“하오문 강소지부의 지부장이지.”
“뭐? 하오문? 하오문은 네놈들 사무련과 관계된 놈들 아니었나? 왜 이놈이 이 꼴이지?”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정말 당신 정체가 무지하게 궁금한데. 좀 알려 주면 안 되나?”
“쓸데없는 것 묻지 말고 설명이나 해라.”
적사결이 사왕의 도파를 잡아가자 백류혼은 기겁하며 외쳤다.
“한다니까! 거 성질도 존나게 급하네, 진짜!”
백류혼은 좌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자, 지금부터 반선주와 관련한 지금의 상황과 배경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말씀드리겠소. 이 모든 것은 저기 묶어 놓은 저놈을 통해 얻은 정보이니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저놈의 입을 열어 확인해도 될 것이오.”
백류혼의 말에 하오문 지부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짐작하겠지만 지금의 사태는 모두 하오문주, 그자 때문에 발생한 것이오. 그가 반선주를 만들었고 사용한 장본인이지.”
그 말을 들은 적사결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무련과 하오문의 관계가 있는데 사무련 네놈들이 그에 개입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있나?”
“있지. 내가 금개님을 이렇게 만들 리 없는 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지. 그리고 본련이 관계있다면 야차혈전대의 대원들이 이 일을 이렇게까지 도울 리는 없지 않나? 단언컨대 이번 사건은 하오문주의 독단으로 처리한 일이야.”
“말이 나온 김에 묻지. 사무련의 후계자인 네놈이 왜 개방도인 금개 새끼를 흠모하는 거지? 그것부터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적사결은 가장 궁금했던 것을 직접적으로 물었고 금개 본인을 비롯해 좌중도 몹시 궁금하다는 귀를 활짝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