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67화>
“겉으로는 멀쩡하네.”
백리세가를 가시거리에 두고 상황을 살핀 결과였다.
정문의 문지기들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경계를 서고 있었고 담벼락 너머 장원에는 순찰을 도는 외당의 무사들까지 보였다.
하나 적월의 보고가 틀렸을 리 없었다.
적사결은 서둘러 백리세가 내로 향했다.
‘없다. 아무 문제없어.’
장원을 가로지르며 극한으로 끌어올린 감각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시각, 청각, 후각에 있어 어느 것 하나 습격을 떠올릴 만한 점은 없었다.
‘설마 풍림?’
풍사환혼진의 보호를 받기에 역설적이게 외부와 단절된 장소.
그곳에 변고가 생겼다면 백리세가가 이토록 조용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풍림에 도착한 적사결은 자신의 추측이 들어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이봐, 늙은이!”
적사결은 쓰러진 은풍대원들 중 간신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감노에게 다가갔다.
다행인지 감노를 제외한 은풍대원들은 살해당하지 않고 기절한 듯 보였다.
“적…… 대협…… 허억…… 허억.”
“어찌 된 것이오?”
“헉, 헉. 습격이…… 있었소, 쿨럭.”
거친 호흡과 함께 피가 섞인 기침이 튀어나왔다.
적사결은 미간을 찌푸리며 감노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천축유가신공으로 회복력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시오.”
“헉, 헉, 설마 내력을…… 헉…… 헉. 주입하려는 거요?”
타인에게 내공을 불어넣는 것은 잠시 활력을 돋울 뿐 본신의 내공과 충돌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다.
해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니면 지양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쓸데없는 생각 말고 머릿속을 비우시오.”
스스스스.
느리지만 다소 내상이 다스려지자 감노는 숨쉬기가 편해졌는지 긴 숨을 내뱉었다.
“후우우. 거, 신기하구려. 그때 금개 놈을 치료할 때 쓴 그거요?”
금개를 사로잡았을 때 보긴 했으나 직접 겪어 보니 또 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몸속에서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
그럼에도 거부감이 없었고 편안한 기분이었다.
“완전히 낫지는 않았으니 나머지 치료는 알아서 하시오.”
“다른 영감들도 부탁 좀 합시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아닌데 알아서 하시오. 한데 어찌 된 일이오?”
“……쩝.”
감노는 입맛을 다신 후 상황을 설명했다.
야차혈전대가 풍사환혼진을 깨고 들이닥친 것과 자신이 본 사무련의 후계자라는 사내, 그리고 그들이 금개를 구출해 간 것까지.
그 얘기를 들은 적사결은 손등에 핏줄이 불거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감히 내 걸 건드려? 이 새끼들이…….’
금개를 확보하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는데.
그걸 홀라당 뺏기다니.
“한데 그놈들이 녀석이 금개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말이오? 잘못 들은 건 아니고?”
“죽을 날 받아 놓은 노인네도 아니고 그 중요한 정보를 잘못 들었을 리 있겠소?”
“뒈질 뻔해 놓고선…….”
“뭐요?”
“아무것도 아니오.”
작게 흘리듯 말한 혼잣말을 들은 걸 보니 잘못 들은 건 아니겠군.
적사결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한데 놈들이 왜 당신네들을 살려 주었는지 이상하지 않소? 야차 새끼들은 그렇게 물렁한 놈들이 아닌데 말이오.”
“그놈들은 날 죽이려 했으나 그 사무련의 후계자라는 사내가 말렸소.”
“그놈이? 왜?”
“나야 모르지. 한데 그가 금개를 꽤 의식하는 듯했소. 아니 마치 흠모하는 듯 보였소.”
“씨발련의 후계자라는 새끼가 금개 새끼를 흠모?”
사파 놈이 정파 놈을 흠모한다는 개소리라니.
아니, 그것보다 후계자라고 불렸다는 새끼가 뭐가 아쉬워서 한낱 거지새끼에게 관심을 가지는 걸까?
금개가 명성이 높다 하나 어쨌든 한물 간 문파인 개방에 적을 두고 있었다.
천하 사대세력의 일좌를 차지한 사무련이 관심 가질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것도 그렇고 몸이 바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
그 사실을 알고 금개를 확보했다면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나 지금으로서는 정보가 너무 적기에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본좌는 이만 놈들을 쫓을 테니 당신은 몸을 추스르는 대로 추격대를 꾸려 따라오시오.”
“적 대협. 야차혈전대요. 혼자선 위험하니 본가와 함께 움직입시다.”
“그러다 놓치면?”
“…….”
감노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백리세가의 후계자 몸이 걸린 일이었다.
적사결의 말처럼 추격대를 꾸리는 와중에 놓칠 수도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자신들의 빈객이 사지로 가는 것을 두 눈 뜨고 보기도 힘든 것이었다.
“훗. 그리 본좌가 걱정되면 서두르면 될 것 아니오.”
“미…… 미안하오. 부끄럽지만…… 부탁드리겠소. 부디 놈들을 놓치지 않을 선까지만 행동해 주시오.”
“나도 내 목숨 귀한 줄 아니 걱정 마시오.”
적사결은 피식 웃은 후 신형을 날렸다.
후각을 강화한 그의 코끝은 희미하게 남은 금개의 냄새를 추적하고 있었다.
‘사무련…… 뭐냐.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 * *
콰지지직. 끄직. 끄지직.
“끄아아아악!”
하오문 강소성 지부장 장경은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의 온몸은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했다.
“장지부장 내가 누군지 알고도 감히 수작을 부려?”
백류혼은 장경의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끄으윽. 무…… 무슨…… 아악…… 말씀이신…… 끄아아악.”
장경은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하나 이미 수하들은 모조리 야차혈전대의 발아래 제압되어 있고 누구도 그를 도와줄 수 없었다.
“시치미를 떼시겠다? 좋아. 한데 말이야 난 자네가 이대로 죽어도 아무 상관없어. 뭐 내가 지부장 하나 죽였다고 하오문에서 사무련에 따지기라도 할 것 같아?”
담담하게 내뱉는 백류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장경의 가슴속을 후벼 팠다.
“하오문은 우리 사무련의 오랜 우방이지. 한데 그 우방이라는 말이 좋은 친구라는 뜻은 아니야, 알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
지부장이란 자리까지 올랐으니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오문은 사무련을 위해 만들어진 집단.
하나 그것이 종속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오직 사무련을 위한 곳이 하오문이었다.
“나는 초대 사무련주의 후예. 흑천백가의 적통이야. 따지고 보면 하오문은 사무련보다 우리 백가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잖아. 한데 그런 나한테 수작을 부려서야 되겠어?”
흑천백가.
흑도의 하늘인 백씨가문이란 의미였다.
초대 사무련주로부터 시작해 당대의 사무련주인 백천악에게 이어진 사파제일가.
사무련이 수많은 군소방파의 연합체라 하나 대대로 실질적인 사무련의 주인은 흑천백가였다.
때로는 백천악처럼 전면에 나서서 때로는 타문파의 뒤에서 실세로서 사파를 다스려 온 곳이었다.
“끄으으윽.”
“정신 놓지 말고 잘 들어. 네가 지금 당하는 그거. 그냥 평범한 분근착골이 아니야. 본가의 비전으로 내려오는 고문술이지. 고통도 상당하지만 지금부터 기가 막힌 장면을 보게 될 거야. 언제든 맘이 바뀌면 얘기해.”
백류혼은 싱긋 웃으며 장경의 혈도 몇 군데를 짚었다.
그러자 장경은 턱을 덜덜 떨며 자신의 사지를 내려다보았다.
쩌억. 뿌드드득.
양팔의 피부가 갈라지더니 뼈가 돌출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갈라진 피부 사이로 허연 뼈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피 한 방울 흐르지 않고 뼈가 튀어나오는 모습은 기사나 다름없었다.
“히…… 히이이익.”
“우리 선조님은 뭐하셨던 분이길래 이런 걸 개발하신 걸까? 오랜만에 보는데도 참 대단해.”
“끅…… 끅…… 살려…… 주십시오.”
“일단 본보기로 두 팔의 뼈다귀는 뽑아 놓고 시작하려고. 가죽만 남은 팔을 보는 느낌 그거 되게 이상할 거야. 사람을 연체동물로 만드는 분근착골이라니 정말 입이 떡 벌어져.”
장경은 고통도 그렇지만 깔끔하게 발골된 듯한 자신의 팔뼈를 바라보니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끄으윽…… 부디…… 부디…… 자비를…….”
백류혼은 심드렁하게 그 모습을 보다 장경의 혈도를 짚었다.
그러자 팔뼈는 드러난 채로 진행을 멈추었다.
“일각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을 거야. 하나 그전에 다 불면 제자리를 찾을 거다. 시간이 길지 않으니까 빨리 나불거려 봐.”
“네…… 넵!”
장경은 고통에 침이 질질 흐르는 것도 개의치 않고 정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던 백류혼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 * *
“여기군.”
적사결이 도착한 곳은 다루였다.
주로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장소.
때로는 청기를 불러 예악을 즐기기도 하고 시를 짓고 공맹을 논하기도 하는 등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는 장소였다.
금개의 냄새는 분명 이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사무련의 숨겨진 지부인가?’
보통의 흑도들은 다루를 운영하지 않았다.
다루보다는 술을 마시는 주루, 또는 여색을 즐기는 홍루가 수익이 좋기 때문이었다.
다루는 역사가 깊은 명문가와 같이 고리타분한 자들이 운영하는 곳이란 인식이 강했다.
‘왜구 때문인지 손님도 없군.’
한창 전쟁 중인데 차 마시러 올 미친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손님으로 위장해 잠입하기는 힘든 상항이었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정면 돌파는 무리였다.
상대도 상대지만 몸 상태가 가장 큰 문제.
단전이 텅 빈 데다 운공요결을 모르니 운기조식으로 채울 수도 없었다.
행공으로 채우기엔 시간이 없었다.
다행인 것은 천축유가신공을 회복력에 집중했기에 신체에 누적된 피로가 호전되었다는 점이었다.
‘천축유가신공만으로 야차혈전대를 누를 수 있을까?’
자문하고 심사숙고했지만 적사결은 고개를 저었다.
잠재 근력을 사용해도 일개조 정도가 한계.
그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기습이라…….’
다루의 주변을 살피던 적사결은 누군가가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정문에서 야차혈전대원과 말을 나누던 그는 등을 보인 채 사라져 갔다.
‘십이사령.’
사내는 십이사령의 일인 청령이 분명했다.
허리 뒤로 패용한 푸른 단창은 놈의 기병이었으니까.
그때 적사결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금령 그놈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을 이렇게 요긴하게 쓰게 될 줄이야. 흐흐.’
만년한철이 섞인 단검은 시리도록 차가운 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적사결은 얼굴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고 의념을 집중했다.
으득. 우드득.
얼굴의 뼈와 근육이 분리되었다 재조립되며 나타난 얼굴.
그 얼굴은 죽은 금령의 것과 똑같았다.
* * *
저벅. 저벅.
다루의 정문을 지키던 야차혈전대원 둘은 멀리서 걸어오는 사내의 발걸음에 주목했다.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그들은 상대가 상당한 고수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건물의 그림자 사이에서 절묘하게 얼굴이 가린 사내.
그들은 약간의 긴장을 유지하며 검파에 손을 대었다.
“응? 저자는!”
야차혈전대 이조 소속 혁종은 사내의 얼굴이 드러나자 입을 떡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는 죽은 줄 알았던 십이사령, 금령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죽었다 들었는데.”
혁종의 옆에서 경계심을 높인 장우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눈이었다.
십이사령인 청령이 확인한 금령의 죽음.
시체 감식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청령이 확인했으니 거짓일 리 없었다.
하나 눈앞에 살아 있는 금령이 나타났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누구냐? 감히 대사무련의 사령을 사칭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혁종이 발검하며 사내에게 겨누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흐음. 내가 죽었다고 알려졌나 보군.”
적사결은 능청스럽게 연기를 시작했다.
“련주님께서 죽으라 명하지 않으시면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것이 우리들 사령이다. 아니 죽어도 무덤에서 기어나오는 것이 사령이지. 나 금령, 죽음을 위장해 살아 돌아왔고 도련님께서 여기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길을 터라.”
적사결은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고 혁종과 장우는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지익.
적사결은 품에서 꺼낸 단검으로 얼굴을 그었다.
인피면구가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설마 진짜 금령인가!”
금령의 애병인 단검과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봤기 때문일까.
혁종과 장우가 검파를 쥔 손에 힘을 빼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푹. 푸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