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58화>
기습적인 발도.
이보 가량의 짧은 거리였기에 실패할 리 없다.
더구나 놈은 굉음과 광휘에 시선을 사로잡혀 빈틈까지 보이지 않았는가.
이런 기회를 노리지 않으면 바보였다.
하나 상대는... 적사결이었다.
팅. 터턱.
피부 경화를 쓴 오른손이 긴조의 왜도를 막는 동시에 움켜쥐었다.
나무껍질 같은 손바닥은 서슬 퍼런 왜도의 예기에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칙쇼!”
더구나 꽉 쥔 오른손에서 무기를 회수할 수도 없었다.
마치 단단한 바위덩이에 깊숙이 박힌 듯한 느낌이었다.
“그거 욕이지? 새끼야!”
마찬가지로 경화된 왼손이 긴조의 얼굴을 직격했다.
뻐어억. 뻐억.
일격에 두개골이 함몰되고 이격에 수박을 절굿공이로 내려친 것처럼 머리통이 터져 버렸다.
호기롭게 나선 왜구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적사결은 손을 흔들어 뇌수가 섞인 핏물을 털어 내며 말했다.
“소주성에 변고가 생긴 것 같으니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가야겠다.”
감영과 백리황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긴조의 죽음을 허탈하게 바라보던 왜구들이 광분했다.
“긴조! 이 새끼들이!”
동시에 끈적하고 기분 나쁜 감각이 적사결 일행을 뒤덮었다.
“호오. 이게 왜구가 사용한다는 특유의 기세인가 보군. 재밌는데 그래.”
적사결은 피부에 와닿는 감각에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공이 마성에 그 근원을 둔다면 왜구는 살성, 즉 살의 그 하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것도 타인을 죽이겠다는 살의만이 아닌 자신의 생명조차 길거리 돌멩이로 여기고 기꺼이 버린다는 독랄한 의지.
어찌 보면 살수와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하나 살수는 그 살의를 배제하고 자신조차 비우는 훈련으로 살기를 없앤다면 놈들은 그 반대였다.
처절하게 모든 것을 베어 죽인다는 일념으로 그 살의를 극대화하고 또 폭주시킨 것.
자칫 이지를 잃은 살귀가 될 수도, 아니 살귀가 되었지만 이성이 남은 특별한 놈들만 모인 것이 분명했다.
‘살의가 허공섭물과 비슷한 무형기를 형성한 것이겠지.’
초절정 고수나 가능한 무형기를 극대화된 살의만으로 가능하게 만든 일종의 좌도방문.
평범한 사람의 살기도 상대의 심력에 영향을 주니 틀린 가설도 아닐 것이다.
죽이겠다는 의지는 타인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니까.
‘한데 도대체 얼마나 죽여 댄 것이기에 내공도 모르는 칼잡이 새끼가 물리적인 기운을 발현하는 거야?’
백 단위로 죽여서는 턱도 없다.
적어도 천 단위 이상은 직접 썰어 봐야 가능하겠지.
한 마디로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개새끼들이다.
“둘 다 잘 들어. 놈들과 손속을 나누는 것을 최대한 줄여라. 어설프게 초수를 교환하면 마치 귀신이 손발에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이 가중될 거다.”
뭉쳐진 살의가 왜도에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으니 닿는 순간 전염병처럼 옮을 터.
이 사실을 모르는 백리황이 놀라 물었다.
“초수를 교환하지 말고 어찌 싸우란 말이세요?”
“단칼에 죽여. 못 하겠으면 삼 초 안에는 반드시 죽여.”
“삼 초 안에 못 죽이면요?”
“도망 다녀. 피하는 건 지겹도록 훈련했잖아.”
“알겠습니다.”
도망 다니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백리황을 보며 감영이 황당해했다.
“감 대주님. 적운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이유 없이 명을 내릴 분이 아닙니다.”
“끙…… 알겠습니다. 일단 저분이 조장이시니 따르겠습니다.”
“예, 꼭 지키십시오. 말 안 들으면 나중에 힘들 거예요.”
“……힘들다니요?”
“그런 게 있어요.”
상상만 해도 등 뒤가 축축해지는 것만 같았다.
흉흉한 기세를 뿜어 대는 포위망 속에서도 백리황은 적사결의 화난 모습이 더 무서웠다.
그 덕분일까. 백리황은 무시무시한 중압감 속에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코로세!(죽여!)”
귀갑병대가 사방에서 덤벼들었다.
인원은 죽은 긴조를 제외한 아홉.
마구잡이로 덤벼는 듯했지만 세 명씩 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흑의 복면인, 닌자 다섯은 주변에 포위망을 그대로 형성하고 있었다.
쇄액. 쉬익.
적사결에게 달려든 삼 인은 시간차로 공격해 왔다.
처음은 하단 발도술, 그리고 찰나에 가까운 차이로 이어지는 상단 발도술이었다.
첫 일격을 피해 뛰어오르면 두 번째 공격을 적중시키겠다는 의도.
파앗.
적사결은 오히려 뛰어들며 가로로 몸을 눕혔다.
일격과 이격의 중간지점을 절묘하게 파고든 것.
하나 세 번째 공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베어 들어왔다.
그대로 있다간 허리가 양분될 처지였다.
슈욱.
그 순간 적사결의 팔이 길어지며 땅바닥을 짚었다.
이를 지지대로 삼은 몸이 공중제비를 돌았다.
방향은 세 번째 공세를 절묘하게 피해 낼 만큼.
‘어후, 본신이었다면 허공답보면 될 것을 손에 흙이나 묻혀야 되고. 쯧.’
속으로 혀를 찬 적사결은 착지와 동시에 사왕을 뽑았다.
번쩍.
발도와 동시에 내려친 자세의 왜구 팔을 절단.
잘린 팔을 잡아 놈의 왜도를 뱃가죽에 박아넣었다.
마치 왜국의 문화 중 하나인 할복을 강제로 구현한 듯했다.
쉬익.
한 놈이 죽었으나 놈들의 동요는 없었다.
피를 보니 도리어 더 광기에 젖어 든 듯한 눈빛과 움직임이었다.
양쪽에서 왜도를 휘두르는 두 명의 왜구.
따다다당. 따다다다다당.
서로의 도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적사결을 가운데 두고 난도질이 벌어졌다.
하나 사왕은 더욱 빠르게 양방향을 오가며 빈틈없는 방어초를 펼쳤다.
‘이 자식들 한 수 한 수가 동귀어진하자는 것 같잖아…….’
방어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내공을 쓰지 않는 놈들이었지만 칼질 하나하나가 무시 못 할 수준인 데다 목숨까지 걸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삼 초 안에 죽이라 했건만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닌데.’
두 놈을 공세를 막으며 삼 초를 넘겼지만 살의에 의한 영향은 없었다.
마공과 같은 정신 침식을 원천적으로 막는 불가기공의 공능.
무허의 몸에 깃든 보리연화공의 내공 덕분이었다.
‘불가기공의 덕을 보게 되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야…… 쩝.’
적사결이 혀로 입술을 축이는 그때였다.
파팟.
놈들이 거리를 벌리며 물러났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왜도를 버리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던 흑의 복면인, 닌자들이 다가와 새로운 왜도를 건네주었다.
‘막기만 했음에도 사왕에게 내구력이 다한 거로군.’
바닥에 버려진 왜도를 자세히 보니 온통 이빨이 나가고 금이 가 있었다.
한계까지 내구력을 썼다는 것은 놈들이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는지 보여 주는 듯했다.
그때 왜구 중 한 놈이 뭐라고 떠들었다.
그러더니 감영과 백리황을 상대하던 놈들 중 두 놈이 적사결에게 다가왔다.
“새끼. 주제를 아는구나. 한데 네 마리로 되겠어?”
적사결은 이죽거리며 감영과 백리황을 슬쩍 살폈다.
역시 그들도 삼 초를 넘겼는지 꽁지가 빠져라 도망 다니고 있었다.
다만 뛰어난 신법 덕분에 당장의 걱정은 덜어도 될 듯했다.
‘탐색전은 이쯤하면 되었고. 상황도 긴박해지고 있으니 슬슬 진지하게 해 볼까.’
멀지 않은 곳에서 소란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중 들린 말은 총공격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역시 소주성에 변고가 생긴 거다.
뿌드득. 뿌득.
예전 풍림의 뇌옥인 사방지뢰진을 파괴할 때 사용한 한계 너머의 힘.
적사결은 일단 그 힘을 잠재 근력이라 명명했다.
점차 전신의 핏줄이 불거지자 전신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퍼어엉.
발끝이 진천뢰라도 밟은 듯 폭발적으로 튀어 나갔다.
이어지는 첫 일격은 광풍폭살.
내공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패도적인 초식이었다.
콰가가각. 후드드득.
전면의 왜구는 작은 고깃덩이로 화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피할 수 없이 빠른 일격에 동귀어진이라도 할 듯 마주하다 산산조각 난 것이었다.
선제 공격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순식간에 흐름이 적사결에게 옮겨 온 것.
이어서 이격.
쇄액.
머뭇거리던 왜구의 정수리로 사왕이 달려들었다.
초월적인 근력이 보여 주는 속도는 경악스러웠다.
쩌어어.
피할 생각도 못하고 막아선 왜도.
하나 속도에 더해진 파괴력과 사왕의 공격력이 합쳐지자.
쩡-!
왜도가 부러짐과 동시에 머리끝부터 사타구니까지 반으로 쪼개졌다.
공세는 쉼 없이 이어졌다.
내려친 사왕의 도첨이 바닥에 닿은 후 마치 튕기듯 튀어 올라 또 다른 왜구를 갈라 버렸다.
이번엔 사타구니에서부터 정수리로.
쫘아아악. 후두둑.
피보라가 분수처럼 하늘로 솟아올라 피의 비가 내렸다.
“칙쇼!”
남은 두 명의 왜구가 달려들고,
“겐! 쇼지! 지토!”
감영과 백리황을 상대하던 왜구가 다른 세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그 뒤를 따랐다.
적사결의 움직임에 모두가 상대해야 한다는 판단이 든 것.
빠른 결단에 빠른 행동력이었다.
“신스케 사마.(신스케 님.)”
그 모습을 보던 닌자 중 한 명이 신스케를 불렀다.
자신들도 거들어야 하는 것 아닌지 의사를 물은 것이었다.
“아니, 우리는 이 전투를 눈에 담고 분석하여 대장님께 보고할 것이다.”
신스케의 명에 닌자들은 자리를 지킨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순간에도 귀갑병대의 대원들은 한 명씩 차례로 토막이 나고 있었다.
‘엄청난 자다…… 영지급의 사무라이 열 명을 저렇게 쉽게 상대하다니. 게다가 저 칼은 뭐란 말인가…… 대장님의 히토키리와 맞먹는구나…….’
신스케는 눈으로 쫓기도 힘든 적사결의 움직임을 보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대장인 요신키님이 아니라면 대적불가라는 경종이 머릿속에 계속 울렸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사이 사무라이들은 모두 주검이 되어 바닥에 누워 있었다.
뚝. 뚝.
적사결은 도신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방울을 털어 내지도 않고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향한 곳은 나무 위.
신스케가 있는 곳이었다.
“어이. 구경은 잘했나? 상대역이 다 뒈져서 그러는데 그만 내려오는 게 어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덤비라는 시늉을 하자 신스케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당신에게 집니다. 다음에 죽여 드리죠.”
“오호, 다음엔 죽일 수 있다는 거냐?”
“가능합니다. 반드시 죽입니다.”
“큭큭. 호언장담하는 놈 놀라서 간이 튀어나오게 하는 것이 또 본좌의 취미지. 좋다. 가라. 가서 준비 잘하라고.”
신스케는 망설이지 않고 수하들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적운님! 그냥 보내시면 어떡합니까?”
백리황이 다가와 소리를 높였다.
“와…… 누가 보면 네가 여기 놈들 다 쳐 죽인 줄 알겠다? 한 놈이라도 때려죽이고 목구멍 활짝 연거냐?”
“아…… 저기 그게 아니라…… 송구합니다.”
“이젠 죄송이 아니라 송구냐. 쯧쯧.”
적사결이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저놈들은 쉽게 잡기 힘들다. 벌써 본좌의 감각에서 벗어났으니 너라도 못 잡을 것이야. 더구나 지금은 소주성이 더 급하니 졸개 몇 놈 조질 때가 아니지 않느냐.”
“역시 아까의 폭발은 소주성인 것입니까?”
감영의 물음에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왜 놈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 보니 총공격이 시작되었다는군. 필시 소주성 내부에서 일을 벌인 새끼들이 있겠지. 가왜 놈들은 시기를 맞춰서 들이닥치는 것일 테고.”
“왕직 때와 마찬가지로 가왜가 다시 준동하는 것이군요…… 휴…….”
감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중원인 중 동조자가 있어 검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해적왕 왕직.
이번엔 또 얼마나 지난한 세월이 걸릴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가지. 총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수습이 될지 모르지만 한 손이라도 보태야 되지 않겠나.”
“예, 서두르시지요.”
“일단 두 사람 먼저 출발해. 바로 따라갈 테니.”
“무슨 일 있으십니까?”
백리황의 물음에 적사결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가다가 거치적거리는 놈이 있으면 치우고 길 좀 열라는 거지. 복귀하는 길은 나도 좀 편하게 가면 안 되냐?”
“아…… 예. 알겠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백리황이 신형을 날리자 감영도 목례를 한 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사라지자.
“아윽…… 크읍…… 이게 얼마만의 근육통이야…… 무슨 초짜배기도 아니고…….”
잠재 근력을 사용한 반동은 상당한 통증을 동반했다.
잠시간 회복력과 재생력에 주력해야 할 정도였다.
‘앞으론 좀 적당히 날뛰어야겠는걸.’