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69화>
인간의 육체란 기본 구조는 같을지언정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
하나 개체가 다르면 육체는 완전히 달라진다.
일례로 사람과 비슷하다는 원숭이는 어떤가.
이족보행이 가능하고 손의 사용이 자유롭다지만 원숭이의 육체는 인간과 차원이 달랐다.
근력부터 순발력, 체력 등 기본적인 능력치가 인외의 범주에 있었다.
‘지금의 몸으로 발휘한 잠재 근력이 동물 이상의 능력치를 보였어. 그렇다면 동물의 육체로 잠재 근력을 발휘한다면 어떨까?’
가라스텐구, 새대가리를 떠올리며 든 생각이었다.
인간이 지닌 육체의 한계를 넘은 대가로 벽에 도달했다면 그 이상의 육체로 그 벽을 깨트리면 되지 않는가.
‘환골탈태 이상의 육체 재구성이 필요해.’
근질 자체를 바꾸고 뼈의 구조를 바꾸는 고차원의 재구성, 아니 변이나 변신이라 불러야 될 것이다.
속만 바꾸는 것이 아닌 겉까지 마치 둔갑술처럼 완벽하게 새로운 육체를 가져야 했다.
푸스스스.
온몸에서 더운 김이 나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깨달음이 더해지자 천축유가신공이 절로 공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전신을 치닫는 열기는 세포의 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었다.
뿌드드. 끄그극.
덩치가 두 배는 커지며 전신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마치 짐승처럼 송곳니가 돋아나고 전신에서 털이 자라고 있었다.
갑작스런 기사에 야차혈전대원들은 넋을 넣고 그 변화를 지켜보았다.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는 모습은 그만큼 기괴했다.
‘백원을 기준으로 삼긴 했는데…… 뭔가 심심한데…….’
낙양 지부대인 이문정의 사가에서 죽였던 백원.
이두한백의 어미를 상상한 적사결이었다.
신체는 점차 백원에 가깝게 변해 갔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의 전투법과 같이 두 손 두 발을 휘두르는 정도.
적사결은 좀 더 원초적인 모습을 원했다.
‘그래, 늑대가 좋겠다.’
교주가 되기 전인 평교도 시절, 적랑이라 불린 자신이었다.
적사결은 적의 목줄기를 물어뜯고 손발톱으로 산 채로 찢어 버리는 늑대의 형상이 마음에 와 닿았다.
으드드득.
주둥이라 불러야 될 만큼 코와 입이 튀어나오고 더욱 날카롭고 긴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왔다.
늑대의 머리가 적사결의 어깨 위에 자리한 것이었다.
털빛까지 붉은색을 띠니 외향은 영락없는 붉은 늑대, 적랑이었다.
“쿠오오오오오.”
두 발로 우뚝 선 늑대 인간의 포효에 대기가 울며 떨었다.
적사결의 안광은 늑대의 그것처럼 검은자위만 남아 있었고 동공이 가로로 길게 줄어들자 더욱 흉포한 빛을 띠었다.
그 눈빛을 받은 야차혈전대는 피부 위에 숨죽여 있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후욱.
붉은 잔영이 남겨지고.
쫘악. 우두둑.
피부를 가르는 소리와 늑골을 헤집는 소음이 뒤이어 발생했다.
적사결이 가장 가까이 있던 정면의 적을 처형한 소리였다.
하나 야차혈전대도 만만치 않았다.
움직임을 감지하자마자 일제히 검기를 발출한 것.
퍼퍼퍼퍼펑.
가죽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검기가 적사결을 때렸다.
하나 붉은 털빛은 전혀 바라지 않았고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오히려.
털 한 올, 한 올이 빈틈없이 경화되어 검기를 막을 정도의 방어력을 보이고 있었다.
“비켜라!”
지이이잉.
검기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야차혈전대의 대주 곽산이 검강을 하늘 높이 뽑아 올렸다.
완연한 절정의 경지.
천지를 가를 듯, 내려친 일격에는 칠성에 달하는 공력이 실려 있었다.
콰아아앙.
오른쪽 팔뚝으로 검강을 막아 낸 적사결이 그르렁거리는 울림을 토했다.
팔이 잘리진 않았으나 절반가량 파고든 상처가 상당한 통증을 유발했기 때문이었다.
검강의 파괴력은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하나 곽산의 표정은 경악을 넘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호신강기를 펼친 것도 아니건만 검강이 고작 이 정도에 그치다니…… 말도 안 돼…….’
뿌득.
벌어진 입을 다물고 이를 악문 곽산은 검을 회수하자마자 반대편 손을 내질렀다.
당황했다 하여 빈틈을 보일 만큼 녹록한 실력이 아니었다.
떠어엉.
일장을 얻어맞은 적사결은 다섯 보나 밀려나며 경력을 해소해야 했다.
하나 딱 그 정도일 뿐이었다.
팔의 상처는 이미 재생되어 생채기 하나 나 있지 않았고, 가슴에 남은 진력은 먼지를 털 듯 툭툭 털어 내었다.
“카르르릉.”
비웃어 주려고 입을 열었던 적사결은 깜짝 놀랐다.
말이 나오지 않고 늑대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너무 완벽하게 변한 건가. 쩝.’
턱의 하악골과 성대까지 변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두 손을 바닥에 대었다.
정말 완벽하게 변했는지 한 번 더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터억. 퍼엉.
양손을 바닥에 대자마자 이어진 폭발적인 질주.
본래 사족보행인 늑대의 도약력은 순식간에 적사결을 곽산의 앞으로 데려갔다.
절정 고수인 그가 반응조차 못할 정도였다.
“허억!”
기겁할 정도로 놀랐으나 절정 고수의 반사적인 대응은 눈부셨다.
수천 수만 번 체득된 검초가 절로 발휘되며 빛살 같은 찌르기를 보였다.
“안됩니다!”
그 찰나의 모습을 본 대원들의 말이었다.
그들의 생각에 지금의 공격은 중상을 입을지언정 피해야 했다.
콰직. 푸우욱.
적사결의 송곳니가 곽산의 어깨부터 가슴까지 물어뜯고, 곽산의 검은 적사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는 마치 동귀어진과 같았다.
그리고 대원들은 그 모습에서 맨 처음 적사결에 의해 죽은 동료를 떠올렸다.
“젠장! 대주님!”
대원들이 달려들자 적사결은 물고 있던 곽산을 휘저으며 던졌다.
가슴에 박힌 검이 빠지며 핏줄기가 분수처럼 비산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던 곽산을 대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받아 내고 있었다.
츠츠츠츠.
회복속도는 적사결이 생각해도 사기적일 정도였다.
이물질이 빠지자마자 피가 멎고 상처가 수복된 것.
따로 천축유가신공을 운용하지 않아도 그러했다.
‘그래도 강기는 조심해야겠다.’
가장 강한 대주 놈을 처리했으나 야차혈전대라면 조장급이 한두 번의 강기를 사용할 수 있을 터.
열 개의 강기로 신체가 난도질당하고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몰아치자.’
대주의 죽음은 놈들에게서 최소한의 평정심을 앗아 갔을 터.
지금이 강하게 밀어붙일 때였다.
쇄액. 쫘아악.
폭발적인 질주와 강화된 손톱이 공간을 가르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네 줄기 혈선이 그인 놈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이전이었다면 그 즉시 검격이 날아들었을 것이나 마음에 틈이 생긴 야차혈전대는 즉각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그 틈은 그들이 대주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보여 주는 간극이었다.
터턱. 콰직.
순식간에 두 놈의 목을 틀어 쥔 채 목뼈를 부수고.
쿠직. 뿌지지직.
한 놈의 머리통을 씹어 뽑아 버렸다.
절제된 초식이 아닌 마치 야수와 같은 움직임.
하나 그 속도는 가라스텐구와 싸울 당시 내공과 잠재 근력을 동시에 사용했던 그 속도에 근접해 있었다.
일류의 극에 이른 초일류 고수들이라지만 적사결을 잡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싸울수록 지금의 몸에 더 적응이 되는구나. 큭큭.’
점점 빨라지는 속도는 야차혈전대의 검을 스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잔영조차 남기지 않는 속도는 이형환위와 같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상대를 유린해 갔다.
“검진! 야차멸살검진을 펼쳐라!”
삼조장 손강의 외침이 대주를 잃은 야차혈전대의 진형을 수습했다.
개개인의 무력이 워낙 뛰어나 검진을 사용한지 몇 해가 넘어간 그들이었다.
한데 머릿속 깊숙이 묻혀 있던 검진을 꺼내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그 정도로 눈앞의 상대는 괴물이었으니까.
처처척.
맡은 방위에 모든 의식을 쏟고 허점은 동료가 메우는 유기적인 움직임.
날카롭게 벼려진 초일류 고수의 기세가 각자가 맡은 일부분에 집중되고 그것이 하나로 귀결되자 어마어마한 기운으로 화했다.
‘야차멸살검진이라…… 오랜만이군.’
적사결은 과거 이 검진을 겪어 본 적 있었다.
과거 천마신교와 사무련 사이에 있었던 몇 번의 분쟁. 그 속에서 살이 떨리게 경험해 본 것이었다.
야차멸살검진은 인원수에 구애를 받는 합격진이 아니었다.
최대 이백 명이 펼칠 수 있었고 최소 두 명이라도 구현 가능했다.
다만 그 실현 조건이 동등한 무위라는 것이 문제였다.
무위가 비슷할수록 검진의 위력이 증가하는 것이다.
때문에 실력 차가 나는 이백 명이 펼치는 것보다 차이가 거의 없는 백 명이 펼치는 것이 더 효율이 높았다.
‘검진에서 빠진 열 명이 조장급, 아마도 결정타를 맡은 것이겠지.’
실력에 차이가 나니 빠진 것.
그들은 검진을 펼치고도 실패했을 경우 자신을 요격할 척살조가 분명했다.
적사결은 일단 그들은 머릿속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야차멸살검진에 집중해도 녹록치 않은 놈들이다.
또한 사기적인 회복력이 있으니 승기를 잡고 견제해도 될 것이란 판단도 있었다.
부왁.
기세가 폭증하며 백 개의 검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얼핏 동시 공격으로 보이나 적사결의 속도를 감안한 미세한 시간 차.
피할 수 있는 방위를 선점한 검격이 퇴로를 에워싸고 나머지 공세가 전면으로 치달았다.
‘어차피 검기. 수비는 포기한다.’
방어력을 믿고 적사결은 목표물을 특정했다.
정면 돌파로 한 놈씩 줄여 나가는 것이 어렵지만 가장 빠른 파훼법이었다.
퍼퍼퍼퍽.
십여 개의 검기를 몸으로 받으며.
쇄액, 쫘아악.
목표물의 얼굴을 찢어 버리고.
퍼퍼퍽. 쿠지직.
몸으로 받은 만큼 한 놈씩 확실하게 숨통을 끊었다.
한데 세 번째는 달랐다.
목표물을 항해 공격하는 도중에 검세가 바뀐 것.
방어를 도외시 한 대응 탓인지 등 뒤를 찌르는 공격이 한 점으로 모이더니 왼쪽 어깻죽지를 향했다.
앞서 관통상을 당한 부분.
회복이 되었다지만 그 부분을 노린 것만 보아도 야차혈전대의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퍽.
가랑비에 옷 젖는다 했던가.
목적한 놈의 명줄을 끊어 놓았을 때 집중 공격을 받은 왼쪽 어깨는 넝마가 되어 있었다.
쉬잉. 촤아아악.
그 순간 척살조를 담당했던 조장급이 벼락처럼 달려들어 검강으로 어깨를 베어 냈다.
“크아아아아앙.”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목구멍에서 치솟았다.
끔찍한 통증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벼락이 전신을 관통한 듯 저릿저릿했다.
‘역시 만만치 않은 놈들이야.’
적사결은 이빨을 드러낸 웃음을 억지로 지으며 잘린 팔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천축유가신공을 운용하며 의념을 집중했다.
꾸물. 꾸물.
피와 살로 이루어진 가느다란 실이 서로 이어지더니 혈관이 되고 근육이 되며 서로 이어져 갔다.
의식하지 않아도 엄청난 회복력을 보이던 몸이 의식하니 기가 막힌 공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절단된 팔을 이어 붙이다니.
“틈을 주지 말고 공격해!”
손강의 외침에 움찔한 야차멸살검진이 다시 톱니바퀴를 움직이듯 돌아갔다.
기세를 잡았으니 결착을 지으려는 듯 보였다.
적사결은 잠시 그르렁거리더니 땅을 박찼다.
쉬이익.
회복에 집중한 탓에 그 속도는 현저히 느려져 있었고 야차혈전대는 수월히 그 움직임을 따라 포위망을 유지했다.
하나 포위망을 풀고 공격할 정도로 느린 속도는 아니었다.
그들로서는 상대가 수세에 몰려 도주를 결심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리를 벌리고 회복하려는 것이 분명하네! 우리도 가세하세.”
손강의 말에 조장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더라도 그러했으니까.
어느새 적사결은 다루의 담장을 넘어 장원 바깥으로 향하고 있었다.
“놓치지 마라! 놈은 기력이 다했다!”
쇄애액.
허공을 가로지르는 검기들이 폭포수처럼 적사결에게 쇄도했다.
퍼퍼퍼퍼퍽.
맞을 만한 공격은 맞고 피할 것은 피하며 이십 장 가까이 도주했을까.
어느 모옥의 지붕에 올라선 적사결은 무언가를 붙잡고 쑤욱 뽑아내었다.
그리고 힘차게 휘둘렀다.
슈우욱. 쩡. 쩡. 쩡. 쩡.
팔이 길어지며 휘두른 일격에 달려들던 야차혈전대원 네 명의 야차검이 그대로 분질러졌다.
검기를 두르지 않고 갑작스럽게 막았기에 일격에 두 동강이 난 것.
적사결의 손에 쥐어진 것은 사왕이었다.
“크르르릉. 크릉.”
이런 씨, 한 마디 해 줘야 되는데 말을 못하니 멋이 안 살잖아.
적사결은 쓰게 웃으며 사왕을 어깨에 메고 주변을 포위한 야차혈전대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