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59화>
* * *
삐이이익.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을 황금빛 거조가 날고 있었다.
사무련의 수호신조로 불리는 화식조.
그리고 등 뒤에는 봉두, 아니 백류혼이 앉아 있었고, 그 뒤로 포박된 채 무릎 꿇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네놈…… 아니 네년의 말이 틀리다면 곱게 죽지 못할 거다. 알겠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어요. 무려 사무련의 후계자이신데 말이에요.”
노인의 대답으로 유추하건대 그는 음치 악도겸의 몸을 한 기녀 매양옥이었다.
그녀는 몸을 되찾기 위해 백류혼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상황이었다.
“젠장 빌어먹을!”
백류혼은 지난 일을 반추하자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의심은 금개와의 밀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시작되었었다.
음치 악도겸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사하고 보고하며 다음 행동 지침을 하달 받던 중.
필체가 미세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 자신이었다.
사무련의 후계자로 자라며 무공뿐만 아니라 잡다한 분야를 배운 그는 필적 감정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의심은 다음으로 음치 악도겸에게 향했다.
조사 중에 그가 갑자기 사람이 바뀐 듯 행동과 습관을 비롯해 성정까지 달라졌다는 것을 듣게 된 것.
주변인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고 하오문을 통해 알아 본 바 세 달 전이 그 분기점이었다.
‘천하사괴가 아니었다면 하오문에서도 주목하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다행이었지.’
정보단체의 입장에서 대충이라도 근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는 사고뭉치들이 천하사괴였다.
가끔씩 사건을 크게 일으킬 때면 천하인들의 주목을 받곤 했으니.
그런 천하사괴 중 두 명이나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백류혼은 직접 악도겸 앞에 나타났었다.
그리고 매양옥은 바로 백류혼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기녀로서 하오문에 적을 둔 하오문도였기에.
‘음치와 매양옥이 바뀌고…… 금개님도 그자처럼 누군가와 몸을 바꾸었다면…… 휴…….’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팠다.
하나 다른 이들과 달리 백류혼은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 초대 사무련주와 관련하여 한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있었고 어떤 물건에 하나를 옮겨 담았다는 비사도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었다.
‘워낙 신화 속 인물 같은 선조지만 전부 다 미화된 것은 아닐 것이고…….’
대략적인 기록만 있을 뿐 자세한 방법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하나 과거에 가능했다면 지금도 가능할 것이다.
세월이 흘렀다고 불가능하다면 인간사 발전이란 없을 테니까.
‘어쨌든 나는 용납할 수 없어.’
금개님은 자신의 우상이었다.
우상이 어떻게 영혼만 해당할까.
머리카락 한 올. 피 한 방울까지 모든 것이 그 대상.
그것은 금개님이 원했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우상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었으니까.
‘일단 매양옥의 몸을 가진 음치를 잡는다. 그리고 다음 행보를 결정하자.’
파바바밧.
십이사령인 청령, 홍령, 백령, 자령은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수호신조를 탄 백류혼이 날아가는 쪽이었다.
“젠장! 또 산을 넘어가셨어! 미치겠네, 정말!”
홍령이 허탈감이 섞인 어조로 외쳤다.
잡을 만하면 신조를 타는 바람에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더구나 일직선으로 날아가기에 지형을 고려하지 않아 추적도 힘들었다.
놓치지 않으려면 그저 빠르게 경공을 전개해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이 유일했다.
“그런 말할 힘이 있으면 아껴서 더 빠르게 달려. 휴우…….”
청령이 한숨을 섞으며 말했다.
그러자 자령이 자신의 의견을 꺼내었다.
“여기서 인원을 나누는 게 어때? 두 명은 예상 목적지인 항주로 가는 게 좋을 듯한데.”
파양까지 왔으니 사전에 예측한 백류혼의 목적지, 항주가 맞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 상황.
하니 백류혼의 뒤를 힘겹게 쫓는 것보다 대로를 통해 항주를 가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다만 두 명은 그대로 남아 백류혼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예상을 뒤엎고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청령과 홍령이 항주로 가. 나와 자령이 이대로 쫓을 테니까.”
백령이 과묵한 입을 열고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
홍령이 반색하며 기뻐했다.
험한 산길을 주파하는 것보다 그편이 더 쉬웠으니까.
“나도 찬성이다. 나와 백령은 야차혈전대와 사이가 나쁘니까.”
자령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좋아. 청령, 가자.”
홍령은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청령은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 새끼들이랑 마주치기 싫은데…….”
부대의 성격이 다를 뿐 흑야귀령대와 야차혈전대는 동등한 위치였다.
한데 야차혈전대는 항상 흑야귀령대를 아래것들 대하듯 오만하게 굴었기에 십이사령 대부분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령들 중 홍령이 그나마 그들과 성정이 비슷하고 자주 작전을 수행했기에 친밀하다 할 수 있었다.
“네가 홍령과 한 조인 걸 어쩌겠냐. 빨리 가.”
“에휴. 그래. 나중에 보자.”
청령은 홍령이 사라진 방향으로 경공을 전개했다.
그들은 백류혼의 뒤를 쫓기 전 본련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사무련주는 야차혈전대를 파견.
사무련 최강의 무력 부대는 그렇게 항주로 향하는 중이었다.
* * *
항주.
소주와 함께 천하제일 향락의 도시이자 가장 도회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이다.
왜구가 가장 들끓는 곳이 절강성인 것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절강 백성들은 끊임없는 약탈에 피폐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아야 했으니까.
하나 그렇기에 절강 백성들에게 있어 항주는 반드시 지켜 내야 할 곳이었다.
항주마저 무너진다면 절강성은 황실의 외면을 받을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세금이 많이 걷히지도 않고 뇌물도 바치지 않는 곳을 벼슬아치들이 관심 가질 리 없었다.
항주는 그러한 배경에서 절강 백성들의 피와 땀 위에 건설된 도시였다.
콰아앙.
그런 항주의 도심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진원지는 천금루.
항주 제일루로 불리는 기루였다.
그런 천금루의 최상층은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 있었다.
“쿨럭.”
이십대 중반 즈음 되었을까.
천하절색이라 해도 될 여인이 쓰러진 기둥에 기대 피가 섞인 기침을 뱉었다.
“씨부랄! 그래서 남은 반선주가 없다!?”
여인의 앞에는 백류혼이 서서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음치 악도겸. 지금부터 뭐든 쓸 만한 정보를 주지 못하면 넌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거다. 알지? 본련에는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고문기술자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거.”
백류혼의 협박에 악도겸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무련으로 갈 것까지도 없었다.
당장 백류혼 뒤에 늘어선 자들.
루주를 비롯해 하오문의 문도들이 눈을 번득이고 있었으니까.
하오문도 고문 기술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였고 그들은 사무련의 우방이었다.
하니 사무련의 후계자, 백류혼의 한 마디면 자신은 갈가리 찢겨도 목숨은 붙어 있을 것이다.
“나…… 나눠 가진 반선주가 애초에 너무 적었습니다. 하나 금개 그 친구라면 숨겨 둔 것이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 반선주를 가져온 것이 그 녀석이었으니까요. 쿨럭. 끄으으.”
악도겸은 배를 부여잡고 신음 소리를 냈다.
백류혼이 갑자기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내 앞에서 금개님을 그 녀석이라 불러? 팍! 씨! 뒈질려고!”
그러고는 매양옥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매양옥은 자신의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얻어맞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시키는 대로 따랐다.
“당신도 몇 대 때리고 싶으면 때려. 내 볼일은 대충 봤으니까.”
“아니요. 나중에 몸을 되찾고 나면 할게요. 저거…… 제 몸이잖아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럼 이리 가까이 와 봐.”
매양옥이 가까이 가자 백류혼은 포승줄을 풀고는 그것으로 악도겸을 묶었다.
“휴, 이제야 살겠네요. 한데 그것으로 구속이 될까요? 그는 고수잖아요?”
“날 뭘로 보는 거야? 이건 천잠사와 만년한철을 섞어 만든 거라 절정 고수도 못 끊어. 더구나 내공 금제의 효과도 있으니 문제없어.”
“와…… 보기보다 엄청난 기물이었네요.”
그저 평범한 밧줄인 줄로만 알았던 매양옥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모습에 백류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흠…… 별로 안 놀라네…….”
“안 놀라다니요. 많이 놀랐는걸요.”
“아니, 그거 말고. 몸을 되찾지 못했는데 별로 안 놀란다 이 말이지.”
“그렇게 쉬울 거라 생각 안 했으니까요. 이래봬도 하오문 상급 문도랍니다. 호호.”
“늙은이 얼굴로 그렇게 웃어 봤자 안 귀여운데.”
백류혼의 말에 매양옥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휴, 이 도련님 만만찮네…….’
매양옥은 사실 몸을 되찾지 못해 다행이라 여겼다.
언제 자신이 사무련의 최고위층과 친분을 쌓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차기 사무련주나 마찬가지인 백류혼이라면 초특급 인사였다.
그의 마음을 얻는다면 최소 하오문의 장로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한데 다음 목적지로 빨리 가 봐야 되지 않나요? 신조는 안 부르세요?”
매양옥의 말에 백류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날 만나고 싶어 하는 놈들이 있어서 이제 그만 만나주려고. 앞으로는 손도 더 필요하고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세요?”
“거의 다 온 것 같으니 보고 판단해. 하오문 상급 문도라며?”
귀찮은 듯 말하는 백류혼의 대답에 매양옥은 되묻지 않고 아쉬운 듯 입술만 축였다.
왠지 서로 간에 벽을 세운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반각 후.
계단이 아닌 바깥에서 튀어 들어온 두 사람이 있었다.
천금루가 팔 층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신법.
자령과 백령이었다.
“도련님.”
“왜 너희 둘만 왔어? 홍령과 청령은?”
“곧 도착할 겁니다.”
“젠장. 영감에게 지원 요청했구나. 누군데? 아니 혹시 타격대 하나 통째로 보냈냐?”
“그만 련으로 돌아가시죠.”
“대답이나 해. 지금 내 말 씹는 거야?”
“야차혈전대입니다.”
자령의 대답에 백류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친 영감탱이! 니들하고 야차혈전대를 같이 보내?”
“련주님께서 상당히 노하셨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백류혼은 자령이 아닌 부서진 잔해 너머 도심지 쪽을 주시했다.
“진짜네. 끙…….”
다가오는 것은 야차혈전대만이 아니었다.
하늘에는 어느새 독수리 무리가 천금루를 중심으로 배회하고 있었다.
“천응…….”
독수리 중 가장 높은 하늘을 나는 영물.
조선에 해동청이 있다면 중원에는 천응이 있다고 불리는 사냥용 독수리였다.
“수호신조께는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잠시 발을 묶을 녀석들입니다.”
백령이 나서며 말했다.
꽤 철저하게 대비한 모양이다.
“도망갈 생각 없으니 걱정 마라.”
“예?”
“도망 안 갈 테니 한 가지 일 좀 도와다오. 그렇게만 해 주면 얌전히 본련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게 무슨…….”
“안 도와주면 죽을 각오로 도망칠 거다. 아무리 니들이라도 쉽지 않을 거야.”
백류혼의 반협박에 자령과 백령은 한숨을 쉬었다.
빈말이 아닌 것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뭘 도와달란 말씀입니까?”
“내 우상에 흠이 생겼거든. 그거 원상복구 좀 해야겠다.”
* * *
붉디붉은 소주성이었다.
대지를 적시고 넘친 피가 운하에 스며들어 핏물을 형성한 것.
달빛에 비친 그 모습은 귀기마저 어려 있었다.
“벌써 퇴각했다고?”
적사결은 왜구들이 남쪽방향으로 향한 흔적을 더듬으며 말했다.
분명 총공격이라 들었는데?
현재의 상황으로 판단하건대 성이 거의 함락된 상태에서 후퇴한 것이 분명했다.
“어찌 된 일일까요?”
백리황의 물음에 적사결은 청각을 활짝 열었다.
아직 소주성까진 백장 이상의 거리가 있었지만 적사결의 귀에는 성 내부의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과 신음 소리가 많았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기 방패들이 왔군.”
“예? 고기 방패라니요? 지원군이 온 겁니까?”
“그래.”
“남경에서 보낸 것이로군요! 다행입니다!”
백리황의 호들갑에 적사결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가 아니야. 개방이다. 고기 방패 전술을 쓰는 곳이 개방 말고 또 있더냐.”
개방이 적시에 소주를 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