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62화>
다음 날.
왜구의 소주성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수성전인 점은 동일했으나 전날 내부에서부터 성문이 열린 점을 보완해 성벽 아래 예비대의 구성에 더 비중을 둔 것이 달라졌다.
이는 소주성 내부의 간자 색출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신출귀몰하게 그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골치 아프구나…….’
위지휘사 조정생은 중앙 군루에서 전황을 살피며 입안이 쓰다 느꼈다.
개방도 삼천여 명이 충원되어 전날의 사상자를 제외하더라도 전체적인 병력 수가 비등하게 되었지만 정작 그들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방도들은 모두 소주성 내부 간자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여러 가지로 힘겹구나…….’
갑작스레 성문이 열리며 들이닥친 왜구들의 공격은 매서웠다.
개방도들이 적시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성이 점령당할 정도로 말이다.
한데 그런 조정생을 힘들게 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콰아아앙.
동문의 한쪽 성벽 아래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한 것이었다.
규모로 보아 진천뢰 수백 발이 한꺼번에 터진 양.
저 정도라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작업되어 있었음이 분명했다.
쿠르르르.
폭발로 만들어진 공간을 성벽이 무너지며 채웠다.
소주성 동쪽을 지키는 성벽 중 한 곳이 마치 이빨이 빠진 듯 그 입구를 활짝 열었다.
와아아아.
왜구들은 그곳을 향해 집중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정생은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아…… 아…… 어찌…….’
가슴이 격동하고 숨이 가빠졌지만 조정생은 서둘러 부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모든 예비대를 투입해라! 어서!”
“네, 장군.”
조정생은 오늘이 가장 고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 * *
“쿨럭. 케헥.”
“끄아아악.”
진천뢰가 터진 성벽 쪽은 아수라장이었다.
성벽 위에서 싸우던 자들은 폭발에 휘말려 살아남은 자가 없었고, 성벽 아래, 대기 중이던 예비대도 파편이 터져 나가며 상처 입은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막아라! 구멍을 막아!”
살아남은 천인장과 백인장들이 악다구니를 썼다.
먼지구름에 뒤덮여 있는 저곳에서 금방이라도 왜구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다행히 먼저 도착한 이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 대기 중이던 부대였다.
그들은 백리세가, 전날의 성벽 전투에 야습까지 치렀기에 예비대로 편성되었던 것이었다.
“검풍대는 진입하는 왜구를 막고 신풍대와 질풍대는 방책을 쌓는다. 모두 서둘러라!”
장로 백리청의 지시에 백리세가의 무인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 그때 무너진 성벽의 먼지를 뚫고 왜구들이 들이닥쳤다.
“검풍대! 1조는 천라질풍검진으로 1차 방어선을 맡는다! 나머지 조는 방진을 형성, 한 놈의 왜구도 성내로 들이지 마라!”
“예!”
검풍대주 감영의 지시에 검풍대원들은 방어선을 형성.
곧바로 왜구들과 난전을 시작했다.
백리세가에서 천풍대 다음가는 무력 부대인 검풍대의 활약은 놀라웠다.
일백으로 이루어진 그들이 좁은 입구를 틀어막으니 왜구들은 이를 뚫지 못하는 것이었다.
쉬익. 퓨퓨퓨퓨퓩.
감영은 일검에 다섯 번의 변환검초를 뿌려 왜구 다섯의 목숨을 거두었다.
그가 가볍게 손을 털면 검풍이 바람처럼 표홀하게 주변을 잠식했다.
이는 가왜들이 대부분 떠돌이 낭인과 배고픈 일반인들이었기에 일류무인인 감영의 일초지적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지난밤의 그 왜구들은 없구나. 언제 나타나는 것이냐…….’
붉은 천을 두른 왜구들.
자신조차 일대일을 장담하기 힘든 검귀를 염두에 두며 감영의 검은 움직였다.
언제 놈들이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니까.
그렇게 검풍대의 활약이 돋보인 가운데 성내 예비대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이가장의 무사들을 필두로 각 군소방파의 무인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
푸화아악.
쫘아악.
사람을 단번에 토막 내는 피륙음과 함께 피의 비가 내렸고, 먼지구름이 걷히며 붉은 천의 왜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귀갑병대, 그들이 검풍대에 밀려 후퇴하는 가왜들의 목을 친 것이었다.
“이쿠죠!(진격!)”
고작 사십에 불과하지만, 귀갑병대의 진격은 상식을 벗어난 움직임이었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어떤 이는 검풍대의 합격진을 상대하고 또 어떤 이들은 검풍대를 밀어붙이고 빠져나가 2차 방어선의 방책까지 공격했다.
마치 오합지졸과 같은 모습.
하나 개개인의 무위가 뛰어나다 보니 각각의 전투를 모아본다면 전체적인 전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에 힘입어 가왜들의 기세가 오른 것은 덤이었다.
“검풍대를 물려라. 질풍대가 나서고 신풍대는 보조한다.”
백리청의 지시가 내려지고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본 세가가 중앙을 맡을 테니 좌우는 동도들이 맡아 주시오!”
백리청은 쩌렁쩌렁한 사자후와 함께 각 문파들의 수장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백리황과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소가주는 검풍대와 합류해 이 차 방어선을 지키거라. 그리고 적 대협께선 적귀 그놈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대기해 주시오.”
백리황이 곧장 움직이고 적사결은 팔짱을 낀 채 전방을 주시했다.
석연찮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분 탓인가? 지난밤의 놈들과 비슷하긴 한데…….’
분명 극한의 살기를 무형기처럼 다루고 있었다.
하나 그 깊이가 무척이나 얕다고 해야 할까.
직접 상대하고 있지 않지만 적사결은 감각적으로 그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어제 죽인 놈들이 특히 강한 놈들이었나?’
같은 부대라도 실력에 차이가 있겠지.
적사결은 왜구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나 그런 자신을 보좌해 줄 수하는 있었다.
“주군.”
십이월이 적시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 알아보았느냐?”
“예. 꼬리를 잡았습니다. 제금상단의 계열표국인 금룡표국입니다. 왜구가 사용하는 무구가 창고 가득 쌓여 있고 지금 표국의 무사들을 위장 중에 있습니다.”
“현장을 적발하면 빼도 박도 못하겠구나.”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귀갑병대라는 왜구놈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뭐? 붉은 천 쪼가리 두른 놈들은 저기 있지 않느냐? 설마…….”
여기가 아니구나.
놈들은 실력이 뛰어난 왜구들로 귀갑병대인 척 위장을 해 놓은 것이었다.
적사결은 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곳이 이곳이 아님을 알아챘다.
어쩐지 피가 끓지 않는다 했다.
“금룡표국 내에 성 밖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호오. 성벽을 무너뜨린 작업은 미끼고 진짜는 그곳이다? 큭큭큭. 쥐새끼들이 제법 머리를 썼구나.”
“일단 성내를 감시하는 개방도들에게 정보를 흘려놓았으니 금룡표국은 포위될 것입니다. 주군께서도 가 보시겠습니까?”
십이월은 그 짧은 시간에 금룡표국 내 왜구들이 성안의 백성들에게 미칠 피해를 우려해 개방도를 이용한 것이었다.
“앞장서거라. 거지새끼들로 막을 만한 놈들이 아니다.”
* * *
“모두 무기를 버려라!”
붕산개가 타구봉을 바닥에 찍으며 일갈했다.
그의 주위로 진덕개와 삼살개, 그리고 개방도들이 타구봉을 겨눈 채 금룡표국에서 대치 중이었다.
표국을 포위한 인원은 약 천 명.
전체 개방도의 삼분지 일로 나머지 방도들도 속속 도착하며 인원을 늘려 갔다.
“비밀통로가 있는 것이 분명하네. 놈들도 머릿수가 늘어가니 말이야.”
한데 왜구들의 숫자도 증가하고 있었다.
현재 병력 수로는 백중세였기에 개방도들은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세. 비밀통로는 커 봐야 두 셋이 움직일 정도니 그리 빨리 병력이 불어나진 않아. 하나 동도들과 관병들은 더 빨리 도착할 걸세.”
진덕개의 말에 대한 삼살개의 대답이었다.
전방에서 붕산개가 선봉장을 맡고 그들은 상황을 판단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점차 고조되어 갔다.
“네 이놈들! 끝까지 역도의 무리가 될 참이더냐! 금룡표국주 황자기! 감히 왜구로 위장해 변란을 조장하다니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붕산개의 외침에 왜구들이 갈라지며 황자기가 앞으로 나섰다.
“세금도 내지 않는 거지새끼가 나라 위하는 꼴이라니. 큭큭.”
“뭐라?”
“이 모든 것은 그 빌어먹을 벼슬아치 새끼들이 해상 무역을 금지하기에 그런 것 아닌가.”
“지금 나라의 정책에 반한다 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냐!?”
“잘못된 정책이니까! 이게 다 교역을 금지시켜 상권을 제한시키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놈들의 수작질이니까! 황제는 눈이 멀고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하늘을 찌르니 난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같잖은 소리 지껄이지 마라!”
쿠웅.
붕산개가 다시금 타구봉을 찍으며 사자후를 내질렀다.
황자기는 비릿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흐흐흐, 거지새끼들에게 이해 따윈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네놈들은 모두 죽어야 할 테니 말이야.”
황자기는 그 말을 끝으로 왜구들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보게들. 아무래도 더 버티긴 어려울 것 같으이.”
죽선개가 어두운 표정으로 죽장을 움켜쥐었다.
황자기가 진영 안으로 들어간 후 다시 놈들이 갈라지며 흉흉한 왜구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귀갑병대.
대장 요신키를 필두로 한 사십이 인의 살귀들이었다.
“맨 앞의 저자는 이 노개가 맡을 테니 나머지 놈들을 부탁하겠네.”
“죽선개 어르신. 제가 맡을 테니 방도들의 지휘를 해 주십시오.”
붕산개가 타구봉으로 요신키를 겨눈 채 말했다.
“아니. 저자는 이 늙은이가 맡아야 하네. 분타주로서, 그리고 육결제자로서 명하니 부디 따라주게. 자네들이 살귀들을 맡아주어야 동도들의 피해가 줄어들 걸세.”
“하나 어르신!”
붕산개가 뒤를 돌아보며 외치자 삼살개가 나섰다.
“어르신의 명대로 따르게. 이 많은 방도들 앞에서 우리들이 본방의 내규를 어길 수는 없네.”
“이보게!”
“어르신께선 육결! 취팔선보를 익히신 분이야. 쉽게 당하지 않으실 것이네.”
삼살개가 이를 빠드득 갈며 외쳤다.
당주급이 내규를 어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빠르게 왜구들을 정리하고 돕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르신! 정면으로 붙지 마시고 시간을 끄십시오! 최대한 빨리 돕겠습니다!”
삼살개의 말에 죽선개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판단이네. 허허허. 뛰어난 후배가 있으니 저승길 가는 길이 그리 서글프지만은 않겠구먼.’
죽선개는 알고 있었다.
상대가 이미 이 년 전 남경제일검을 죽였다는 사실을.
남경의 문파들이 쉬쉬하며 덮은 일이었으나 죽선개는 개방의 분타주이기에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고학신검을 죽인 놈이다. 놈에게 본방의 미래를 잃을 수는 없지.’
죽장을 말아 쥔 손바닥이 흥건했다.
하나 죽선개는 거침없이 짓쳐 들며 타구봉법을 펼쳤다.
죽선개의 공격과 함께 개방도들과 왜구들의 집단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가장 앞선 요신키의 요도가 죽선개의 죽장을 맞서 갔다.
타타탕. 타타타탕.
철심을 가운데 박아 넣은 죽선개의 죽장은 유형의 기운까지 머금고 있어 쉽사리 잘리지 않았다.
한데 백오십여 초를 겨뤘을까.
쩌억. 쩌적.
죽장이 안에서부터 갈라지는 기음이 발생했다.
‘으음…… 화경의 묘리로 힘을 흘리는데도 버티지 못하는 것인가…….’
실상 버티지 못하는 것은 무기만이 아니었다.
일초를 교환할 때마다 기괴한 기운에 손발이 무뎌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었다.
결국 죽선개는 미간을 향해 날아드는 요도를 막지 않고 후방을 향해 뛰었다.
취팔선보의 일보는 물러날 때도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쇄애액.
경공도 모르는 것이 분명한데 요신키의 신형이 빠르게 접근하며 일도를 뿌렸다.
가슴을 베어 내려는 듯 횡으로 도격이 날아들었다.
촤악.
“크윽.”
치명상은 아니나 혈흔이 앞섬을 적실 정도.
신법을 모른다는 판단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얕본 대가였다.
쩌엉.
내려치는 일도를 죽장으로 받아 내었으나 무뎌진 손발에 살기의 중압감이 더해졌다.
죽선개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죽장을 떠받쳤다.
부들부들.
잔뜩 일으킨 공력으로 소매가 부풀어 오를 정도건만.
죽장은 요신키의 도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놈은 한 손만으로 누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슴께까지 밀리는 것이었다.
“크으읍. 크윽.”
상처 입은 가슴에 힘이 들어가니 핏줄기가 튀었다.
아무리 노쇠했다지만 십성 공력을 사용함에도 왜구의 한 손도 감당하지 못하다니.
죽선개는 혈광을 발하는 요신키를 보며 압도되는 자신을 느꼈다.
“약하군.”
어눌한 한어로 나직이 읊조린 요신키는 오른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꾸구구국.
“죽어라.”
요신키의 도가 죽선개의 가슴에 닿은 그때였다.
콰앙.
부지불식간에 날아든 공격이었으나 요신키는 왼손을 들어 올려 막아 냈다.
하나 그 속에 담긴 만근 거력에 땅바닥을 긁으며 열 걸음이나 밀려났다.
“왜놈 새끼가 제법이야, 본좌의 기습을 막다니.”
사왕을 뻗은 자세로 요신키를 노려보는 적사결이었다.
예리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왕의 일격을 막다니.
놈의 팔뚝에 찬 붉은 보호대도 기물인 것인가.
그러고 보니 들고 있는 왜도 또한 범상치 않았다.
“뒷방 늙은이는 뒤로 빠져 지금부턴 본좌가 상대할 테니.”
적사결은 바닥에 주저앉은 죽선개를 뒤로한 채 달려 나갔다.
‘살다 살다 거지새끼를 내 손으로 살리고…… 에휴.’
정파 놈들은 죽든 말든 상관없으나 지금은 왜구를 상대할 고수가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황.
민초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