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60화>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거지는 늘어난다.
그리고 개방은 그렇기에 더 융성한다.
거지 움막에 삶을 시작하면 진로는 거의 정해진다 할 수 있었다.
개방도가 되거나 왈짜패에 들어가거나.
전자라면 정파, 후자라면 사파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중 어느 쪽이 인기냐 묻는다면 개방이었다.
왈짜패로 시작해 흑도의 문파에 입문하는 즉시 정기적인 상납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도둑질을 하든 청부업을 하든 상인들을 쥐어짜든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했다.
하나 개방은 그런 강제적인 상납 행위가 없었기에 상대적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웅성웅성.
소주성의 성곽 주변에는 거지들이 가득했다.
어림잡아 오천에 달하는 인원.
이는 의결을 받은 개방도 외에 일반 거지도 모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한 이는 낙양 분타에서 온 삼당주와 소주 분타의 분타주 죽선개였다.
“죽선개 분타주님이 아니었다면 때를 맞추지 못했을 겁니다.”
삼살개가 죽선개를 향해 포권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아니네. 우리야 시기를 맞추는 데만 주력했으니 가능한 것이었지.”
왜구의 진격 소식을 들은 소주 인근의 거지들은 대부분 줄행랑을 친 상황이었다.
강소성에 사는 거지 대부분은 왜구 때문에 그리된 자들이었기에 공포심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때 허탈해하던 죽선개에게 들려온 소식.
안휘성에서부터 거지 동도들을 모아 온다는 낙양 분타의 세 당주.
그들은 오결제자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던 인물들이었고 그렇기에 개방의 핵심인 금개의 수하로 배정된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원 병력을 이끌고 소주를 향해 온다는 소식에 죽선개는 수하로 하여금 연락망을 형성토록 한 것이었다.
진군 속도를 조절하고 소주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한데 어찌 왜구가 소주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동도들을 모은 것인가?”
놈들의 준동은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도 왜구의 천적인 절강척가군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즉, 이번 습격은 관, 군, 무림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저희는 이곳 소주에 분타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분을 모시러 오는 중이었습니다.”
진덕개의 말이었다.
“나 역시 어제 소주 성내의 무인들이 집결해서야 금개님이 소주에 계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한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상관이 있지요. 저희는 금개님을 보좌하는 것이 임무이지 않습니까. 낙양에서 오는 내내 소주는 물론 강소성 전역의 정보를 분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이더군요. 소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설마 금개님을 보좌하기 위해 그 많은 정보를 다 살폈단 말인가? 허어…….”
뛰어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건 그냥 머리가 좋다는 말로 포장할 수 없었다.
기본에 입각한 철저한 일 처리.
죽선개는 어째서 그들이 금개의 수하로 뽑힌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보좌를 하려면 당연한 절차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희가 왜구의 준동을 알아차린 것도 그렇고 아까의 공격도 말입니다.”
진덕개의 물음에 죽선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공격에 성문이 너무 쉽게 열린 것은 소주성 내부에서 방화를 일으키고, 그것을 연 놈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황으로만 보자면…… 가왜가 또다시 생긴 듯하네. 휴우…….”
“역시 그렇군요. 저희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왜구의 이동을 눈치챈 것도 해안가 인근의 상행이 현저하게 줄었기에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물류의 이동은 사람이 사는데 필수적인 행위.
그 이동이 끊긴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시 체제에 들어가는 경우였다.
내부적인 반란이든 외적의 침입이든 말이다.
“가왜라면 상인들이 개입되었을 텐데 자네들이 파악한 상행에서 용의 대상을 특정할 수는 없는가?”
“너무 광범위하게 일어난 일이라 어렵습니다. 더구나 그것만으로 증좌를 삼을 수도 없고 말입니다.”
“힘든 일이겠지. 그리 쉽게 꼬리를 밟히지도 않을 테고 말이야…… 내부의 적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살귀들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미칠 노릇이군.”
죽선개는 지원군이 당도하기 전 상황을 상기했다.
최선두에 섰던 열 명의 왜구.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무림인과 관병이 죽은 것인지 셀 수도 없었다.
아마 중소 문파 세 개 정도 되는 인원이 도륙당했을 것이다.
그 실력과 붉은 천을 두른 특징으로 짐작하건대 한때 남경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귀갑병대.
죽은 줄 알았지만 그놈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선두에 섰던 십자흉터의 검귀는 용모파기가 일치했으니까.
“분타주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또 다른 지원 병력이 올 겁니다.”
붕산개가 죽선개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어디서 말인가? 의천맹에서 무사들을 파견해 준다던가?”
“무림이 아닙니다.”
“하면?”
“관병입니다. 남경에서 올 것입니다.”
붕산개의 말에 죽선개는 표정을 찌푸렸다.
“이보게. 미안하지만 어제 도지휘사께서 지원병은 없다는 파발을 보내오셨네…….”
“올 겁니다. 안 올 수 없을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
“저희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동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금의위 위사들이었습니다.”
“……!”
죽선개는 한 번에 알아들었다.
벼슬아치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감찰사, 금의위.
뿐만 아니라 금의위에게는 임시지만 병력 동원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죽선개의 얼굴에 화색이 돌던 그 순간, 개방도가 다가왔다.
“분타주님. 금개님께서 복귀하셨습니다.”
소주 분타에 소속된 일결제자였다.
“오! 그래? 무사히 돌아오신 모양이구나. 백리세가의 군영에 계시느냐?”
“그렇습니다. 방금 그곳에서 오는 길입니다.”
죽선개는 반색하며 삼당의 당주들을 돌아보았다.
“어서들 가 보세.”
* * *
“소가주, 검풍대주. 둘 다 무사했구나.”
백리황과 감영을 반긴 이는 풍령전의 장로 백리청이었다.
간밤의 기습이 워낙 거세, 백리세가에서 추가로 지원을 나온 것이었다.
“적운님 덕분입니다. 한데 폭풍대의 다른 조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백리황의 물음에 백리청이 고개를 저었다.
“소식이 끊겼단다. 아무래도 작전은 실패인 듯하구나.”
“모든 조가 그리되었다면 역시 작전이 누설된 것이 맞겠군요…… 휴우…….”
백리황의 탄식에 백리청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함정이었단 말이더냐?”
“예, 고위층에 세작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찌 그럴 수가. 믿기지가 않는구나…… 소주의 상층부에 왜구의 세작이라니.”
“가왜입니다. 진짜 왜구는 소수였고 대부분 변장한 중원인이었습니다.”
“……!”
백리청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가 백리황의 말을 힘을 실듯 의견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소가주의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작전을 나갔던 폭풍대주 주성운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는 복귀 후 치료도 받지 않고 이곳으로 곧장 온 것이었다.
“주대주!”
사람들은 주성운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비틀거렸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쓰게 웃은 주성운은 의자에 기대 앉아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소가주와 감 대주 쪽은 어땠습니까? 혹시 붉은 천을 허리에 두른 왜구들을 만났습니까?”
주성운의 물음에 감영이 답했다.
“세 번째 진지에서 만났네. 그곳에서 그런 놈들 열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네.”
“열 명! 한데 어찌 그리 멀쩡하십니까? 그놈들 하나하나가 괴물이었습니다. 아무리 대주님이라도…….”
같은 대주급이라지만 감영의 검풍대는 천풍대 다음가는 부대였다.
주성운은 감영을 무시하는 것 같은 발언이라 뒷말을 흐린 것이었다.
“알고 있네. 우리도 죽을 뻔했지. 적 대협이 아니었다면 자네와 마찬가지였을 걸세.”
“적 대협이 그렇게 강하다는 말씀입니까?”
“강하네. 직접 보니 믿기지 않는 고수더군. 참고로 열 명 모두 적 대협께서 죽이셨네.”
감영의 말에 주성운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괴물들을 서너 명도 아니고 열 명 모두 혼자서 상대했다니.
“한데 그 적 대협께선 어디 계십니까? 혹시 다치셨습니까?”
“아니, 아주 멀쩡하시지. 볼일이 있어 어디 들렀다 오신다더군.”
“허어…… 다치지도 않았다니. 엄청나군요…….”
그때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백리청이 끼어들었다.
“붉은 천을 두른 왜구라면 귀갑병대를 만난 것이로군. 한데 적운 그자가 정말 열 명을 베었단 말인가?”
“정말입니다. 거짓을 고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열 명이라…… 하늘이 돕는 것인가…….”
백리청이 작게 읊조린 말에 백리황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늘이 돕는다니요?”
“간밤의 공격에 그 귀갑병대도 있었다. 대장인 적귀와 열 명의 수하들이었지.”
“여기도 나타났었단 말입니까?”
“그래. 이 년 전 남경의 토벌대에 죽은 줄 알았는데 확실히 그놈들이더구나. 특히 적귀 그놈에게 호력문, 도화문, 고천무관, 대해방, 연주홍가의 수장들이 당했단다.”
백리청이 말한 자들은 소주 일대에서 이름 높은 문파였다.
비록 중소 문파라 하나 최근 그 세를 떨치는 자들이었는데 그들이 모두 당했다는 것이었다.
“놈은 이 년 전 남경제일검인 고학검문주와의 일전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들었는데 이번에 보니 완전히 회복한 모양이더구나.”
“그만한 고수라니. 하면 아버님께서 빨리 돌아오셔야겠군요.”
고학검문주와 함께 강동 십대고수의 일인이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검이었다.
소주 인근의 무인들 중 적귀를 상대할 만한 고수는 그가 유일했다.
“가주께선 당장 복귀하지 않겠다는 전언을 보내 오셨다.”
“예? 어째서 그렇습니까?”
“왜구 정도는 그 수가 얼마나 되건 위협이 될 수 없다 생각하신 것이겠지. 귀갑병대가 나타난 사실은 아직 가주께 전해지지 않았으니까.”
정보가 실시간으로 오고가는 것이 아니니 발생한 문제였다.
귀갑병대의 존재는 간밤에야 알게 되었으니 그 사실이 전해지고 백리검이 복귀하려면 적어도 사흘의 시간은 필요했다.
“사흘, 적어도 사흘 동안 적귀 그자를 막을 고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데 적운이라는 그자가 그렇게 강하다니 다소 안심이 되는구나.”
백리청의 말에 백리황을 비롯해 감영과 주성운 등 대주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분타주님!”
호들갑을 떨며 막사로 들어선 이가 있었다.
“붕산개 당주?”
백리황이 눈을 크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뒤이어 삼살개와 진덕개, 그리고 소주 분타주 죽선개도 막사로 들어섰다.
“다들…… 자리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백리황의 말에 백리청은 대주들을 이끌고 막사를 나섰다.
다섯 사람만 남게 되자 삼살개가 입을 열었다.
“어르신,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십이사령을 쫓아 삼당의 당주들이 자리를 비운 그날.
낙양 분타의 개방도들이 몰살을 당하고 분타주인 금개는 실종되었었다.
그런 그를 쫓아 소주까지 오게 된 그들이었다.
“또 어째서 소주 분타에는 소식을 알리지 않은 것입니까?”
삼살개의 물음에 죽선개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금개님께서 소주에 계신지도 모르고 이거 분타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늦게나마 이렇게 인사 올립니다.”
죽선개가 포권을 하며 예를 올렸다.
같은 분타주라지만 금개는 급이 달랐으니까.
“분타주님. 이제 말씀 좀 해 보십시오.”
진덕개의 재촉에 백리황은 난감해하며 입을 열었다.
“세 분께는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냥 자유롭게 바람 좀 쐬고 싶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상하고 준비한 답변이었다.
대충 둘러 대도 되는 것은 금개 역시 천하사괴, 무허 못지않은 사고뭉치였으니까 가능한 것이었다.
“하면 낙양 분타의 혈사에 대해서는 모르십니까?”
“혈사라니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 동도들이 얼마나 다쳤길래요?”
“……아직 모르시는군요…… 분타의 동도들은 모두 죽었…… 습니다.”
진덕개는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왜요? 누가? 누가 그런 겁니까!?”
백리황은 격앙된 목소리로 연기했다.
알지만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다.
십이사령이라 얘기하면 꼬치꼬치 캐물을 테니 말이다.
“저희도 아직 흉수를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십이사령일 것이라 추정만 할 뿐 증좌가 없는 상황입니다.”
“하아…….”
백리황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연기도 쉬운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