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64화>
“재밌겠는데. 큭큭큭.”
요신키가 끌어모은 사기는 한눈에 보아도 엄청난 양이었다.
범인이라면 그 사기에 먹힐 법도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엔 오히려 호승심만이 가득했다.
적사결은 내공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와라, 새대가리.”
사왕을 까딱거리며 도발하자 가라스텐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캬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 가라스텐구는 적사결을 잠시 주시했다.
그러고는 신형이 일그러지며 흐릿해졌고.
퍼어어엉.
공기가 압축되었다 터지는 소리가 나며 엄청난 속도로 비행했다.
콰아앙.
눈 깜짝할 사이에 내려친 일격을 막아 내자 적사결의 발밑이 방사형으로 터져 나가며 파편이 비산했다.
‘크윽. 흘려냈음에도 이 정도라?’
힘을 흘리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다.
충만한 내공과 강화된 근력에도 손목이 부러질 듯한 통증에 적사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뿌드득.
이를 악문 적사결은 순간적으로 힘을 집중해 히토키리를 튕겨 내고 일도를 그었다.
하나 놈은 반발력을 일으키는 순간 신속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잠시 주위를 배회하던 놈은 다시금 움직였다.
일렁. 콰아아앙.
또다시 잔상을 남긴 채 음속으로 날아와 일격.
콰앙. 콰앙. 쾅.
계속해서 공격과 선회가 반복되었다.
쾌속하지만 단순하기 그지없는 공세.
“이제 눈에 익었다, 자식아. 이놈 이거 진짜 새대가리가 됐네.”
꾸드드득.
온몸에 핏줄이 붉어지며 잠재 근력을 발휘하는 천축유가신공의 공능이었다.
막대한 내공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외공의 수준을 올린 것.
그 정도 작업이 필요할 정도로 가라스텐구의 속도는 인외의 범주에 있었다.
파앗.
이형환위와 허공답보가 연이어 발휘되고.
쉬쉬쉬쉬쉿.
잔영과 잔상이 오가는 공중전이 벌어졌다.
쾅. 쾅. 쿠앙. 쩌정.
공중에서 폭음과 충격파가 튀며 대치중인 가왜들과 개방도들의 가슴을 진탕시켰다.
그들은 싸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전투에서 이긴 쪽이 전쟁을 정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스케 님.”
닌자 중의 일인이 걱정스런 얼굴로 신스케를 불렀다.
“요신키 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우리로서는 알 수 없지. 그저 저분을 믿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신스케는 등 뒤가 축축해진 채 전투를 주시했다.
‘히토키리의 주인으로 각성하는 자, 가라스텐구가 되어 죽음의 사신으로 강림한다더니 정말이었구나…….’
다이묘성의 금지. 히토키리가 봉인된 곳에서 적혀 있었던 말이었다.
사신이 되면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생명체를 죽이고자하는 힘이 끊임없이 사기를 갈구하는 것이었다.
사기를 얻지 못하면 스스로를 멸하게 되니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아 굶주림을 채우는 것.
‘아마 지상의 생명체를 모두 멸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지. 하나 요신키 님이라면 깨어나실 것이다.’
이 년 전, 이미 히토키리의 힘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 요신키였다.
신스케는 이번에도 그가 가라스텐구의 힘을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콰콰콰콰쾅.
하늘에서 황금빛 용이 울부짖으며 요신키를 몰아쳐갔다.
광혈수라공의 권공, 광룡파천권이었다.
혈마기로 펼쳤다면 인세에 다시없을 흉악한 마룡이 현신해 공포를 선보였을 것이나, 보리연화공이 바탕이 되니 그렇게 상서로운 황룡이 아닐 수 없었다.
‘만일 요신키 님이 깨어나지 못하신다면 저자가 가라스텐구를 성불시킬 유일한 자이지 않을까…….’
광룡파천권에 바닥으로 처박힌 요신키를 보며 신스케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라스텐구의 사기를 흩어 버리는 황금빛 기운은 마치 부처의 권능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기회를 봐서 놈과 함께 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구나…….’
신스케는 품속의 붉은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그러는 순간에 승부의 향방은 가려지고 있었다.
콰콰콰쾅.
가라스텐구가 일어서는 그때를 맞춰 강기가 폭사한 것.
초식을 사용함에 있어서 절묘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바닥에 박혀 있을 땐 방어력이 집중되어 있으니 일어서며 한숨을 돌리는 때를 노린 것.
찰나에 가까운 시간을 포착해 연격을 퍼부은 적사결이었다.
타탁.
바닥에 내려선 적사결이 어깨를 휙휙 돌리며 가라스텐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하나의 날개가 흩어지며 절반 정도는 요신키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었다.
“솔직히 내공과 잠재 근력을 동시에 사용할 정도의 놈이 이국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려 줘서 고맙구나.”
순수한 감탄이었다.
적사결은 천축의 무공인 천축유가신공과 서역의 사왕, 이제는 왜국의 무를 직접 겪으며 세상의 중심이 중화가 아님을 다시 깨달았다.
“크르륵. 크륵.”
요신키는 사기가 강제로 벗겨지며 이지를 되찾고 있었으나 아직 가라스텐구의 본능도 혼재하고 있었다.
하나 자신이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죽음의 기운이 영혼까지 잠식했다. 저자의 기운이 아니었다면 죽는지도 모르고 목숨을 잃었겠지…….’
요신키는 적사결의 불가기공 덕분에 정신을 차린 것을 알고 있었다.
철컥. 툭. 툭.
부서진 갑옷과 보호대의 잔해를 벗자 강기에 뚫린 구멍이 드러나고 피가 왈칵 쏟아졌다.
사기에 잠식된 것이 아니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는 중상이었다.
스으윽.
요신키는 천천히 발도술의 자세를 취했다.
도집이 부서지고 없기에 왼손으로 칼날을 쥐고 자세를 잡은 것이었다.
이어서 몸에 잔존해 있는 사기가 왼손과 히토키리에 응집되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사기를 뜻대로 다루는 것이었다.
“역시 몇 대 얻어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지금 눈빛이 얼마나 좋으냐. 하하하.”
적사결을 사왕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만큼 공력을 퍼붓고도 아직 일갑자나 남은 상황.
정말 내공수위 하나만큼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목숨을 건 사나이의 일격이라. 얼마 만에 받아보는 것인지 모르겠군.”
갈무리된 안광 속에 번득이는 한 줄기 기광.
지금의 요신키가 보여 주는 기도는 절대 고수의 경지, 천하 십대고수의 그것에 닿아 있었다.
생명까지 벼려 낸 결과물인 바.
적사결은 패도를 걷는 자로서 이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본좌 역시 목숨을 걸고 받아 주마. 오너라.”
꾸드드득.
전신이 경화되며 목내이와 같이 변모하고 그 위로 짙은 황금빛 호신강기가 떠올랐다.
신체적인 방어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
요신키의 공격을 정면에서 분쇄시키기 위함이었다.
퍼어엉.
먼저 움직인 것은 요신키였다.
사기의 힘이 더해진 돌진력은 가라스텐구의 음속비행에 미치진 못하나 지금까지 보여 준 속도 중 가장 빨랐다.
사기를 두른 왼손은 철벽의 도집이 되어 힘을 지탱하고.
히토키리는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듯 사기를 응축시켰다.
트드드득.
사기의 힘을 더했다지만 히토키리를 둘러싼 왼손이 비명을 질렀다.
피가 증발하는 듯 붉은 혈화가 배어나오고 왼팔 전체에 실금이 이어졌다.
살아 있는 인간의 팔이 아닌 돌덩이가 쪼개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쩍. 쩌적.
버틸 수 있는 힘의 임계점.
그 순간까지 왼팔을 희생한 요신키의 눈에서 마침내 혈광이 폭사되었다.
퍼어엉.
왼팔이 터져 나가며 피의 운무가 도격을 따라 전면으로 흘렀다.
마치 활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발도술.
이격을 염두에 두지 않은 필살의 일격이었다.
하나 그렇기에 피하면 손쉽게 이길 수 있는 맹점이 있었다.
그런 약점이 눈에 보였지만 앞서 내뱉은 말대로 적사결은 정면으로 초식을 펼쳤다.
스스스슷.
두 사람은 초신속의 공간에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느려진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기도 했다.
측면아래에서 베어 오는 요신키의 발도에 적사결은 천지를 쪼갤 듯한 일도를 내리그었다.
수라천살검의 초식 중 일검무적으로도 불리는 극혈파천이었다.
구웅.
히토키리와 사왕이 맞닿자.
도격을 뒷받침하는 힘과 속도, 무구의 내구력이 백중세임을 증명하 듯한 점으로 힘이 압축되었다.
끼기기긱.
부러질 듯 휜 히토키리와 사왕은 어마어마한 힘의 집중을 받고도 버텨 내고 있었다.
두 도검은 천하를 논할 정도의 기병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중이었다.
‘이겼다.’
요신키는 왼팔을 잃고 몸 전체에 실금이 발생하는 와중에도 이겼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제부터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자신이 다루는 죽음의 기운과 상대의 황금빛 기운이었다.
자신이 다루는 사기는 궁극적으로 피아를 막론하고 모든 것을 멸하는 힘.
비록 황금빛 기운이 사기를 흩어 내는 공능이 있다지만 히토키리에 극한까지 압축된 사기는 앞서와 다른 차원에 있었다.
그렇다면 쟁점은 기운과 기운의 순수한 파괴력. 승기는 죽음의 기운에 있었다.
츠츠츠츠.
‘이럴 수가!’
요신키는 자신의 믿음이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광경에 기함했다.
황금빛 기운이 거침없이 사기를 가르고 히토키리까지 두 동강을 내며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번쩍.
요신키는 눈앞에서 터져 나가는 황금빛 광채에 눈이 부셨다.
그것이 그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
요신키를 가르고 지나간 극혈파천의 힘은 금룡표국의 장원을 절반으로 자르고 도심을 둘러싼 성벽까지 베어 낸 후 지평선까지 뻗어 나갔다.
요신키의 발도술이 내포했던 힘까지 더해졌기에 기존의 초식보다 더 큰 위력이었다.
“허억. 허억.”
적사결은 일도양단된 요신키가 재가 되어 부스러지는 모습을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기예의 충격파를 신체 방어력으로 견뎌 내고 모든 힘을 일점 집중시켜 극혈파천으로 내지른 것.
그 모든 과정에 막대한 심력과 체력이 소모된 것이었다.
“궁금했겠지.”
마지막에 놈이 보인 눈빛에서 적사결은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사기가 밀린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
하나 그것은 간단했다.
“빌린 힘과 쌓아 올린 힘의 차이다. 뒈졌지만 영혼이라도 여기 남아 있다면 알아 처먹고 황천으로 가거라.”
사기가 지닌 파괴의 기운은 적사결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사기를 이겨 내려면 죽음을 초월해야 하고 그것은 인외의 범주에 있으니까.
하나 그것을 다룬 요신키는 그 범주에 있지 않았고 그 엄청난 사기의 덩어리 또한 그의 힘이 아니었다.
반면에 보리연화공은 한 명의 인간이 고자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쌓아 올린 힘이었고.
극혈파천은 그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기예.
내공과 초식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무공, 적사결이 지닌 무의 총화인 것이었다.
“응? 뭐야, 저 새낀?”
피곤해 죽겠는데 날파리 새끼가 또 꼬인다.
적사결은 모든 공력을 소진하고 잠재 근력까지 사용했기에 상대의 모습을 인지하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 모르나 지금은 회복이 필요하니까.
“요신키사마! 칙쇼!”
신스케는 요신키의 죽음을 목도하며 적사결에게 달려들었다.
암살에 적합한 때는 아니었다.
요신키를 믿고 살행에 나섰더라면 전투 도중에 개입했을 테니까.
하나 가라스텐구가 된 요신키의 모습에서 망설이다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전투를 끝낸 상대는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눈빛은 정확히 자신을 보며 경계하고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 충돌에서 발생한 힘의 여파는 사람의 힘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에 있었으니까.
꿀꺽.
신스케는 품에서 꺼낸 붉은 구슬을 삼키고 수인을 맺어 갔다.
팟. 파파팟.
빠르게 인을 완성하자 손끝에서부터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러고는 팔을 타고 올라 전신이 화마에 휩싸였다.
마치 불꽃으로 이루어진 신체를 지닌 듯한 모습이었다.
화르르륵.
불꽃이 피어오르자 신체는 기존의 세 배 정도로 거대해졌다.
불의 거인이 된 신스케는 망설임 없이 적사결에게 돌진했다.
지금의 몸으로는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칫. 귀찮게.’
의연한 태도로 다가오는 적을 보고 있었지만 온몸은 삐걱거리며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내공은 바닥나고 혹사된 신체는 의지를 거부했다.
스스슷.
그때 적사결의 머리카락이 길어지며 오른팔을 마치 붕대처럼 감싸갔다.
근력 대신 사왕을 움직이는데 쓰기 위함이었다.
근육이 지닌 힘만은 못하지만 천축유가신공의 공능이 깃든 머리칼은 쾌속하게 적을 맞서갔다.
푸악.
편법으로 움직인 일격이지만 불의 거인은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하나 쪼개진 덩어리가 다시 달라붙으며 적사결을 감싸 안았다.
화르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