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70화>
스윽.
검이 부러진 네 명이 뒤로 빠졌다.
검사가 검이 없으면 그 실력은 반감된다.
지금의 그들은, 그저 동료들의 발목을 잡을 장애물일 따름이었다.
“크릉. 크릉.”
적사결은 나직한 울음소리를 내며 사왕을 고쳐잡았다.
지금 사왕의 일격을 받을 만한 놈들은 가장 뒤쪽에 자리한 조장급 열 명.
하나 눈앞의 날파리 떼들은 아니다.
설사 검기를 둘러도 늑대의 육체가 지닌 잠재 근력으로 내지르는 사왕의 일격을 받을 수 있을까?
시험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실험체는 백 개 이상 남았으니까.
일단 회복에 전념하던 의념을 끊고 잠재 근력에 의지를 집중했다.
파밧.
잔상도 남기지 않는 움직임이 야차혈전대원 한 명의 앞으로 향하자.
벼락처럼 떨어진 일격이 내리꽂혔다.
쩌엉. 우지직.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황급히 검기를 두른 검으로 막았지만 손목은 버틸 수 없었다.
엄청난 거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 것.
내공이 잔뜩 충만한 상태였지만 육체의 기본 성능이 그 차이를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다.
쫘아악.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깔끔하게 양단된 동료가 피를 뿌리며 지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 모습에 분위기가 반전되고 야차혈전대의 전의가 급격하게 식어 갔다.
아까처럼 팔을 휘두르고 물어뜯던 것과는 일격의 깊이가 달랐다.
같은 휘두름이라도 팔만 휘두르는 것과 검을 쥐고 휘두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사왕을 휘두른 검사 적사결의 일격은 야차혈전대가 받아 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파밧. 쩌엉. 우지직. 쫘아악.
일격에 초일류에 달하는 고수가 도륙당하기 시작했다.
혼자가 아닌 두셋이 맞상대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인외의 범주에 서서 단순하고 빠르고 힘 있게 내지르는 일격은 뛰어난 검초나 다름없었다.
흡사 어른이 세 살 먹은 아이를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러나라!”
그제야 달려든 조장급 십 인.
수하들의 떼죽음에 다급했는지 전력을 다한 검강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통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지만 수하들을 살리기 위한 마음이었다.
쩌정. 쩡. 쩡. 쩌저저저정.
검강을 맞상대함에도 사왕은 그 위용을 뽐내었다.
부러지긴커녕 이 하나 나가지 않고 더욱 강렬한 예기를 뿜고 있는 것.
마치 싸울수록 전의를 불태우는 주인, 적사결과 닮아 있었다.
“크아아아앙.”
우렁찬 포효와 함께 휘두른 일격에 조장급들이 튕겨나가며 지붕 아래 바닥으로 처박혔다.
한계에 다다른 검강이 풀리며 야차검에는 하나같이 금이 심하게 나 있었다.
절정을 눈앞에 둔 실력에 억지로 강기를 쥐어짠 결과였다.
“크으으윽.”
“커어억. 쿨럭.”
경지를 넘어서는 힘을 한계까지 짜낸 대가는 내상이었다.
그때 삼조장 손강이 피를 토하면서 외쳤다.
“전원…… 쿨럭. 퇴각하라. 허억. 허억. 도련님을 모시고 저 괴물의 손이 미치지 않는…… 크웩.”
말을 끝맺지 못하고 한 사발이나 토한 피가 쏟아졌다.
내상을 입은 상태로 격앙된 감정이 심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때 손강의 어깨로 내려선 손이 있었다.
우우웅.
부드러운 진기가 심화를 억누르고 내상이 악화되지 않게 막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도…… 도련님.”
손강이 고개를 돌려 확인한 손의 주인은 백류혼이었다.
파황십결 중 회복의 공능을 지닌 요상결로 그를 치료하는 것이었다.
“말하지 마. 응급 처치는 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구명단 챙겨 먹고 뒤로 빠져 있어.”
백류혼은 요상결을 거두고 손강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앞으로 나섰다.
‘어라? 저 자식은 봉두?’
금칠대의 칠(七) 요원, 봉두가 분명했다.
‘간자였구나. 도련님이라 말한 걸 보면 사무련의 후계자라는 건데. 그런 녀석이 세작질이라니 특이한 놈이군.’
적사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봉두를 바라보았다.
입문시험을 치를 당시에 가벼웠던 언행 탓일까 지금 보이는 기도는 사람이 달라 보일 정도였다.
그러고 보면 그때 자신은 봉두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다.
실력을 숨겼음에도 조금의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던 것.
그만큼 녀석이 뛰어나단 방증이었다.
‘백천악 녀석 저런 후계자를 꽁꽁 숨겨 두고 있었단 말이지…….’
무허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후계 구도를 세우지 못했는데 사무련은 이미 든든한 후계를 준비했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패배감이 느껴졌다.
그때 적사결의 신경을 긁는 말이 들리자 상념을 끊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개대가리 무슨 영물이야?”
백류혼이 수하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묻고 있었다.
“처음엔 사람이었습니다. 혁종과 장우를 죽이고 침입한 놈인데 갑자기 개새끼로 변하더군요.”
“무슨 둔갑술 그런 건가? 신기하네. 요즘도 술법 쓰는 놈들이 있다니.”
“상대해 보니 술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알아? 너희들도 둔갑술 본 적 없을 거 아냐.”
“그냥 감입니다. 도련님도 상대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저건 좀 다릅니다.”
적사결은 황당해서 혀를 찼다.
백류혼이 나타나고부터 무겁던 분위기가 가볍기 그지없어졌다.
패색이 짙었던 놈들도 여유를 되찾은 것만 같았다.
‘좋지 않군. 쯧.’
환기된 분위기만큼 녀석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
초일류인 야차혈전대가 그만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우드드득. 우득.
적사결은 얼굴 부분만 되돌리려 했다.
하나 아직 익숙지 않은 탓인지 의태가 풀리고 얼굴까지 무허의 젊었던 시절 얼굴로 돌아가 버렸다.
다행인 점은 그 정도가 힘을 사용한 반동인 듯했다.
잠재 근력을 한계까지 몰아친 것처럼 피로감이나 무력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일(一) 요원?”
백류혼이 놀란 얼굴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칫. 정체가 드러나 버렸네.’
뭐 어쩌겠는가.
그래봤자 염장이라는 가짜 신분.
적사결은 입꼬리를 올리며 백류혼에게 말했다.
“듣자하니 금개와 백리황의 일을 알고 있는 모양인데.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이냐?”
“음? 무슨 짓이라니?”
“네놈들이 반선주를 만들어 지금의 사태를 야기한 것 아닌가 묻는 것이다.”
“하하하. 오해가 있었나 본데 우리가 아닌걸. 나야말로 금개님을 그렇게 만든 놈을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라고.”
“시치미를 떼시겠다? 뭐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진 않았으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적사결은 사왕을 겨누며 뜨끈해진 아랫배를 느끼고 있었다.
의태를 한 당시엔 몰랐지만 본래 몸으로 돌아오니 단전 어림에 부처 형상이 떠 있었던 것.
행공 덕분에 그새 내공이 상당량 차오른 것이었다.
엄청난 운동량으로 열심히 움직인 덕분인가?
“자네가 금개님의 충직한 수하인 걸 아는데 목숨 걸고 싸울 순 없지. 잠시 내 얘기를 들어 봐.”
“충직? 수하? 본좌가 그딴 거지새끼 부하 노릇을 할 거 같나? 착각하지 마라.”
수하인 척 연기할 수도 있지만 적사결은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패도에 걸맞게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갈 생각이었다.
“덤벼. 죽지 못해 입을 열게 만들어 줄 테니까.”
“흠…… 자네도 뭔가 노리는 게 있었군. 나처럼 금개님을 흠모해서 지원한 게 아니라니 이거 마음 아픈데…….”
흠모? 거지를?
사무련의 후계자라는 새끼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슈르르르.
적사결은 전의를 불태우며 금단을 생성했다.
현재의 전력인 일갑자의 금단은 처음 만들었던 것보다 색이 연했고 크기는 비슷하게 보였다.
꿀꺽.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시작하지.”
곧이어 보리연화공의 공력을 실은 황금빛 파동이 쏟아졌다.
사왕에 의해 증폭된 도기의 파도였다.
그 범위는 지붕 아래 야차혈전대를 덮칠 정도로 광범위한 수준이었다.
쩌억. 콰콰콰쾅.
바다를 가르듯 그 파도를 양단한 자는 백류혼이었다.
그의 손에는 찬연하게 빛나는 푸른색의 수강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 금개님의 수하도 아니라 하니 나도 마음 놓고 상대해 주지.”
“좋군.”
적사결은 백류혼이 일으킨 기세에 감응해 투지가 불타올랐다.
야차혈전대를 상대할 때와는 다른 감각.
다수의 고수를 상대하는 것보다 한 명의 초고수를 상대하는 것이 더욱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역시 사나이는 일대일이다.
쉬익.
적사결은 지붕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고, 백류혼은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쩌어어엉.
강기를 두른 사왕과 수강의 맞부딪힘.
위력은 백중세였다.
‘이 자식. 저 연배에 진원결을 익혔단 말이야?’
백류혼의 수강은 보통의 강기공이 아니었다.
파황십결 중 강기로 무기를 실체화하는 진원결.
그걸 익히면 어떤 형태의 무구라도 기보의 수준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쩌저저정. 쩌엉.
공중에서 십여 합을 겨룬 후 반발력으로 적사결과 백류혼은 바닥으로 내려섰다.
서로를 견제하는 두 사람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빌어먹을. 후계자라는 놈도 괴물이잖아…….’
적사결은 상대가 새파란 애송이가 아닌 초절정 이상이라는 무위에 놀랐고.
‘어디서 이런 자가…… 초식의 수발이 영감 못지않잖아…….’
백류혼은 아비와 맞먹는 초식의 깊이에 경악했다.
이를 증명하듯.
피피피핏.
그제야 상처 입은 자상들이 벌어지며 핏줄기가 튀었다.
고작 스친 정도지만 첫 격돌로 수준 차이가 눈에 보이게 드러난 것이다.
“도련님!”
야차혈전대가 눈이 튀어나올 듯 놀란 얼굴로 백류혼을 불렀다.
사무련 역대 최고의 기재라 불리는 그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놈에게 밀린 것이 믿기지 않았다.
“호들갑 떨지 마. 그냥 스친 거야.”
백류혼은 곧바로 요상결을 운용해 상처를 회복했다.
요상결과 진원결은 파황십결 중 보조적인 기예.
그리고 지금부터 보조가 아닌 진정한 파황십결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눈앞의 적은 여력을 남기고 싸울 만큼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눈빛이 변했군. 제대로 해 보겠다는 건가. 후후.’
지금부터는 긴장해야 한다.
놈이 파황십결을 어느 정도까지 익히고 있는지 모르나 고금 삼대무공에 속할 정도로 뛰어난 무공이 아닌가.
파라라라.
터질 듯한 공력의 소용돌이가 백류혼의 두 손을 중심으로 발생하자 소맷자락이 펄럭이는 깃발처럼 요동쳤다.
기수식만 보고 적사결은 단번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파신결!’
강맹한 위력으로는 파황십결 중 으뜸을 차지하는 기예.
선천진기로 후천진기인 내공을 자극해 작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로 기공을 증폭시키고 파괴력까지 높이는 사기적인 공능이 있었다.
‘저건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 익힐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기적에 가까운 선천기와 후천기의 배합.
오로지 재능에 기댄 파신결은 시전자의 자질에 따라 천차만별의 파괴력을 보인다 들었다.
‘과연 어느 정도이려나…….’
만약 놈이 백천악만큼 미친 재능을 지녔다면 파신결의 위력은 비슷할 터.
적사결은 이번 한 수로 놈의 잠재력을 재단해 보고 싶어졌다.
후웅.
천지를 쪼갤 듯한 기수식.
황금빛 기공이 하늘을 찌를 듯 뻗어 올랐다.
수라천살검, 극혈파천이었다.
‘이 초식 정도라면 어느 정도 가늠이 되겠지.’
콰아아아아.
신을 부순다는 강기의 폭풍이 백류혼에게서 터져 나갔다.
점차 폭증하는 기운은 게걸스럽게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적사결을 집어삼켰다.
그 순간 하늘로 뻗었던 황금빛 기공이 더욱 커지며 파신결의 기운을 빨아 당기기 시작했다.
회오리치며 금빛과 푸른 기운이 어우러지며 천공으로 향하길 잠시.
다시 되돌아와 벼락처럼 내려 꽂힌 기운이 사왕에게 응집되었다.
기공을 회수하는 적사결의 기예와 기운을 흡수하는 사왕의 공능이 결합된 것이었다.
‘잠재력만이라면 백천악 이상이다. 여기서 죽여야겠어.’
미숙하지 않았다면 극혈파천으로 파신결을 아우를 수 없었을 터.
하나 위력만큼은 백천악에 못지않았다.
적사결은 백류혼이 위험한 놈이란 판단을 내렸다.
“뒈져라.”
부드럽게 내려친 검세.
하나 사왕에게서 증폭되어 쏟아진 기운은 상상을 초월했다.
더구나 작정하고 죽이려는 듯 기운을 뿌려 사방에서 백류혼의 퇴로를 막고 그 힘을 집중시킨 것이었다.
콰콰콰콰콰콰쾅.
방원 삼십 장이 날아가고, 하늘 높이 백여 장 이상 먼지구름이 피어오를 정도의 위력.
충격파의 범위를 집중시켰기에 그 힘이 위로 솟은 것이다.
그 안에 생명체가 있다면 가루가 될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콰르르릉.
하나 적사결은 그 속을 확인하고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허어…… 어린놈이 파황십결을 몇 개나 익히고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